제72화. 왜군의 탐망선 기습작전
왜군은 자신들이 보유한 소선(小船)들 중에서 속도가 빠른 배들을 추려내 개량을 거쳐 노의 개수를 늘렸다.
그 배들을 한날, 야간을 이용해 이키 섬 뒤편에 숨겨놓고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왜군이 기다리던 날이 찾아왔다.
바람 잦아든 바다엔 해무까지 짙게 끼어있었다.
먼 곳에서 바다를 살피기에 가장 안 좋은 날이었으며, 바람이 적어 돛을 추력으로 삼는 배들이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날이었다.
이키 섬 뒤에서 기다리던 왜군의 고속선들이 일제히 조선 탐망선들을 향해 달렸다.
목표는 히타카츠 방면이 아니라 이즈하라 방면에 배치된 4척의 조선군 탐망선이었다.
조선 수군의 탐망선이 배치되는 시간, 위치는 이미 왜군에 파악된 후였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위치로 달리는 왜군 고속선의 수는 목표인 조선군 탐망선 수의 2배를 살짝 넘는 10척이었다.이키 섬 뒤에서 기다리던 왜군의 고속선들이 일제히 조선 탐망선들을 향해 달렸다.
바다에서 밤을 보낸 탐망선에 아침이 찾아왔다.
여전히 이키 섬에서 3천 보 거리를 두고 떠있던 탐망선37호도 야간 근무에서 주간 근무체제로 변경되었다.
적은 인원으로 주야를 돌아가며 탐망을 서야 해서 병사들의 피로도가 높았다.
더구나 배가 조류에 떠밀려 가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 해서 야간 근무자는 그걸 혼자 다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탐망선의 병사들은 배의 운항에 대해서도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더구나 작은 탐망선에선 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차가운 밤을 작은 선실에서 방한복과 서로의 체온으로만 견뎌야 하는 건 덤이으로 겪는 고통이었다.
불을 쓸 수 없으니 탐망선에서 섭취하는 음식은 모두 건량이다.
지금은 봄이라 그나마 조금 낫다. 겨울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무가 고통스러웠다.
봄이어도 돌처럼 딱딱한 건량을 입안에 넣고 찬물을 머금으면······.
“아으······. 추워.”
이소강의 말에 병사들이 낄낄거렸다. 그런 병사들과 함께 웃으며 한참을 불려가며 건량으로 아침을 때운 이소강이 잠시 견시수의 임무를 인수했다.
다른 이들이 식사를 할 때 견시수를 맡았던 병사가 뒤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도 딱딱한 건량을 찬물로 녹여 먹는 것은 같았지만.
그러는 사이 이소강이 망원경과 두 눈으로 바다를 살피는 일이 계속 되었다.
지루하고 또 지루한 일과다.
근무 준비를 마친 이들이 본격적인 주간 근무에 임하면서 이소강이 망원경을 견시수에게 넘기고 기지개를 폈다.
본격적인 주간 임무가 시작되면서 견시수는 둘로 늘었다.
한명은 망원경으로 먼 바다를 살피고, 다른 한명은 육안으로 가까운 바다를 살핀다.
다른 이들은 배를 조정하거나 소일거리를 찾아 시간을 때운다.
잠을 자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무 조각이나 그림 같은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학당을 다니는 병사들의 경우엔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전시라서 수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진도는 나가지 못했다.
이소강도 그런 이들 중 한명이다.
벌써 몇 번째 보는 것인지 모를 교재를 펼쳐들었던 이소강에게 견시수의 음성이 들려 온 것은 야간 근무자가 그 딱딱한 건량을 입안에서 불려 다 먹었을 때쯤이었다.
“정장님 저기 좀 이상한데요?”
망원경으로 먼 바다를 살피던 견시수의 말에 이소강이 펼쳤던 교재를 덥고, 선실을 나와 망원경을 건네받았다.
“저기, 저쪽 입니다.”
견시수의 손짓을 따라 망원경을 향했다.
그런 이소강에게 견시수가 말을 이었다.
“아군 탐망선 같은데······. 불이 난거 같지 않습니까?”
“불길은 안 보이는 거 같은······. 어!”
놀란 표정의 이소강이 망원경을 바짝 눈에 붙였다.
견시수의 말대로 흐릿하게 보이는 배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거리가 너무 먼데다 기상도 좋지 않았다.
해무가 낀데다 높은 파도에 가려져서 배의 형태가 확실하게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희미하게 언뜻, 언뜻 보이는 형태가 견시수의 말대로 아군 탐망선 같기도 했다.
“설마 불을 쓴 건가?”
의아한 음성을 흘리던 이소강의 입이 다물렸다.
무언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것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소강이 망원경을 내리고 돛을 바라봤다.
탐망선의 돛대엔 망루가 없다.
배가 너무 작아서 돛대에 망루를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돛대위에 올라가서 바다를 살필 때의 무게로 배가 기울거나 방향을 상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돛을 수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올라가기도 하니까.
망원경을 옆구리에 끼고 이소강이 돛대를 기어올랐다.
돛대를 팔과 다리로 감고 한쪽 손으로 망원경을 다시 펴서 그곳을 다시 봤다.
불이 붙은 배는······. 희미하게 펄럭이는 삼색 태극 깃발이 보였다. 아군 탐망선이 맞았다.
‘그럼 아까 봤던 건?’
의아하게 생각하며 배를 살폈지만 다시금 해무에 가려진데다 너무 멀어서 그 이상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원경을 돌리던 이소강의 움직임이 멈췄다.
배 한척이 이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해무 사이로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망원경의 길이를 조절해 배율을 맞추고 주시하자······. 왜선이었다.
주르륵 돛대를 타고 내려오며 이소강이 소리를 질렀다.
“적선이다! 돛 전부 펴!”
이소강의 고함소리에 막 잠자리에 누웠던 야간 근무자까지 일어나 돛을 편다고 난리였다.
잠시 후, 탐망37호가 바람을 받아 바다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런 탐망37호 서편으로 고속으로 다가오는 배가 해무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저쪽도 대형선은 아니었지만 조선의 탐망선보다는 확실히 큰 배였다.
그런 왜선이 노를 저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왜선의 속도가 아무래도 탐망선보다 빨라 보였다.
그렇다고 바로 잡힐 거리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너무 약했다.
모두 펼쳐진 돛은 바람을 받지 못한 채 늘어져 있었다.
그런 돛에서 돌리던 이소강의 시선에 이키 섬을 돌아 나오는 또 다른 왜선이 잡혔다.
서쪽에서 달려오는 왜선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쪽도 노를 통해 속도를 제대로 올린 상태였다.
이미 섬 뒤에서부터 달려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바람날개!”
이소강의 고함에 뒤를 돌아본 병사들이 바람날개를 돌린다고 소란을 떨었다.
곧바로 후미에서 물거품이 거세게 일면서 탐망선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망원경을 들어 섬 뒤와 서편을 살폈지만 왜군의 고속선 외에는 달리 배가 보이진 않았다.
“단지 탐망선을 사냥하겠다고 나온 거라고?”
이소강의 음성에 불안감과 의아함이 담겼다.
1시간.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미친 듯이 바람날개를 돌려대고 있었지만 왜선들과의 거리는 계속해서 좁혀지고 있었다.
쇄액. 퍽!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와 함께 선미에 화살이 박혔다.
왜선과의 거리가 화살의 사거리 까지로 좁혀진 것이다.
이소강이 이를 악물었다.
“선상전 대비!”
이소강의 외침에 바람날개를 돌리는 병사를 제외한 이들이 선실에서 무장을 꺼내 들었다.
탐망선엔 가형 소총이 배치되지 않았다.
적과 총격전을 벌여야 할 정도로 가깝게 붙었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군 지휘부는 그런 상황에서 소총이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탐망선에 비치된 무장은 전통적인 살수 무장인 창과 칼, 그리고 활이었다.
활을 맡은 병사가 서둘러 왜선을 겨눠 쏘았지만 화살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바다에 나와 있었던 활의 시위가 풀어져 느슨했기 때문이다.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병사에게 창을 들라고 말하며 이소강도 칼을 뽑아들었다.
선상 육박전 교육을 받긴 했지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왜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선수에 모여 있는 왜군의 수만도 열은 훌쩍 넘어보였다.
이소강은 아무래도 여동생이 시집가는 모습은 보지 못할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조선 수군 탐망선들이 제거된 바다로 이키 섬을 돌아 5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 왜군 함대가 출현했다.
여전히 바다는 짙은 해무로 자욱했다.
왜군의 함대는 그 해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
대마도와 이키 섬의 거리는 현대 도량형으로 50Km정도다.
날이 좋으면 대마도 산정(山頂)에서 이키 섬이 보이기도 한다.
그걸 활용해 대마도를 장악한 조선군도 대마도의 산정에 망루를 세우고 견시수를 배치했다.
그런 대마도 산정망루의 견시수들이 투덜거렸다.
“아침부터 해무가 뭐 이렇게 짙어. 이래서야 섬 바로 앞까지 밖에 보이지 않잖아.”
“그러게 말이지비. 오늘은 유독 심해서리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지비.”
고향이 함경도라는 후임의 답에 선임이 눈가를 찌푸렸다.
“마! 한성말 안 쓸래? 다나까로 하라니까 그게 안 되냐?”
“아! 죄송하지 말임다, 쓸려고 노력함 말임다. 이상해져서 말임다.”
“저저, 나처럼 하란 말이다. 그래서 어디가면 함경도 촌놈 소리 듣기 딱이지.”
“김 상병님은 어찌 고친 거임까?”
그랬다. 면박을 준 김 상병도 함경도 출신이었다.
“구르다 보면 다 된다. 군대가 그런 거지. 안되는 게······. 어!”
말을 하다말고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선임병에게 후임이 물었다.
“왜 그럼까?”
“저거······. 망원경, 망원경 줘봐.”
후임병이 망원경을 서둘러 건네자 선임 견시수가 망원경을 펼쳐 바다를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야! 엿 됐다. 북쳐! 적함대 출현!”
선임의 고함에 놀란 후임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선임 견시수가 북채를 들고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둥둥둥둥둥.
빠르고 요란한 북소리에 대마도 전체가 요동쳤다.
수군 병사들이 배로 달려 나가느라 소란이 일었고, 육군 병사들이 해안가에 진지를 쌓고 야포를 배치해둔 해안포 진지로 달려간다고 아우성쳤다.
개전 이래 계속해서 대마도 전단장을 맡고 있던 송상현도 사령부 건물에서 뛰어 나왔다.
그가 바라보는 바다는 짙은 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 함대를 출격 시켰다고?”
해무는 바다를 관찰하는 이들에게도 불리했지만 그런 바다로 배를 몰아나가는 이들도 위험했다.
더구나 여러 척을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경우엔 그 위험도가 훨씬 더 높았다.
출동하는 조선군 함선들도 그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포구를 가장 먼저 떠난 것은 기동대기조로 편성된 장갑귀선 2척과 판옥전서 3척이었다.
그들이 차례차례 이즈하라 포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즈하라가 비상이 걸렸듯이 히타카츠도 비상이 걸렸다.
북소리는 대마도 산정을 연결한 망루들을 거쳐 히타카츠에도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히타카츠 상륙 이래 계속해서 이쪽 방면 방어사의 임무를 맡고 있던 정발의 지휘 하에 육군들이 해안포진지로 달려갔고, 42척의 탐라 수영 판옥전선들도 병사들을 태운다고 난리였다.
이즈하라 포구에 배치된 조선 수군의 전선은 모두 61척.
장갑귀선 29척과 판옥전선 32척으로 모두가 충청 수영 소속의 함선들이었다.
그 배들이 속속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충청 수사 이찬의 대장선이 포구를 벗어났을 쯤엔 앞서 출항한 기동 대기조 함선들의 함포 소리가 들려왔다.
콰광!
벌써 포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왜군 함대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서둘러라!”
이찬의 독촉이 막 포구를 벗어나는 함선들 사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