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62화 (62/325)

제62화. 사림(士林)의 위축

“정 장군이 맡아보겠소?”

광해의 물음에 무장들의 시선이 말석으로 향했다.

그곳에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장수가 서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젊은 장수는 왕이 거명한 이가 자신임을 뒤늦게 알아 차렸다.

“소, 소장이 말이옵니까?”

놀란 장수의 물음에 광해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소. 난 장군이 맡아 주었으면 좋겠소만.”

광해의 말에 이제야 실감이 났는지 얼굴 전체에 기쁨이 가득 찬 젊은 장수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소장 정기룡. 신명을 다 바쳐 전하께 충성하겠나이다.”

한쪽 무릎을 꿇어앉는 군례를 올리며 충성을 맹세하는 정기룡의 음성이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실제역사에선 조선의 조자룡이라 불렸다는 장수다.

단기 기마전으로는 당대 조선 제일이라 평가되었다던가?

물론 과대평가 된 것이란 현대의 평가도 일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인사를 삼도수군통제사까지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왜란을 거치며 그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알게 된 조선이 말이다.

그러니 믿고 간다.

기뻐하는 정기룡에게서 시선을 떼다 보니 좌절하는 신립의 표정이 보였다.

솔직히 조선에서 기마하면 신립이다.

남간도인들조차 기마에서 신립을 인정하는 편이었고, 그가 기른 북방 기마대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으니까.

다소 거친 성정과 편협한 사고가 문제이긴 했지만 용맹으로는 조선 제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보면 개마 돌격기마 병단의 지휘관으로 그보다 어울리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신립이 아니라 정기룡에게 맡긴 것은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광해가 바라보는 신립은 단점이 고쳐지기만 한다면 조선에서 누구보다 크게 쓰일 장수였다.

불세출의 용맹에 여진인들이 두려워했을 정도로 강력한 북방기마대를 조련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신 장군.”

“예? 예. 전하.”

느닷없는 왕의 부름이었기 때문인가? 놀라는 신립에게 광해가 물었다.

“서운한가?”

“아, 아니옵니다. 전하.”

아니라 말한다.

이전이라면 저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왕의 면전이라 해도 그렇다고 어찌 자신 같은 맹장을 두고 저런 조무래기에게 맡기느냐고 따져 물었을 사람이다.

그런 것을 용맹으로 알고, 자신감이라 말했던 것이 신립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 말했다.

기가 꺾인 것이다. 저 무지막지한 인사가.

저런 상태라면 다른 이의 말을 귀담아 들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광해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왜 서운하지 않은가? 그대가 서운 하라 그리 한 것을.”

광해의 말에 신립의 표정은 어두웠다.

왕이 군(君)시절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던 이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걸 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그 스스로도 장수들 중 가장 먼저 목이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 신립에게 광해의 음성이 이어졌다.

“장군은 다 좋은 데 너무 외골수요.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 믿고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소. 그것은 장수가 가장 경계해야할 성품이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었다.

그냥 파직으로 끝날까? 아니면 목을 베려나?

별생각이 다 드는 탓에 뒤에 이어진 왕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런 신립을 곁에 서 있던 장수가 툭하니 쳤다.

놀라 돌아본 그 장수가 왕이 앉은 전면을 눈짓한다.

비로소 화들짝 놀라 앞을 바라보자 광해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신립을 바라보며 광해가 쓰게 웃었다.

자신감과 용맹 빼면 시체라는 신립이 저처럼 맥이 빠져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다시 말했다.

“각도에 배치되는 전력 외에 5개 소총 병단과 3개 기마총병 병단을 묶어 타격전단을 만들고자 하는데 맡아보겠냐고 물었소만.”

“소, 소장이 말이옵니까?”

정기룡보다 더 놀란 표정인 신립에게 광해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소. 물론 조건이 있긴 하오만.”

“하, 하명 하소서.”

“김여물 장군을 부장으로 삼아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약조가 필요하오.”

난데없이 자신의 이름이 거명된 것에 놀라는 김여물을 신립이 힐긋 바라봤다.

몇 번 접점이 있던 장수다.

나름의 식견도 있고, 용맹도 있어 신립도 눈여겨보던 장수였다.

그런 신립에게 광해가 말했다.

“장군의 용맹은 조선제일. 하나 시야가 좁소. 그걸 장부답게 인정하고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면 난, 촉왕이 장비를 대하듯 장군을 중히 쓸 생각이오만.”

광해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신립이 한걸음 나서 무릎을 꿇었다.

군례를 위해 한쪽만 꿇는 것이 아니라 두 무릎 다 꿇어 앉아 왕을 올려다봤다.

“소장, 신립. 칼을 차고 말을 달려 나라를 지키는 것에 제 모든 것을 걸었던 무부(武夫)이옵니다. 지난날의 잘못으로 버려질 것을 각오하였사온데 전하께오서 질책해 주심에도 버리지 않고 쓰신다 하오니 그 은혜 죽음으로 갚을 것이옵니다. 충성으로 그 명을 흉중에 새겨 따르겠나이다.”

생각 이상의 반응이었다.

자존심 하나로 북방을 달리던 맹장이 만인이 바라보는 가운데 왕에게 진심으로 무릎을 꿇었다.

말위에 서서 죽을지언정, 땅에 내려 고개를 조아려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라 입에 달고 살았다던 신립의 행동으로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것으로 신립의 결심이 어떠한 것인지 광해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광해가 왕좌에서 내려와 직접 그를 일으켜 세우고 부둥켜안았다.

“그대에게 조선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니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로 키워 올곧이 승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라 믿겠소.”

“소장 목숨을 걸고 충심을 다할 것이옵니다.”

광해의 두 배는 됨직한 장수가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그날 밤, 신립은 친한 동료들과의 축하 연회 자리에서도 왕이 자신을 신임했다는 것에 굉장히 흥분하고, 감격해했다.

그는 죽음으로 광해에게 충성하겠다며 술자리에서 맹세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신립에게 정왜 전쟁의 중추를 담당할 전력이 맡겨졌다.

누군가는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라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광해로써는 최고의 베팅을 던진 일이었다.

*****

조선이 대대적인 개편으로 온 지역이 소란스러울 때 왜는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조선의 왕이 죽고, 왕자가 반란으로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신단의 보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왜 사신단의 보고를 기반으로 조선이 한동안 혼란에 휩싸여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더구나 수십을 들여보낸 간자들의 눈에도 조선은 안정되어보이지 않았다.

나날이 변해가는 제도에 백성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 까닭이다.

사림의 불만은 높았고, 백성은 혼란스럽다는 보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내진 연유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휘하의 장수들은 지금이 조선을 정벌할 최적의 기회라 확신했다.

*****

광해 즉위년 6월.

노비 학대 금지령이 내려졌다.

노비라 하여 마음대로 때리고 처벌 할 수 없도록 하였다.

하긴 이젠 조선에 존재하는 모든 노비가 왕실 소유가 된 이상 함부로 그들을 상하게 할 간 큰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왕명으로 인하여 광해는 노비를 관장하는 관리들의 자세가 달라지길 원했다.

노비 학대 금지령이 내려진 날, 전국에 10살 이하 노비들에 대해 면천령이 떨어졌다.

이후 노비 부모에게서 태어나더라도 그 아이는 양인의 신분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비와 어미 형, 누이가 노비인데 자신은 양인인 아이가 나오게 되었다.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 걱정하는 대소신료들이 많았지만 아무 곳에서도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린 자식이, 동생이 면천되었다고 시기하는 부모와 형제는 없었다.

그들은 면천된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다.

며칠 후, 중인이고, 양인이고, 천민이고, 그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백성을 양반과 차별할 수 없다는 왕명이 추가로 떨어졌다.

백성들은 환호했지만 사림은 당황과 분노를 보였다.

처음 상소가 올라오고 반대하는 서원이 나와 사림이 집단 반발했다.

일부 서원에서 거병을 위해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고변까지 들어왔다.

광해가 신립에게 명해 타격전단의 일부를 이끌고 가 직접 진압하라 명을 내렸다.

왕명을 받은 신립이 부장 김여물의 보좌를 받으며 1개 기마총병 병단을 이끌고 나아가 반발한 이들을 추포하여 황폐한 남간도 밖 여진 땅으로 추방하고, 서원을 폐하였다.

그 일을 백성들이 통쾌하게 생각했다.

사림의 일원이었던 신립이지만 그는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광해의 명을 충실히 이행했다.

여진 땅으로 내팽개쳐진 사림들 중 다수가 명으로 망명하였다.

그것을 광해가 묵인했다.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걸림돌들을 치우자는 의미였지 죽으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식이 오히려 백성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나라에서 쫓겨났으면 거친 땅에서 반성하며 검약하게 살 것이지 편안한 삶을 찾아 명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자신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좋은 생활을 누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사림들 전체가 백성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백안시 되었다.

자신들만 계속해서 특권을 누리려는 사림의 행태를 좋게 보는 백성은 아무도 없었다.

사림이 백성에게 눌리고 있었다.

언문이라 업신여겼던 한글을 익힌 이들이 늘고, 산수로 이익을 따질 줄 알게 된 백성들의 힘은 날로 커져가고 있었다.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풍겨 나오던 9월의 어느 날, 김억수가 광해와의 독대를 청해 궐로 들어왔다.

수척하여 병세가 완연한 그를 광해가 친히 마중 나가 맞았다.

“괜찮은가?”

“전하의 보살핌으로 많이 호전되었나이다.”

“자애하여 얼른 기운을 차려야 하네.”

걱정이 묻어나는 광해의 말에 김억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소인 전하께 주청드릴 일이 있어 들었나이다.”

“말해보게. 내 힘이 닿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들어줄 터이니.”

광해는 김억수에게 빚을 졌다.

지난 경인옥사의 국문장에서 모진 고문 속에도 김억수가 버텨준 덕에 대역죄를 뒤집어쓰는 횡액을 비켜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고문에 김억수가 무너져 최목중이 원하는 대로 없던 일을 고해 바쳤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렇기에 광해는 김억수에게 마음의 빚이 컸다.

더구나 돌이켜보면 그는 자신 때문에 당하지 않을 일을 당한 셈이었다.

그런 광해의 마음을 아는지 빙긋이 웃은 김억수가 말했다.

“소인의 모든 것을 전하께 바치고자 하옵니다.”

“무슨······, 소린가?”

“제가 모은 모든 재산을 전하와 왕실에 들어 바치려 하옵니다.”

“아니 왜?”

광해와 함께 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지만 그 바탕엔 이미 조선 제일을 자랑했던 막대한 김억수의 재산이 뒷받침 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작도 못했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렇게 모은 재산을 들어 바칠 연유가 없었다.

그런 광해의 의문에 김억수가 답했다.

“소인이 욕심이 많아 혼례도 올리지 않고 장사를 해 물려줄 가족도 없고, 몸이 아프니 그걸 제대로 간수하기에도 벅차옵니다.”

“김 대행수······.”

“부디 받아주시옵소서. 철물전의 것들 중 전하의 손길과 입김이 닿지 않은 것이 없사오니, 전하의 것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하니 그것을 올곧이 소유하시어 전하가 꿈꾸는 조선의 바탕을 세우소서.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소인은 기쁠 것이옵니다.”

김억수의 표정엔 진심이 가득했다.

그런 김억수의 뜻을 광해는 물릴 수 없었다.

그날, 김억수가 가진 모든 재산이 공식적으로 왕실로 넘어왔다.

그렇게 모든 재산을 넘긴 김억수에게 광해가 호조판서를 제의했다.

그의 상재가 아까워서였다.

하지만 김억수는 지난 사화의 고문으로 무너진 건강을 이유로 고사했다.

실제로 어의까지 보내 보살폈음에도 불구하고 김억수의 병은 가볍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명나라에 설치된 상단의 장부와 곳간의 열쇠를 모두 들고 조필이 조선으로 와 광해군에게 들어 바쳤다.

김억수의 명을 받은 행보였다.

광해가 그에게 왕실 소유가 된 명 상단에 철산상단이란 이름을 붙이고 대행수의 직을 주어 다시 상단의 총책임을 맡겼다.

왕실 소유가 된 철물전은 무산에 있던 나석에게 대행수를 맡겨 계속 일을 보도록 했다.

김억수가 가지고 있던 선전의 지분 상당수가 왕실로 넘어왔다.

김억수의 사람으로 그간 선전의 대행수 직을 수행했던 한수를 그대로 유임시켰다.

당연히 철고은행과 은제작소, 대량의 곡식과 토지를 소유한 미곡전이 함께 왕실로 넘어왔다.

철회의 사람들에게 넘어갔던 철물전의 사업장들은 이미 모조리 복구된 상태였다.

그로인해 가히 조선 땅에 존재하는 부(富)의 7할이 왕실의 소유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이전에도 광해가 마음대로 써왔으니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그 소유주가 왕실로 분명해 졌다는 것은 확실한 차이였다.

이전처럼 철산제철단지와 은제작소를 제외한 모든 왕실 소유 사업장이 소득분배 5원칙을 준수했다.

그것이 본보기가 되었다.

선전이 그 기조를 제일먼저 따랐다.

대행수인 한수를 통해 왕실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닿기 시작한 선전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육의전의 다른 상점들과 조선 각지의 상단들과 새로 문의 연 상점들도 그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수익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혼란에 휩싸이고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날 거라던 사림의 예상들이 모두 빗나갔다.

백성들은 똘똘 뭉쳤다.

이미 자신들의 희망을, 지금은 선대왕이 된 선조가, 기득권을 가진 훈구의 인사들이 어찌 뭉개고 짓밟는지 경험한 후였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림이 취한 행동을 백성들은 기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신에만 급급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백성의 희망이, 백성의 재물이 왕과 훈구인사들의 전횡에 무너져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금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용납할 생각이 조선의 백성들에겐 전혀, 눈곱만큼도 없었다.

과거의 법을 설파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며 주장하는 사림의 선비들을 백성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다.

이전이라면 감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바뀐 조선에선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사림의 위축이 가속화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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