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결심을 굳히다
광해군의 서신을 받은 것은 김수나 정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서신은 하위군관들보다 더 간단했다.
<미안합니다.>
서신을 접은 김수와 정걸이 밤새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조24년 3월, 천진항.
정걸이 타고 온 장갑귀선에 광해군이 올랐다.
배에 오른 광해군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맞는 정걸의 손을 부여잡았고, 정걸은 굳은 입매를 억지로 움직여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그것으로 되었다.
고맙다는 말도, 괜찮다는 말도 없었지만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혼을 앞두고 명을 떠나는 그를 석성은 걱정했다.
어쨌거나 황명을 위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석성은 굳이 광해군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의 배려로 무사히 천진항을 출발할 수 있었던 광해군이 바다에서 기다리던 장갑귀선 함대와 조우했다.
80척의 장갑귀선이 일제히 단동을 향해 선수를 돌렸다.
단동에는 광해군의 명을 받은 김수가 보낸 2개 소총 병단, 2만이 대기 중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달려온 투삼구와 니탕개가 단동 포구에 내려선 광해군의 발치에 엎드렸다.
“신인을 뵈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극진한 모습으로 번개로 자철석을 만들고 난 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쓰게 웃으며 광해군이 말했다.
“일어나요. 반가운 얼굴을 보고 싶군요.”
광해군의 말에 조심스럽게 일어선 이들이 공손히 반례했다.
그런 그들을 광해군이 덥석 안았다.
광해군의 행동에 당황도 잠시 투삼구와 니탕개가 작게 웃었다.
선조24년 3월 15일.
광해군이 탐승한 장갑귀선 함대가 2만의 소총 병단을 태운 2백 척의 교역선을 호위해 재물포로 향했다.
같은 시간, 김수의 명을 받은 철산 돌격기마 병단이 내음타방의 지휘로 철산 배후단지와 제철단지를 가르는 두만강을 돌파했다.
그들을 막아야하는 북위별시위의 병사들이 어쩐 일인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고위지휘관들이 아무리 악을 써도 군의 중추를 담당한 실전 지휘관들인 하위군관들이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북위별시위를 그대로 지나친 철산 돌격기마 병단이 경원에서 회령으로 자리를 옮긴 함경도 도호부를 에워쌌다.
2백 남짓한 방어병력밖에 없던 회령은 성벽에 병사들을 배치해 방어를 굳혔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함경도 군 고위지휘부를 묶어둔 상태에서 철산 예비군이 배후단지를 벗어나 일제히 두만강을 건넜다.
총병력 13만의 무장부대였다.
제1거주구역에서 소집된 여진전사 5만은 유사시에 대비해 철산 단지에 남았다.
그들은 다른 여진 거주지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철산단지를 이번 기회에 불온한 마음을 먹을지도 모를 외부의 여진족에게서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들을 남겨둔 철산 예비군이 함흥을 거쳐 평양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길목마다 군영이 있었지만 북위별시위처럼 하위군관들이 병사들을 단속해서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다.
개중에는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칼을 휘두르는 고위 장수들에 맞서 피를 본 하위 군관들의 경우까지 나오고 있었다.
여하간 아직까지 철산 예비군은 조선군과 충돌 없이 남하를 지속하고 있었다.
선조24년 3월 18일.
제물포 앞바다에 도착한 장갑귀선 80척이 투항을 거부한 제물포 포구의 조선군을 향해 반 시진동안 폭발탄을 퍼부었다.
포연과 화염으로 가득한 제물포 포구로 교역선이 붙고 이내 투삼구를 선봉으로 한 철산 예비군 소총 병단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출전했던 충청 수영의 판옥전선 3척을 비롯한 전선 7척이 2천보 밖에서 가해진 장갑귀선의 위협사격에 놀라 도주했다.
3시진에 걸쳐 2만의 소총병대가 모두 상륙했다.
그들을 앞세워 오위가 장악하고 있던 제물포 선거를 되찾았다.
반발은 있었지만 교전은 없었다.
광해군의 모습을 본 하위 무관들이 일제히 부복하였고, 그들을 따라 병사들도 일제히 부복했다.
몇몇 고위 장수가 반역이라 외쳤지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협조할 수 없다고 버틴 고위 장수들을 제물포 관아에 구금시킨 광해군은 하위 군관들이 장악한 오위의 병력을 남겨 사태를 수습케 하고 철산 예비군만을 데리고 한성으로 향했다.
급보를 들은 선조가 조당의 신료들을 급히 소집하였으나 그 명에 대전으로 달려온 이들은 훈구파 출신의 대신 몇몇과 그 비호를 받는 최목중과 철회의 사람들뿐이었다.
당황하는 선조의 명에 최목중이 교지를 만들어 삼남의 관리들에게 급히 내려 보냈다.
<외적이 침탈하여 한성의 종묘사직과 왕실이 위기에 처했으니 서둘러 달려와 근왕에 임하라.>
왕의 파발을 받은 이들이 관군을 불러 모아 근왕군을 조성한다고 난리였다.
각지에서 하위군관들의 명령불복종과 태업이 일어났으나 문관출신 장수들에 의해 다수의 병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제물포에 상륙한 철산 예비군 중 니탕개가 지휘하는 1개 소총 병단, 1만이 경기 북부의 허리를 잘랐다.
그것은 혹시라도 내려올지 모를 북부의 근왕군을 막기 위해서 내려진 조치였다.
광해군은 남은 투삼구의 소총 병단 1만과 함께 한성을 향해 계속 진군했다.
그들의 진군로 상에 존재하는 관아에 속한 하위군관들의 투항이 지속되었다.
그들을 따라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왕의 위협에서 광해군을 지키겠다는 일종의 의병이었다.
광해군이 벌여놓았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자신들이 품었던 희망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던 백성들은 그냥 앉아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왕에 맞서 백성이 자신을 보호하겠다며 농기구를 무기삼아 모여든 모습에 광해군이 눈시울을 붉혔다.
저런 이들을 버려두고 혼자 살기 위해 조선을 떠났던 자신을 광해군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한성으로 향하는 광해군의 군열 뒤를 그렇게 모여든 수천의 백성이 따랐다.
그런 백성들의 수는 한성으로 다가 갈수록 늘어나기만 했다.
광해군이 한성 외곽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이억의 철산 기동군단도 미친 듯이 달려댄 끝에 그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말과 마차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이억을 광해군이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그런 광해군을 발견한 이억이 황급히 말에서 내려 광해군의 면전에 깊게 부복했다.
“군 마마를 뵙습니다.”
그런 그를 일으킨 광해군이 이억의 손을 잡고 노고를 치하했다.
그것에 이억이 황송해 했다.
기동군단의 일부를 보내 장원의 수비대와 대치하고 있던 오위도총부의 병력을 쫓아내고 안전을 확보했다.
광해군의 모습에 장원의 수비대와 일꾼들이 환호를 터트렸다.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 광해군이 장원에 기동군단 병력 일부를 남겨 만일에 대비케 했다.
오위도총부의 병력 대부분을 한성으로 불러들인 선조와 훈구 대신들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에 들어갔다.
광해군은 장원에 비축해 두었던 조선철포 1백문을 동원했다.
공성전에는 구경이 작은 야포보다는 조선철포에서 쏘아대는 무쇠철환이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공성준비가 완료되었지만 광해군은 차마 공격을 명령하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날이 저물고, 다시 해가 떴다.
삼남에서 모인 근왕군 3만이 북상중이라는 정보보고가 들어왔다.
그들이 상주에 도착했다하니 문경세재를 넘어 늦어도 닷새 후엔 경기도 광주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광주에서 한성은 하루길이다.
엿새 후면 삼남의 근왕군과 조우한다는 뜻이다.
3만이나 하는 조선의 백성이 왕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고, 왕에 맞선 광해군을 위해 모여든 백성의 수도 2만에 달한다.
근왕군이 도착하기 전에 한성을 공략하여 선위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근왕군과의 대규모 혈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위해 모여 있는 백성들과 근왕군에 모여든 백성들이 서로를 향해 창칼을 휘두르며 피를 보게 된다는 소리다.
오로지 왕과 자신, 광해군의 충돌을 대신해서.
더구나 철산 예비군의 무장과 재래식 병기로 무장한 근왕군의 전투 결과는 참혹한 근왕군의 패배로 끝날 것이 자명했다.
철산 예비군의 화력을 감안하면 근왕군에서 대량의 전사자가 나올 것이다.
문제는 그것에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란 점이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고 마음먹으면 누구보다 독하고, 끈질겨진다.
거기다 ‘내 아버지의, 내 아들의 원수’ 라는 항목이 더해지면 ‘너 죽고, 나 죽고’로 귀결된다.
같은 조선 백성끼리 어느 한쪽이 완전히 죽어 사라질 때까지 전투가 이어질 거란 의미였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뿐인가, 한성 안에는 선조가 인질로 잡은 광해군 사람들의 가족들이 잡혀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그들의 처지가 어찌 될지는 뻔했다.
거기다 이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1년 남았다.
조선인들 끼리 내부에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광해군이 방법을 찾는 동안 다시 해가 졌다.
한성 외곽에 도착한지 나흘째 날이 밝아올 때 드디어 김수가 지휘하는 철산 예비군이 도착했다.
회령을 포위한 채 눌러앉은 내음타방의 돌격기마 병단과 경기 북부의 허리를 잘라 낸 채 지키고 있는 니탕개의 소총 병단을 제외한 14만 무장 병력이 모조리 집결한 것이다.
조선군과 여진전사, 그리고 백성들이 뒤섞였음에도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생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이들끼리 둘러 앉아 주먹밥을 나누어먹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온몸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서로 낄낄거렸다.
지금의 상황만 아니라면 같이 끼어 웃고 떠들고 싶을 만큼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그런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광해군의 눈빛에 결의가 섰다.
*****
다음 날, 이천을 거쳐 광주에 도착한 근왕군은 생각지 못한 이와 마주쳤다.
겨우 1백의 호위병만을 대동한 광해군이 그곳에서 근왕군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해군의 출현에 병사들과 의병으로 참여한 백성들이 술렁거렸다.
그들 중 다수가 외적이 침입하여 왕성을 노린다는 소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외적으로 알고 있던 적이 광해군이라는 것을 안 병사들과 의병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 마지못해 따라왔던 하위 무관들 몇이 진중의 앞으로 달려 나가 광해군을 향해 부복하는 사건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훈구 출신 의병장들과 왕명을 받은 고위 장수들이 고함을 치고 칼을 뽑아들었으나 감히 휘두르지 못했다.
호위 병사들을 뒤에 남겨둔 광해군이 그렇게 부복한 하위 무관들에게로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고위 무장들을 헤치고 한 의병장이 칼을 들고 뛰쳐나왔다.
광해군이 위험에 처한 모습을 발견한 호위병들이 황급히 가형 소총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늦어보였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술렁거리던 근왕군 속에 있던 한 의병이 죽창을 던져 칼을 뽑아들고 뛰쳐나간 의병장을 격살했다.
놀란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창을 던진 의병이 하위 군관들처럼 바닥에 엎드려 부복했다.
한자, 한자 글을 배우며 자랑했던 자식의 모습에 무언가 자신과는 다른, 아들의 밝은 미래를 그렸던 합천의 노비 돌쇠의 부복이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의병들이 하나둘 손에 들고 있던 죽창이나 칼을 놓고 바닥에 엎드렸다.
종래엔 병사들과 의병들 모두가 바닥에 엎드렸다.
놀라고 당황한 의병장들의 시선이 오고가고, 이내 칼을 뽑아들고 달려 나오는 그들을 이번엔 가형 소총을 거치한 채 대기하고 있던 호위병들이 모조리 사살했다.
결국 고위 장수들이 칼을 버리고 주저앉았다.
왕명을 받은 장수로써 광해군을 따를 수는 없으나 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겠다는 의미였다.
죄 없는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광해군의 도박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향해 부복한 수만의 백성들을 바라보는 광해군의 뺨은 어느새 흥건한 눈물로 젖어 있었다.
*****
삼남의 근왕군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어둠속의 대전에 선조가 홀로 앉아있었다.
아직 북부의 근왕군에 대한 소식은 전혀 없었다.
하긴 놀란 최목중이 왕의 교지를 보낸 것은 삼남뿐이었다.
그걸 알지 못하는 선조는 북부의 근왕군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왕을 지키겠다며 소란을 떨던 훈구 대신들은 지금 대전에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번 일의 가장 선두에 섰던 최목중은 언제부터인가 아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성의 방어를 맡은 오위도총부의 병력에서 밤마다 탈영병이 속출했다.
변절한 하위 군관들은 물론이고, 병사들의 이탈도 심각했다.
그제 밤엔 서대문의 숙위를 맡은 병력 2백이 통째로 도주하기도 했다.
초기 5천에 달하던 오위도총부의 병력이 농성 5일째인 지금엔 2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 밤이 지나면 또 얼마나 줄어들어 있을지 겁이 날 지경이었다.
“전하, 금부도사가 들었사옵니다.”
상선의 음성에 선조가 답했다.
“들라 하라.”
선조의 허락에 문이 열리고 금부도사가 들어섰다.
그에게 선조가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선조의 물음에도 아무 답 없이 금부도사가 앞으로 나와 부복했다.
한데 그런 그의 복장이 특이했다.
“자네······.”
상복을 입고 엎드린 금부도사가 조심스럽게 칼을 앞으로 들어올렸다.
칼집 없이 시퍼런 날을 드러낸 칼의 모습에 선조의 눈이 커졌다.
“무, 무슨 짓이냐!”
선조의 고함이 터져 나왔지만 어쩐 일인지 상선도 내금위의 대전별감들도 들어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