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56화 (56/325)

제56화. 함정(陷穽) 속으로.

“정철을 잘라 서인의 발을 묶었고, 광해군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였던 동인들을 짓이기 시작하였나이다. 기회를 보아 동인과 광해군을 잇는 이산해를 끊어낼 것이옵니다.”

최목중의 답에 선조가 물었다.

“가능하겠더냐?”

“철물전을 이 일에 끌어들일 요량이옵니다.”

“어찌?”

“정여립과 그 역당의 무리들이 철기로 무장하였다 하오니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겠나이까?”

최목중의 말에 선조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철물전이로구나.”

“그러하옵니다. 조선 팔도의 대장간 열중 일고여덟이 그들의 것이라 하오니 증좌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옵니다.”

“발본색원하여라.”

“여부가 있겠나이까.”

곧바로 복명하는 최목중을 내려다보며 선조가 말했다.

“역당의 무리에게 재물이 많다.”

“모두를 몰수하여 나라에 바쳐 올릴 것이옵니다.”

“네 생각이 가상하다. 필요한 것이 있더냐?”

“저들을 다루는 것에 군력이 필요하옵니다.”

“내 일러 둘 터이니 금군을 써라. 거칠게 다루어 감춤이 없게 하여야 할 것이다.”

“속내까지 훑어내 감춘 것 없이 모두를 털어내겠나이다.”

“네가 고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 심히 기쁘다. 원하는 것이 있더냐?”

“어찌 신하가 군왕에 바치는 충정에 대가를 바라오리까. 소신은 그저 전하의 칼로 쓰임을 다할 뿐이옵니다.”

최목중의 답에 선조가 비릿하게 웃었다.

“너의 말이 고를 기쁘게 하나 세상의 이치가 어찌 그렇기만 할까. 저들의 것을 빼앗아 가지되 드러내지 말고, 과하지 말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이마를 바닥에 댄 채 외치는 최목중의 말에 선조의 입가로 다시금 섬뜩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자식이라 하나 감히 주지 않은 것을 가졌다.

군왕이 버젓이 살아있건만 재물을 쥐고, 군력을 넘어 권력을 탐하였다.

왕명이 없이 군력을 움직여 외적과 대처했다.

그때의 그 섬뜩함을 선조는 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것은 광해군이 철산에 만든 군력도 그와 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철산의 군력이 함경도를 넘어 전 조선의 것을 넘어선다는 훈구 서생들의 장계를 연이어 받은 이후, 그들의 총포가 궐을 향할까 두려운 밤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었다.

자식이 되어 아비를 불안케 했으니 불효요, 군왕의 밤을 두렵게 하였으니 불충이다.

무엇을 가져다 붙여도 광해군의 죄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 주지 않은 권력을 탐하였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였다.

그 죄를 묻는 것이니 광해군도 억울하다고만은 못할 것이었다.

자신 스스로 당위성을 세운 선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명했다.

“가라. 가서 고의 분노를 세우고, 왕명의 지엄함을 펼쳐라.”

“명을 따르옵니다.”

다시 한 번 바짝 몸을 낮춘 최목중이 뒷걸음질로 대전을 물러났다.

홀로 어둠이 스며든 대전에 앉아있는 선조의 입가로 섬뜩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

아닌 밤의 홍두깨라고 반상의 법도를 무너트렸다며 양인은 물론이고, 노비도 가르쳤던 철산학당과 야공별당들에 폐쇄명령이 떨어졌다.

조선에 사치란 악습을 들여왔다며 한성의 은제작소의 문을 닫고 그 재산은 나라로 몰수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철고은행이 함께 철퇴를 맞고 모조리 문을 닫았다.

발행한 통화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철고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은이 모조리 몰수되었다.

정여립의 도당이 단지 인근 대장간이 제작한 철기로 무장했다는 것만으로 철물전이 모반사건에 휘말렸다.

철물전의 모든 사업장이 폐쇄되고 대행수인 김억수가 국문장으로 끌려왔다.

주변을 정리한답시고 시간을 지체한 까닭에 피하기 전에 잡혀온 것이다.

그는 심한 매질과 고문에도 버텼다.

“고하라. 고하면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이다.”

차가운 최목중의 말에 피범벅에 퉁퉁 부은 얼굴로 기억수가 답했다.

“답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장사를 하였을 뿐입니다.”

“너를 뒤에서 조정한 자가 있다는 고변이 있었다. 그 이름을 대라! 누구냐? 누가 역당의 모리배에게 무기를 제공하라 하였더냐? 누가 네놈을 뒤에서 조정한 것이더냐? 말하면 살고, 감추면 뼈를 부셔 죽이리라!”

섬뜩한 겁박에도 김억수가 고개를 저었다.

“정녕 그런 일이 없습니다. 정여립과는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 뒤에서 조정한자는 더더욱 없습······.”

“저놈이 아직 살만한 모양이다. 더 심히 쳐라!”

최목중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병들의 매질이 날아들었다.

곧바로 피가 튀고, 신음과 비명이 국문장을 채웠다.

모진 고문이 연일 이어졌지만 김억수는 광해군과의 연관성을 끝까지 부정했다.

정여립과의 관계도 끝끝내 부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돈을 받지 않은 대소신료가 없었으나 서슬 퍼런 최목중의 칼날에 감히 그를 구명하려 나서는 이가 없었다.

광해군이 선조와의 독대를 청했지만 거부되었다.

방법이 없어진 광해군이 대전 앞에 엎드려 김억수에게 죄가 없음을 아뢰며 밤새 방면을 청하였지만 선조의 답은 없었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대전에서 물러나온 광해군이 한참의 고심 끝에 결심을 굳히고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철산의 김수와, 제물포의 정걸에게 향하는 서신이었다.

그 시간, 밤새 이어진 고문에도 버티는 김억수로 인해 최목중은 빈손으로 다시 선조 앞에 꿇어 엎드려 있었다.

“광해군은커녕 이산해도 잡아넣지 못하였구나.”

못마땅해 하는 선조의 음성에 최목중이 바짝 엎드렸다.

“죄인이 죽기로 버티는 통에······. 용서하소서.”

그랬다.

중간엔 광해군을 포기한 최목중이 이산해와의 결탁을 고변하라 방향을 바꾸었지만 김억수는 그조차도 부정했던 것이다.

양다리가 부러지고, 가슴뼈가 꺾이고, 얼굴뼈가 무너지는 고문에도 그러했다.

그처럼 모진 고문에 버티는 이를 최목중은 처음 봤다.

그 정도면 없던 죄도 만들어 부는 것이 사람이거늘.

더 하면 죽을 거라는 내의원 의원들의 만류가 없었다면 김억수는 오늘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였다.

김억수는 죽일 수 없었다.

그는 광해군을 엮어 넣을 마지막 끄나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걸 끊어낼 수 없었다.

그 점을 설명하는 최목중에게 선조가 물었다.

“하여 네 대책은 무엇이더냐?”

“일단은 손발을 끊었으니 칼도 빼앗아 둘까 하옵니다.”

“칼을 빼앗아 둔다?”

“철산의 군력을 가두어 두여야 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괜히 건드려 분란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더냐?”

다소 불안감을 내보이는 선조에게 최목중이 답했다.

“광해군의 신병을 전하께오서 움켜쥐고 있는 이상 저들은 결코 움직이지 못하옵니다. 자신들이 움직이면 광해군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하면 광해군을 가두어야 하겠구나.”

“예. 전각에 가두시고 금군으로 감시를 붙이면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최목중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던 선조가 물었다.

“철산의 군력을 두만강 너머에 가두어두자면 함경도의 병력을 움직여야 할 터, 하나 신립은 사림의 사람이다.”

“훈구의 사람을 쓰소서. 두말없이 전하의 명에 따라 칼을 뽑고 목숨을 걸어 그 뜻을 이룰 자가 지천이옵니다.”

“그렇더냐? 하면 마땅한 이를 추려 올려라. 내 보고 가납할 것이다.”

“예, 전하.”

최목중의 답에 선조가 물었다.

“광해군의 군력을 제어할 방법이 세워졌다하나 결국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종지부를 찍어야 일은 끝난다. 방법이 정녕 없는 것이더냐?”

어떻게 하든 광해군에게 대역죄를 씌울 구실을 만들어 내라는 소리다.

“역당의 무리가 토설을 하지 않았으니 바로는 어려울 것이 아니겠나이까?”

“흐음······. 내가 너를 쓰는 것은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더냐?”

물음에 따라오는 음성이 차갑고 사나웠다.

자칫 내쳐져 토사구팽이 될까 두려웠던 최목중이 다급히 머리를 짜내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장원을 손에 넣으소서.”

“장원?”

“예. 그곳에 광해군이 사병을 두었다니 그들을 건드려 죄를 밝히소서.”

“그들이 대항해 올까?”

“소신이 들은바, 그 누구에게도 장원의 출입을 허락하지 말라 광해군이 명하여 두었다 하옵니다. 그러니 저들은 반드시 왕명에도 저항해 올 것이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저항을 왕명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 광해군을 처단하라는 뜻이다.

설핏 스쳐지나가는 선조의 미소가 섬뜩했다.

“속히 실행하라.”

“명을 받잡나이다. 전하.”

바짝 엎드려 복명한 최목중이 물러갔다.

홀로 대전의 왕좌에 앉아 주먹을 움켜쥐는 선조의 눈빛이 차가웠다.

*****

왕명에 의해 광해군이 자신의 전각에 갇혔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 새벽에 들이닥친 금군 2백이 완전히 광해군의 전각을 둘러쌌다.

광해군이 쓴 서신은 그의 전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막 알지를 통해 서신을 보내려는 찰라 선조가 보낸 금군이 들이닥친 까닭이었다.

만일에 대비해 알지가 서둘러 품속에 품고 있던 광해군의 서신을 불태웠다.

작은 단서가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광해군이 자신의 전각에 갇혀있는 상태에서 새로 북위별시위의 별장을 겸해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된 이유랑이란 자가 북위별시위를 동원해 두만강 나루를 막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철산 단지가 건립된 이래 처음으로 제철단지가 가동을 멈추었다.

광해군이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도무지 전각 밖으로 서신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철산 배후단지에 갇힌 꼴이 된 김수도 당황한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수많은 노력에도 광해군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왕의 손아귀 안에 광해군이 놓인 상황에서 섣불리 거병을 할 수도 없었다.

자칫 그것이 칼이 되어 광해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제물포의 정걸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철산과 달리 제물포는 선조의 손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정걸이 장갑귀선들을 이끌고 바다로 나아갔다.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 일단 피해있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정걸의 장갑귀선 함대가 바다로 나아간 지 한시진도 되지 않아 오위의 군대가 제물포로 들이닥쳤다.

이내 제물포 포구와 선거가 선조의 명을 받은 오위의 병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완성을 코앞에 둔 장갑귀선 20척과 미처 철수하지 못한 교역선 3백50척의 발이 묶였다.

같은 날, 최목중이 부리는 금군의 일부가 철물전을 급습했으나 어디에서도 장부를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철물전이 쌓아두고 있다는 막대한 은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것은 철물전이 은을 보관하는 금고를 철산 배후단지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음에도 새로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이유랑은 감히 두만강을 넘어 철산 배후단지로 조선군을 투입하지 못했다.

문제가 터진 직후, 소집된 철산 예비군 16만이 완전 무장상태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덩달아 제1거주구역의 여진족이 전사 5만을 소집하여 철산 예비군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함경도 조선군은 비상체제로 들어가 있었다.

조선을 정여립의 사건이 휩쓰는 가운데 왜의 사신은 부산포에 방치되어 있었다.

선위사로 부산포에 내려가 있던 이덕형은 아무런 결정도 한성 조당으로 부터 내려 받지 못했다.

전각에 갇힌 광해군은 밖으로 소식을 전하려 노력하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지 고심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고립된 광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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