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52화 (52/325)

제52화. 장갑귀선(裝甲龜船)

프로펠러를 연결한 구동축을 배 밖으로 뽑아내면서도 수밀(水密)을 유지하는 것이 이 시대의 기술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각종 수밀 재료가 총 동원된 끝에 완성된 동력부는 그럼에도 물이 샜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한 시진 정도면 선체 최하단, 후미에 만들어진 동력부가 종아리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렇게 스며들어 고인 물을 인력으로 퍼 올렸다. 물론 물동이로 퍼 올리는 건 아니다.

광해군은 그걸 위해 고대 그리스에서 개발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형 펌프를 활용했다.

완성된 철선을 광해군과 수많은 조선 기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바닷물로 밀어 넣었다.

긴장된 시간이 지나고, 철선은 중심을 잘 잡고 바다에 떠 있었다.

초기, 시험적으로 생산된 철선이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울어져 침몰해 그걸 건져 올리느라 애를 먹기도 했던 조선 기술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철선은 오로지 프로펠러의 힘으로 천천히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돛대가 없는 철선의 모습이 특이했다.

무게 때문인지 철선의 가속도는 형편없었다.

2노트를 얻기 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여하간 철선은 자력으로 바다로 나아갔고, 견인선 역할을 할 2척의 판옥선이 기다리는 제물포 선거 바로 앞바다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시험운항은 판옥선 2척이 밧줄로 철선을 묶어 끌어당기면서 시작되었다.

키를 움직이는 실험이 진행되고 이내 움직이면서 좌우로 선회하는 운항시험으로 넘어갔다.

조선 기술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가운데 철선이 무리 없이 앞서 끄는 판옥선들을 따라 좌와 우로 선회하는데 성공했다.

선거 앞, 바닷가로 우르르 몰려나와 있던 기술자들 속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속에 함께 있던 광해군에게 나대용이 붉어진 눈시울로 다가왔다.

“마마, 불가능할 줄로만 알았던 일이 드디어 성공을 하였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정말 수고했어요.”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치하하는 광해군의 말에 결국 나대용이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았다.

서기 1589년. 선조22년 5월 13일.

조선 제물포 앞바다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철선이 시험운항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있었다.

한성 인근의 장원에서 철선 개발을 시작한지 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사람들은 겨우 2노트 속도를 내는 철선의 개발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말했지만 잘 모르는 소리다.

기술은 한 번에 얻어지지 않는다.

지금 바다에 떠 있는 철선을 만들기 위해 수십 척의 시험선이 실패를 겪은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철선은 만들었다고 모든 개발이 끝나는 게 아니다.

실제역사에서도 최초의 철선이 나온 이후 수많은 난제를 겪은 후에야 제 자리를 찾았다.

기온에 의한 변형, 피로충격에 의한 변형, 충돌에 대한 내구성. 등등 수도 없는 생각지 못한 장애물을 극복한 후에야 제대로 된 철선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한다.

광해군은 그 시간을 벌고자 했다.

이제 차츰차츰 개선해 나가며 시험용 철선을 만들어 수도 없는 실험과 시험이 이어질 것이다.

철산 단지에 마련된 증기 연구소에서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인 증기기관의 개발이 끝나서 장착될 때쯤엔 좀 더 발전한 철선의 선체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만든 철선이었다.

철선을 만든 조선 기술자들도 모두 그것을 안다.

광해군이 제시한 바람날개를 활용한 추진기관을 실험하고 완성했을 때 그 절망적인 속도로 인해 철선의 무용론이 대두되었고, 그때 광해군이 철선의 완성에 대한 의의를 제법 자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이날 연회를 열어 기술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철선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결과였지만 부수적으로 체득한 기술도 적지 않았다.

특히 수많은 노력 끝에 철판의 두께를 낮추면서도 강도를 높이는 제철 기술의 발전도 철선 개발 과정에서 이룬 기술 혁신 중 하나였다.

이것을 위해 무산 제철단지와 제물포 선거의 기술자들은 상당한 시간 함께 노력했다.

특히 제물포 선거 바로 옆에 소규모 철판 생산설비를 만들고 무산 제철단지의 기술자 일부가 파견되어 선박용 철판을 따로 생산하는 노력까지 기울인 끝에 거둔 성과여서 더 빛나는 결과였다.

그렇게 만든 철판을 광해군은 장갑판으로 쓰는 방법을 연구시켰다.

그렇게 태어난 장갑판은 최근 생산이 가능해진 강철판으로 만들어졌다.

야포로 사격했을 때 1백보 밖에서는 관통이 불가능했다.

그것은 조선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대구경 화포였던 천자총통도 마찬가지였다.

관통력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대장군전을 활용하였음에도 1백보 너머에서는 장갑판을 관통하지 못했다.

더 두껍게 만들면 그 이하 에서도 관통이 안 되겠지만 부착형인 장갑판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무게를 줄이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강철로 더 얇은 철판을 생산하는 것은 아직 조선의 기술로는 무리였다.

광해군은 그 장갑판을 활용해 판옥선의 외피를 덧입히는 방법을 개발하도록 시켰다.

아울러 강철 버팀목을 사용해 충파에 더 단단하게 버틸 수 있도록 판옥선을 개조하도록 하는 명령도 내렸다.

*****

우습게도 광해군의 지시에 따라 나대용이 개발해 제시한 배는 강화된 판옥선이 아니라 귀선, 그러니까 거북선이었다.

판옥선 선체를 기반으로 하되 선체의 중요골격을 철로 만들었다.

거기다 선수 도깨비 양각을 아예 용머리로 대신하고 그 용머리에서 선체 후방까지 정(丁)자, 그러니까 현대시대로 생각하면 T자 형 철심을 연결하여 버팀 강도를 높였다.

포판 위의 양옆 선체는 장갑판용 철판을 골격에 리벳으로 연결하여 만들고, 선체 하부는 판옥선과 마찬가지로 목재로 만들었다.

다만 선수부분은 전체를 목재로 만들고 그 위에 장갑판을 추가로 부착했다.

특이한 것은 포판 위의 양옆 선체였는데 선수처럼 목재위에 장갑판을 덧대는 형태가 아니라 목재 없이 골격에 장갑판을 연결하여 외피를 구성하는 형태를 취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상부는 나무판으로 덮고 얇게 두드려 편 철편을 붙이는데 그 철편에 송곳을 만들어 달았다.

거기다 검은색 도료로 목재부분인 선체 아래쪽을 칠해서 전체가 거무튀튀한 것이 마치 모두 철로 뒤덮인 듯 한 인상을 주었다.

2층선으로 만들어진 귀선은 최 하단부를 선실로, 포판으로 구별된 2층부를 포병과 노군이 함께 움직이는 형태로 개발했다.

현대에서 거북선이 2층이냐 3층이냐로 논란이 많았는데 나대용은 2층 선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문제는 현대 사학자들의 논란처럼 노군과 포병이 한 층에서 활동함으로써 움직임이 복잡해진다는 것이었다.

나대용은 노와 포를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그 복잡함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했다.

달라진 것이라면 용머리에 포를 설치하는 것인데, 이번엔 충파를 목적으로 한 충각의 역할을 용두에 맡긴 터라 통짜 쇠로 만들어 단 용두의 입엔 구멍이 없었다.

특이한 점은 용두 바로 하단, 그러니까 장갑판으로 뒤덮인 선수하단에 날카로운 철제돌기충각을 추가로 만들어 달았다는 점이다.

그 충각도 용두를 받치고 있는 정자 철심에 연결되어있었다.

그로인해 귀선의 선수부는 십(十)형 철심으로 버텨지는 형상이었다.

또한 반 층 높이의 누대를 용두 바로 뒷자리에 만들어 견시수가 용두 바로 위에 뚫린 개폐형 창구를 통해 앞을 보도록 만들었다.

그 누대 양 옆으로 포구를 만들어 선수포를 달아 배가 전진하면서도 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귀선의 모든 포가 포판 위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포연이 선내를 가득 채운다.

이것은 상당히 문제였는데 나대용은 인력으로 돌리는 바람날개를 선수포 바로 뒤와 선미에 2개씩 만들어 달고 선체 후미 쪽에 개폐형 창구를 만들어 포를 쏠 때는 포연을 그곳으로 내보내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인해 포격하는 귀선은 마치 뒤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현대시대에 복원된 거북선을 본적이 있었던 광해군은 나대용이 만들어낸 귀선에서 다른 곳을 발견했다.

타(舵), 그러니까 키 부분이다.

뒤를 훤하게 뚫어 키를 거치하는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선미에 부착하는 형태로 달았다.

그 키는 철선과 마찬가지로 범선과 비슷한 원형의 조타장치를 만들어 그것에 연결되어 있었다.

광해군의 지식 전수로 만들어진 장치로 철선에 적용되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광해군은 이런 것이 있다 정도를 알려준 것이고, 그것을 현실화 시킨 것은 조선의 기술자들이었다.

확실히 손재주 하나만큼은 이 나라 사람들은 가히 무적에 가깝다.

그렇게 철선을 만들며 습득한 기술이 거북선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다만 완전히 밀폐된 장갑선인 탓에 조타수는 용두 바로 위의 개폐구를을 통해 전방을 확인한 견시수의 지시에 따라 배를 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살피는 광해군에게 나대용이 설명하고 나섰다.

“실험에서 귀선의 충파는 단단한 판옥선도 무리 없이 깨버리는 무서움을 보였습니다.”

나대용의 자신 있는 보고에 광해군이 물었다.

“직접 볼 수 있나요?”

광해군의 요구에 곧바로 귀선의 전투시험이 준비되었다.

목표선으로 건조된 판옥선 2척이 띄워지고 사람들이 철수하자 귀선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1번 목표선으로부터 1천보까지 접근한 귀선에서 일제히 야포가 발사되었다.

귀선의 측면 포구는 5개, 같은 판옥선의 선체를 사용하면서 10문을 배치하는 판옥선에 비해 화포가 줄어든 연유는 같은 층에서 노가 빠져나가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5발 모두 목표선에 명중했고, 폭발탄은 모두 선체를 뚫고 들어갔다.

잠시 후, 요란한 폭음과 함께 목표선에 불길이 일었다.

그런 1번 목표선을 두고 귀선은 그냥 떠났다.

완전 격침을 이루지 못한 채 목표선을 그냥 두고 이동하는 모습에 광해군이 의아해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귀선은 2번 목표선을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1번 목표선의 화마가 커지더니 배 전체를 불길이 감싸며 맹렬히 타올랐다.

그제야 왜 귀선이 2차 포격으로 적선의 숨통을 끊지 않고 그냥 이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5발의 명중탄만으로도 목표선은 결국 침몰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그렇게 불길에 휩싸여 침몰하기 시작하는 1번 목표선 너머로 무섭게 가속도가 붙어 달려가는 귀선의 모습이 보였다.

노군들이 힘차게 저어 달리는 귀선이 2번 목표선을 1천보 정도 앞두고 선수포 2문을 발사했다.

2발의 포탄은 모두 목표선에 명중했다.

화염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에 갸우뚱 거리는 광해군에게 곁에 서있던 나대용이 설명했다.

“돌입시 발포하는 선수포는 화염포탄이 아니라 산탄포탄을 씁니다. 어차피 2발의 화염포탄으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안에 있는 병사들을 쓸어버려서 혼란을 야기할 목표로 산탄포탄을 사용합니다.”

나대용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귀선이 목표선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한데 옆구리가 아니라 가장 단단한 선수부분을 들이받은 것이다.

목표선이 크게 들썩이더니 뒤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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