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준비하는 일들
돈이 풍족해져서인지 요사이 정철이 매일같이 기루에서 산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술을 좋아하는 그가 돈이 풍족해지자 주체를 못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심했던지 술에 취해 왕이 있는 경연에 나올까봐 서인들이 조마조마해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지경이었다.
하긴 실제역사에서도 임진왜란 중 술에 취해 여러 사달을 일으켰던 자이니 걱정이 되긴 했다.
아직 서인을 움직일 다른 패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에 광해군도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선조의 날카로운 눈초리로 인해 거두 급의 대신들과 사적인 자리를 제대로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유지하세요. 더 늘려줘 봐야 주체 못할 일만 늘어날 겁니다. 물론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의 양을 곧이곧대로 말하지는 말고요.”
광해의 말에 김억수가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지급되는 돈이 남은 이익의 절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잘 하셨습니다. 그렇게 유지하세요.”
“그나저나 노비들은 언제까지 사들입니까?”
“몇이나 사들였습니까?”
“현재까지 5천입니다. 소문이 나서 값이 올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많이 올랐습니까?”
“아직은 조금이긴 합니다만 노비를 많이 가진 이들이 팔려하지 않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철물전이 무산에 투자를 늘리려 한다는 소문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저들이 팔지 않고 그걸 투자로 내놓으려 하는 것이군요.”
“예. 요사이 노예를 대줄테니 투자로 쳐달라며 찾아오는 사대부들이 적지 않습니다.”
“흠······. 일단 증산 계획은 부정하지 마세요. 맞는다고, 무산에 일꾼들의 수를 늘릴 생각이라고 확인해 주세요. 다만 우리가 사들이는 노비들의 수가 3만에 이를 때까지는 사대부들의 투자제의는 거절하시고요.”
“계속 사들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얼마나 더 사시게요?”
조심스러운 김억수의 물음에 광해군은 거침없이 답했다.
“제 목표는 10만입니다.”
광해군의 답에 김억수의 눈이 튀어나올까 걱정일 정도로 커졌다.
“마마!”
놀라는 김억수에게 광해군이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그야 벌어들이는 자금의 양이 있으니······. 한데 그 많은 수를 무엇에 쓰시려고요?”
“일단은 무산 철광에 투입할 생각입니다.”
“정말 철의 생산량을 늘릴 생각이십니까?”
“예. 어차피 명에서도 증량을 요구하고, 왜에도 수출할 것을 생각하면 생산량을 늘려야 하니까요.”
“하면 차라리 여진족을 늘리시지요. 그쪽에서도 추가로 써달라며 매달리는 여진족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말들이 들려오던데요.”
사실이다.
철산 배후단지에 살고 있는 여진족들이 배부르고 풍족하게 사는 것을 목격한 여진족들이 배후단지로 들어오길 희망하고 있었다.
그 수가 이미 배후단지에 살고 있는 여진족 수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과의 화친을 거부하고 휘발 씨족의 영역으로 들어갔던 호이합 씨족이었다.
해서와 야인 애초의 부류가 달라서였을까.
해서 여진의 최대부족인 휘발 씨족의 괄시에다 먹을 것이 여전히 부족했던 호이합 씨족은 제일먼저 사람을 보내 합류의사를 밝혀왔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그들의 합류를 허락하지 않았다.
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곡식을 소량 풀어 배후단지의 시장에서 외부의 여진족이 가져온 모피, 가죽과 교환해 주고 있었다.
배후단지에 사는 여진인들도 남는 곡식으로 시장에서 외부의 여진인들과 필요한 것을 사고팔았다.
그 덕이었는지 자잘하게 벌어지던 여진족의 침탈이 사라졌다.
만족할 만큼의 양은 아니었지만 철산 배후단지에 열린 시장을 통하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곡식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약탈을 해오자는 강경부족들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개방해오던 시장을 닫고 외부의 여진족은 출입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것이 먹혔는지 강경부족들에게 주변 여진족들이 경고를 날렸다.
만약 조선 땅을 침탈해 자신들에게 오던 곡식이 끊어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두 부족이 아니라 대부분의 부족이 경고를 보낸 까닭인지 강경한 입장이던 부족도 감히 조선을 침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도 품어야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들을 품었다간 식량이 부족해질 거예요.”
“그에 대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억수의 말대로다 광해군은 늘어나는 곡식의 소비량에 맞춰 여러 가지 대비책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묻고자 했어요. 어찌 진행되고 있나요?”
“군 마마께오서 말씀주신 것들 중 감자라는 것은 다행히 조 행수가 명을 왕래하는 양이인에게 구해 보낸 것을 올해 봄에 척박한 삼남 땅 일부에 심을 예정입니다.”
“잘 키워야 합니다. 그게 성공하면 씨감자를 무산으로 보내 척박한 두만강 건너 땅에 심을 것입니다.”
“이상한 냄새도 나고 맛도 별로던데 그걸 먹을 수 있을까요?”
익숙지 않아서다.
우리가 알지만 감자는 전천후다. 기름에 튀겨도 맛있고, 소금만 조금 넣어 삶아도 맛나다.
겨울철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고, 그걸 갈아 밀가루나 쌀가루와 섞어 된장국물에 풀어도 별미인 감자수제비가 된다.
대체식량으로 그만한 게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나름 잘 자란다.
중국 동북방 최대 곡장지대인 삼강평야를 확보하기 이전까지는 두만강 유역의 만주 땅에서 여진족들을 먹여 살릴 곡식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 품목으로 광해군은 감자를 선택했던 것이다.
감자를 중간 다리로 삼아 병력을 늘려 삼강평야로 밀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야인 여진의 여타 부족들을 만주에서 대량으로 경작하는 감자와 조선에서 나는 쌀로 끌어당기면 큰 전투 없이 충분히 차지할 수 있을 터였다.
현대시대 중국 3대 곡창지대 중 하나라는 삼강평원을 그렇게 먹어치울 요량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버려진 땅이다.
그곳이 그리 기름진 곳인지 아무도 모른다.
명나라는 힘이 닿지 않았고, 여진은 개발할 줄 몰랐다.
그러니 먼저 먹는 쪽이 임자였다.
광해군은 절대로 그걸 놓칠 생각이 없었다.
“생산이 시작되면 그걸로 요리하는 법도 개발해야죠. 믿어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광해군의 말에 김억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광해군이 된다고 해서 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쇠배만 빼고.
그건 아직도 김억수조차 믿기 어려웠으니까.
“참! 소금은 어찌 되고 있나요?”
“말씀하신대로 도공들을 부려 작은 사각형의 도기를 만들어 바닥에 심어 전라 땅 바닷가에 염전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데 정말 되겠습니까?”
“믿으세요.”
천일염을 만들 생각이다.
사실 이 시기 조선에서 만드는 소금은 거의가 자염이다.
염전에 바닷물을 가둬 일부 증발시켜 염도를 높이는 것은 맞지만 물을 완전히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게 아니라 그 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방식이다.
더구나 이 시대 조선의 소금 생산지엔 현대 한국의 최대 소금 생산지인 신안 등 전라도 남부가 빠져 있었다.
광해군은 김억수를 통해 그곳에 염전 단지를 만들 계획이었다.
물론 천일염을 만드는 세세한 방법은 모른다.
그것도 대략적인 것만 알뿐이다. 그렇기에 첫해엔 생산을 위한 연구가 진행 될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소금이 대량 생산되면 고질적인 조선의 소금 품귀현상도 해결 될 터였다.
광해군이 소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식생활의 개선을 위해서다.
소금이 풍족해져야 절임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으로 돈을 벌긴 하겠지만 그걸로 막대한 부를 쌓을 생각은 없었다.
가격을 대폭 낮춰서 공급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출도 못한다.
당장 중국만 가도 천일염보다 질이 좋은 암염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진은 다르다.
그들은 여전히 소금을 귀하게 여긴다.
아마 씁쓸한 맛이 나도 싼값에 천일염을 풀면 굉장한 반응을 보일 터였다.
물론 조미료류로 돈을 벌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소금이 아니라 설탕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광해군이 물었다.
“참. 사탕무는 어찌 되었나요?”
“조 행수가 양이인들을 통해 백방으로 수소문 중입니다. 말씀하신 형태의 무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는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직 급하진 않지만 반드시 구하라고 하세요. 그게 우리에게 철 이상의 부를 가져다 줄 겁니다.”
그랬다.
소금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이 바로 설탕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초까지는 유럽에서도 부유한 이들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비싼 것이었다.
이 시기의 설탕은 사탕수수에서만 구해진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프리카 노예들이 혹독한 고생을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탕수수 농장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것이 얼마나 큰돈이 되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랬던 것이 사탕무에서 추출할 수 있어지면서 조금 더 많은 양이 공급되고 종래엔 화학적 반응으로 대량 생산에 이르게 되었지만 여하간 설탕은 꽤 오랜 시간 귀한 대접을 받는 품목임엔 분명했다.
그래서 광해군은 현대의 지식을 이용해서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설탕을 만드는데 사탕수수가 아니라 사탕무를 선택한 이유는 실제 설탕 성분이 사탕무가 사탕수수보다 살짝 더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배지의 문제도 한몫했다.
사탕수수는 열대지방에서 자란다. 당장 조선이 사탕수수의 재배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탕무는 온대나 냉대 지방에서 자란다.
지리적으로는 지중해와 중앙아시아가 최대서식지다.
조선 인근에도 비슷한 지역이 있었다.
따라서 종자를 구하기만 한다면 키울 곳도 있었다.
현대시대 중국이 실제로 삼강평야에서 사탕무를 재배하고 있으니 그곳도 가능하겠지만 광해군이 사탕무 재배지로 점찍은 곳은 북해도, 바로 홋카이도다.
지금은 야만족의 땅으로 남아있다.
차지한 나라는 아직 없다. 일본도 19세기나 되어야 진출하니까 지금 조선이 나서면 큰 마찰 없이 장악할 수 있었다.
뭐, 큰 마찰이 일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왜는 한번 부딪쳐 꺾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여하간 그런 북해도는 현대로 가면 실제로 사탕무의 대량 재배지 중 하나다.
현대시대 일본에서 소비되는 설탕의 10퍼센트에 달하는 물량이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탕무에서 만들어진다니 재배지로써는 괜찮다.
광해는 아예 북해도 전역을 이 사탕무 재배지로 삼을 요량이었다.
거기다 왜를 통해 고추도 확보했다. 내년이면 재배가 시작 될 터였다.
매콤한 고추장이 미치도록 그리운 광해군이 유독 챙기는 일이었다.
고추가 들어오면 김치 등 여러 가지 반찬들을 직접 챙길 요량이었다.
더 이상은 백김치와 짠지로 달랠 수 없을 정도로 매콤한 김치가 그리웠다.
그렇게 여러 가지 사항을 점검하고 확인한 김억수가 돌아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산해가 광해군을 찾아왔다.
서인의 영수보다 동인의 영수가 먼저 새해 인사를 온 것이다.
서로 간에 약간의 덕담이 오고간 뒤 이산해가 물었다.
“최근 철물전에서 노비를 사들이고 있더군요.”
“예. 그러라 하였습니다.”
“역시 마마의 명이셨군요.”
“예. 무산의 철산단지에서 생산량을 늘여볼까 합니다.”
“그리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린 좋은 동반자라 믿습니다.”
‘언제부터?’
당장 의문부터 드는 말이었지만 광해군은 순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하면 이번 증산 계획에도 저희가 참여할 수 있겠지요?”
은근한 물음에 부드러운 음성. 상대를 물고 사납게 물어뜯기로 유명한 이산해의 대화방식은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이득이 무산 철산단지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