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의외의 발견
조선에서 서반, 다시 말해 무관들은 차별을 받았다.
역성혁명, 그러니까 군사 쿠데타로 일으켜 세운 조선이기 때문인지 특히 고위 무관직에 무과 출신인 정통 무관들을 앉히는 일에 인색했다.
이른바 문민통치를 내세운 무관들에 대한 억제 정책인 셈이다.
실제로 최고위 무관직은 동반, 그러니까 문관들이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무관들에게 사실상 가장 높은 관직은 정3품에 불과했다.
간혹 이것을 뛰어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간혹,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문관을 뽑는 과거는 으뜸 시험이라 하여 대과라 하고 무관을 뽑는 과거엔 별시란 사족을 다는 경우가 많았을까.
그런 고질적인 무관에 대한 차별은 하위직에서도 수시로 일어났다.
느닷없이 문관이 중하위 무관직에 제수되어 파견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병영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그렇게 불쑥불쑥 지휘관으로 들어오면 해당 군영의 일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하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조선군은 군대라 부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군영에 소요될 자금이 새어나가고, 정비되어야 할 무기들이 망가지고 방치되었다.
거기다 군의 중추를 맡아야 할 하위 군관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무과를 거쳐 관직에 나온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봉록이 나왔지만 법이 정한 정량을 받는 군관은 아무도 없었다.
위에서 가로채는 양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항의하지도 못했다.
문제 삼았다간 갖은 꼬투리를 잡아 괴롭히거나 결국 그 알량한 벼슬마저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관들에게 어느 날부턴가 철물전의 행수들이 접근해 왔다.
어려우면 곡식을 채워주고, 집안의 대소사에 쓸 물자를 들여 줬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도 없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고, 철기가 가장 많이 쓰이는 군영의 관리에게 철물을 파는 장사치가 접근한 것이니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당장 가족들이 굶거나 부족한 것들로 어려움을 당하는 입장에서 철물전의 도움을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용기를 가진 몇몇 무관들이 철물전에 직접적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해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인가?>
답은 의외였다.
<광해군 마마께오서 어려운 무관들의 생활에 크게 상심하시어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우라 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철물전이 무언가를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긴 철물전의 주인이 김억수이긴 하나 실질적인 주인은 광해군이라는 소문을 모르는 조선인은 없었으니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관들이 철물전에서 도움을 받는 것을 왕실의 일원인 광해군이 지급하는 보너스 정도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물론 그것은 정6품 이하의 중하위 무관들에게만 한정된 일이었다.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철물전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요청해도 거부한다.
그 또한 광해군의 지시라 했다.
어려운 것을 돕는 것이지 먹고 살만한 이들을 잘살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더 중하위 군관들에게 큰 의지처가 되었다.
이창이란 군관도 그렇게 철물전에서 도움을 받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별시로 치러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한 그는 이렇다 할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
뒷배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무과에 급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직인 경상우수영의 군관으로 배치되었다.
그게 13년 전이다.
당시 열아홉 풍운의 기상을 품고 경상우수영으로 배치될 때의 품계가 정8품 사맹이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도 사맹이다.
맡은 소임이 건선주임이었던 그에겐 왜구와 싸워 공을 세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집안의 사정상 윗분에게 재물을 주어 환심을 살 능력도 없었다.
그랬던 그에게 묘한 소문이 들려왔던 것은 선조18년 11월이었다.
누군가 쇠로 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다.
물에 가라앉는 쇠로 배를 만들면 물속에서 움직이자는 소린가?
배를 잡고 웃었다.
건선주임으로 조선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다 자부하던 그였기에 그 황당함은 더 했다.
한데 그는 그 웃음에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서 가는 배.
언뜻 들으면 완전히 헛소리 같은데 잘만 하면 또 이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몇날며칠을 매달려 몇 가지 그림을 그려 당시 경상우수사를 찾아갔다.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 볼 수 있도록 선거와 재료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넣었던 것이다.
결과는 뭐, 예상대로다.
욕만 잔뜩 얻어먹은 그는 허황된 생각은 싹 다 집어치우고 업무에 충실 하라는 경고만 받았다.
그가 그린 도면은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쯤에서 포기했으면 그대로 묻혔을 일이었는데 그는 쇠로 배를 만든다는 이를 찾기 시작했다.
물에 가라앉는 쇠로 배를 만들 정도의 인사라면 자신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쇠로 배를 만들겠노라 나선 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광해군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주 기초적인 도면이었지만 이창이란 군관이 가져온 것은 분명히 잠수함에 관한 것이었다.
논란은 있지만 세상에서 최초로 등장한 잠수함은 1620년 네델란드에서 드레벨이란 사람이 만들어냈다.
전체가 목조에 수상함처럼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전투에 처음 쓰인 것은 1775년 미국 독립전쟁 당시 버쉬넬이 나무와 황동으로 만든 1인용 잠수정인 터틀호, 그러니까 거북호다.
거북선과 묘하게 이름이 겹친다.
둘 다 사용된 기술들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었다.
막말로 지금, 1580년대 조선의 기술로 시도해도 못 만들 것이 없다는 뜻이다.
“만들어 볼 수 있겠어요?”
“저도 그것을 원하옵니다.”
눈을 반짝이며 답하는 이창에게 알지를 붙여 장원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철선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이들과 힘을 합해 실제로 만들어보라고 지시해 두었다.
이항복을 통해 그의 군적을 정리해줄 필요도 없었다.
소식을 들은 경상우수사는 광해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연통을 보내왔다.
그는 동인으로 이산해의 주문에 응해 제법 많은 노비를 투자한 철산단지의 투자자였다.
알게 모르게 실제 역사보다 광해군의 운신 폭이 넓어지고 있었다.
*****
의금부는 일전에 언급했듯이 최정상급의 사정기관이다.
당연히 관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에 능통했다.
그런 의금부가 경상우수사의 일을 모를 수 없었다.
더구나 그가 술자리에서 그 일을 떠들며 광해군과 접촉을 늘였다고 자랑한 일까지 있어서 더 쉽게 포착이 되었다.
금부도사는 선조가 광해군을 견제함을 알게 된 날로부터 광해군 전각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다.
그는 선조의 맹견이지 광해군의 신하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해군의 번뜩이는 이지와 놀라운 식견에 대해선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특히 잠시지만 광해군과 함께 다니며 벌였던 일들을 떠올릴 때면 슬며시 그려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광해군은 다른 벼슬아치처럼 사사로이 축재를 하지 못하는 자신의 집에 시시때때로 쌀과 고기를 보내주었다.
하물며 광해군이 북방에 나가있을 때도 철물전을 시켜 그렇게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금부도사가 관직에 나선 이래로 처음 가족들이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살았다.
선조는 사람을 부릴 줄은 알지만 살뜰하게 챙기는 이는 아니었다.
맹견으로 금부도사를 부렸지만 그 가족의 곤궁함까지 살피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광해군의 돌봄이 끊어졌다.
선조가 광해군을 견제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금부도사가 그 일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집안사람들의 원망이 적지 않았지만 금부도사는 귀를 닫았다.
선조의 성품상 자신이 광해군과 끈을 남겨둔 것을 알면 결코 그냥 둘 사람이 아니었다.
금부도사의 일을 하며 여기저기 척을 많이 졌다.
그 상태에서 선조에게 버림을 당하면 결코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러니, 금부도사는 선조를 떠날 수도, 눈 밖에 나는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자신의 입장을 아는 것일까?
갑자기 발길을 끊은 금부도사를 광해군은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은커녕 어쩌다 궁에서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잘 지내냐고 묻곤 했다.
과거 장안의 내로라하는 사대부들의 뒤통수를 후려쳐 노비들을 뜯어내던 그때처럼 살갑게.
그래서 금부도사는 광해군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광해군을 배신한 느낌이랄까.
그런 부채감을 가지고 있던 금부도사의 앞에 경상우수가 사사로이 광해군을 위해 군관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는 감찰보고서가 올라왔다.
광해군에게 압박을 가하길 원하는 선조에게 들어가면 딱 좋아할 소식이다.
물론 행동에 더 위축을 받게 될 광해군에겐 불리한 일이다.
머뭇거리는 금부도사의 눈치를 보며 수하가 물었다.
“혹 왕실의 일이라 불편하시면 사간원(司諫院)으로 넘겨 문제를 삼아도 될 듯합니다만....”
수하의 말에도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던 금부도사가 물었다.
“누구누구가 아나?”
“조사를 담당했던 나졸 둘과 저만 압니다.”
“따로 사헌부가 냄새를 맡을 가능성은?”
“그쪽이야 알아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대사헌은 경상우수사와 같은 동인입니다.”
수하의 답에 다시 입을 다물고 한참을 고심하던 금부도사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함구하라 하면 함구할 수 있겠나?”
의금부의 군관들은 모조리 금부도사의 수족들이다.
그러니 이런 물음을 던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눈앞의 수하는 아니다.
문관 출신으로 들어온 그는 분명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물음을 던지는 것도 금부도사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모험이다.
“도사께서 그리하라 하시면 그리 하겠습니다.”
생각 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하에게 금부도사가 말했다.
“그럼 함구하게. 괜히 왕실에 분란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으니.”
“예. 도사.”
답을 한 수하가 나가자 금부도사는 책상위에 놓인 보고서에 불을 붙여 없앴다.
그가 처음으로 선조가 아닌 이를 위해 움직인 첫 사례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광해군에게 미안해서 한번, 딱 한번 눈을 감은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
해가 바뀌었다.
선조19년.
광해군의 나이도 12살이 되었다.
지난해 5월을 기점으로 광해군은 거의 궐에서 갇혀 살았다.
달리 도모한 일도 없었다.
그저 날카로워진 선조의 눈을 피해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럼에도 선조의 견제는 여전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올해의 정조하례에도 광해군은 선조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뿐인가, 광해군의 새해 첫 문안조차 선조는 받지 않았다.
하긴 광해군은 매일같이 받지도 않는 문안 인사를 다닌다.
멀뚱히 강녕전 앞에 서 있다가 다른 형제들의 문안인사가 다 끝나면 물러가라 명이 내려오고 돌아오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면서도 선조는 철물전을 통해 무산 철산단지에서 나오는 이익은 꼬박꼬박 받아먹었다.
종계변무가 해결된 대명회전이 도착하면 좀 풀리겠지 싶었지만 홍순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그에겐 공식임무보다 더 중요한 비밀임무가 주어졌으니 그걸 완수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라고 몇 번을 강조한 것이 광해군이니 홍순언은 그 명을 지킬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멍하니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