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북위별시위의 위축
새롭게 북위별시위를 채운 함경도 병사들은 당연히 가형 소총을 다룰지도 몰랐고, 철포를 어찌 사용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살수들이었다.
최초 축소 당시 별장이었던 이순신은 그렇게 새로 배치된 이들을 가형 소총병으로 훈련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화기로 무장한 북위별시위의 이점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향 여진 기마대 1천을 엮어 승마총병의 역할을 맡겼다.
이전의 전투에서 가형 소총으로 무장된 승마총병의 위력을 똑똑히 보았던 이순신이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름의 성과도 거뒀다.
이전처럼 사격술로 가려 뽑은 이들은 아니었지만 가형 소총의 사용법을 훈련받은 이들이 제법 잘 적응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순신의 노력은 권률이 별장을 맡고 있을 때 무너졌다.
함경도 고위지휘부에서 나름 훈련이 잘 되어있는 북위별시위의 병력을 수시로 빼내 갔기 때문이다.
열심히 훈련시킨 가형 소총병이 다시 살수가 되어 다른 지역으로 배치되는 상황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
마치 북위별시위의 군영을 훈련원으로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단련시키는 북위별시위의 기조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결국 권률이 새로 충원되는 이들에 대한 가형 소총 훈련을 중단했다.
노력만 들고, 결과는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종래엔 북위별시위에 가형 소총을 다룰 수 있는 병사는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얼마나 자주 북위별시위의 병력을 빼내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훈련강도가 높다는 북위별시위의 기조는 권률이 별장일 때도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화기를 중심으로 한 북위별시위의 이점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 북위별시위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안도와 온성을 잇는 조선의 점유지역에 대한 방어부대라는 지위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철산 배후단지의 경비와 방어도 북위별시위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여전히 중요한 군사집단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주둔지도 철산 배후단지 안에 있었다.
그런 북위별시위의 새로운 별장으로 온성 부사에서 길주 목사로 승차해 자리를 옮겼던 신립이 제수되었다.
여진인들에 대한 입장에서 강경파에 속하는 신립이 북위별시위의 별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광해군은 크게 걱정했다.
그런 광해군에게 소식을 전한 이항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걱정이 크신 게 아닙니까? 그를 아는 이들의 말로는 뛰어난 장수라고들 말합니다만.”
“맹장(猛將)이라는 건 동의합니다. 기마대를 활용하는 전술도 뛰어나고요. 하나 북위별시위는 맹장보다는 덕장(德將)이, 덕장보다는 지장(智將)이 필요한 곳이니까요.”
“여진인들과의 불협화음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는 여진인들을 적으로 보니까요.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되는 군요.”
거듭된 광해군의 걱정에 이항복이 선이 닿은 이들을 통해 의견을 전달해 보겠다며 나갔다.
실제로 이항복은 여러 경로를 통해 신립에게 여진인들을 덕으로 대하라는 조언을 보냈다.
하지만 신립이 별장으로 부임한 2달 뒤, 북위별시위가 무기고를 비롯한 주둔지를 조선 땅, 그것도 무산보다 북쪽에 위치한 회령으로 옮겼다.
그것을 기점으로 전향 여진족 기마대 1천을 북위별시위에서 제외했다.
여진인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조선 땅에 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남겨진 이들을 철산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철산영(鐵山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투삼구, 니탕개, 호정이, 내음타방 등 중심 여진족장들과 철물전을 대표한 조필 행수 사이의 합의에 의해 철산영이 철산 배후단지의 방어를 지속적으로 맡게 되었다.
철산영에 대한 지원은 이전처럼 철물전에서 맡기로 했다.
그런 철산영의 존재를 신립은 묵인했다.
철산단지의 방어병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그도 무시하지 못한 것이다.
*****
선조18년 7월.
일부 여진인들이 회령을 찾아 소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군 병사 다섯과 여진인 서른이 죽었다.
그 사건을 빌미로 북위별시위는 여진인들의 조선 영토 출입을 금지시켰다.
김억수가 광해군을 찾아 온 것은 그 사건이 한성에 알려진 다음 날이었다.
“여진인들이 소란을 벌였다는 건 어찌 된 일입니까?”
광해군의 물음에 김억수가 답했다.
“대가로 지급되는 곡식의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걸 항의하는 여진인들을 과하게 다루다 일이 터졌던 모양입니다”
“곡식이 왜요?”
광해군이 놀랄 수밖에 없다.
철산단지에서 여진인들에게 제공되는 곡식은 모두가 철물전에서 공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간 야인들에 대한 곡식 지원은 그들을 군사적으로 무장 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북위별시위에서 반출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었답니다.”
조선에서 난 곡식을 실어 날라 지급하는 것이니 북위별시위가 관장하는 두만강 나루를 통해야 강 건너 철산 배후단지로 공급된다.
솔직히 양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고 싶었지만 조선 조정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철산 배후단지와 철산 제철단지는 나루를 왕래하는 배들로 연결되어있었다.
수십 대의 나룻배가 하루에도 수백 번을 왕래한다.
지극히 비효율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억수는 지금 북위별시위가 그 나루를 통해 곡식이 철산 배후단지로 가는 걸 막았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한 이유가 있답니까?”
“물러났던 호이합 씨족 중 일부가 준동하는 모양이긴 합니다만······.”
“조선군과 충돌했답니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한 모양입다만······. 일전에 우을지가 준동했던 지역의 여진족들과 그들이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면서 경계를 강화하는 연유로 들고 있습니다.”
북위별시위, 정확하게는 신립이 명분을 쥐었다는 뜻이다.
여진의 준동이라면 조정은 결코 철산단지의 이익을 그보다 우선하지 않을 테니까.
“문제가 심각하군요. 철산단지의 여진인들은 어떠합니까?”
“조 행수가 보내온 서신에 의하면 그나마 투삼구를 비롯한 중심 부족장들이 나서서 사태는 진정이 된 모양입니다만······.”
“식량사정은 어떻답니까?”
“당장은 각 집집마다 나름 저장된 곡식이 있어 무리는 없겠지만 길게는 버티지 못할 거랍니다.”
“그렇겠지요. 그나저나 여진인들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당장 제철단지에 문제가 생겼을 텐데요.”
만일에 대비해 물레방아를 이용한 쇄석 장비들과 선광설비, 로, 숯가마 등 모든 제철 설비가 배후단지 강 건너 조선 땅에 지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곳에서 일하는 여진족들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일하러 나온다.
한데 그걸 금지시키면······.
당장 일꾼들이 문제가 될 터였다.
김억수도 그 부분을 거론했다.
“다른 설비들의 생산량도 문제지만 철광의 철광석 생산량이 십분지 일로 떨어졌다는 게 가장 근 문제입니다.”
핵심 기술인 제철기술은 아직 여진인들에게 전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여진족 일꾼들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철광과 숯가마, 쇄석단 등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해결에 나서보죠.”
“가능 하시겠습니까?”
왕의 견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풀어봐야죠.”
광해군의 답에 김억수는 걱정스런 얼굴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직후 광해군이 알지를 보내 홍순언을 불러들였다.
죄를 받아 조정에서 내처져 있던 그를 불러 광해군이 일을 맡긴 덕에 중인에 불과했던 홍순언은 면천이 되어 공신이 되고 당성군이라는 군호까지 하사받았다.
그 일로 홍순언은 자신가문의 천덕꾸러기에서 가문 최고의 영웅이 되어있었다.
그리 만들어준 광해군에게 홍순언은 그 아들까지 데려와 충성맹세를 했을 정도로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있었다.
하긴 홍순언은 광해군이 하늘의 영기를 내려 받은 신령스러운 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니까.
실례로 석성과의 사석에서 광해군이 천둥을 부르고 번개를 부리며 만리에 앉아 천년을 내다보는 신인이라 소개했다는 일화도 들려온다.
석성이 그걸 굉장히 놀라워했다던가?
그런 홍순언에게 광해군이 말했다.
“준비했던 일, 시작하세요.”
광해군의 명을 받은 홍순언이 이내 선조를 찾았다.
그로부터 닷새 후, 종계변무사가 다시 명으로 출발했다.
이번엔 상단들을 대동하지 않은 단출한 사신 행렬이었다.
종계변무에 관한 수정이 완료된 대명회전을 받아오기 위한 사신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신단이 출발한 직후, 광해군은 정철과의 만남을 청했다.
예조판서의 자리에 있던 정철은 서인들 중에서는 광해군을 돕는 가장 큰 권신이었다.
그에게 광해군이 철산 단지의 일을 논의했다.
“철정의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김 대행수가 몇 번 연통을 해오긴 했습니다만 근 일간 정사에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바빠서라기보다는 견제였을 것이다. 외견상 김억수는 여전히 동인의 영수인 이산해의 비호를 받고 있는 상인이었으니까.
물론 철물전에 노비를 보내 투자한 이후 나름의 관계를 유지하긴 해야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 정철에게 광해군이 물었다.
“하면 북위별시위가 여진족의 조선 출입을 금했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그건 북위별시위 별장의 장계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철광에서 철광석을 캐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진족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낸 노비가 있질 않습니까?”
“대감 그들은 더 이상 노비가 아닙니다.”
“면천이야 시키긴 했습니다만······.”
광해군의 정정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인 정철이 말을 이었다.
“······여하간 일은 그들도 할 게 아닙니까?”
“수의 문제이지요. 그들로는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많이 부족합니까?”
“조만간 수출량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배분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어느 정도나······?”
“김 대행수의 말로는 철광의 생산이 십분지 일로 줄었다고 하더군요.”
광해군의 답에 정철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보다 큰 차질이었기 때문이다.
정철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가 사사로운 축재로 탄핵받은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든다는 것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은 자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철이 곧바로 반응했다.
“여진인의 출입만 해결되면 되는 것입니까?”
“여진인들에 대한 적대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철산 배후단지에 사는 여진인들에게 만이라도 그리 해야 합니다.”
광해군의 주장에 정철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많은 조선인들에게 여진인들은 오랑캐였고, 상종 못 할 미개인들이었다.
그들을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해야 한다는 것에 반감부터 들었던 것이다.
그런 정철에게 광해군이 말했다.
“대감. 그것에 우리의 이익이 걸려있습니다.”
광해군의 말에 결국 정철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해 보겠습니다.”
신립은 서인이다.
그의 성정이 아무리 거칠 것 없다 해도 서인의 영수로 대접받는 정철의 말을 허투로 들을 수는 없을 터였다.
당장은 그것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선조의 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은 광해군도 달리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자칫 잘못 내딛은 한 걸음이 광해군의 안위에 중대한 위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아직은 서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