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8화 (38/325)

제38화. 엎어진 김에 일어나 달릴 준비를 하다 (2)

이젠 이이가 아니라 이항복을 통해 이름난 조선(造船) 장인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나대용이란 이름을 가진 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에 이항복이 며칠 후, 무장 한명을 데리고 광해군을 찾아왔다.

“지난 해 훈련원 별시에 병과로 급제한 자입니다.”

이항복의 소개에 군례를 올린 사람은 무관복을 입은 장년의 사내였다.

물론 나이를 듣고는 놀랐지만.

“충! 봉사 나대용이라 하옵니다.”

놀란 눈으로 이항복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인들 중 나대용이란 이름을 가지 무장은 이자뿐입니다.”

“나이가······?”

“올해로 스물아홉입니다. 마마.”

이항복도 그렇고 참······. 노안이란.

광해군이 알고 있던 나대용의 나이 대와 비슷했다.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나이 대에 무과출신 무장. 아마도 자신이 찾는 나대용이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찾았으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광해군은 당황하는 나대용을 데리고 곧바로 궁을 나서 장원으로 향했다.

장원은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군기시 출신 야장들이 조선철포와 가형 소총의 생산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철광석을 녹여 쇠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곳도 무산에서 만들어낸 철정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원에서 사용하는 철은 아예 만들 때부터 철포용과 소총용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것을 쓴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선철포와 가형 소총은 장원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무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거쳐 냇가로 내려가자 일전에 이항복이 모아온 조선 장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나대용을 데리고 간 광해군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쇠로 배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전에 들었던 이항복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대용을 비롯한 조선 장인들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쇠는 물에 가라앉습니다, 마마.”

나대용의 답에 광해군은 곁에 호종하고 서있던 알지를 돌아봤다.

그가 광해군의 눈짓에 주섬주섬 꺼내 내놓은 것은 놋쇠 대접이었다.

“이걸 무엇으로 만드는지 아시지요?”

“그야 쇠가 아닙니까?”

정확히는 동이다.

하지만 그도 쇠의 한 종류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대용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광해군이 물었다.

“하면 이것도 가라앉겠군요.”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나대용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조선 장인들을 일별한 광해군이 놋쇠 대접을 냇물 위에 놓았다.

“흐음······.”

놋쇠 그릇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걸 가리키며 광해군이 말했다.

“가라앉지 않는군요.”

“하나 조금만 물이 들어와도······.”

“그렇죠. 이렇게 무게가 무거워지면 가라앉죠.”

냇물에 떠있는 놋쇠 대접에 주먹만 한 돌을 올려놓자 곧바로 가라앉았다.

그제야 편안한 표정이 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작게 웃은 광해군이 가라앉은 놋쇠 대접을 건져 올렸다.

그리곤 돌을 꺼내고 빈 놋쇠 대접을 다시 냇물에 올렸다.

당연히 놋쇠 대접은 떠 있었다.

그 옆에 광해군은 나무로 만든 작은 모형 배를 놓았다.

놋쇠 대접과 마찬가지로 나무배도 물위에 떠 있었다.

당연한 광경이었기에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해군은 아무 말도 없이 놋쇠 대접을 가라앉혔던 돌을 나무배 위에 얹었다.

나무배는 가라앉았다.

그걸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모여 있는 이들 모두가 조선 기술자들이다.

나대용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그가 후일 거북선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격군의 수를 줄인 창선과 쾌속선인 해추선을 개발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믿어 보았다.

역시나.

“무게가 실리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는다는 거군요.”

나대용의 말에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게도 나름이죠.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 나무로 만든 배도 가라앉듯이 쇠로 만든 배도 마찬가지니까요.”

그 말과 함께 처음 올려놨던 돌보다 한참 작은 돌을 하나 놋쇠 대접에 올려놨다.

놋쇠 대접은 여전히 떠 있었다.

그것에 하나 둘, 작은 돌을 올려놓는 개수가 올라가자 결국 놋쇠 그릇이 가라앉았다.

그걸 지켜본 나대용이 말했다.

“쇠로도 배를 만들 수 있겠군요.”

“맞아요.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광해군의 말에 한 조선 장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 배를 만들만큼 커다란 쇠판을 만들 수가 있겠나이까?”

이시대의 철판은 철정을 두드려서 넓게 펴는 것이다.

당연히 그 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광해군은 무산에 있을 때 철판의 생산을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대장장이들의 노력과 광해군의 지식이 합쳐져 기초적이지만 철판 생산 설비를 갖추었었다.

물론 개량할 곳이 수도 없이 많은 설비였지만 철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무산에서 철판을 만들고 있어요. 내가 떠나기 전에 막 시제품이 나왔었으니까 지금쯤은 제대로 생산이 가능해졌을 겁니다.”

“크기가 어찌 되옵니까?”

“사방으로 5척(150cm)짜리를 만들었었고, 계획은 사방 10척짜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쇠판이 있다하나 그걸 자르는 건 어찌 합니까?”

목재는 톱으로 쓸어내면 쉽게 잘린다. 다듬는 공구도 수십 종류가 있었다.

하지만 쇠는 그렇지 않았다.

현대시대라면 산소절단기 등 절삭 공구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조선의 기술로는 구현이 어려웠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은 조금 무식한 것이었다.

“미리 치수를 맞춰 제작합니다. 크기는 물론이고 형태까지 제철과정에서 완전히 굳기 전의 쇠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겁니다.”

이 방법을 취하면 대량생산은 물 건너간다.

일일이 철판 제작과정에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것 때문에 증기기관이라도 만들어볼까 생각중이긴 한데 아는 게 없었다.

광해군이 아는 건 물을 끓이고 그것에서 나오는 증기의 힘을 이용한다는 아주 기본적 지식뿐이었으니까.

그걸 무산철산단지의 일부 대장장이에게 알려주고 증기기관을 만들어보라고 지시는 해두었지만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광해군의 말에 조선 장인들은 난색을 표했다.

배를 만들다보면 치수가 어긋나는 부속들은 부지기수고 그것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조선 기술의 핵심 중 하나였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 부분을 나대용이 메울 수 있다고 나섰다.

“그림, 도면을 그리면 됩니다. 미리 사전에 다 치수를 재어 그것에 맞추면 될 것입니다.”

나대용의 말에 한 조선 장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만들어도 아주 세세하게는 차이가 납니다. 조립이 그래서 어려운 것입죠.”

그 말에 광해군이 나섰다.

“아주 작은 차이는 쇠줄 같은 것으로 갈아서 맞추면 안 될까요?”

“그거야······.”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선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런 조선 장인들을 바라보며 광해군이 말했다.

“일단 해봅시다. 여기서는 어차피 바다로 나가는 배는 만들 수 없으니 작은 나룻배 정도의 크기부터 시험해 보자고요.”

광해군의 말에 나대용을 비롯한 조선 장인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것으로 광해군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철선의 개발을 시작해가는 이들을 일별한 광해군이 시선을 들었다.

한때는 장원에서 일하는 대장장이들과 숯쟁이들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텅 비어있었다.

그들도 무산으로 이주해 갔기 때문이다.

저 마을이 다시 채워지려면 그만한 일꾼들이 장원에 수혈 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았다.

사실 장원의 인력 수급을 위해 김억수가 조선 팔도에서 대장기술을 가진 노비들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어지간한 이들은 이이가 살아있을 때 모조리 긁어모았기 때문이다.

양인들 중에는 아직 적지 않은 대장장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철물전의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하긴 나고 자란 땅을 떠나 외지로 옮겨야 한다는 조건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장원에서 필요한 대장기술자들의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그만큼 당금의 조선엔 대장기술이 널리 보급되어있지 않았다.

그로인한 보완책을 진행 중이니 조만간 해결 되겠지만 당장이 아쉬웠다.

생각을 정리하며 광해군이 마을이 있던 냇가를 떠나 장원의 한 별채로 향했다.

그곳엔 광해군이 함경도로 떠나기 이전부터 한명의 군기시 야장이 몇몇 일꾼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오랜 만입니다.”

별채로 들어서는 광해군의 모습에 한참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야장이 벌떡 일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마마.”

“잘 되어갑니까?”

“말씀하신 것은 만들었습니다만······. 이걸 포구 안에서 견디게 만드는 것엔 계속 실패하는 중이옵니다.”

그 말과 함께 야장이 비켜서자 보이는 것은 조선무기 개발역사상 가장 빛나는 결과 중에 하나라는 비격진천뢰였다.

맞다.

광해군과 대화를 나눈 야장이 바로 비격진천뢰를 개발해낸 이장손이다.

다행히 그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광해군이 도래한 시점에도 이미 군기시에서 일하고 있던 야장이었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그를 장원으로 불러 비격진천뢰의 개발을 실제역사보다 조금 더 빨리 진행시켰다.

거기에 한 가지 개량을 요구했다.

바로 포로 쏘아 보낼 수 있게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실제역사에서 비격진천뢰는 대완구라는 총통으로 발사한다.

대완구는 넓은 포신을 가지고 있어 포탄이 포구 안에 깊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포구에 걸터앉은 모양새가 된다.

기다란 포구 안에서 발사되는 경우보다 압력을 훨씬 적게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개발 중인 야포와 이미 실전배치가 된 조선철포에서 발사될 수 있는 비격진천뢰를 원했다.

폭발탄을 원했기 때문이다.

현대시대 포탄처럼 부딪치는 순간 폭발하는 형태는 아니겠지만 적의 진중, 또는 적함에 뚫고 들어가 심지가 다되면 폭발하는 형태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계속 실패 합니까?”

“발사 화염으로 심지에 불이 붙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성공하였습니다만 포 안에서 터지지 않고 견뎌내는 것은 계속 실패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입니까?”

“포 안에서 압력을 견뎌내기 위해 두껍게 만들면 폭발하지가 않고, 또 폭발을 위해 얇게 만들면 발사 압력에 포 안에서 터져버리니······.”

사실 대완구도 마찬가지다.

발사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긴 포신 안에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해결 방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현대에 이르러 비격진천뢰를 자세하게 조사한 적이 있는데 아래와 위를 두껍게 하고 옆을 얇게 만들어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광해군은 그걸 살짝 도용했다.

“힘을 많이 받는 아래를 조금 더 두껍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원형으로 만들다 보니 포구 안에 넣을 때 회전을 하여 어디가 아래가 되고, 어디가 위가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시도해 보았던 방법인지 난감해 하는 이장손에게 광해군이 지필묵을 가져다 하나의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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