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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4화 (34/325)

제34화. 전쟁과 협상

무섭게 돌진해 오는 여진 기마대를 정면으로 보고 선 가형 소총병들 속에서 이순신의 명이 떨어졌다.

“사격준비!”

이순신의 명에 가형 소총병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탄을 밀어 넣고, 사격자세를 취했다.

“사격!”

이순신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격음이 나왔다.

탕, 타당탕탕탕.

달려오던 이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가형 소총병들의 목표는 최선두의 기마병이었다.

애초에 이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선두의 기마병들을 착실하게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적을 축차 소모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론적으로 3천 소총병의 일제사면 3천의 기마병이 죽는다.

물론 빗나가는 총알, 한 표적에 여러 개의 총탄이 박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쓰러지는 이들의 수는 2천에 살짝 못 미쳤다.

그래도 대단한 사격 실력이었다.

실제역사에서도 조선후기 조선 조총병들의 명중률은 60%에 달한다.

당시대 명나라 조총병들의 명중률이 10%대에 불과했던 것을 보면 대단한 실력임엔 분명했다.

더구나 북위별시위는 조선후기 조총병들이 사용한 활강식 조총에 비해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강선 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대로만 조준한다면 빗나가는 일이 드물 정도의 정확도를 제공한다.

그에 맞서는 호이합과 내음 두 부족이 동원한 군세가 5만이다.

여진족 입장에서는 숫자의 우위가 현격하므로 이정도 사격은 버틸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았다.

빗발치는 총탄 앞으로 계속 돌진해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여진족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가형 소총의 사격 거리였다.

최대사거리인 6백보부터 시작된 가형 소총의 총격이 연속되는 동안 앞에서 달리던 기병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어찌어찌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50보 앞까지 진출한 소수의 기마병에게 양측에 대기하고 있던 승자총통병들의 사격이 쏟아졌다.

타다다다당!

1백 명을 한조로 묶어 일제사로 쏘아대는 1천문 승자총통의 위력 앞에 그나마 소총열의 50보 앞까지 진출했던 소수의 기마병이 전멸 당했다.

그건 축차소모의 전형이었다.

쏟아내는 대로 죽어나가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결국 피해를 견디다 못한 여진군이 물러났다.

온 벌판에 말과 사람이 죽어 남긴 시체가 몇 만에 이르러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내음과 호이합 두 부족의 군세는 어느새 3만으로 줄어있었다.

단 한차례의 전투로 2만이 전사하거나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은 채 벌판에 버려진 것이다.

그렇게 패배한 내음과 호이합 두 부족의 군대가 송화강의 지류를 따라 북상했다.

그들이 멈춰선 것은 상산진(常山镇)이란 곳이었다.

호이합 씨족에겐 부족의 마지막 땅이었고, 내음 씨족에겐 자신들이 땅 바로 코앞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호이합 씨족의 영역 전체가 조선군의 영향력 하에 놓이고, 이내 곧바로 내음 씨족의 영역이 직접적인 공격권에 들어간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분명했지만 그걸 이룰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전혀 없었다.

여진족에겐 조선군의 작은 천둥막대를 이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살도 닿지 않는 거리에서 정확하게 쏘아대는 그것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화포를 가지고 있는 여진족도 있긴 있었다.

건주여진은 명과 꾸준히 거래하고 또, 복종하며 저들의 군제를 가져와 일부가 화포로 무장했다고 하던데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 바빠 도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긴 그들도 같은 여진이라고는 하나 경쟁자였고, 잠정적인 적이었다.

도울 리도 없지만 도와 달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돌격을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던 여진 기마대가 조선군의 소총에 걸려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유렵의 수많은 유수의 기병대가 머스킷 총병에게 꺾여 몰락하고 있는 상황과도 같았다.

다만 동북아에서는 그런 상황이 실제역사보다 수세기 정도 더 앞당겨진 것이었다.

북위별시위에 소속된 여진 족장들이 남은 이들의 숨통을 끊자고 나왔다.

조선군의 화포로 밀고, 자신들이 옆과 뒤를 들이쳐 뭉개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소리였다.

틀린 주장은 아니었다.

북위별시위의 조선군 제장들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광해군은 그들의 요구를 보류시켰다.

광해군은 여진을 깨부숴 밟고 올라서기 보다는 흡수해서 동반자로 삼길 원했다.

죽고 죽이는 일은 아무리 마무리를 잘해도 원한이 남기 마련이다.

그 일을 더 크게 만들어 숱한 원한을 조선의 이름에 남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건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일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이미 한차례 재미를 본 방법을 또 다시 꺼내들었다.

굶주리던 니탕개의 무리와는 다르다는 투삼구의 반대가 있었지만 광해군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다시금 흰 천을 흔들며 광해군이 여진군 진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곁을 못마땅한 표정의 투삼구가 따랐다.

물론 투삼구의 뒤에 타고 있던 승마총병은 이번에도 엉겁결에 딸려갔다.

그의 표정이 측은했다.

호이합투발, 내음타방.

입에 잘 붙지 않는 이름을 가진 두 씨족장과 마주한 광해군이 말했다.

“죽음과 영광 둘 중 하나를 택하세요.”

투삼구를 통해 전해진 광해군의 말에 가장 먼저 나온 말은 광해군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

거침없는 호이합투발과 달리 내음타방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영광을 말하는 건가?”

“내음타방!”

당장 호이합투발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런 그에게 내음타방이 말했다.

“훌륭한 씨족장은 적의 말도 귀담아 듣는다. 호이합도 듣고 판단해라.”

내음타방의 핀잔어린 말에 호이합 씨족의 족장인 호이합투발이 입을 다물었다.

그로써 광해군은 한 가지를 짐작해 낼 수 있었다.

내음 씨족의 힘이 호이합 씨족보다 강하다는 것을.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광해군이 말했다.

“나는 조선의 강역을 넓힐 생각이에요.”

광해군의 말에 두 사람의 눈썹이 분노로 꿈틀 거렸다.

왜 아닐까.

조선이 강역을 넓히면 여진의 땅이 줄어든다.

초원이 저들의 생활 바탕이니 그렇게 늘어난 조선의 강역만큼 여진의 초원이 줄어드는 건 명약관화다.

그렇게 줄어든 초원은 곧바로 여진족이 키우는 양의 수에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먹고 사는 것에 직결되는 것이다.

당장 으르렁거리는 두 씨족장을 바라보며 광해군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땅에 여진인들이 조선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해요.”

“노예로 살라는 것인가!”

당장 터져 나온 호이합투발의 외침에 광해군이 고개를 저었다.

“함께 풍족하게 살길 원해요.”

“무슨 가당치도 않은!”

“두 사람도 들었을 게예요. 내가 여진족에게 곡식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건······.”

섣불리 답을 하지 못하는 호이합투발의 표정 상 그들도 분명 들어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런 그에게 광해군이 말을 이었다.

“그 곡식을 계속 공급할 수 있어요. 더 많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삼구를 통해 전해진 광해군의 말에 입을 다문 호이합투발 대신 내음타방이 물었다.

“그걸 받고 싸우라는 소린가?”

마찬가지로 투삼구를 통해 통역되어 전달된 내음타방의 말에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떨 때는 그래야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일을 할 거에요.”

“일?”

“철광을 캐고, 쇠를 만들고, 도로를 닦겠죠.”

“결국 노예로 부리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눈매를 찌푸리는 내음타방의 물음에 광해군이 고개를 저었다.

“조선인들이 함께 철광을 캘 것이고, 쇠를 만들고 함께 도로를 놓을 거예요. 그리고 그들과 똑같이 대가를 받아가죠.”

“곡식으로 말인가?”

“맞아요. 누군가를 죽일 필요도 없고, 또 당신들이 죽을 필요도 없죠. 열심히 일한 만큼 곡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내음타방은 호기심이 동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호이합투발의 경우엔 잔뜩 찌푸린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긴 했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호이합 씨족만 남았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을 지는 그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호이합투발을 힐긋 일별한 내음타방이 물었다.

“곡식을 조선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여진의 영광이라는 소린가?”

“이야기를 들으니 풍족한 생활을 하는 건주여진을 부러워한다고요?”

“명의 앞잡이 놈들을 부러워 할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낯빛이 붉다.

그건 분명 화가 나서는 아니었다.

그런 내음타방에게 광해군이 말했다.

“그들보다 훨씬 잘 살 수 있게 될 거에요. 적어도 조선인처럼은 살 수 있죠. 따듯한 집을 갖고, 기름진 밥상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소리에요.”

솔직히 이 시대 조선의 일반 백성의 밥상이 기름지다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저들 여진족이 보기에 조선의 밥상은 풍요로웠다.

곡식이 끊이지 않았고, 온기가 가득 올라오는 집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유목생활을 하는 몽고족과 달리 여진인들은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고대 고구려 이후 당과 발해 등 여러 나라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여진족은 넓은 영역을 돌며 목축을 영위했지만 고정된 부락에서 농경을 영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부족들은 목축만을 영위하는 부족보다 확실히 더 잘 먹고, 잘 살았다.

그걸 내음타방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상의 자유로움을 버리는 바보 같은 일이다!”

호이합투발의 반대가 튀어나왔다.

내음타방의 표정도 그런 호이합투발의 말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 광해군이 물었다.

“그 자유로움이 그대들의 풍족함을 채워주던가요?”

“병과 가뭄만 없다면 우린 부족함이 없었다.”

“간신히 먹고 사는 게 다라면······. 그것만 충족되면 된다면 난 더 이상 권할게 없어요.”

두 손을 들어 보이는 광해군에게 협력타방이 물었다.

“그 이상이 가능하다는 소린가?”

“나와 함께 한다면. 더 많은 말, 더 많은 곡식을 갖게 되겠죠.”

“독에 곡식이 가득하고, 말을 살찌울 수도 있나?”

“곡식이 썩어날까 걱정이게 만들어주죠.”

광해군의 답에 한참을 고심하던 내음타방이 답했다.

“예하 부족장들과 논의하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광해군을 두고 두 사람이 말을 돌렸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내내 호이합투발의 투덜거림이 내음타방에게 쏟아졌다.

아무래도 그는 광해군의 제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걸 바라보는 광해군에게 내내 통역을 맡아주었던 투삼구가 물었다.

“정말 독에 곡식이 썩을 정도로 풍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건가?”

“당장은 굶지 않을 정도. 하지만 5년 안에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우리도 말인가?”

투삼구의 물음에 그를 바라보며 광해군이 빙긋이 웃었다.

“당연하잖아요.”

다음 날, 날이 밝았을 때 호이합 씨족의 전사들은 떠나고 없었다.

내음타방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해서 여진의 큰 부족인 휘발 씨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해서 여진의 최대부족인 휘발 씨와 연합하여 조선군에 대항할 것이란 말을 남겨두고서.

하지만 남은 내음 씨족은 조선군에 협력했다.

광해군은 북위별시위가 가지고 있던 곡식 중 일부를 풀어 그들에게 주었다.

조선군의 영역에 남겨진 호이합 씨족의 부락들을 쳐 그곳에 남은 호이합 씨족의 전사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내음타방과 투삼구의 주장이 있었지만 광해군은 여진족 전사들을 보내 그렇게 남겨진 호이합 씨족의 부락에도 곡식을 전해주었다.

그런 광해군의 행동을 여진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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