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6화 (26/325)

제26화. 종성 전투

율보리의 부족이 살았던 곳은 최북단인 온성을 기점으로 서측, 그러니까 종성 일대였다.

온성을 기점으로 동측, 그러니까 경원을 중심으로 그 인근에 살던 우을지를 비롯한 여진 부족들이 난을 일으킬 때도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던 이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의 대비책이 너무 강경 일변도였던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처음 율보리가 들고 일어났을 때의 규모는 2천 남짓으로 우을지의 난보다 규모면에서는 작았다.

하지만 확산속도와 종래에 모여든 여진족의 수로 보면 율보리 쪽이 더 심각했다.

2만으로 불어난 율보리의 여진족이 종성을 공격했다.

이순신 부대의 전술적 성공을 보았던 종성에서도 가진 총통을 전부 동원해 여진족의 도강을 막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전투에서 출신군관(出身軍官) 권덕례와 최호가 전사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동측, 그러니까 경원성을 기점으로 방어를 다지고 있던 조선군은 크게 놀라 서둘러 승전부대였던 이순신의 부대에 종성 구원을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이순신은 곧바로 철포들을 수레에 싣고 종성을 향해 달렸다.

빠른 속도가 필요했던 이순신은 가지고 있던 소를 모조리 인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대신 자신의 말을 비롯한 기마병들의 말을 매어 수레를 끌게 했다.

그 일로 이순신 휘하로 배치된 기마대의 군관이 크게 반발했으나 이순신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덕에 이순신의 부대는 종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바로 돌격하여 구원에 나서자는 기마 군관의 주장에도 이순신은 착실하게 화차와 승자총통병을 앞세워 진입했다.

종성 후방의 얇은 여진족은 한번 에 사전총통 50발이 일제히 발사되는 화차의 위용에 놀라 메뚜기 흩어지듯 도주했다.

그렇게 열린 종성의 후문으로 들어간 이순신 부대는 곧바로 철포들을 성벽 위로 전개하여 여진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종성이 무너지면 곧바로 행영이고, 그곳마저 깨어지면 두만강 하류로 통한다.

그것은 여진족이 함경평야로까지 조선군의 견제 없이 진출할 수 있게 됨을 뜻했다.

언제나 기름진 땅을 소망하는 여진족에게 그 소식이 알려지면 지금의 일이만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여진족이 몰아닥칠 것이 분명했다.

조선군이 종성 방어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미 도강에 성공한 이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철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음에도 훈융진에서와 같은 일방적인 승전은 거둘 수 없었다.

화력의 우세는 여전했지만 사방으로 흩어진 적은 작지 않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가 살아남아 종성에 대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억과 김수가 지휘하는 이순신 부대의 살수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철포들을 쉼 없이 쏘다보니 마침내 화약이 떨어졌다.

남은 것은 창과 칼로 적을 막는 방법뿐이었다.

할 수 없이 부상자들까지 창칼을 쥐고 성벽에 섰고, 칼이라고는 한 번도 휘둘러 본적이 없는 노비군들에게도 종성이 보관하고 있던 칼이 쥐어졌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실제역사에선 12척을 가지고 수백 척의 왜군 함대에 맞서야 했던 명량해전에서 등장했던 그 명언이 14년이나 앞선 종성 전투에서 나왔다.

그 말을 내뱉고 누구보다 앞서 칼을 뽑아들고 내달린 이순신을 따라 노비군들이 일제히 창칼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

타고 넘어 빼앗으려는 자들과 죽고자 싸우는 이들의 전투였다.

전의와 투지가 격돌하고, 도처에 피가 넘쳐났다.

이틀. 믿기지 않는 그 긴 시간을 이순신이 지휘하는 종성이 버텨냈다.

비로소 지원군의 편성을 마친 조선군이 종성으로 진출했다.

온성부사 신립이 지휘하는 기마대를 앞세운 다수의 조선군을 목격한 여진족들이 다시 강을 건너 퇴각했다.

이때까지 살아남은 이순신부대의 수는 이백에도 미치지 못했다.

초기 피해가 심각했던 살수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손가락에 셀 정도였고, 노비군에서도 겨우 백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악착같이 이순신의 명을 거부하고 말과 병력을 유지했던 기마군 50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돌격을 위해 기마병을 보존해야 했다는 기마부대 군관의 주장이 있었지만 그건 분명 적전 명령불복종이었다.

한데 그런 그를 온성부사 신립이 옹호하고 나섰다.

애초에 자신 휘하의 기마대를 쪼개 보낸 까닭에 그 군관과 기마병 모두가 신립의 수하들이었기 때문이다.

처벌해야 한다는 이순신과 기마병의 특징을 무시한 처사라는 신립의 의견이 대립했다.

조선군 지휘부는 그 불화가 커져 한성의 조당에 닿는 것을 우려했다.

이번에도 이순신의 분전은 묻혔다.

대신 그들은 이순신의 부대를 후방으로 보내는 것으로 입막음을 시도했고, 이순신은 두말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던 이억과 김수의 부상이 너무 깊었다.

살아남은 이들 중 크고 작은 부상을 입지 않은 이들이 없어 전선에 있을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들은 길주로 보내지고, 이내 다시 관찰사 정철의 배려로 조금 더 치료에 효과적인 함흥으로 보내졌다.

지휘관인 이순신의 상처도 제법 깊었기 때문이다.

*****

종성 전투의 결과를 보고 받은 광해군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장원의 연구에 몰두했다.

장원의 기술자들도 이전보다 더 매진했다.

이젠 상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북방의 변란이 확대되어 조선 전체로 번지면 당장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되었기 때문인지 장원의 연구진척이 빨라졌다.

종성 전투가 끝난 날로 부터 보름.

아직 광해군이 ‘야포’라 이름붙인 강선포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홍이포를 원 모델로 하는 신형철포와 드라이제 바늘 총을 재현한 소총이 완성되었다.

직후 수십 차례의 발포시험과 전장 적응성을 실험한 결과 사용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광해는 신형철포에 ‘조선철포’, 소총에 ‘가형 소총’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곧바로 대량 생산을 명했다

그리고 그날, 선조와의 독대를 청했다.

“어디로 보내달라고?”

놀라는 선조에게 광해군이 답했다.

“북방, 함경도로 보내주십시오.”

“잠시 소강상태라 하나 야인들의 준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모르더냐?”

“아옵니다. 알기에 소자가 가고자 합니다.”

변함없는 광해군의 요청에 잠시 그를 바라보던 선조가 물었다.

“금부도사가 이르길 네가 새로운 총통들을 만들었다 하더니 그걸 시험해 보고 싶어 이러한 것이더냐? 그것이라면 사람을 보내 실험해도 무방한 일일 것이다.”

“소자, 새로운 총통을 개발한 것은 사실이오나 그것들을 실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하면?”

“조선의 방벽을 세우고자 함입니다.”

“조선의 방벽?”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선조에게 광해군이 답했다.

“들리기를 저들 북방 야인들 속에 큰 사람이 나와 부족을 모으고 힘을 키우고 있다하니 소외된 이들을 모아 조선의 방벽으로 삼을까 하옵니다.”

광해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선조도 알아들었다.

최근 북부 여진족들 중에 노이합적(努爾哈赤:누르하치)이라는 자가 여진족들을 통합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준동이 얼마나 큰지 명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니 광해군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얼른 알아들었던 것이다.

“이이제이를 말함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오랑캐의 힘으로 오랑캐를 막아낼까 하옵니다.”

“이미 조선에 반하고 있는 저들이 복종하겠느냐?”

“새로 만든 총통들로 조선의 힘을 각인시키고, 전하의 덕으로 감화시켜 조선의 백성으로 당길까 하옵니다.”

“나의 덕이라······.”

이 시대에 임금의 덕은 다른 것이 없었다.

입히고, 먹이는 것이다.

“그럴만한 재화가 부족함은 아느냐?”

지난해 곡식의 소출이 늘었다지만 그뿐이다.

조선의 경제사정은 여전히 시장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작았고, 궁핍했으니까.

“소자가 마련해 볼 요량이옵니다.”

광해군의 말에 조선 최대의 미곡상이 선전의 김억수가 되었다는 호조의 보고를 떠올렸다.

누굴 이용하든 상관없었다.

조정의 재화도, 왕실의 재화도 쓰지 않고 백성을 늘여 왕의 이름으로 품을 수만 있다면······.

“곡식은 그러다 하고, 병(兵)은 어찌 낼 생각이더냐?”

이미 경군의 일부까지 올려 보낸 참이다.

더 이상 많은 명력을 내자면 남부의 병력을 끌어가거나 경군을 추가로 보내야 한다.

하지만 선조는 더 이상의 경군을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남부에서의 병력 차출도 마찬가지다.

왜구들의 침탈은 여전했고, 그 상태에서 남부의 병력을 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군역을 널리 반포하여 새로운 병력을 만들어 낼 생각도 선조는 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전쟁도 아닌데 굳이 그리해서 대신들과 백성들의 원성을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그런 선조의 생각을 잘 알고 있던 광해군이 답했다.

“사대부들로 부터 얻을 것이옵니다.”

“사대부들로부터?”

사병이 혁파된 것은 태종 때다. 그러니 사대부들이 병사들을 내어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순간 선조의 뇌리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노비군!’

자신이 내린 노비에 김억수가 모아준 노비를 추려 이순신이란 자에게 보냈다던 보고가 떠올랐던 것이다.

처음엔 노비들이 무기를 손에 쥔다는 것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전투들에서 그들이 목숨을 바쳐 조선의 땅을 지켜냈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특히 그들의 죽음엔 부담이 없었다.

노비야 죽건 말건 그들은 왕이 지켜야할 백성도 아니었고, 왕의 재물을 늘려주는 재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대부들에겐 다르다.

노비는 그들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명만 내다 팔아도 면포가 5백 필이나 한다.

그걸 내놓을 땐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들이 왜 노비를 내놓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선조의 질문에서 그가 이미 노비를 모으려 하는 자신의 생각을 읽었음을 알아차린 광해군이 순순히 답했다.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득?”

“예. 아바마마.”

“무슨 이득이 있을 거란 소리더냐?”

“소자, 함경도 땅에서 철광을 열 것입니다.”

“철광?”

“예. 무산에 철맥이 있나이다.”

광해의 말에 선조의 눈이 반짝였다.

그로써 선조의 생각을 읽은 광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철맥은 노천에 있어 캐기 쉬우나 그 질이 낮아 철 함유량이 사할에도 미치지 못하옵니다.”

광해의 말에 대번에 선조의 눈빛에 서려있던 욕심이 사그라졌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철을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새로운 제철법을 쓸 요량이더냐?”

“예. 그럴까 하옵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 들었다만.”

“완성이 될 것이옵니다.”

그 말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광해군과 말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기에 선조는 그 부분을 건너뛰었다.

“하여 어찌 하겠다는 소리더냐?”

선조의 물음에 광해군이 답했다.

“소자는······.”

이후로 이어진 광해군의 이야기에 선조는 꽤나 흥미를 느꼈다.

그 이야기 중에 왕실의 재정을 늘일 수 있다는 소리에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선조는 광해군의 계획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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