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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4화 (24/325)

제24화. 훈융진 전투 (3)

여진족에게 있어 선봉은 영광이자 영예였다.

이 전쟁을 가장 먼저 시작하고 여러 곳에서 승리를 거둔 우을지가 그 영광을 차지했다.

우을지의 부족 전사 수백이 앞장서 강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 그들을 따라 다른 부족의 전사들도 괴성을 질러대며 말을 강으로 몰았다.

순식간에 천이 넘어가는 기마대가 강가에 도달해 강물로 뛰어들었다.

이순신의 명은 그때 떨어졌다.

“전포, 방포!”

커다랗게 외치는 이순신의 명에 철포의 심지에 불이 붙고, 이내 백여 문의 철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꽈광쾅쾅쾅!

자욱한 화약연기와 함께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음에도 귀가 멍멍하고 윙윙거리는 이명이 생길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훈융진 일대를 뒤덮었다.

퍼버버버벅.

백여 발의 탄이 강가로 몰려든 여진족 속으로 떨어졌다.

직격당한 이들은 형체를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짓이겨진다.

몸이 뚫리기도 하고, 부딪친 곳이 흔적도 없이 날아간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철환에 직격당하면 마치 칼로 처내듯 그 부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목이 떨어지기도 하고, 팔이나 다리가 날아가기도 한다.

사람이 그럴진대 말이라고 무사할리 없다.

맞으면 사람이고 말이고 가리지 않고 뚫리고, 찢기고, 뭉개졌다.

직경당한 한사람, 말 한필에 국한 된 일이 아니다.

강가의 돌에 부딪쳐 튀어 오른 철환은 무서운 속도로 주변을 휘젓는다.

걸리는 모든 것을 짓이기는 것이다.

그렇게 힘을 잃을 때까지 철환들이 부숴놓은 여진족 전사와 말들의 수가 한 발당 서넛을 넘는다.

개중엔 열 두셋을 한방에 박살낸 경우까지도 나왔다.

너무 좁은 장소에 너무 많은 여진족 전사들이 밀집된 탓이다.

거기다 조선군의 탄막도 조밀했다.

단 한차례의 사격에 선봉에 섰던 여진족 전사들의 반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에 놀란 말들이 날뛰면서 뒤에서 달려오던 이들까지 떨어져 짓밟히는 일들이 속출했다.

뒤엉켜 구르고,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다른 여진 전사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밟아 짓이겼다.

그럼에도 여진족 전사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강가로 몰려드는 저돌성을 잃지 않았다.

마치 광기에 물든 이들 같았다.

그런 이들을 향해 조선군은 2탄을 날리기 위해 정신없이 재장전 중이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던 굉음에 영향을 받은 것은 여진족만은 아니었다.

반쯤 넋이 나가긴 조선군도 마찬가지다. 거기다 실전을 처음 겪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더구나 강 건너에서 수천이 괴성을 질러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손이 헛 놀고, 실수가 자주 튀어나왔다.

화약을 흘리거나 격목을 맞추지 목하거나 활대를 떨어트리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이순신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당황하지 마라! 흘린 화약만큼 더 넣으면 된다. 격목은 다시 맞추면 되고, 떨어진 활대는 주우면 그만이다. 실수에 당황하지만 않으면 된다. 정신 차려라!”

이순신의 격려가 도움이 되었던지 실수가 나왔던 철포들도 모두 장전이 완료되었다.

그렇게 장전을 마친 포수들이 일제히 이순신을 바라봤다.

그것을 확인한 이순신이 강가를 확인했다.

강에 맨 처음 뛰어든 적의 선봉은 강물 중간쯤에 도달했고, 강가에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여진전사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여전히 표적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전포, 방포하라!”

꽈광쾅쾅쾅!

다시금 천지가 떠나가는 듯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치 건너 강가를 거인이 한손으로 내리 누른 듯 포탄들이 떨어진 일대가 움푹 들어갔다.

포탄을 뒤집어 쓴 여진전사들이 떼거지로 쓰러진 까닭에 그리 보인 것이었다.

그 한 번의 충격으로 적어도 수백은 사라졌을 터였다.

여진의 피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돌에 튄 철환들이 다시 주변의 여진전사와 말을 피 떡으로 만들었다.

그 속에서 굉음에 놀란 말들이 또 날뛰었다.

너무 조밀하게 모여 있었던 까닭에 피하고 말고 할 여유조차 없었다.

너나할 것 없이 강가로 몰려나온 탓에 곧바로 뒤엉키고 무너졌다.

포탄에 맞아 죽은 이들보다 날뛰는 말들에 밟혀 죽는 이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 수가 물경 천단위에 육박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전과를 훈융진에서는 제대로 확인 할 수 없었다.

첫발과 두 번째 발사로 자욱하게 일어난 포연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흩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이래서는 탄착점을 제대로 잡기 어려웠다.

“조란탄(鳥卵彈)을 채워라! 조준은 성벽 앞 강변으로 맞추어라!”

이순신의 명에 화약을 다지고 격목을 맞춰 넣은 포수들이 기존의 커다란 철환이 아니라 새의 알을 닮았다고 해서 조란탄이라 불리는 작은 철환들을 무더기로 포에 집어넣었다.

철포의 원 모델이었던 지자총통이 한 번에 쏘아낼 수 있는 조란탄의 수는 2백발이다.

철포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채워 넣은 포수들이 다시 흙을 넣어 다지고 장전을 끝내고 포신을 눌러 성벽 바로 앞 강변으로 맞추었다.

그걸 확인한 이순신이 장전을 마친 채 긴장한 표정으로 철포들 뒤에 늘어서 있던 승자총통병들을 돌아봤다.

“승자총통병들은 앞으로 나서라!”

이순신의 명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승자총통병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서며 철포 사이사이로 들어섰다.

이순신의 부대가 보유한 승자총통은 모두 50문이다.

그 모두가 성벽 아래와 맞닿은 강가로 조준되었다.

“기다려라! 헛되이 쏘지 말고, 적이 보일 때까지 기다려라!”

승자총통병들에게 외친 이순신의 눈짓을 받은 이억이 창칼을 든 채 자신의 뒤에 서있던 병사들을 돌아봤다.

7백으로 이루어진 이순신 부대에서 철포수 5백과, 승자총통병 50명, 망루의 견시수를 포함한 화차병 10명을 제외하고 남은 140명으로 이루어진 살수(殺手)들이었다.

모두가 창칼로 이루어지는 훈련을 받은 적 있는 이들로 일전에 함흥 병마절제사 이용이 보낸 함흥 군영의 병사들이었다.

스르르릉.

자신의 칼을 뽑아 든 이억이 살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

이억의 명에 창칼을 굳게 움켜쥔 살수들이 승차총통병과 마찬가지로 철포 사이사이로 나아가 섰다.

포연이 자욱한 강가로 여진족의 괴성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직 성벽으로 다가서는 여진족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전투 직전의 긴장감이 성벽을 따라 침묵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불쑥.

컥!

성벽 끝에 바투 서있던 조선군 살수 한명이 갑자기 솟구쳐 오른 여진족 창에 꿰뚫려 비명을 토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성벽 여기저기로 여진족들이 뛰어올랐다.

“쏴!”

타다다다당.

50문의 승자총통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말 등을 밟고 날듯 뛰어올랐던 여진족 전사 쉰 명이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모양새로 뒤로 튕겨나갔다.

발사를 마친 승자총통병들이 뒤로 물러나 장전을 하는 사이 살수들이 앞으로 나서 창칼을 휘둘렀다.

올라오려는 자와 막아서는 자들의 피가 튀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투가 성벽 끝을 기점으로 확대되었다.

코앞에서 조선군 살수들과 여진족전사들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철포 포수들의 두려운 눈이 일제히 이순신에게로 향했다.

이순신은 손을 든 채로 포연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강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얼른 쏘자고요.”

두려움에 물든 한 포수의 말에 화포장이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헛되이 쏘지 마라. 그 헛된 한방이 너와 동료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포수는... 칼이 코앞에 도달해도 명이 내려질 때까지 쏘지 않는다!”

눈을 부라리며 윽박지르는 화포장의 기세에 눌린 포수가 목을 움츠렸지만 눈빛에 물든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신참을 윽박지른 화포장의 시선이 다시금 이순신에게로 향했다.

‘제발.’

그도 두렵긴 매 한가지였다.

휘잉.

자연이 선사한 바람은 아니었다.

그건 너무 많은 수의 기마가 강가로 한 번에 올라서면서 일어난 바람이었다.

그 작은 바람에 포연이 슬쩍 위로 밀려올라갔다.

그렇게 드러난 요새 쪽 강가와 그 앞 강물에 수천의 여진족이 몰려와있었다.

“방포하라!”

고함과 함께 이순신의 손이 힘차게 내려왔다.

꽈광쾅쾅쾅!

1문 당 2백발의 작은 철환들이 동시에 튀어나갔다.

쏴아아아아.

마치 소나기 쏟아지는 듯한 소음이 뒤를 따랐다.

자그마치 2만발의 철환들이 강으로 쏟아지는 소리다.

휘이잉.

드디어 바람이 불어왔다.

자욱했던 포연이 바람에 휘말려 올라가자 강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빼곡히 강과 강변을 채웠던 수천의 여진 전사들이 시체가 되어 강을 뒤덮고 있었다.

중간 중간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지만 놀라 몸부림치는 말에서 떨어져 강 반대편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괴성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는 여진족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강가로 들어서는 이들이 마치 그림처럼 멈춰 섰다.

“장군전을 장전하라!”

이순신의 명에 넋을 빼고 있던 포수들이 장전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 장전을 마친 승자총통병들을 이순신이 불렀다.

“승자총통병들은 다시 앞으로 나서라!”

지체 없이 앞으로 나선 승자총통병들에게 이순신의 명이 떨어졌다.

“강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을 쏴라!”

타다다다당.

허우적대던 이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속절없이 강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강 건너의 여진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천을 죽였다지만 강 건너엔 아직도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여진족들이 있었다.

“방포준비 완료!”

“방포가 준비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장전 완료 보고가 올라오자 이순신의 명이 다시 떨어졌다.

“전포, 강 건너 적 집결지로 탄착점을 맞춰라!”

일제히 철포들의 포구가 고각사격을 위해 위로 들렸다.

포구 앞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장군전들이 그 큰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방포!”

이순신의 명에 일제히 철포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꽈광쾅쾅쾅!

장군전의 중간엔 화살의 꼬리날개와 비슷하게 생긴 날개들이 달렸다.

그것이 조금 더 먼 거리를 정확하게 날아가게 만든다.

장원에서의 실험에서 최대로 멀리 나아간 것은 천이백보까지도 있었다.

그 장군전들이 강가에 몰려있던 여진족들의 허리를 쳤다.

퍼버버버벅!

커다란 장군전에 직경당하면.... 형체도 찾기 어렵다.

선두가 아니라 대열 중간쯤에서 사상자가 속출하자 흔들리던 여진족 군열에 마침내 금이 갔다.

더구나 폭음에 놀란 말들이 다시금 마구 날뛰면서 제멋대로 뛰는 탓에 전사들이 흩어졌다.

그 속에서 도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여러 개의 집단이 모였을 때의 가장 안 좋은 폐단 중 하나가 통일된 지휘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혼란이 벌어지면 수습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했다.

혼란이 확산하는 여진족의 무리로 다시금 장군전이 쏟아졌다.

드디어 버티지 못한 여진족 전체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여진족을 바라보며 피칠갑을 한 이억을 필두로 조선군 병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매캐한 화약 냄새와 조선군 병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한 훈융진의 성벽에서 이순신이 여진의 시체로 가득한 두만강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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