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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7화 (17/325)

제17화. 신화(神話)와 마주하다

“그가 왔습니다.”

금부도사의 말에 광해가 물었다.

“누구······?”

“오라고 그렇게 명해도 오지 않던 인사가 결국 벼슬이 떨어져서야 왔더군요.”

그제야 광해군은 금부도사가 말하는 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한데······.

‘벼슬이 떨어졌다고?’

광해군이 아는 그의 백의종군은 선조20년과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30년.

외우기 좋게 딱 10년 주기로 두 번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선조15년. 그가 벼슬이 떨어진 일을 광해군은 알지 못했다.

그 탓에 금부도사와 함께 장원을 나서 궁으로 돌아가는 광해군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시대의 시계가 다르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궁에서 마주한 그분은 현충사에서 본 영정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 더 젊었고, 조금 더 다부지게 생겼다.

마음 같아선 사인이라도 받아서 두고두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광해군은 조용히 시립해 자신을 맞던 이순신을 덥석 끌어안았다.

물론 여덟 살이란 나이를 감안하면 매달린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뭐, 광해군의 입장에서 그건 분명 사내간의 뜨거운 포옹이었다.

당황한 이순신에게서 떨어진 광해군이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왜 벼슬이 떨어진 겁니까?”

어찌 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이순신을 대신해 금부도사가 나섰다.

“경차관(敬差官)의 모함으로 발포만호에서 파직되었답니다.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게 죄라면 죄였겠지요.”

‘경차관’이라는 말을 듣자 비로소 떠올랐다.

이순신이 파직되었던 일이.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그 일이 있은 후 이순신이 다시 함경도로 배치되었었다는 기억은 흐릿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뿐, 그가 어디로 가는지, 얼마 만에 다시 기용되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광해군은 그것이 유효기간이 짧은 주입식 교육의 폐단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다만 그렇게 관직에서 물러나 있던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광해군이 그와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짓자면 서둘러야만 했다.

“갑시다.”

다시금 벌떡 일어선 광해가 무슨 연유인지 몰라 얼떨떨한 이순신의 손을 잡아끌고 다시 궁을 나서 장원으로 향했다.

한가하게 궁에서 한담이나 나눌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을 달려가며 슬쩍 뒤를 돌아본 광해군은 묵묵히 따라오는 이순신을 바라봤다.

‘공도 살고 나도 삽시다. 우리 제발 그럽시다.’

그렇게 장원에 도착한 광해군은 철포와 소총 개발에 여념이 없는 조선의 기술자들을 보여주며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처음 광해군의 구상을 들은 금부도사의 그 큰 고리눈이 찢어질까 걱정일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그런 금부도사와 달리 이순신은 담담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정말 가능한 일이라 보십니까?”

“가능합니다. 조선의 대장기술이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쭌 것은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군께서 말씀하신 기간 안에 가능하냐고 여쭌 것입니다.”

이순신의 물음에 광해군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그 말은 말도 안 된다는 금부도사와 달리 광해군의 말을 믿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긴 조총도 본적 없는 상태에서 소총과 강선포라는 신무기를 설명했으니 어불성설로 받아들이는 금부도사가 더 정상적이다.

그래도 흔들림 없는 이순신의 눈동자를 바라본 광해군은 그가 정말로 자신의 말을 믿는다는 것에 감복 받았다.

“반드시 만들어 낼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입니다.”

광해군의 확답에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소장도 준비를 하겠습니다.”

더 이상 긴 말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그는 결심을 굳힌 듯 했다.

어머니가 계시는 아산으로 갈 요량이었다는 이순신은 그길로 장원에 눌러앉았다.

그리고서 그가 한 일은 일전에 총통의 개선사항을 검토하느라 장원에 머물고 있던 포수들을 동원해 철포의 사격술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로인해 모처럼 몇 달 만에 맞이했던 휴식을 빼앗긴 포수들의 표정이 온통 울상으로 물들었다.

이순신은 철포의 사격술 발전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장원에는 소총과 새로운 철포의 개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라고 광해군이 금부도사의 도움을 받아 조선에 존재하는 총통이란 총통은 모조리 몇 문씩 끌어 모아 놓은 것이 있었다.

이순신은 그렇게 모인 총통들의 사용법도 빠르게 익혀나갔다.

특히 그는 승자총통에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광해군이 말했던 소총과 그 쓰임이 가장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지 이순신은 승자총통을 활용한 보병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화차에도 관심을 보였다.

조선의 대표적인 화차는 신기전이다.

하지만 총통을 모으다 보니 딸려온 화차엔 작은 사전총통 50문이 총통틀에 나란히 포개져 있는 것이 있었다.

사전총통은 말 그대로 작은 화살인 세전(細箭) 4발을 넣고 한 번에 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는 대략 8촌으로 현대식으로 따지면 25cm 정도다.

병기도설에 의하면 정확한 길이는 8촌4푼2리, 무게는 1근 6량으로 현대식으로 따지면 825g 내외다.

이것 50문을 신기전처럼 나란히 총통틀에 얹어 사용하는 화차의 화력은 상당했다.

5백보까지도 날아간다는데 최대사거리를 뜻하는 모양이었고, 이순신은 그것을 50보 거리에서 돌진해오는 적을 향해 사격하면 어떨까 고심 중이었다.

현대시대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 사전총통 틀을 구비한 화차를 복원해서 시험 사격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이 시험에서 20m거리에 세워진 4.5mm 함석판을 일부 관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정도 화력으로는 50보 거리에서 돌진하는 적에게 충분한 살상력을 투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빠바바바바방.

소총 개발조 야장들의 도움을 받아 발사한 사전총통 화차는 생각 이상의 화력을 보였다.

복원품과 진품의 차이라서 일까? 목표대로 세워진 가마니를 모두 관통한 것이다.

저 정도면 갑주는 어려워도 천으로 된 옷을 입은 이들이나 갑주를 걸치지 않은 말에겐 큰 위협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충분치 않다고 느꼈던지 이순신은 거리를 늘이거나 줄이면서 화차의 화력을 시험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화포를 활용한 전술의 개발에 매달리는 모습에서 이순신이란 불멸의 장수가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순신이 화포 사격술과 그를 활용한 전술 연구에 여념이 없는 사이 금군에 제공할 철포 10문이 완성되었다.

문 당 10일의 제작 기간이 걸렸으니 느린 건 아니었다. 아니, 느리긴 커녕 오히려 빠른 편이다.

하지만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는 속도였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철포 제작 설비가 실험용으로 구비되어있는 탓에 동시 제작 문수가 2문으로 제한된 탓이었다.

그걸 확장하기 위해 요며칠 김억수가 보낸 물자들로 설비를 갖추는 중이었다.

사실 이 설비도 광해군의 요구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광해군이 요구한 설비의 기준은 대량생산의 기초가 되는 방법이다.

각 부품마다 규격화를 이루고, 그렇게 규격화된 부품을 컨베어벨트를 통해 이동시키면서 분업화를 이룬 기술자들이 조립을 해가는 형태다.

당장 컨베어벨트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지만 부품의 규격화와 일명 흐름 작업은 가능했다.

흐름 작업은 광해군이 붙인 이름인데 컨베어벨트대신 동거에 물건을 실어 다음 작업공간으로 이동시켜 조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화된 공작기구들의 난잡한 이동 없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작업시간이 단축되고, 각 작업구간의 작업자들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당 작업의 불량률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총괄적인 작업 감독도 두어 전체 공작 과정의 감수(監守)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게 고안된 대량 생산 설비는 정철에게 지원하기로 한 100문의 철포를 생산할 때부터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들을 살피던 광해에게 철포 생산을 담당하는 야장, 마직이 다가왔다.

“금군으로 갈 철포 10문의 탑재가 모두 끝났습니다. 광해군 마마.”

마직의 말에 시선을 돌리니 장원 마당에 나란히 늘어선 수레에 실려 천에 덮인 철포들이 보였다.

지자총통을 기본모델로 삼아 철로 만든 최초의 철포는 기존에 총통들이 사용했던 동거를 그대로 포좌로 사용했다.

아직 신형 철포나 홍이포에 사용할 대형 바퀴를 가진 포좌의 개발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게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동거는 포좌라 말하기엔 조금 모자란 물건이다.

기다란 직사각형의 상자에 손바닥만 한 바퀴가 달린 형태로 본격적인 이동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격시 받침의 용도가 더 큰 물건이었다.

따라서 장거리의 이동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소나 말이 끄는 수레가 별도로 필요했다.

그렇게 철포가 실린 수레 주변엔 금군에서 보내온 호송대 20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준비되면 출발하라 이르세요.”

광해군의 허락에 마직이 달려가 알리자 호송 군관이 광해군에게 다가왔다.

“신, 호송을 시작하겠나이다.”

그 보고에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군례를 올린 군관의 커다란 음성이 울려 퍼졌다.

“호송대······, 출발!”

그 명에 기다랗게 늘어서 있던 수레가 금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장원을 천천히 벗어났다.

광해군과 장원이 만든 첫 철포의 출하였다.

그래서였던지 장원에 속한 이들이 모두 나와 그렇게 멀어져가는 호송대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

금군에 배치된 철포는 당일 선조의 검열을 받았다.

말이 검열이지 일종의 구경이었다.

기존의 총통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숙동으로 만들어진 촉감과는 다른 철의 느낌이 선조를 흥분시켰다.

“시험 발사는 언제더냐?”

선조의 물음에 금군을 지휘하는 금군장(禁軍將)이 답했다.

“내일 미시(未時)로 예정 되어있나이다.”

“궁인들과 대소신료들에게 알려 많은 이들이 참관케 하라.”

“예. 전하.”

답하는 금군장을 바라보며 선조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철포의 위용을 뽐냄으로써 왕실, 나아가 자신의 강건함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선조의 바람대로 다음 날 열린 시험 발사에서 철포는 그 위용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기존 총통들과 사거리나 정확성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 재질이 철이라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이들로 부터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 성공적인 시험발사에 만족했던지 선조는 광해의 장원에 술과 고기를 보내 노고를 치하했다.

더불어 장원의 개설에 힘을 보탠 김억수에겐 왕이 신던 신발을 보내 그 공을 치하했다.

신발이 사람에게 갖는 의미처럼 계속해서 광해군과 나아가 왕실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라는 의미였다.

우습지만 김억수는 그렇게 받은 왕의 신발을 자신이 손님들을 맞을 때 앉는 자리 바로 뒷벽에 받침대를 달아 고이 모셔두었다.

이때부터 육의전에서 무언가 결정할 일이 생기면 육의전에 속한 각 전의 대행수들이 수전에 모여 결의를 통해 결정을 내렸다.

수전에서 일을 도모하니 당연히 수전의 대행수인 김억수의 발언권이 가장 강해진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바야흐로 김억수가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상인으로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게 크게 마음에 들었던지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며 투덜대기 일쑤였던 김억수는 한동안 장원의 지원에 별다른 타박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장원의 기술 축적은 늘어갔고, 작게나마 성공하는 부분들이 생기고 있었다.

광해군이 새로 고안한 대량 생산 설비에서도 철포가 무서운 속도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실행해보는 대량 생산 기법이라 그랬던지 처음엔 6일에 1문으로 시작한 철포의 생산량은 보름이지나자 하루 2문의 철포를 생산해 낼만큼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생산한 철포의 수량이 60문을 넘기던 날, 궁에서 장원으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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