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철화(鐵禍)의 발단 (3)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군의 행실로 백성이 피해를 보았단 말입니다!”
왕의 면전이라는 것도 잊은 듯 정인홍의 음성이 높았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피해를 입었다는 겁니까?”
광해의 물음에 정인홍이 좀 전에 선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읊었다.
“당장 철기구를 사들인 이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재물과 욕심을 멀리하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위반하고 소출을 늘여보겠다는 욕심을 품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랬답니까? 설마요. 난 그들이 내 뜻을 알아보고 사재(私財)를 털어 조선의 소출을 더 늘이려는 노력에 동참한 것으로 알았습니다만. 혹, 욕심으로 그러한 일을 했다는 이들이 있답니까? 누굽니까? 그게.”
광해의 물음에 당황한 정인홍의 입이 다물렸다.
광해의 말 몇 마디에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걸 느낀 까닭이다.
그런 정인홍을 응원해야 한다고 느꼈던가, 동인들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어찌 사사로이 쇠를 팔아 이득을 취한 것이 조선의 소출이 늘어나는 노력이란 말입니까!”
소리친 이가 누군지도 몰랐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하아······. 방금 전, 홍 장령이 한 말에도 있었는데 설마 여기 있는 신료 분들이 모르셨단 말씀이십니까? 철제농기구를 쓰면 곡식의 소출이 늘어납니다.”
광해의 물음에 동인들은 당황했고, 정인홍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에 당황해 있던 정인홍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섰다.
“그,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 그것을 저희가 모르겠습니까.”
“한데 그걸로 왜 문제를 삼는 것입니까?”
“지주들의 부담이······.”
“소출이 늘어난다니까요. 그럼 그 소득이 어디로 갈까요? 설마 모르십니까?”
“그, 그, 지, 지주들은 그렇다 해도 소작농들의 부담은······.”
“또 말씀드려요? 소출이 늘어난다니까요. 소작료를 내도, 더 남는다고요.”
자신의 말에 당황한 얼굴로 다시 입을 다문 정인홍을 바라보던 광해가 신료들 전체를 시선에 담았다.
“자꾸 걸고 넘어가시는 게 잘 모르셔서 그러는 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광해의 말에 동인들의 표정이 소태 씹은 것과 같았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광해의 말이 이어졌다.
“철제농기구를 사용하는 한성부 관할의 농지에서 거두는 곡식의 양과 목재 농기구를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농지에서 거두는 곡식의 양은 대략 이 할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제가 알아본 게 아니라 사헌부에서 몇 년 전에 쇠의 사사로운 활용에 대해 근심이 있어 조사한 내용 중에 그 부분을 거론한 것이 있더군요.”
이할.
적은 양이 아니다.
만석의 쌀이 나올 곳에서 만이천석의 쌀이 나온다는 소리니까.
아무소리도 못하는 동인들 속에서 아까 소리쳤던 그가 또 나섰다.
“바로 그 부분입니다. 사사로이 쇠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란 겁니다.”
구렁이 담 넘듯이 철제농기구 자체가 아니라 쇠의 사용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동료의 지원사격에 힘을 얻었던지 정인홍이 다시 나섰다.
“본디 철제 농기구를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백성들은 많이 만들어 팔면 이득을 더 취할 수 있다 것을 몰라 그리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다 제한된 쇠의 사용처에 대한 고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군께선 무리하게 쇠를 사사로이 사용하여 그 무고한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반성하셔야 합니다!”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는 정인홍에게 광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쇠. 내가 만든 겁니다.”
“무슨······?”
얼른 알아듣지 못한 정인홍에게 광해가 말했다.
“그렇게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소용된 쇠는 내가, 그러니까 선전의 대행수인 김억수와 함께 별도의 제련소에서 새로 만들었단 소립니다.”
그러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쇠의 양에는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그걸 알아들은 정인홍이 당황하는 사이 또 다른 동인의 관료 한명이 다시 나섰다.
“쇠는 결국 철광석으로 만듭니다. 그 철광석의 채굴량은 매년 비슷합니다. 결국 새로 만들었다고는 하나 그 철광석을 썼으니 결과적으로는······.”
“평소에 사용하는 철광석에서 얻은 철이 아닙니다.”
상대의 말을 자르고 나서는 광해의 말에 정인홍이 나섰다.
“하면 어디서 나셨단 말입니까?”
“남쪽의 버려진 노천철광에서 얻은 것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쇠를 뽑아낼 수 있는 철광석을 가진, 그것도 노천 철광이 버려지다니요.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정인홍의 반박에 광해가 시큰둥하니 말했다.
“선전의 대행수인 김억수가 경상도 땅에서 얻고 있다 했으니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다섯 수레씩 철광석을 실어 나르고 있으니 관원들이 잘 알 테니까요.”
광해의 말에 선조의 눈짓을 받은 도승지가 황급히 대전 밖으로 나갔다.
사정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수레가 매일같이 움직였다면 관도를 따라 요소요소 산재한 역참들이 모를 리 없고, 그들이 안다면 당연히 그들을 관리하는 호조(戶曹)에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걸 알아차렸던지 동인들 중에서도 누군가가 조용히 대전을 나섰다.
그도 함께 알아보려는 것이다. 자칫 왕의 지시를 받는 도승지가 감출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왕의 명으로 나갔던 도승지가 돌아왔다.
“호조에 확인한 결과 광해군의 말이 사실이옵니다. 최근 몇 달간 경상 땅, 달천의 버려진 한 노천 철광에서 저품질의 철광석을 매일같이 다섯 수레씩 실어 날랐다 하옵니다.”
도승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함께 나섰다 돌아온 동인의 관료에게 쏠렸다.
그게 정말 사실인지 묻는 것이다.
그에 그 관료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여기저기서 신음 같은 탄식들이 새어나왔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물었다.
“쇠도 새로 만들고, 그 쇠로 철제 농기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광해의 말에 정인홍도, 동인도 입을 여는 이들이 없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들로 나라의 소출을 늘리고, 소작농들의 소득도 늘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그 결실을 알 수 없는 겨울이라 경험이 없는 백성들이 실감치 못할 뿐, 곡식을 거두는 가을이 되면 모두가 알게 될 일입니다.”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광해가 대신들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에 계신 신료 분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일. 깨닫지 못한 백성을 다독이고 계몽하지 못 할망정 그 일을 조당으로 가져와 위로는 전하를 걱정시키고, 조정의 분란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차가운 한기가 조당을 휩쓸었다.
광해의 말에서 이 사안이 이대로 끝나면 몇몇은 결코 무사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쇠를 새로 만들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 품질의 철광석으로 그러한 일이 가능했다면 어찌 나라에 고하고 쇠를 들어바치지 않은 것입니까!”
정인홍이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말했다.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닙니다. 여전히 공부하고 개선하는 중에 있습니다. 듣지 못하셨습니까? 철물전에서 취급하는 철제 농기구들이 팔리는 양에 비해 만드는 양이 부족하다고. 철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설마 그조차도 미루어 짐작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촌철살인이다.
무능까지 들먹인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덟 살, 어린 광해의 일침에 동인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었고, 정인홍은 당황했다.
“그, 그, 그렇다 해도 그것에서 거둔 소득을 사사로이 취하는 것은 국법에도 어긋나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자면 돈이 들어갑니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처음에야 선전의 대행수인 김억수가 희사를 했다지만 끊임없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 그럼······?”
“예. 거기서 거둔 소득으로 계속해서 기술을 발전시켜나가는 중입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쇠가 부족해 주상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일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그 부분에서 뒤로 돌아 왕을 올려다보며 반례하는 광해의 모습에 선조의 입가로 빙긋이 미소가 깃들었다.
내친김에 광해는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럼에도 다소 남는 것이 있어 몇 가지를 만들어 보고 있긴 합니다. 그중 한 가지가 나름 결과를 보여 그렇지 않아도 며칠 후, 주상전하께 진상하려하였는데······. 이번 일로 주상 전하께 칭찬을 들으려던 소자의 작은 기쁨이 줄어들었나이다.”
이때 광해의 얼굴과 음성은 아버지에게 몰래 칭찬 들을 일을 도모하다 사전에 들켜 실망한 아이의 그것과 똑 닮아있는 음성에 표정이었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잔정이 없기로 소문난 선조가 어좌에서 몸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선조의 하문에 광해가 쀼루퉁한 표정으로 답했다.
“소자 각고의 노력 끝에 철포를 만들었나이다. 그것을 주상 전하께 진상하고자 하였나이다.”
“철포?”
선조가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했다.
이미 천지현황 네 가지의 총통이 개발되어 전해져 오고 있었지만 그것을 일러 철포라 부르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부도사의 보고로는 철포라는 요상한 것이 아니라 총통을 개선한다고 들어왔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선조의 얼굴엔 다른 때보다 궁금증이 강하게 서려있었다.
“예. 선조들이 만들었던 총통을 숙동(熟銅)이 아니라 철로 만들었나이다.”
순간 신료들 사이에서 조롱기 섞인 웃음들이 새어나왔다.
“풋.”
“큭.
당장 선조의 얼굴에도 실망감이 크게 비춰졌다.
선조들이라고 철로 총통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만들어 보았다.
아무리 채굴량이 적다하나 동보다는 많은 것이 쇠였고 가격도 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쇠로 만든 총통은 쉽게 깨졌다.
때론 발포하는 순간 폭발하여 많은 포수가 다치거나 죽었다.
그것이 철로 총통을 만들지 않는 이유였다.
그러한 총통을 철로 만들어놓고 거창하게 철포라 이름붙인 광해의 행동에 실망한 것이다.
그런 선조를 바라보며 광해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선조들이 겪었던 수없는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고, 또 겪은 끝에 숙동으로 만들어진 총통과 비등한 내구성을 가진 철포를 만들었나이다. 주상 전하.”
광해의 말에 실망어린 표정이던 선조와 비웃음을 머금고 있던 신료들의 표정에 놀람이 들어섰다.
“그, 그 말이 진정 사실이더냐?”
선조의 물음에 금부도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지난 초사흘에 벌인 시험에서 성공한 것을 소신의 눈으로 몇 번이나 확인하였나이다.”
금부도사의 말에 선조의 놀람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경사로다. 경사로다. 내 아들이 큰 공을 세웠도다. 으하하하하.”
공적인 자리라며 주상으로 부르라던 선조가 아들을 언급했다.
그것이 품고 있는 뜻을 알기에 신료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런 신료들을 바라보던 광해가 정인홍에게 물었다.
“그런데 장령.”
정인홍을 부르는 광해의 음성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둘에게로 모였다.
“마, 말씀 하십시오. 광해군.”
“궁금해서요. 본래 철제 농기구를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백성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군요. 저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니 본뜻은 아니었다 해도 찾아서 사과를 하고 그 피해를 복구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해 주시지요. 그들이 누구입니까?”
광해의 물음에 정인홍은 답을 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그가 동인들을 바라봤지만 누구도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허허험!”
어좌에 앉은 선조의 못마땅함 가득한 헛기침이 대전을 꽉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