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철화(鐵禍)의 발단 (2)
이이가 흔히 철화라 불리는 일에 대해 광해를 찾았던 것은 새해 정조하례가 열리기 나흘 전의 일이었다.
도처에서 흘러나오는 원성이 결국 정조하례 후 열리는 연회에서 문제가 되어 나올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까닭이었다.
그 탓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찾아온 이이를 광해는 담담한 얼굴로 맞았다.
“소신 그저 믿기로 하였음에도 이리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은······.”
“철화 소문 때문에 그러시죠?”
철화.
철로 말미암은 사화를 일컫는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이제 벌어질 것이라며 사람들의 입방아에 최근 오르내리는 이야기였다.
그 소문에선 이번 철화로 인해 광해가 큰 죄를 받아 유폐될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대지주와 그런 그들의 지원을 받는 동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소문으로 금부도사와 김 대행수가 사색이 되어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죠.”
하긴 사화에 그보다 민감할 수 없는 두 사람이긴 했다.
그들에게 들었다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라 판단한 이이가 광해에게 물었다.
“어찌 하시렵니까?”
“어쩌긴요. 그냥 두어야죠.”
“그냥······ 둔단 말입니까?”
“당연하잖아요.”
“어찌 그것이 당연한 일입니까?”
답답하다는 듯이 묻는 이이를 광해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대감도 앞만 보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뒤를 좀 보세요. 뒤를 보면 너무나 간단히 답이 보이는 일입니다.”
선문답 같은 그 말에 한참동안 말없이 고심에 빠져있던 이이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광해의 전각을 떠났다.
더 물어본 것도 없고, 더 들은 이야기도 없이 깊은 사과의 뜻을 담은 배례를 한 번 올린 채 그렇게 떠났다.
물론 광해의 전각을 떠날 때 이이의 표정은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르게 밝아져 있었다.
그때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일을 선조의 앞에 이이가 풀어놓았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면 소출이 늘어나옵니다.”
“그야 당연히······.”
말을 하다말고 선조의 표정이 굳었다.
참을성이 적고, 정통성이 결여되었다는 출신에 관한 자격지심이 커서 작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지만 선조는 멍청한 군왕은 아니다.
오히려 똑똑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쌓았다.
그런 그가 이이의 말에서 그 뜻을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그런 선조를 잠시 바라보던 이이가 조용히 배례했다.
“소신 물러가옵니다.”
광해 때와 같았다.
그렇게 물러가는 이이를 선조는 잡지 않았다.
물론 분노와 짜증으로 물들어있던 선조의 표정도 어느새 풀리고 없었다.
대신 그의 머리는 무섭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감히 신하 된 자로 임금인 자신을 비난하고,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윤상현이란 작자에게 어찌 보복을 가할 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서.
*****
정조하례 직후 열린 연회에서 벌어졌던 논쟁이 결국 조당(朝堂)으로 넘어왔다.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윤상현은 자신의 소임을 위해 임지인 경상도로 내려갔으나 그가 속한 파벌인 동인들이 기어코 그 일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왕이 답도 않고 연회 도중 도망간 일이니 기회를 잡았다 판단했던 것이다.
정조하례가 있은 날로부터 닷새째인 선조15년 1월 5일, 무자년(戊子年) 새해 첫 조회(朝會)에서 그 문제가 정식 의제로 올라왔다.
욕설만 없었다 뿐이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치열한 설전이 오고갔다.
그 와중에 동인들 중 강경파에 속하는 사헌부 장령, 정인홍이 나섰다.
“이는 감히 위로는 주상전하를 욕보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곤란케 하는 천하의 몹쓸 짓이옵니다.”
순간 조정 신료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무리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라도 상대는 왕자인 군이었다.
그런 이를 상대로 ‘짓’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것에 동인들조차도 숨을 멈추고 어좌에 앉아있는 선조를 올려다봤다.
분노로 잔뜩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선조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대는 그게 그리 잘못한 짓이라 보는가?”
담담하다고는 하나 ‘짓’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선조가 거론했다는 점에서 왕이 그 일을 가슴에 담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뒤끝이 남다른 선조의 성품을 아는 동인들은 차마 정인홍을 변호하지 못했다.
상황이 그리되자 정인홍도 살짝 당황했다. 달아오른 조당의 분위기에 휩쓸려 강하게 나간 다는 것이 너무 나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다. 기왕 이리된 것 동인들 속에서 강경파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자 마음을 먹었다.
“예. 그러하옵니다. 그것은 ‘짓‘외의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어디의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말해보라.”
선조의 하명에 정인홍이 답했다.
“우선 소출을 늘여보겠다는 욕심을 품게 되니 선현의 가르침을 위반하게 만드옵니다.”
“그리고?”
“그 욕심에 철제기구를 사느라 지주들의 부담이 늘어나옵니다. 또한 그 철제기구들을 대여하여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 또한 부담이 늘어나옵니다.”
“또?”
선조의 물음에 정인홍과 동인들의 표정이 살아났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주장이 먹혀 물러설 길이 없어진 선조가 자신들이 소문낸 것처럼 광해를 쳐낼 구실들을 쌓기 위해 묻는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인들의 응원의 눈짓을 받은 정인홍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대전을 울렸다.
“또한, 본디 철제기구를 팔아 작은 삶을 연명하던 성실한 백성들의 피해가 크옵고, 그로인해 크게 흔들린 조선의 철제 시장으로 인해 훗날의 화가 신은 심히 두렵사옵니다.”
“훗날의 화?”
“예, 전하. 무릇 쇠란 국가의 중요한 자원으로 국방의 근간이고, 병사(兵事)의 기본이옵니다. 그것으로 낫을 만들고, 그것으로 호미를 만들면 결국 칼과 창을 만들어 나라를 지킬 쇠가 부족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결국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종묘사직을 위험으로 내몰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일제히 허리를 숙여 통촉을 외치는 이들은 모두가 동인들이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선조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것은 네들이 틀렸다 답할 말이 있었다.
그걸 멋지게 꺼내 저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감히 군왕인 자신을 업신여긴 윤상현 그놈을 잡아다 살을 가르고 뼈를 바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듣다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핵심은 쇠였다.
정인홍의 말대로 쇠는 국가의 중요자원이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철광과 제련소가 있다지만 그 양은 그리 크지 않다.
오죽하면 염철법(鹽鐵法)이라는 제도를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일정분량의 철을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여 부족한 분량을 메꾸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사로이 철을 농기구에 사용한다면 정인홍의 말대로 병기를 만들 철이 부족해질 것은 자명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선조를 힐긋 일별한 정철이 말문을 열었다.
“신, 정철이 아뢰옵니다. 이번 일은 광해군이 벌인 일이오니 그를 불러 직접 묻고 답하게 하심이 옳은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 동인과는 반대 정파인 서인의 거두, 정철이 나서자 일순, 조정에 혼란이 일었다.
그간의 관례는 그것이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상대 정파의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동인이 광해를 물고 뜯으면 서인은 광해를 무조건 보호해야했다.
광해를 지탄하는 동인들에 맞서 방금 전까지 서인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한데 그래야 하는 서인들의 거두가 오히려 광해를 조당에 불러 직접 답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불려나오면 광해는 결코 무사할 수 없을 터였다.
이것으로 정철이 광해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노선을 변경했다고 판단한 동인들은 자신들의 우선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둘러 그 의견에 찬동하고 나섰다.
“당연하고 지당한 말이옵니다. 소신이 이미 그것을 주청 드리려 하였나이다.”
“그리하여주시옵소서, 전하.”
“광해군을 불러 답을 물으시오소서. 전하.”
서인들이 다시 끼어들까 걱정이 들었던지 동인들이 저마다 나서 외쳐대는 고성들로 조당이 꽉 찰 지경이었다.
그것에 견디지 못한 선조가 결국 도승지에게 일러 광해군을 불러오라 명하였다.
도승지와 함께 대전으로 들어선 광해군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찾으시었습니까, 아바마마.”
“지금은 공무중이니라. 하니 사사로이 부르지 말라.”
딱딱하게 굳은 선조의 음성에 그를 힐긋 올려다본 광해가 허리를 굽혔다.
“예, 주상 전하.”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 선조가 신료들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광해군은 돌아서서 신료들의 질문에 답을 하라.”
“명을 받잡나이다. 전하.”
공손히 반례한 광해가 돌아서자 선조의 눈짓을 받은 정인홍이 앞으로 나섰다.
“신, 사헌부 장령 정인홍. 광해군께 여쭙니다.”
“말씀 하시지요.”
“군이 장사치 김 아무개와 붕당을 지어 장안의 철로 사사로이 철기구를 만들어 파는 것이 사실입니까?”
붕당, 사사로이.
왕이 싫어할 말을 두 가지나 집어넣어 물음을 던졌다.
처음부터 ‘나, 너 물 먹일 거야.’ 라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물음이었다.
그 물음 속에 든 음흉함과 사나움을 알면서도 광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붕당, 이라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선전의 대행수인 김억수와 철물전을 열어 철제 농기구를 파는 것은 맞습니다.”
“자고로 선현이 가르치되, 재물을 멀리하고, 사사로운 거래를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아십니까?”
“알죠.”
“하면 일국의 왕자가 그것을 알면서도 위배하셨단 말씀이십니까?”
“필요하다면, 그것이 이 나라를 위해, 백성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광해의 답에 정인홍이 물었다.
“어찌 그 일이 백성과 나라를 위한 일이란 말입니까? 그 일로 피해를 본 선량한 백성들이 얼마며, 소작농들의 원성이 자자한 것을 아십니까?”
“피해를 본 백성이요?”
“그렇습니다. 본디 소량의 철제 농기구를 팔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백성들이 이번 일로 큰 피해를 본 것을 아십니까?”
본디, 그러니까 본래 철제 농기구를 팔던 이들이라면······.
최목중을 비롯한 철회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손해를 본 것은 맞다.
원가의 수십 배를 받아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짓거리를 못하게 아예 그들이 대장장이와 숯쟁이로 부리던 사노비들을 빼앗아 왔으니까.
하지만······.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백성.’이라는 부분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뭐, 그렇다고 지금 그걸 물고 늘어질 타이밍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군요. 한데 그것들이 문제가 되는 겁니까?”
적반하장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은 광해의 물음에 정인홍을 비롯한 동인들은 물론이고, 서인들의 여기저기서도 탄식이 새어나왔다.
“허.”
“허허, 이런.”
그것은 어좌에 앉아있던 선조도 마찬가지다.
슬쩍 찌푸려진 표정이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