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철화(鐵禍)의 발단 (1)
육의전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랑(公廊)에서 상점을 연 이들이다.
훗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이들이 발전하여 관부와 결탁, 배타적 독점권인 금난전권을 비롯한 폐단을 양성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형상을 띠고 있진 않았다.
다시 말해 비단을 취급하는 선전이 있긴 하지만 조선 어디의, 누구라도 비단을 거래할 수 있었다.
막말로 비단을 들고 나와 행상들이 장사를 행하는 곳에서 팔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고가의 비단이 그렇게 거래될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여하간 아직까지는 상업에 대해 나름 자유로운 편이란 소리다.
그런 조선의 시전에 기존엔 없던 곳이 생겼다.
철물전(鐵物廛).
공랑에 조성된 선전의 상점들 중 하나를 개조해 만들었다.
취급품목은 이름에서 알겠지만 쇠로 만든 것들이다.
호미, 낫, 쇠스랑, 등등.
쇠로 만든 농기구가 모조리 등장했다.
물론 이전에도 철제농기구는 있었다.
사사로이 거래되는 철이 있었고, 그것들로 철제 기구를 만들어내는 대장간이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철제기구를 사는 경로는 바로 그런 대장간을 통해서다.
아직 철물을 취급하는 상점은 없었던 것이다.
물량도 적고, 거래도 작아서 그것만 취급해서는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에 맞춰 만드는 일종의 주문생산방식이었다.
더구나 그렇게 철제기구들을 만들어내는 대장간이 아직 활성화되기 이전의 시기다.
조선팔도에 대장간이 흔해지는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철의 유통이 활발해진 이후였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렇게 새로 생긴 철물전에서 판매하는 철제 농기구들의 가격은 기존 거래가의 십분지 일.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판매가 잘 되었다.
만들어지는 농기구의 양이 팔려 나가는 양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지주들이 주요고객이었다.
한성부는 물론이고, 소식을 들은 지방에서까지 사람들이 올라와 철물전의 철제 농기구들을 사갔다.
철제 농기구가 전체적인 소출을 올려 지주의 소득을 늘려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간엔 알면서도 높은 가격에 망설이던 이들이 사들일만한 가격으로 물건이 나오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데 그렇게 철제농기구의 보급이 늘어나자 역설적으로 전체적인 조선의 소작료가 올라갔다.
철제농기구 대여를 하지 않았던 소규모지주까지 철제 농기구를 사다가 소작농들에게 대여해주며 소작료를 올려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게 이전의 몇몇 대지주들이 행하던 대여료 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철제농기구의 구비 가격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하튼 오른 건 오른 것이다.
당연히 원성이 생기고 말들이 나왔다.
가득이나 소작료를 내고나면 간신히 죽지 않고 살 정도만 남았던 소작농들 입장에서는 소작료를 더 내라는 말은 굶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철제 농기구의 효용을 아는 이들은 덜 했지만 접해보지 못했던 지방의 소작농들의 원성이 컸다.
거기다 하나 더.
철제농기구의 시중 가격이 떨어졌다.
당연히 새로 철제농기구를 사들인 지주들이 소작료에 붙여 받는 철제농기구 대여료가 기존의 관례보다 현격하게 내려갔다.
시장거래가가 뻔히 보이는데 소작농들에게 이전처럼 대여료를 높게 책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기존 대지주들도 소작료에 포함된 철제농기구의 대여료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기존 대지주들도 철제농기구 대여료를 낮추었고, 그들의 전반적인 소득이 줄었다.
그걸 원망하는 대지주들의 원성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은 광해가 금부도사를 앞세우고 한성부의 일부 알부자들의 집을 방문해 사노비인 대장장이들과 숯쟁이를 데리고 나온 지 석 달 보름.
한성부 시전에 철물전이라는 상점이 생긴 지 석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
새해가 밝으면 왕은 천단(天壇)으로 나아가 하늘에 제를 올리고 조정의 대소신료들의 인사를 받는다.
새해 인사인 셈이다.
이것을 일러 정조하례(正朝賀禮)라 하였다.
좋은 날이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왕이 그렇게 찾아온 신하들을 위문하기 위해 연회를 연다.
거창하진 않았지만 몇 가지 음식과 다과, 그리고 술이 상에 차려져 신하들이 앞에 즐비하게 놓였다.
날이 날이니 만큼 주로 덕담이 오고간다.
그렇다고 좋은 소리만 하는 자리는 아니다.
모처럼 지방관들이 올라오는 자리이다 보니 지방의 좋지 않은 현황이나 불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거친 말도 나오고, 언성도 높아진다.
하긴 작은 양이라고는 해도 술이 제공되는 자리이니.
그래서 종종 대신들끼리 말싸움도 나고, 왕이 듣기 싫은 소리도 나온다.
때문에 기분 상한 왕이 중간에 퇴장해 냉랭한 분위기로 파장하는 일도 가끔 일어나는 행사였다.
이번엔 잘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한 고위 지방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것도 물 건너갔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는 경상 관찰사(觀察使) 유상현이었다.
그가 일어서자 선조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몰렸다.
“전하, 이 좋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안이오나 소신이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서두에 깔리는 어조들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인지 주변 중신들의 덕담에 연신 웃음을 짓던 선조의 얼굴이 굳었다.
“말하라.”
선조의 허락에 유상현이 말했다.
“당금 경상 땅의 백성들에게 작은 환란이 일었나이다.”
환란이란 말은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
전쟁이나 모반, 또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나 감히 입에 담을 수 있었던 말이다.
당연히 되묻는 선조의 표정과 음성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환란!”
“예, 그러하옵니다. 전하.”
“도대체 무슨 환란인가!”
한층 올라간 선조의 눈은 차갑게 굳었다.
그런 선조에게 유상현의 말했다.
“대저 농사는 천하대본이라 나라의 근간이며 종사의 버팀목이라 사료되옵니다.”
시작이 거창하다.
다만 그 거창한 말에서 농사 쪽에 문제가 생겼음을 모두 알아차렸다.
그런 상황에서 유상현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대저 선현의 가르침은 첫째가 하늘, 둘째가 땅, 셋째가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농사이야기 하다 뜬금없이 선현의 말로 튀는 유상현에게 선조의 불만이 튀어나왔다.
“경상 관찰사는 환란이라 칭한 일에 대해 서둘러 고하라!”
선조의 재촉에 가볍게 반례를 올려 보인 유상현이 말했다.
“농사도 그와 같아 첫째가 하늘, 둘째가 땅, 셋째가 사람인가 하옵니다.”
여전히 뜸을 들이는 유상현의 말에 선조의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평소 참을성이 그리 많지 않은 선조의 성품이 엿보이는 일이었다.
그런 선조를 힐긋 일별한 유상현의 음성이 빨라졌다.
“농사에서 사람은 농부를 일컫고, 작금 조선의 농부들 중 반수 이상이 소작농인바, 그들이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료되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짜증어린 선조의 물음에 윤상현의 말이 이어졌다.
“하온데 어이하여 철제 농기구를 대량으로 팔아 그들을 곤궁하게 하시옵니까?”
윤상현의 말에 선조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모르는 일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시시콜콜 보고해대는 금부도사로 인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슬쩍 돌려진 선조의 시선에 담담한 표정의 광해가 보였다.
왕이 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왕이 판 것도 아니다.
광해가 나섰고, 선전의 대행수인 김억수가 철물전이라는 상점을 만들어 팔았으니까.
선조로써는 그렇게 나는 이득도 한 푼 받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판 것이 아니거늘 왜 내게 묻느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선조를 분노케 하고 있었다.
항상 부드럽기만 하던 광해를 바라보는 선조의 시선에 짜증과 분노가 담겼다.
그런 선조의 심기를 읽었던가, 중신들 중 정철이 나섰다.
“윤 관찰사는 어찌 그리 말씀하시는가? 마치 주상 전하께오서 장사를 하였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는 알고나 하는 말인가?”
속내를 모르는 정철이 아니다.
비록 강원도를 거쳐 전라도 관찰사로 내려가 있다지만 그는 서인의 정점에 근접해 있는 이였다.
그런 그가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일을 모를 리 없었다.
솔직히 동인에 비해 적다 하지만 서인들 중에도 대지주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반인 호남엔 대지주보다는 소위 만석꾼이라 불리는 고만고만한 지주들이 더 많다.
현대시대로 말하자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절대적으로 많다고나 해야 할까.
당연히 최근 대대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철제농기구의 혜택을 기대하고 있는 계층이다.
그들의 지지가 필요한 서인 입장으로써는 철제농기구의 보급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유상현은 동인이다.
주로 이권을 누리고 대지주가 많은 동인의 특성상 최근 불만을 토로하는 대지주들의 대부분이 또한 동인들이었다.
소작농의 고통을 앞에 세웠지만 실상은 대지주들의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주장에 정철의 반론이 나오자 윤상현은 지지 않고 맞섰다.
“군 또한 왕실의 일원이니 그 또한 임금의 책임이라, 주상전하가 하신 일과 다를 것이 없다 보옵니다.”
곧바로 정철의 호통이 튀어나왔다.
“말을 삼가라!”
그에 호응하는 호통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그에 반해 유상현을 지지하는 이들의 고성도 맞서 터져 나왔다.
장내의 양상은 완벽하게 동인과 서인으로 맞서는 형태가 되었다.
영남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적인 양측의 입장 차이에다 동인과 서인이라는 정파 간 감정이 개입되자 그렇게 연회장은 곧바로 고성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에서도 광해는 아무 말 없이 담담히 앉아있었다.
그런 그를 차갑게 굳어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선조가 자리에서 일어서 연회장을 떠났다.
그런 선조와 광해군을 번갈아 바라보던 이이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
강녕전으로 물러나와 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 거리던 선조를 이이가 찾았다.
부르지 않았음에도 달려온 이이의 모습이 선조는 못마땅했다.
그가 은연 중 광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고(孤)에게 할 말이라도 있던가?”
차갑게 일어선 선조의 음성에 이이가 담담한 음성으로 답했다.
“어이하여 그만한 일에 성심을 쓰시옵니까?”
“하면 장사를 했다는 저들의 말에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인가!”
“장사가 나쁘옵니까?”
“무어라!”
“당장 나라의 소출을 늘이고, 소작농들에게 이득을 더해줄 일입니다. 설사 그것이 하찮은 장사라 하여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군왕이 외면한다면 그것이 더한 실정이 아니겠나이까.”
실정(失政).
정치를 잘 못해 나라를 잘못 이끌었다는 그 말이 가뜩이나 날카롭게 일어선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들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총신이고 뭐고, 당장 이이를 내쳤을 터였다.
한데 그런 선조의 분노를 한 가지 말이 붙잡고 늘어졌다.
<나라의 소출이 늘어나고······.>
그 뒤로 이어진 소작농들에게 이득을 더해줄 일이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라의 소출이 늘면 당연히 나라에, 임금에게 바치는 세곡도 늘어난다.
그것에만 생각이 집중 된 것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나라의 소출이 늘어난다니?”
선조의 물음에 이이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