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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8화 (8/325)

제8화. 선조의 궁금증

솔직히 말해서 광해는 제철이라던가, 선광(選鑛)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잘 모른다.

간단한 상식에 몇몇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얻은 좁쌀 같은 지식이 다였다.

그럼에도 질 좋은 철광석이 아니라 저질의 철광석으로 철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은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대량의 철광석을 채굴할 기술이 이 시대에 갖춰져 있지 않았으니까.

결국 광해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소요될 철의 수요를 맞추자면 큰 채굴기술이 필요 없는 노천철광은 필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아니 조선은 세계적인 노천철광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겠지만.

여하간 그 노천철광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저품질, 그러니까 철 함유량이 낮은 철광석에서 철을 선별해내는 기술이다.

선광이라 불리는 이 기술도 사실 근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기술이다.

광해는 지금 그걸 수세대를 앞당겨 실현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걸 위해 저 품질의 철광석을 채굴꾼들을 통해 잘게 부수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등장한 것이다.

“자철석이 아닙니까?”

대장장이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에서 형성되는 자철석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견되면 왕에게 진상되는 물건이다.

철이 붙는 돌이니 신기한 물건임엔 분명했으니까.

그렇다고 왕실이 애지중지하는 물건은 또 아니다. 그 쓰임새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습게도 조선의 왕실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왕궁의 한 창고에 그동안 진상된 자철석들을 쌓아두고만 있었다.

그래서 저걸 꺼내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선조의 묵인이 있긴 했겠지만 말이다.

여하간 그렇게 자주 볼 수 없는 자철석을, 그것도 커다란 것을 몇 개씩이나 보았으니 대장장이들의 눈이 크게 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걸로 잘게 부순 철광석에서 철 성분이 많이 든 것을 선별해 낼 겁니다.”

광해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르는듯했다.

자력선광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사실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다.

자석에 쇠가 달라붙는 원리를 이용해 철성분이 많은 돌을 골라내는 것이다.

물론 자력이 강력한 전자석을 만들 수 있다면 돌들의 덩치가 커도 상관없겠지만 자연적인 자성체인 자철석을 활용해야 했기에 조금 잘게 부수었다.

그래야 철광석의 무게가 가벼워져 잘 달라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해가 첫 선을 보인 자력선광의 방법도 굉장히 원시적이다.

본래라면 컨베어벨트를 따라 물과 함께 흐르는 철광석에서 컨베어벨트 위에 붙은 전자석이 자성을 많이 띠는 정광(精鑛)만 걸러내게 되겠지만 지금은······.

이걸 고안해 내면서도 광해는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해야만 했다.

자철석을 새끼줄로 적당한 통나무에 묶는다. 그리고 그렇게 묶은 자철석을 철광석 분말(?)위로 가져갔다.

병졸들이 들고선 자철석에 우수수 돌들이 달라붙었다.

물론 표현이 우수수 이었지만 달라붙는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잘게 부쉈다고 부쉈지만 아직도 돌이 무겁든가, 아니면 자철석의 자성이 기대 이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던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우······와!”

탄성을 터트린 이들은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

그들로써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힘을 얻은 광해가 병졸들을 부려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처음 부순 철광석의 십분지 일가량의 정광을 얻었다.

철의 함유율이 사할, 그러니까 40퍼센트라고 했으니 십분지 사는 선별해 냈어야 하는 건데······.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십분지 일, 그러니까 10퍼센트만 선별해 내었다.

이건 아무리 대규모 노천철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너무 극악한 선별량이다.

이 방법을 개량하고 또 개선해서 사할, 그러니까 함유율에 근접한 정광을 얻는 것이 광해의 목표였다.

물론 그렇게 얻은 정광도 말이 정광이지 현대시대의 정광에 비하자면 여전히 불순물이 잔뜩 섞여 있는 잔돌맹이들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정도면 처음의 철광석을 제련하는 것보다 숯의 사용량을 상당량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솔직히 말해서 숯도 코크스로 대체하고 싶었다.

16세기 영국처럼 무작정 철의 생산을 늘렸다가 산을 모조리 민둥산으로 만들기는 싫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석탄을 가져와 숯처럼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문제는 광해가 정말로 그 과정에 대해선 손톱만큼도 아는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코크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또 하나, 실제로 코크스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질 좋은 선철은 결국 상당기간 숯으로 제련해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코크스로 좋은 선철을 얻게 된 것도 결국은 관련기술 전반이 함께 발전 한 이후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도 감안했던 것이다.

진실이야 어쨌건 대장장이들은 물론이고, 철광석을 잘게 부수느라 고생했던 채석꾼들과 선별을 위해 자철석을 들고 무수히 왔다 갔다 해야 했던 병졸들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들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였던 모양이다.

첫발은 떼었다.

이제 저 기술을 발전시킬 일만 남았다.

그걸 위해 광해는 여전히 놀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대장장이들과 채석꾼들을 모아 개선방법을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눈을 반짝이는 그들은 광해가 던져준 몇몇 아이디어들을 확장 발전시켜나가며 수없는 방법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아주 원시적이고, 과학적 원리를 무시한 방법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저들은 결국 찾아낼 것이다.

그들은 이시대의 가장 뛰어난 기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술자들에게 맡겨둔 광해는 자신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금부도사를 데리고 포수들이 모여 있는 별채로 향했다.

그들은 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여전히 총통의 단점과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검토하고 토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그들은 금부도사와 함께 나타난 광해에게 자신들이 지난 열흘간 검토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적어 내보였다.

다행히도 한자와 언문이라 불리는 당대의 한글이 마구 뒤섞인 보고서였음에도 광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가 있었다.

광해 본연의 기억들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는 이해가 갔고, 또 대다수는 무슨 소린지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광해가 가진 포병과 관련된 지식도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군을 제대했다지만 광해가 복무한 곳은 의경이다.

4주의 기본 훈련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군사지식도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요사인 해병대를 가라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걸 하는 생각이 다 들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자, 이제 이 단점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으세요.”

광해의 말에 포수들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린다.

왜 아닐까.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진즉 총통에서 개선이 되고 단점이 사라졌겠지.

그래도 광해가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대신 그냥 이들에게 맡겨두지만은 않았다.

“대장장이들과 상의해보세요. 기계적인 부분은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광해의 말에 포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황이 너무 깊은 것이다.

그런 포수들을 두고, 광해가 야멸차게 등을 돌렸다.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포수들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금부도사는 입만 몇 번 벙끗거리다 결국 그도 아무 말 없이 신형을 돌렸다.

그렇게 남겨진 포수들의 표정엔 절망감이 깊게 남아있었다.

별채에서 나온 금부도사가 자신보다 저만치 앞서 있는 광해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저들에겐 버거운 일입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수가 없습니다. 저들만큼 전문가가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그리고 대장장이들이 도움을 줄 겁니다.”

변명 같은 광해의 말에 금부도사가 말했다.

“아! 그 부분은 조금 다르지 싶습니다.”

“무슨 소린가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광해에게 금부도사가 말했다.

“총통은 만들기도 어렵고 그 기술은 극비에 속합니다. 일반적인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들은 알 수가 없지요. 제대로 하자면 군기시(軍器寺)의 야장들이 필요할 겁니다.”

군기시. 들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현대시대로 따지면 국방과학연구소 같은 기관이다.

그걸 까먹고 있었다.

“그럼 그들을 지원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사실대로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국가급의 주요 극비 기술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사사로이 왕자에게 내주는 일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선조는 그걸 허락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그에 미친 금부도사가 말을 이었다.

“······ 알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광해의 말에 금부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광해가 장원을 다녀온 날 밤, 김억수는 다시금 알지라는 환관의 방문을 받았다.

그가 놓고 간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앞으로 매일 이전에 보냈던 것과 같은 철광석을 세 포대씩 장원으로 보내주세요.>

김억수의 입장에서 어려운 요청은 아니었다.

버려진 철광이었기에 그걸 주워서 실어오는 비용만 들지 구하는 돈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무지 그걸 가지고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결국 김억수가 나석을 불러들였다.

“찾으셨습니까?”

“그래. 다음에 철광석을 보낼 때 나 행수가 직접 가서 그걸로 뭘 하는지 한번 살펴봐.”

“철광석······. 설마 그 쓸모없는 저품질의 철광석을 또 달랍니까?”

놀라는 나석에게 김억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그것도 이젠 매일 세 포대씩 보내달라는군. 그러니 세세히 살펴보고 내게 보고해.”

“알겠습니다. 대행수.”

나석이 두말없이 고개를 조아려 보이고 나가자 김억수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하하, 이거 참······.”

알면 알수록 궁금증을 늘려주는 왕자였다.

*****

놀랍고, 당황하기는 선조도 마찬가지였다.

금부도사의 보고에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설명을 몇 번이나 들었음에도 좀처럼 그 광경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지 않았던 탓이다.

오죽하면 광해를 불러 그의 설명을 직접 들어볼까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비가 되어 자식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선조는 애써 그 궁금증을 내리눌렀다.

대신 그는 금부도사의 말을 듣고 군기시의 야장들 중 일부를 광해에게 내주도록 허락했다.

그 윤허를 받아 금부도사가 물러간 강녕전에서 선조가 누구처럼 서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흠······. 총통을 개선한다라······.”

연유는 모르겠지만 해서 나쁠 것은 없는 일이다.

또 하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선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디 보자꾸나. 혼, 네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말이다.”

선조의 중얼거림이 어둠이 내려앉은 강녕전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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