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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7화 (7/325)

7화. 이제 시작이야

대장장이와 숯쟁이들을 모아준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 이이는 또 하나의 부탁을 광해에게 받았다.

“석공이요?”

이이의 반문에 광해가 답했다.

“예. 그렇다고 돌을 깎아 석상이나 탑을 만드는 기술이 좋은 석공을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하면 어떤 석공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돌을 잘 부수는 이들이 필요합니다.”

“돌을 잘 부수는 이들이라······.”

광해의 말을 되뇌는 이이의 음성에 함께 듣고 있던 이항복이 끼어들었다.

“혹, 채석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채석꾼이요?”

광해의 물음에 이항복이 답했다.

“석공들이 쓰는 돌을 찾아 채굴하는 이들이지요. 그들이라면 돌을 부수고 캐는 것엔 정통할 것입니다.”

“하면 그건 필운 대감에게 맡기지요.”

한마디 아는 척을 했다가 일을 떠맡게 된 이항복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명하시니 그리 하긴 하겠습니다만······. 그들을 어디다 쓰시려는 것인지요?”

“돌을 깨는 이들이니 돌을 깨는데 써야지요.”

“그야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더 자세한 이유를 물은 것이었다. 그렇게 깬 돌은 무엇에 쓸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광해의 표정이 더 깊은 이야기는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물음을 포기한 이항복은 서둘러 알아봐 달라는 광해의 재촉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야만 했다.

그렇게 이항복이 나가자 광해가 영 탐탁지 않은 얼굴로 앉아있는 이이에게 물었다.

“궁금하시지요?”

“아니라면 거짓이 아니겠습니까.”

순순한 이이의 답에 광해가 말했다.

“제가 선전의 대행수를 만났다는 건 아시지요?”

“그야······.”

미리 말해주지 않아도 광해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으니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광해에게 이이가 고개를 조아려보였다.

“송구합니다.”

“아직 확실히 믿지 못하고 계시다는 거 압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말을 했던지 이이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글공부나 왕도의 교육에는 관심을 안보이시고 밖으로만 도시니······.”

이이나 이항복이 생각하는 왕도의 교육이란 성리학을 깊게 공부하고, 선현의 고사에서 치국의 법을 배우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광해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렇게 책이나 파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이 이곳에 온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이룬 것이라고는 이이와 이항복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김억수란 장사치를 끌어들였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조차 모두 한발 걸치고, 한발은 뒤로 뺀 이들이다.

이이와 이항복은 완벽하게 자신을 믿지 않았고, 김억수는 분명한 것을 보기 전에는 발끝만 담근 채 협조하는 시늉만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홍순언을 명으로 보낸 일도 있지만 그건 어차피 그냥 두었어도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니 광해는 아직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진 않는다.

조바심에 자신의 계획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댄다고 믿어줄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운 모든 계획이 처음 벌어지는 일들인 까닭이다.

그러니 눈에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는 그저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감은 믿음을 뭐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지(支持)라고 생각합니다.”

“지지······, 요.”

“예. 뜻을 존중하며 기다려주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좀 믿고 따르라는 뜻이다.

그 말뜻을 알아들은 이이가 겸연쩍게 웃었다.

“그저 믿으라는 것이군요.”

“믿음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보이는 것이 없어도 제가 대감을 그저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의지라 말씀하셨습니까?”

솔직히 말해 이이는 광해가 자신을 의지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그를 이용해 이것저것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고 생각해왔으니까.

그런 이이의 물음에 광해가 답했다.

“당연하지요. 아니면 제가 어찌 대감게 이것저것 부탁을 할까요? 설마 믿지도 못하는 이에게 그런 부탁을 한다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광해의 반문에 이이는 얼른 답하지 못했다.

분명 허점이 있는 말이었지만 그걸 반박하고자 들면 자신이 광해를 완전히 믿지 않고 있다는 것만 강조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이가 허허롭게 웃었다.

그런 이이에게 광해가 말을 이었다.

“기왕 믿기로 하신 거 그냥 믿어주세요. 삼년, 아니 이년만 그리 해주시면 제가 대감께 그 보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보답이라면······?”

“믿음의 보답은 당연히 결과이겠지요.”

“어떤 결과를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이의 물음에 광해가 답했다.

“우리의 첫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그 물음에 이이는 광해와의 첫 대면을 떠올렸다.

<조선이 외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이이에게 광해가 보낸 서신의 내용이었다.

그것에 혹해 찾아간 광해는 답했었다.

<군사력을 늘려야지요.>

그리고 그 수를 십만이라 답했었다.

평소 가지고 있던 이이의 생각과 딱 맞아떨어지는 수였다.

그것이 광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밀어 주기로 한 계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왕자를, 아니 왕족 자체를 처음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광해의 말뜻은······.

“군사력이 늘어난 것을 보여주시겠다는 뜻입니까?”

“그건 이 년으로는 어렵지요.”

“하오시면······?”

“그들을 무장시킬 무기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광해의 답에 김억수가 마련해준 장원에 쇳물을 녹일 로와 숯가마를 만들고 있다는 정보가 어울려 한 가지를 떠오르게 했다.

“겨우 검이나 만드실 생각이셨습니까?”

실망어린 이이의 물음에 광해가 빙긋이 웃어보였다.

“검이되 생각하시는 그런 검은 아닐 겁니다.”

역시 명확한 답은 아니다.

그것에 여전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이에게 광해가 말했다.

“이년 입니다. 제게 대감의 그 이년을 주십시오.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을 하는 광해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년을 무조건 믿겠습니다. 대신 대가를 보여 주마 하신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아니라면 이, 이이의 믿음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테니까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믿음을 철회하겠다는 뜻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광해의 답으로 그 둘은 맹약을 맺었다.

이년이라는 시한부였지만 더 이상 이이는 광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불신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이는 자신이 한번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이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광해도 그것을 믿었다.

“하면 소신은 필운을 재촉해 채석꾼들을 서둘러 모아오라 하겠습니다. 이전처럼 한 달이나 걸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자신이 대장장이와 숯쟁이를 모아 오는 것이 너무 오래 걸렸음을 은연중에 고백하는 이이의 말에 광해가 미소를 그려보였다.

“예. 열흘을 넘기지 않도록 서둘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광해의 답에 이이는 그길로 일어섰다.

그렇게 이이를 보낸 광해는 곧바로 자신의 거처를 맡고 있는 환관 알지를 시켜 김억수에게 전갈을 보냈다.

*****

김억수는 알지라는 환관이 전해주고 간 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채산성이 없어 버려진 노천철광에서 철광석 한 포대를 열흘 안에 준비해주십시오.>

도대체 광해라는 그 어린 왕자의 뜻을 김억수는 좀처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기를 만들어 사병을 키울까 싶었는데 난데없이 채산성도 없는 철광석을 구해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흠······.”

그 탓에 침음을 흘리고 있는 김억수에게 수하 행수들 중 가장 신뢰하는 나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할까요?”

“어찌하긴, 일단 해달라니 해줘야겠지.”

“정말 채산성이 없는 것으로 말입니까?”

“그래. 열흘이라니 서둘러 구해서 보내 주거라.”

“혹, 말만 그렇게 하고 제대로 된 철광석을 원하는 건 아닐까요?”

나 행수의 걱정에 잠시 생각해보던 김억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말을 돌려 하는 이는 아니었다. 하니 그대로 해줘.”

김억수의 결정에 나석이 곧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하면 그 건은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석이 나가자 김억수가 탁자를 두드렸다.

“이것 참······. 별것 아닌 일들인데 묘하게 신경을 쓰게 만드는 왕자님일세.”

그렇게 김억수의 궁금증이 깊어갔다.

***

채석꾼을 부탁한지 딱 열흘.

이항복을 앞세운 이이는 여덟이나 하는 채석꾼을 구해왔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들 모두가 각지의 관청에 소속되어있던 관노비였다는 건 이이가 광해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뜻했다.

마침 그 시기에 맞춰 김억수도 철광석을 구해 장원으로 보내두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소식을 받자마자 광해는 금부도사에게 부탁해 곧바로 김억수가 장만해준 장원으로 말을 달렸다.

한데 일행이 좀 거창했다.

금부의 병졸들이 두 대의 마차를 끌고 뒤 따른 것이다.

한대의 마차는 채석꾼들이 타고 있었지만, 또 다른 한대의 마차는 무엇인가가 천에 덮인 채 실려 있었다.

그렇게 두 대의 마차를 뒤에 단 광해가 한성부를 벗어나 장원이 있는 산으로 들어섰다.

장원에 도착한 광해를 번듯한 모습의 로와 숯가마가 반겼다.

그걸 만든 이들을 칭찬한 광해가 하나의 숙제를 던졌다.

“이걸 쇠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말과 함께 광해가 내민 것은 김억수가 보내놓은 철광석 포대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나, 이건 질이 좋지 않아 많은 철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세 명의 대장장이 중 가장 연장자인 이의 답에 광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럴 것이다.

남부의 버려진 한 노천철광에서 가져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노천철광이 버려진 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철의 함유량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었다.

철광석을 보내온 김억수의 전언대로라면 철의 함유량이 사할을 간신이 넘긴다던가.

기본적으로 철을 뽑아내는 철광석의 철 함유량은 육할 이상이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했으니 모자라도 한참을 모자란 셈이었다.

하긴 지금 시대는 저걸 대량의 숯과 함께 로에 넣어 가열하여 녹여서 철을 얻는 방식이니까.

문제는 불순물까지 함께 녹여야 해서 생산되는 철의 양에 비해 숯의 사용량이 많고, 시간도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걸 광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데려온 것이 바로 채석꾼들이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줄 겁니다.”

자신의 말에 의아하게 바라보는 대장장이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광해가 자신과 함께 온 채석꾼들을 돌아봤다.

“저것을 잘게 부숴주세요.”

광해의 요구에 채석꾼들이 철광석이 든 포대에 두말없이 달려들었다.

그들이 망치를 휘두른 지 이각도 채 되지 않아 잘게 부서진 철광석 더미를 모아오자 광해가 함께 온 금부도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광해의 눈짓에 금부도사가 병졸을 부려 천에 덮여 실려 온 것을 내리게 했다.

“저건······.”

대장장이들과 채석꾼들의 눈에 보인 것은 어른아이 머리통만한 시커먼 돌덩이들이었다.

그걸 바라보는 광해의 눈이 빛났다.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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