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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6화 (6/325)

6화. 첫 사업을 시작하다

한마디로 호감형이다.

저렇게 순하게 생긴 사람에게 그 많은 흉명들이 붙어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이 시대에 돈을 왕보다 더 많이 모으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선뜻 짐작하기도 어려웠으니까.

그럼에도 그를 찾은 것은 금부도사의 평가 때문이었다.

<버러지죠. 돈만 아는. 그래도 그 놈이 인간 말종은 아닙니다. 사람장사와 아편장사는 하지 않으니까요.>

의금부란 곳이 누군가의 비리를 캐고, 그걸로 죄를 주는 기관이다.

물론 왕의 결정이 떨어져야 하겠지만 그전에 수집한 정보가 장난이 아닌 이들이란 소리다.

그런 의금부의 수장인 금부도사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믿고 찾아온 김억수에게 광해가 물었다.

“장사 수완이 좋다고요.”

“군께 자랑할 정도는 아니오나 제법 있사옵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지만은 않는다.

역시 자신감일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동업 좀 합시다.”

“예?”

다시금 놀란 반문이 새어나왔지만 이번엔 금부도사의 호통이 없다.

그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퉁방울처럼 놀란 눈으로 광해군을 바라보느라 누군가를 호통 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의 놀란 시선을 받으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내게 쓸만한 사업이 하나 있는데 같이 하자는 말입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마마!”

거칠게 터져 나온 금부도사의 음성을 광해가 손을 저어 막았다.

“약속, 기억하죠?”

<아마 되도 않는 이야기를 할 거에요. 그럼에도 함께 가는 건 내가 금부도사를 믿고 존경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그냥 듣고만 있어줘요. 지금은 아니겠지만 언젠간 이해할 날이 있을 테니 날 믿는다면... 부탁해요.>

김억수를 만나로 오기 전에 광해가 금부도사에게 한 말이다.

그 말에 금부도사는 입도 뻥끗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했었다.

결국 입만 벙긋거리던 금부도사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놀라고, 못마땅한 표정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 금부도사를 슬쩍 일별한 김억수가 물었다.

“얼마가 필요하시옵니까?”

“무슨 소리죠?”

“소인이 드리겠습니다. 하오니 험한 일에 귀한 손을 담그지 마시옵고...”

“아! 뇌물. 뇌물 좋죠.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 사업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뇌물 좋죠.’란 말에 터질까 걱정일 정도로 커진 금부도사의 눈엔 핏발까지 가득 들어섰다.

그런 금부도사의 귀로 김억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떤 동업을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철이에요.”

“철... 쇠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하오나 쇠는 나라의 사업으로 압니다만...”

“맞아요.”

“하온데 어찌 소인에게... 혹 주상전하의 윤허가....?”

조심스러운 김억수의 물음에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없죠.”

“하면 어찌 거래를 하시겠다는 것이 온지...?”

“철이 나라의 사업임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사철(私鐵)을 금지하진 않죠.”

광해의 말대로다.

중요 자원 중에 하나인 철은 나라에서 중점으로 관리한다.

큰 광산은 두말할 것 없이 모조리 나라의 소유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국가가 장악한 건 아니라서 작은 규모의 철광산들이 조선팔도 여러 곳에 존재했고, 이런 작은 철광은 개인의 소유였다.

물론 이런 곳들에서 생산되는 양은 극히 미비했다.

“하오나 사철은 그 규모가 작아 저희 같은 육의전에서 거래하기에는...”

김억수의 말을 광해가 중간에서 잘랐다.

“큽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아마 조선 제일일 겁니다.”

“큰 광산은 굴을 깊게 파야 합니다. 산에 큰 굴을 파는 것은 나라의 허락이...”

“산에 굴 안팝니다.”

“산에 굴을 안파고 어찌 철을...”

말을 하다말고 무언가가 떠올랐던지 김억수가 물었다.

“...혹 노천철광을 말씀하십니까?”

“맞습니다.”

광해의 답에 김억수의 입가로 작은 미소가 깃들었다.

“노천철광은 겉으로 보기엔 커 보이나 실상은 그리 크지 않고, 또 깊지 않아 금방 채굴이 끝납니다. 거기다 채산성도 맞지 않지요.”

김억수의 말이 사실이다.

조선 중기 때까지만 해도 한수이남에서 발견된 노천철광은 거의 없다.

간혹 발견 되도 김억수의 말처럼 매장량이 얼마 되지 않았고, 심지어 철의 함량도 적어서 사실상 철광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광해가 말하는 노천철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보장하죠. 조선팔도에 있는 철광을 다 합쳐도 그 광산만은 못할 거라는 걸.”

아무리 군이라 해도 이제 일곱 살의 어린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말을 믿을 정도로 김억수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어디서 엉뚱한 말을 듣고 저리 설쳐대는 것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김억수는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다면 소인이 손을 보태겠습니다.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처음 시작은 큰돈이 들지 않을 거예요. 한 서른 명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집이 필요해요.”

“집...이요?”

“그래요. 규모가 좀 커야 해요. 시험을 위해 철을 생산할 수 있는 작은 로(爐)를 갖춘 대장간도 갖춰야하고, 숯을 생산하기 위한 별도의 가마도 있어야 하죠.”

대장간과 숯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쇠를 녹이는 연료로 숯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숯을 생산하기 위한 가마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은 그다지 이상할 게 없는 주문이었다.

다만...

“어디에 마련하면 되올지...?”

솔직히 김억수는 그 집이 광해가 말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철광 어쩌고 하지만 대장간 설비를 갖추는 것으로 보아 무기를 만들어 사병을 키우고자 하는 의도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발을 담그는 게 위험하다.

자칫 문제가 커져 임금의 비위를 거스르면 커다란 화가 닥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해의 걸음에 금부도사가 함께 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금부도사는 임금의 사냥개다.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무는 사나운 사냥개.

당연히 임금의 신임과 총애가 두텁다. 그런 이가 임금의 의중과 상관없이 움직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왕이 어느 특정한 왕자를 밀 때는 오직 한 가지 이유뿐이다.

‘국본(國本)!’

임금이 광해를 세자로 낙점한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위치고, 용도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차후 왕이 되는 이와 손을 잡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을 받잡겠나이다. 군 마마.”

바짝 엎드리는 김억수의 태도가 또 변했다.

이유를 대략 짐작하지만 광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라고 바쁘다는 금부도사를 살살 꼬드겨 함께 온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금부도사에서부터 출발한 오해가 또 다른 오해를 낳고 있었다.

김억수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광해가 금부도사를 돌아봤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해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작게 웃은 광해가 말했다.

“제가 왜 이러는지 때가 되면 누구보다 먼저 알려드리죠. 약속드립니다.”

광해의 말에 애써 궁금증을 밀어둔 금부도사가 고개를 조아렸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런 금부도사에게 광해의 물음이 던져졌다.

“그는 찾으셨나요?”

광해가 찾으라 말한 이는 한 명뿐이다.

“예. 관직에 있으니 찾는 것에 어려울 것은 없었습니다. 잠시 올라와 명을 받으라는 서신을 보냈으나 공무에 바빠 금일 간엔 시일을 낼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와······. 본래 그런 작자이긴 하오나 너무 방자하여, 소장이 크게 꾸짖는 서신을 보내려하였습니다. 곧 서신을 보내 당장 올라오라······.”

자신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말하는 금부도사에게 광해가 웃어보였다.

“압니다. 그런 분인 거. 그러니 천천히, 시간 날 때 오라 하세요. 다만 올해가 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만 전해 주시면 됩니다.”

화를 낼 거라 생각했던 광해가 웃으며 말하자 금부도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개 종4품 만호가 왕자의 명을 업신여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왕자의 명을 어긴 것은 둘째 치고, 왕실의 위엄을 상하게 한 중죄였다.

이 사실을 임금이 안다면 당장 잡아 올려 주리를 틀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업신여김을 당한 당사자인 광해가 웃는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광해의 말이 더해졌다.

“중히 대하세요. 훗날 금부도사를 크게 만들어줄 사람이니까요.”

여전히 금부도사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렇게 앞서 걸어가는 광해를 따라 온통 의문으로 물든 금부도사가 바삐 따랐다.

*****

광해가 김억수를 만나고 온 날 밤, 강녕전의 선조가 다시 책을 덮었다.

그 일을 만든 이는 이번에도 금부도사였다.

자신이 원해서 찾아갔으나 그 일을 선조에게 감추어둘 인사가 못되었던 것이다.

그런 금부도사에게서 한참동안 보고를 들은 선조가 물었다.

“김억수의 경우엔······. 잠시 더 지켜보라.”

“예. 전하.”

고개를 조아리는 금부도사에게 선조가 물었다.

“한데 오위에서 숙련된 포수들을 잠시 빌려 달라 했다는 건 이유가 뭔지 아는가?”

선조의 물음에 금부도사가 고개를 저었다.

“소신도 알지 못하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알려주신다고만······.”

본디 조선의 병사들 중 포수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이름이 붙은 총통은 이전부터 전해왔으나 보급된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제조에 많은 동이 들어가 비싼데다 화약의 취급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런 총통을 다루는 포수를 광해는 스물이나 요청했던 것이다.

“흠······.”

고심하는 선조에게 금부도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된다, 할까요?”

“아니다. 오위에 말해 유능한 이들로 보내주어라.”

선조의 명에 금부도사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임금은 광해를 찍었다.

아니고서는 사사로이 붕당을 짓지 못하는 군에게 군병까지 내어줄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부도사의 오해가 한층 더 굳어지는 밤이었다.

*****

김억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를 만나고 온지 단 나흘 만에 한성부에서 오십 여리 떨어진 한적한 산골에 커다란 장원을 마련한 것이다.

물론 말이 장원이지 초가집 몇 채와 너른 마당을 가진 집이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산 중턱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인근에 마을도 없고, 이 집에 올 목적이 아니면 접근할 이유조차 없어보였다.

금부도사는 너무 허름하고 외지다며 화를 냈지만 광해는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어차피 지금부터 이곳에서 할 일들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이이가 구해온 세 명의 대장장이와 두 명의 숯쟁이를 머물게 하여 쇳물을 녹일 로와 숯을 구을 가마를 제대로 손보라 명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금부도사가 모아온 스무 명의 포수들에겐 하나의 임무를 내렸다.

“지금부터 그간 사용해온 경험을 반추하여 총통의 단점과 개선할 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합니다.”

광해의 명에 포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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