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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5화 (5/325)

5화. 첫 상인과 대면하다

광해의 부름을 받은 이이는 다소 의외의 부탁을 받았다.

<대장장이와 숯쟁이를 모아주세요.>

수는 각기 십여 명, 계속적으로 일을 시킬 것이니 관노나 사노에서 뽑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긴 내수사(內需司)에서 광해군 같은 왕자들에게 내어주는 용전(用錢)은 작디작아 전병 사먹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

그건 재물을 멀리해야 한다는 성리학의 가르침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궁에서 완벽하게 해결해주기 때문에 별도의 용전이 필요치 않기도 했고.

여하간 돈이 없으니 고용비가 안 드는 노비 위주로 뽑아달라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하는 일이 험하다보니 천시를 받기는 하나 대장장이나 숯쟁이는 천민이 아니다.

그것에 걱정하며 수일간 수소문하던 이이는 어이없는 결과에 망연자실했다.

세간에 이름깨나 난 대장장이들과 숯쟁이들의 대다수가 노비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 중 상당수가 사대부 집안의 노비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생산한 물건들이 그 사대부 집안에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쯧.”

절로 혀 차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사대부들이라는 작자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다수의 물건들이 시전에서 거래되어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돈벌이다.

상거래를 천시하여 멀리하는 사대부들이 뒤로는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못마땅하지만 트집 잡기에도 애매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관리하는 이들이 그 집안의 여인들, 그러니까 부인네들이었기 때문이다.

장부가 되어 여인들의 일을 트집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장사에 대해 왈가불가할 수는 없다.

물론 그 대장장이들과 숯쟁이들을 그냥 내달라는 말도 할 수 없다.

엄연히 그들의 재산인 사노비였기 때문이다.

결국 대가를 치르고 데려와야 하는데······.

돌아가는 정황 상 설사 산다고 나서도 그냥 순순히 내어놓을 것 같지도 않았다.

데리고 있으면 두고두고 돈벌이가 되는 이들을 파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데려오자면 결국 이이, 자신의 명망을 들먹여 빼앗듯 데려와야 할 것이었다.

그 방법이 먹힌다 하더라도 노비들의 가격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막말로 거기까지 진행해도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권신이라고는 하나 축재(蓄財)에 뜻이 없던 이이에게는 재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노비를 살 돈이 없다는 뜻이다.

할 수 없이 이이는 조선 팔도의 관노비들을 뒤져 솜씨로 이름난 이들 몇을 추려 광해를 찾았다.

자신의 전각 앞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보던 광해가 물었다.

“저들이 답니까?”

“예. 대장장이가 셋, 숯쟁이가 둘입니다.”

합쳐서 다섯.

천하의 권신 이이가 조선팔도를 한 달이나 뒤져서 데려온 이가 꼴랑 그 다섯이다.

그 실망감을 광해의 눈빛에서 읽었던지 이이가 그 답지 않게 변명을 하고 나섰다.

“대저 이름 있는 대장장이들과 숯쟁이들이 사대부의 사노비들 이었던 터라...”

“사오시면 되죠.”

천연덕스럽다.

철전 한 닢 준적도 없는 주제에.

속으로 구시렁거린 이이가 답했다.

“송구하오나 선비가 축재하는 것은 죄와 다름이 없는지라······.”

돈 없다는 소리다.

어지간하면 이쯤에서 포기를 하던지 다른 방도를 구할 법도 한데 광해는 직진해 들어왔다.

“돈 없으세요?”

“그, 그게 참······.”

워낙 직진을 세게 한 탓인지 천하의 이이가 말을 더듬는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물었다.

“대감은 글 읽고, 문장 짓는 재주는 좋으나 돈 버는 재주는 없는 모양입니다?”

“자로고 선비란 재물을 멀리하여······.”

“돈 없으면 쌀은 무엇으로 사고요.”

“그야 당연히 녹봉으로······.”

“녹봉을 받으려면 출사를 해야 하는 일, 출사를 못했을 땐 어찌 사셨어요?”

“그야 가문의······.”

이번에도 말이 다 끝나기 전에 광해의 물음이 들이닥쳤다.

“성인이 되어서도 집안에 신세를 졌다는 건가요? 장부가?”

살짝 다그치는 느낌까지 섞인 광해의 물음에도 답하는 이이의 표정엔 당당함이 서려있었다.

“소신은 열셋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아차 싶었다.

예가 잘못되었다. 이이 같은 천재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자신의 잘못을 얼른 알아차린 광해가 재빨리 대상을 바꿨다.

“대감은 그렇다 치고, 다른 이들은요?”

“다른 이들이요?”

“글공부하는 선비들이 모두 대감처럼 천재는 아닐 거 아니에요.”

천재라는 말에 은근 기분이 좋았던지 이이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 일찍 뜻을 이루는 동량들도 적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것은 결국 다는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그야 그렇지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이에게 광해가 물었다.

“하면 그들은 어찌 합니까? 축재가 죄와 같다면 그들은 어찌 먹고 사냐는 거죠?”

“그야 마찬가지로 출사를 하여······.”

이번에도 걸렸다.

음흉하게 함정을 파고 기다린 자신의 물음에 순순히 걸리는 이이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원하는 바가 있었던 광해는 가차 없이 밀어붙였다.

“출사를 못하면요?”

“그러니 노력하고, 또 정진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를······.”

“그러니까 그 출사를 못하면요?”

“출사하도록 노력에 정신을 더하고······.”

“아니, 그러니까 그걸, 출사를 못하면 말이에요.”

“출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잠을 아껴 정진하여······.”

울상이 되어 ‘출사’ 한마디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으로 보아 이이도 광해의 함정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듯이 보였다.

성리학의 가장 큰 어른 중 한명인 이이는 어린 왕자에게 성리학의 폐단 중 하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출사를 하지 못한 선비들이 관례를 치른 장부씩이나 되어 결국은 가문의 힘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이를 더는 괴롭힐 마음이 들지 않았다.

광해가 원하는 것도 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럼 그 노비들을 가진 이들은 모두 출사를 한 이들입니까?”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조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테니까.

“설마요. 출사까지 한 이들이 그런 짓을 벌일 리는 만무하지요.”

“역시 그렇군요. 하면 무도한 이들이 아닙니까? 선비라는 이들이······.”

슬쩍 흘리는 광해의 말에서 탈출구가 보였을까?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이이가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 타락한 선비랄 수밖에 없지요. 그 작자들이 하는 작태라는 것이······.”

이후로 쏟아낸 말을 요약하면 양반이란 알량한 지위를 이용해 갖은 수탈을 일삼는 이들의 전형이다.

현대시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각종 수탈방법들은 죄다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 한 대목이 광해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가만, 뭘 한다고요? 그걸 팔아요?”

“예. 아주 잘못된 짓이지요. 감히 사대부가 장사를 하는 것이니까요.”

사노비들인 대장장이들과 숯쟁이들이 만든 물건을 팔아 돈을 챙긴단다.

이이의 말이 아니어도 그건 사대부들이 금기시하는 장사다.

알려지면 개망신이오, 조정으로 끌고 들어가면 자칫 사화로까지 번질 수 있는 일이다.

“명단 주세요.”

“예?”

“명단 달라고요, 그 짓거리들을 일삼는 이들의 명단 말이에요.”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광해의 말에 이이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걸······.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정신을 차린 이이가 그 명단의 파괴력에 대해 알아차린 것이다.

서로 헐뜯지 못해 안달인 서인과 동인이 맞서있는 조정이었다.

거기다 그런 명단이 던져진다면······.

아직까지는 이이를 비롯한 몇몇 명망 있는 이들이 중재를 하고 있기에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사실 이이는 중재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시기쯤 이이는 중재 포기를 선언하고 서인 측에 선다.

그게 갑작스런 광해와의 만남으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처 그것까지 세세히 알지 못하는 광해였지만 당면한 이이의 걱정은 알고 있었다.

“공공연한 문제로 만들 생각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면 어디다 쓰실 요량이십니까?”

“그 노비들을 받아 와야죠. 아마 흡족한 마음으로 희사(喜捨)할 겁니다.”

“희···사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돈이라면 김억수만큼이나 밝히는 이들이 그들을 선선히 내놓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희사라니.

돈도 받지 않고, 거기다 기쁜 마음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이에게 광해는 연신 손을 내밀어 명단을 재촉했다.

*****

김억수.

이미 언급한 적이 있듯이 육의전의 하나인 선전의 대행수이자 조선 제일의 거부이다.

조선의 상인이 중인 신분으로 양반에 비해 천시되는 바가 있긴 하지만 그가 가진 막대한 부를 무시하는 양반은 아무도 없다.

특히 이산해와 인빈 김 씨의 비호를 등에 업은 데다 명나라 조정에 끈이 있다는 소문까지 도는 그를 함부로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 그를 일곱 살짜리 아이가 찾아왔다.

평소라면 양반일지라도 문전박대를 당했겠지만······.

말석에 서 있는 김억수의 표정은 담담했다.

처음 금부도사의 얼굴을 보고 사색이 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그건 금부도사가 왕명이 아니라, 겨우 일곱 살 난 광해군을 안내해 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의 태도변화였다.

“앉아요.”

광해의 말에 김억수가 고개를 조아렸다.

“아니옵니다. 소인 같은 천것이 어찌······.”

“천하다 생각해 본적 없으니 괜찮아요.”

“하, 하오나······.”

“올려다보기 목 아프니 앉으라고요.”

다소 음성이 올라가고서야 김억수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렇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랬다간 금부도사가 가만 두지 않았을 테니까.

허리를 굽혀 거의 바닥에 엎드린 상태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맞은편에 앉은 금부도사가 고리눈을 뜨고 노려봤다.

‘저양반도 참······.’

무장이라고 문관들에게 천시를 받으면서 정작 본인은 상인을 천시하고 얕잡아본다.

이놈의 성리학의 폐단을······.

아니, 솔직히 말해 성리학이 무슨 죌까 싶기도 했다.

세상에 단점 없는 학문이 어디에 있다고.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곧이곧대로, 또는 악용까지 해가며 그걸 적용하는 사람의 잘못이지.

상념을 털어버린 광해가 김억수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잘 생겼네요.”

“예?”

놀라 되묻는 김억수에게 당장 금부도사의 호통이 떨어졌다.

“이놈! 감히 군 마마의 말씀에 반문이라니 죽고 싶더냐!”

당장 칼이라도 뽑아 휘두를 거 같은 금부도사의 서슬에 김억수의 고개가 황급히 조아려졌다.

“소, 송구합니다. 군 마마.”

“참으세요. 도사. 우리 김 대행수가 놀라겠습니다.”

자신의 말에 마지못해 칼자루에서 손을 떼는 금부도사에게서 시선을 돌린 광해가 김억수를 바라봤다.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진짜 잘 생겼다.

굳이 비교하자면 현대시대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연예인 중, 바다도 정복하고, 삼국도 통일하고, 발해는 물론이고 고려도 세웠던, 아! 나중엔 임진왜란에서 나라도 구했던 그 사람하고 참 많이 닮았다.

남자다움도 있으면서 인상이 부드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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