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83화 (최종회) (183/183)

183화. 최종회

짙은 안개가 낀 듯 뿌연 공간.

시야도 좋지 않고,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동방 호텔 로비를 걷는 유달과 송보름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뚜벅뚜벅.

총총총충…….

유달이 앞장서서 걸었고. 송보름은 바로 그의 등 뒤에서 총총걸음으로 따랐다.

그녀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감이 극에 달했는데,

"아차!"

갑자기 유달이 발걸음을 멈췄다.

"왜, 왜, 왜요?"

송보름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에 유달은 자신을 책망하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젠장~ 칼 뽑는 걸 잊었어. 이거 괜히 가져왔잖아? 무겁게시리……."

유달은 허무한 표정으로 손에 쥔 검을 바라보았다.

그가 검을 가져온 것은 전문적인 용어로 폼이었다.

멋지게 검을 뽑아 들며, 호텔 안으로 들어오는 게 목적이었는 데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지… 용도를 바꿔야겠어."

"어떻게요?"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소품으로 사용하는 거야. 내가 아름이와 대결을 끝내고 나올 때, 이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나오는 거지.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잖아?"

송보름의 반응은,

"대박! 저는 가끔 사장님의 잔머리가 경이롭게 느껴져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경험에서 우러나는 거지. 나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잖아. 어쨌든 초장부터 분위기 안 좋으니까, 긴장하자고. 조심해서 따라와."

"알았어요. 걱정하지……!"

철퍼덕!

송보름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넘어지고 말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유달은 얼른 넘어진 송보름을 일으켜 주었다.

"대체 내가 뭐에 걸린 거예요?"

"일부러 알 필요 없다."

"!"

순간, 송보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넘어질 때의 발에 걸리는 느낌이 물컹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번쩍 든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장서서 걷는 유달은 착잡한 심정이다.

"미안하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너한테 이 고생을 시킨다. 평소라면 VIP 룸에서 스마트폰 보며 농땡이 칠 시간인데 말이다."

"괜찮아요. 농땡이는 언제라도 칠 수 있잖아요.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악귀에게 점령당해 정신 병원에 갇혔을 거예요."

"아주 긍정적인 생각 마음에 들어. 이번 일 끝나면 내가 농땡이 치는 시간 보장해 줄게."

"감사해요, 사장님. 그런데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러게… 생목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TV나 라디오? 아니면 안내 방송인가요……."

그들은 조심스럽게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워낙 작은 소리였고, 실내 공간에서 발생하는 울림까지 겹쳐 웅얼거리듯 들렸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볼륨을 높였는지, 희미했던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동방 호텔 하늘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사장님, 밖에서 생중계하는 소리예요."

유달도 최수진의 목소리임을 확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중계하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이전 상황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분명 굿 카페의 유달 사장님과 보름이가 들어갔는데, 찬란한 영적인 불빛이 치솟지 않습니다. 그냥 두 사람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보일 뿐입니다.

유달과 송보름은 방송을 들으며 계속 앞으로 걸었다.

-대마신의 검붉은 기운 또한 잠잠합니다. 이것이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장님, 왜 그러는 거지요?"

"왜 기초적인 걸 묻고 그래? 나는 신기를 감추고 있고, 너는 신기가 부족하니까, 사람 크기의 그림자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 거지."

"그게 아니라 대마신이 왜 공격하지 않냐고요?"

"힘을 아끼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 아마도 지금 들 가는 입구가 경계선인 것 같다. 여기는 넘는 순간, 정신없어질 거야. 준비됐지?"

"네, 사장님."

그들이 뿌옇게 보이는 아치형 입구로 들어서는 때다.

-앗! 대마신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검붉은 기운이 연약해 보이는 그림자를 덮칩니다!

콰앙!

송보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 연이어 느껴졌다.

-무자비한 대마신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무사합니다. 신비한 기운이 그림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보름이 번쩍 눈을 떴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오주아가 등 뒤의 날개를 펼쳐서 유달과 송보름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는 등 쪽으로 사나운 공격을 막아 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유달을 바라보았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네?"

"아픈 건 없지……?"

"나는 아픔 자체를 느끼지 못하잖아. 그런데 대마신의 위력이 엄청나네? 더는 버티지 못하겠어."

"이제 내가 알아서 할게."

"우린 한참이나 이별을 준비했지. 온갖 종류의 작별인사를 미리 해서 다행이다."

"그러게… 백 번도 더 했지. 아마도."

"이제 진짜 안녕이네?"

"……."

"저번에 나한테 궁금하다고 물었지. 목숨 걸고 여러 소원을 빌었는데 한 가지가 기억 안 난다고 말이야."

"이제 별 관심도 없는데."

"마지막 소원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나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거든.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몰라?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어떻게 평생 보면서 살 수 있겠어. 지금 떠나는 게 딱 좋은 것 같아. 고마웠어… 안녕."

-아~ 대마신의 공격을 막아 주던 날개 같은 보호막이 사라집니다!

유달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오주아는 반짝거리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위기입니다, 위기! 쓰나미처럼 몰아지는 대마신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 낼지 걱정입니다!

동방 호텔 하늘 위.

거대한 해일 같은 검붉은 기운이 유달과 송보름의 그림자를 덮치는 순간이다.

오주아의 영혼을 붙들기 위해 써야 했던, 유달의 영적인 힘의 제약도 풀렸다.

화르르르!

최수진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어마어마한 불꽃이 치솟습니다! 오색찬란한 거대한 빛줄기가 대마신의 기운을 몰아내며, 동방 호텔의 하늘을 이등분 하고 있습니다.

* * *

호텔 안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사나운 바람.

송보름이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뿌연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으악!"

송보름이 자지러지는 비명부터 질렀다.

그녀 주변에 대마신과 싸우러 들어왔던 영적인 능력자들의 시체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호텔 식당처럼 보이는 공간.

한아름은 고급스러운 식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식사를 했고, 켄달은 시종처럼 서서 그녀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뚜벅뚜벅.

유달이 한아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식당 구석에 설치된 TV에선 목이 쉴 것 같은 최수진의 다급한 음성이 이어졌다.

-두 개의 거대한 기운이 사납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오색찬란한 기운이 조금씩 조금씩, 아주 천천히 대마신의 기운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송보름은 유달이 얼마나 힘든 걸음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극심한 고통을 참는 표정으로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마침내 식탁 앞까지 도달한 유달이 말했다.

"맛있어?"

한아름은 손에 쥔 포크와 나이프를 둥근 접시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이제야 오시네요? 저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 식사할 줄 알았는데, 보시다시피 살아서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매우 실망했어요."

영적인 능력자 대부분이 식탁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신성 기사단의 토비도 식탁과는 한참 못 미치는 곳에 쓰러져 있었다.

단 한 사람이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유달은 축 늘어져 있는 박만복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름이가 점점 매정해지네… 내 밥에 손댔으면 눈은 감겨 줘야지."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고통스럽게 부릅뜬 박만복의 눈을 감겨 주었다.

"이 자식, 넥타이도 삐뚤어졌잖아… 이러면 만복이답지 않지. 어깨도 좀 펴고, 세상이 무너져도 당당하게… 네가 선망했던 품격 있는 귀족처럼 말이야."

유달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자세를 잡아 준 다음, 한아름을 마주 보며 앉았다.

송보름도 재빨리 유달 곁에 앉았다.

한아름이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했다.

"안녕, 보름아."

"그래… 아름아……."

"우린 참 좋은 친구였지?"

"그랬었지……."

"그렇게 겁먹지 마.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너도 나를 해칠 마음이 없다면 말이야."

유달이 끼어들었다.

"우리 어색한 대화 그만두고, 빨리 끝내자. 그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지 않니, 아름아?"

"사장님은 저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지는 싸움에 목숨 걸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 잃는 게 많아서 고민되었을 뿐이지."

한아름은 유달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사장님의 대무당의 적손이에요. 엄청난 영험함을 가졌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지요."

"대체 그게 뭘까?"

"사장님은 사람은 죽이지 못하잖아요. 제가 아름이 몸에 있는 한 완전히 소멸할 수 없다고요."

"아니, 아름이가 잘못 알고 있어. 나한테는 단 한 명의 살생이 허락돼. 그게 만복이였는데, 네가 죽여 버렸잖아? 그 한 명이 이제 네가 되는 거지. 만복이 놈이 쓸데없이 목숨 버릴 놈 같아?"

"역시 사장님은 거짓말이 서투르네요. 그렇게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를 배신했으니,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 드리지요!"

"크악!"

순간, 유달은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는 듯 심하게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예상보다 백 배는 고통스러워! 어떻게 지옥의 고통보다 더 괴로울 수 있지! 아름아, 미안하다. 이제는 이판사판…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한아름의 인상도 심하게 찡그려졌다.

유달처럼 심하게 몸을 떠는 것 아니지만, 빳빳하게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어머나 세상에! 소름 돋을 정도로 놀랍고, 기괴하며, 장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기운이 뒤엉키며 미친 듯이 요동칩니다! 충돌을 일으키며 에너지가 응축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폭발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커억!"

유달이 진한 선혈을 토해냈다.

"사장님… 어떡하며 좋아."

송보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안타까운 상황이다.

유달은 극심한 고통을 참아 내며 한아름의 뒤에 서 있는 켄달을 바라보았다.

"켄달 옹… 줄 똑바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름이가 같이 죽으면 어떡하실 심산이신지? 전 세계 공공의 적이 되고도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한아름이 차가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속지 마라, 대법마신. 사장님은 절대 나를 소멸할 수 없어."

"당신은 만복이를 항시 두려워했잖아? 잘 생각해 보라고. 과연 그놈이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을까? 나는 당신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자기가 싼 똥은 조금이라도 치워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평생 교도소에서 썩더라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지."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한아름이 호통쳤다.

"대법마신! 나를 배신했다가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유달도 목청 높여 소리쳤다.

"이번 대마신은 감당이 안 된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잖아! 나와 아름이가 모두 죽는 어부지리를 노리겠지만, 그렇게는 안 돼. 그 똑똑한 머리를 굴려 보라고. 어떡해야 그 질긴 목숨을 이어갈까?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타앙!

켄달은 권총을 꺼내 한아름의 머리를 쐈다.

머리가 뚫린 한아름은 어이없고도 분을 못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탕, 탕, 탕, 탕, 탕, 탕!

켄달은 탄창이 빌 때까지 총을 쏘아 댔다.

이어 그는 권총을 떨어트리며, 심장 마비라도 온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허억, 허억."

보통 총으로는 대마신에게 상처를 낼 수 없다.

켄달은 자신의 모든 영적인 기운을 쏟아부어 총을 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아름은 일곱 발이나 머리에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벌떡 몸을 일으킨 그녀는 켄달의 목을 잡았다.

"너마저 배신을……."

켄달의 목이 으스러지기 직전.

"끄아아악!"

한아름은 피범벅의 머리를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 듯이 몸을 떨어대는 그녀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유달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름아, 사실은 네 말이 맞았어. 네가 계속 사람의 몸에 붙어 있었다면 소멸할 수 없었을 거야."

빠직.

한아름은 인상을 구기며 유달을 쏘아보았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나도 열 받아 죽겠어. 왜 만복이 계획대로 다 되는 거냐고? 부탁인데… 고통스럽게 반항하지 말고, 편안히 떠나."

"끄아아악!"

유달은 한계를 넘어 영적인 기운을 끌어 올렸다.

쿵.

한아름은 버티지 못하고 식탁에 고꾸라졌다.

유달도 완전히 탈진하여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스윽.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한아름의 몸에서 대마신의 영혼이 솟아났다.

육신을 지배했던 한아름과 똑같은 모습이다.

대마신은 욕심내는 표정으로 송보름을 바라보았다.

유달은 물론 박만복, 백시연, 켄달 등, 뛰어난 영적 능력자들은 그녀의 무한한 영적인 잠재력을 극찬했었다.

"미안해, 보름아."

"!"

대마신이 송보름의 몸을 빼앗기 위해 덮치는 때다.

몹시 당황한 듯 보였던 송보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내가 미안해. 아름아……."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후앙!

송보름의 몸에 숨에 있던 오주아가 튀어나와 대마신을 붙잡았다.

"안 돼~!"

대마신은 격렬하게 반항했지만, 오주아의 꽉 잡은 팔을 풀지 못했다.

"끄아악……."

점점 힘을 잃는 비명과 함께 대마신의 형체가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곧이어 오주아의 몸도 강력한 힘에 끌려가듯 멀어지는 모습이다.

"안녕… 달아……."

기진맥진하여 식탁에 엎어진 유달이 간절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심연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말았다.

유달은 끝까지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가, 가지 마… 주아도 가지 말고, 만복이도 가지 마… 모두 가지 말라고!"

-동방 호텔 하늘 위에서 맹렬하게 충돌하던 두 개의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호텔 안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대기하고 있던 세계 각국의 특공대가 진입하고 있습니다!

* * *

엄청났던 대결이 벌어지고 100일 뒤.

혼란했던 세상은 다시 평화로움을 되찾았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굿 카페.

장미란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계산대에 앉아 있는 송보름에게 물었다.

"유달 씨는?"

"사장님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디 있겠어요?"

장미란은 송보름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사장실로 향했다.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입구.

"아~ 시파, 또 안 맞았어!"

또르르.

커튼 밑으로 구겨진 로또 종이가 굴러왔다.

장미란이 구겨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5천 원짜리 로또가 단 하나도 맞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미소짓는 그때.

촤악.

유달이 사장실 커튼을 열고 나왔다.

장미란이 하나도 맞지 않은 로또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포기는 김장할 때나 쓰는 거지요. 목숨 걸고 대마신까지 처치했는데, 왜 자꾸 꽝인지 모르겠습니다."

"유달 씨와 보름이 모두 무사했던 것에 감사하세요."

장미란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잠시 후 동방 호텔 로비에서는 대마신과 싸웠던 영웅들을 위한 동상 제막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유달은 매우 짜증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끄십시오."

"손님들이 보고 싶다는데 어떻게 꺼요?"

-이번 기념식에는 세계 각국의 유명인들이 참석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100일 지난 지금까지도, 대마신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남녀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자신의 나라 사람이라 주장하는 가운데…….

유달이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답답해 돌아가시겠네? 나라고 나! 내가 목숨 걸고 대마신을 처치했다고 이 멍청이들아! 우와~ 아름이, 고것이 이런 식으로 복수를 때리네?"

"진정하세요."

"진정이요? 만복이 놈은 태극 무공 훈장을 받는데요? 그런데 정작 세계를 구한 저는 병원비까지 내 돈으로 냈단 말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입니까?"

"자, 일이나 하러 가시지요."

딸랑딸랑.

장미란이 유달을 등 떠밀며 카페 밖으로 나왔다.

유달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이번 미제 사건은 뭡니까?"

"한강 여고생 납치 살인 사건이요."

"확실한 용의자는 있었나요?"

"네, 있어요. 정황상으로는 확실한데,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어서 체포를 못 했지요."

"아주 잘 됐군요. 저의 모든 울분을 그놈에게 쏟아붓겠습니다."

"훌륭하신 생각이에요."

그들이 떠난 굿 카페의 출입문.

대한민국 최고의 사주 카페로 선정되었다는 상패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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