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80화 (180/183)

180화. 결혼하면 끝난다

유달이 번쩍 고개 들며 대답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가게가 참 넓고 좋구나. 손님도 아주 많고, 잘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면목 없습니다… 저기, 커피가 다 식었는데, 다시 가져오라고 할까요?"

"아니다. 커피 마시러 이곳에 온 게 아니니까."

"네… 그렇군요."

유달은 다시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최미영은 유달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반쯤은 천장을 올려보는 상태로 입을 열었다.

"너한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구나?"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얼마 전에 국가 위기 대응팀인가? 국정원 비슷한 곳 같은데… 나를 찾아왔었다."

"!"

그런 대단한 조직에서 왜 노년의 가정주부를 찾겠는가.

유달은 누구의 개입이 있었는지 바로 짐작하는 표정이었다.

최미영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헛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시장하고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인데, 그런 엄청난 곳에서 찾아왔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너에 관해 이야기하더구나."

"……."

유달은 아무 대꾸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왜 네 얘기를 하는지 궁금했었지. 그들은 너와 나의 관계도 상세히 알고 있더구나. 나는 그냥 고개만 끄떡이면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달이, 너라면 대마신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이냐?"

유달은 바르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먼저 여쭤볼 게 있습니다. 혹시 그놈들이 어머님을 위협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그런 건 없었다. 시종일관 예의 바르고, 내가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게 극진히 신경 써 주었다."

"네… 다행이군요."

"그 사람들이 말한 게 사실이냐? 지금은 대마신 때문에 온 세상이 혼란에 빠져 있지. 종말이 왔다는 사람들도 있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 나도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런데 달이, 네가 나서면 대마신을 이기고, 다시 평화로움을 찾게 되는 것이냐?"

유달은 표정을 결연히 하고 대답했다.

"제가 대마신과 싸워서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무조건 싸우겠습니다. 저는 주아 어머님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진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최미영이 고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질문의 뜻을 이해 못 한 모양이구나. 대마신은 말 한마디로 수십 명의 목숨을 빼앗더구나.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와 싸워서 네가 무사할 수 있을지 물은 거다."

유달의 진지함이 바로 풀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좀 긴장한 상태라… 대마신과의 싸움은 전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요, 제가 무속계의 온갖 영험함을 타고났지만, 이번 대마신은 수준 자체가 틀립니다. 게다가 영적인 대결은 절대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의 능력을 지닌 사람 둘이 100의 능력을 지닌 상대와 싸워서 이기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제가 무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구나… 알겠다."

최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달은 덩달아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왜 벌써 일어나십니까?"

"궁금한 게 풀렸으니 일어나야지. 네가 잘 지내고 있는 것도 확인했고."

"저한테 대마신과 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겁니까?"

최미영은 정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마음이 너그럽지 못해서 너에 대한 원망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남의 자식에게 싸워 죽으라고 종용할 수 있겠니? 그건 주아도 원치 않을 거다. 나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네가 어떻게 될지는 알려 주지 않더구나. 기회가 되면 나중에 또 보자."

"저, 저기……."

유달은 발길을 돌리려는 최미영을 멈춰 세웠다.

"제가 그때 놀이터에 가지 못한 것은……."

"알고 있다."

"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에, 너의 이모님이 오셔서 사정을 말해 주셨다. 신병에 걸려서 며칠 동안 의식이 없었다고 말이다. 나오지 마라. 일부러 날 배웅할 필요는 없다."

"저, 저기……."

유달 못내 아쉬운지 계속 최미영을 불러 세웠다.

"현아의 결혼식은 잘 준비되고 있는지요. 예정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청첩장 나왔다는 소리도 없고요."

"어수선한 시국이라 연기하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날을 잡아야지. 그때는 달이, 너도 꼭 참석해라. 현아도 그러길 바라더구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서둘러 자리를 뜨러는 건 말이다. 네가 아직도 많이 원망스러운 게 아니야. 이렇게 훌쩍 큰 너를 보니, 주아가 살아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이해하지?"

"네, 백 번 천 번 이해합니다."

"현아 결혼식 날 보자꾸나."

유달은 최미영의 당부를 따랐다.

그녀를 배웅하러 밖으로 나지 않고, 서 있는 자리에서 크게 허리 숙여 작별 인사했다.

* * *

굿 카페의 늦은 밤.

북적거리던 어린 손님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

퇴근 준비를 마친 장미란은 유달과 함께 TV를 보았다.

유달과의 약속을 지킨 한아름의 모습이 계속 방송을 통해 나왔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요. 지금 이 시각 이후, 중학생 나이 이하까지는 저의 살상 능력에서 제외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며, 다른 국가들에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상. 끝.

유달이 심히 우려된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내일부터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인천 공항이 마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미란은 다른 게 신경 쓰였다.

"아름이가 왜 지역을 한정했죠? 저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포함되는지 알았는데요."

"아름이는 굿 카페를 위해 제 부탁을 들어준 겁니다. 해외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해당 사항 없죠. 그리고 영적인 힘을 쓰는 데 있어서 예외를 두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런 경우엔 한 국가나 지역으로 범위를 좁혀야 힘을 아낄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제가 문제 삼을 순 없죠."

"무슨 말인지 대강은 알 것 같네요. 그리고 최미영 씨에게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요. 오주아 씨의 죽음은 매우 안타깝고 불행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반문 같은데, 유달은 무슨 말이 이어질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요? 하늘이 날 살린 것은 인류의 대재앙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니 주아의 죽음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대마신과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저를 설득하고 싶은 겁니까?"

"……."

장미란은 정곡을 찔렸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땡입니다. 정말 하늘이 그런 의도였다면 저는 더 삐뚤어질 겁니다."

"이만 퇴근할게요."

"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그런데 보름이는 어디 갔습니까?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요?"

"사장실에 들어가는 안 나오는 것 같은데요. 유달 씨도 오랜만에 푹 쉬세요."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장미란은 카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유달은 사장실로 향했다.

촤악.

커튼을 열어젖히니,

송보름이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퇴근 안 하고 뭐 하냐?"

"그동안 밀린 연속극 봐요. 밖에 TV는 계속 뉴스만 틀고 있었잖아요."

"부모님 걱정하니까, 빨리 집에 가."

송보름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대답했다.

"여기가 안전하다고 최대한 늦게 들어오래요. 카페에서 자도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너는 영적인 능력이 뛰어나서 대마신에게 급살당할 염려는 없어.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 나도 쉬어야지."

"조금만이요. 이번 화 끝나면 바로… 으아악!"

연속극에 빠져 있던 송보름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뭐야? 무서운 장면이라도 나왔어?"

"그게 아니라… 남녀 주인공이 결혼할 것 같아요?"

"그럼 잘된 거지 왜 비명을 질러?"

"사장님은 드라마 법칙도 몰라요? 결혼식 장면이 나오면 끝나는 거라고요? 남녀 주인공이나, 주인공들의 친구, 혹은 부모나 형·동생 기타 등등, 행복한 결혼식 장면으로 얼렁뚱땅 마무리하려는 거라고요?"

이어 그녀는 노트북을 향해 소리쳤다.

"이거 조기 종영 아니야? 뿌린 떡밥이나 제대로 회수하고 끝내라고!"

"야, 너는 왜 내 노트북에다 화를 내냐? 얼른 일어나서 집에나 가!"

퉁!

유달은 거칠게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송보름은 몸을 일으켜야 했다.

"알았어요. 가면 되잖아요."

송보름도 퇴근하고, 카페 안에는 유달만 남게 되었다.

유달은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신당으로 향했다.

"만복이 놈이 또 수작을 부렸네."

후우웅.

오주아가 커튼을 통과하여 나오며 대답했다.

"너도 예상은 했잖아? 너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다는 거 말이야."

그녀의 날개는 반 이상이 검게 물든 상태다.

유달이 부정적으로 고개 저었다.

"역시 안 되나……."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고집부려 봐야 소용없어. 너의 신기만 약해질 뿐이야."

유달은 가까운 소파에 앉으며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반드시 찾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오주아는 등지고 앉아 있는 유달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 너도 알잖아? 더는 방법이 없어. 그냥 날 놓아주면 되는 거야."

"무슨 소리! 내 영험함의 한계를 결정짓지 마. 벽에 똥칠할 때까지 내 곁에 묶어 둘 거니까."

"이제 정말 그만하자. 나도 힘들어… 질척거리는 남자가 제일 재수 없는 거 알지?"

"……."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이승을 떠나기 전에 현아의 결혼식은 꼭 보고 싶어. 그리고 네가 대마신과 싸울 때 함께 있어 줄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달이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오주아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애틋한 표정으로 고개 돌리며 물었다.

"내가 정말 질척거려?"

"응… 많이."

* * *

화창한 날씨.

배우 오현아와 정찬일의 야외 결혼식장.

수많은 하객의 축하 속에서 그들의 결혼식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혼란한 시국이라 연기되었었는데, 갑작스럽게 국가 주도로 일정까지 앞당겨져 치러지게 되었다.

원로 배우의 주례사가 한창이고,

유달과 장미란도 청첩장을 받고 신부의 하객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객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결혼식을 지켜보는데, 유달은 손수건을 교체해 가며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다.

보다 못한 장미란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제발 그만 좀 울어요. 기자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유달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말했다.

"제가 우는 거 아닙니다… 크흡!"

그의 몸신인 오주아가 우는 것이다.

그런데 대책 없이 눈물을 쏟는 이는 유달만이 아니었다.

신랑인 정찬일의 하객 자리.

호박 엔터테인먼트의 박상진 대표도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연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두 남자의 눈물 속에 결혼식이 끝났다.

가족과 친지들의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

유달과 장미란은 맨 뒤로 자리를 옮겨서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미란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행복해 보이네요."

"그러게요……."

유달의 울음이 또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장미란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오늘 밤인가요? 대마신과의 대결이……."

"네, 현아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홀가분하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영적인 능력자들이 합류한다니, 당연히 이기겠죠?"

"글쎄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고요."

유달이 애매하게 대답할 때다.

가족·친지 사진을 찍고 있던 최미영이 유달을 손짓하며 불렀다.

"달아, 너도 어서 와라."

"아닙니다, 어머님!"

유달은 극구 사양했지만, 최미영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사가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자세를 일일이 잡아 주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자, 찍습니다!"

찰칵.

마침내 무사히 찍었나 싶었는데,

"으헉!"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던 사진사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으로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오주아가 뚜렷하게 찍혔기 때문이다. 신부인 오현아 옆에 서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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