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
-하나님의 전사 교회.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게 목표이며, 이를 위해서는 순교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는 담임 목사를 위주로 똘똘 뭉친 교회였다.
차에서 내려선 한아름이 움직이자, 켄달의 경호원 둘이 바로 붙었다.
경찰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르며 취재진과 구경꾼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한아름은 교회 정문 안으로 넘어서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말했다.
"여기까지."
이는 그녀의 뒤를 따르는 모든 이에게 해당하며,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경호원과 경찰, 언론사 취재진은 동시에 멈춰 서며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또각또각또각.
하이힐을 신은 한아름은 빠른 걸음으로 주차된 차량 사이를 걸었다.
대마신으로 알려진 그녀의 등장에 교회 건물 밖에 있던 신도들은 사색이 되었다.
어떤 이는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어떤 이는 차에 다시 올라 문을 잠그고, 또 어떤 이는 한아름의 출현을 알리러 교회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 했다.
"모두 그대로."
한아름이 나지막하게 말하는 순간이다.
교회 건물 밖에 있던 신도들이 일제히 하던 행동을 멈추며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리에 있는 신도들도 똑같이 움직임을 멈췄다.
또각또각.
한아름은 계단을 올라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정면에 예배당 출입문이 있다.
그 주변에 있던 신도들이 한아름을 보고 소리치기 직전,
"쉿!"
한아름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말하자, 그들은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끼이익.
한아름은 예배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국제 경기를 치르는 체육관처럼 드넓은 공간.
50대 후반의 담임 목사가 목청 높여 설교 중이다.
"이 나라 정치는 다 썩었어요! 자기들 목숨이 아깝다고 사탄을 보호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해괴한 짓거리입니까?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 이 나라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지금 이 사태는 하나님께서 천벌을 내리신 겁니다!"
"아멘~!"
걸걸한 목소리의 설교는 계속 이어졌다.
"어제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혼란한 시국, 망국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다. 울면서 부탁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거역하겠습니까?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내 목숨을 바쳐 반드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겠나이다, 하나님….’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전사가 되어 사탄을 물리칩시다!"
신도들의 반응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우렁찬 ‘아멘’의 함성이 쏟아져야 하는데,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또각또각.
"지랄하고 자빠졌네……."
한아름의 빈정거리는 음성이 예배당에 메아리쳤다.
기겁하는 반응을 보이는 담임 목사가 소리쳤다.
"사, 사,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저년을 당장 죽여 버립시다!"
믿음이 강한 신도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이에 한아름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건들면… 너도 죽고, 너희 가족도 모두 죽어. 그래도 괜찮겠어?"
그녀의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님은 전 세계가 이미 경험했다.
담임 목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들도 바싹 겁을 먹고 뒷걸음쳤다.
한아름과 교단 위에 있는 담임 목사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상황.
사색이 된 담임목사의 질타가 이어졌다.
"하나님의 전사가 무엇이 두렵습니까! 믿으십시오. 성령이 임하시어 우리 모두를 보호하실 겁니다."
이에 한 신도가 용기를 내어 나섰다.
"사탄아, 물러가라!"
40대의 남자 신도가 달려들어 한아름의 어깨를 잡았다.
그런데 곧이어,
"커억!"
그는 거품을 물며 바닥에 쓰러졌고,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아름은 아무 죄의식 없이 죽은 이를 내려다보았다.
"장례는 누가 치러 주려나? 버리고 나온 처자식과 부모도 모두 똑같이 죽었을 것인데……."
그녀를 막아섰던 신도들은 순식간에 흩어졌고,
또각, 또각, 또각!
한아름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밝은 조명이 비추는 웅장한 교단 위.
교회 경비원이 담임 목사의 팔을 끌어 잡으며 말했다.
"목사님, 어서 피하십시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가 몰라? 바,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벌써 도망쳤을 것이다.
한아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발이 바닥에 붙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교단 위에 있던 교회의 핵심 인사들도 혼비백산하여 몸을 피신한 상황.
"죄, 죄송합니다. 목사님."
경비원도 결국 그를 남겨 두고 뛰어서 달아났다.
또각또각…….
한아름이 홀로 남겨진 담임목사에게 다가갔다.
식은땀 범벅인 담임 목사는 어떡하든 움직이려 애를 썼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한아름은 그의 곁에 바싹 붙어서며 말했다.
"우리… 오랜만이죠?"
"후우, 후우, 후우……."
공포에 질린 담임 목사는 두려움에 벅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는 사탄의 시험에 빠진 적이 없다."
"기억력이 영 꽝이시네? 아주 예전에 내 몸속에 있는 악귀를 빼 주는 의식을 해 줬잖아?"
"!"
담임목사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더욱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한아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악귀가 들렸다는 핑계로 어린 내 몸을 탐한 거였지?"
"난 그런 적 없다."
"정말? 목숨 걸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뭔가 오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신성한 의식을 진행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그런 걸 가르치는 하나님이라면 내가 용서를 못 하겠네? 우선은 하나님과 직접 소통한다는 네놈부터."
딱.
한아름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바닥에서 솟아난 불길이 담임 목사를 덮쳤다.
"으아아악~!"
담임 목사는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상태에서 처절한 비명을 질러 댔다.
예배당 안에는 아직도 많은 신도가 남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담임 목사가 사탄을 물리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한아름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성스러움을 입에 달고, 구린 짓 하는 교회들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르르!
맹렬한 불길이 사방에서 치솟으며 불타올랐고,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신도들은 비명을 지르며 앞다투어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 * *
초대박이 난 굿 카페.
평일 오전임에도 카페 내부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유달이 계산대를 등지며 장미란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지난 며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편의점도 아니고, 거의 24시간 영업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언제는 손님들에게 파묻혀 죽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대로 소원 풀이 하는 중이네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죠. 이게 정상적인 카페입니까? 소행성 충돌이나 핵폭발 같은 대재앙을 피해 몰려드는 대피소 느낌이지요."
"실제로 그렇기는 하죠. 대마신의 폭주는 점점 심해지고, 사람들은 언제 자신들도 잘못될지 몰라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니 말이에요."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TV 쪽으로 향했다.
연일 계속되는 대마신 관련 속보.
거센 불길에 활활 타오르는 교회들의 모습이 보였다.
유달이 우려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아름이가 왜 저럴까요? ‘도장 깨기’는 많이 들어 봤어도, ‘교회 깨기’는 처음이네요. 대부분의 목사님이 좋은 일을 많이 하십니다. 아주 파렴치한 짓을 하는 목사는 극히 일부이지요."
"그 일부를 스스로 처벌하지는 못한 죗값이지요. 저는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헐… 미란 씨는 가끔 무서울질 때가 있습니다. 일부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봐서는 안 되지요? 교회가 불타는 건 죗값치고는 너무 큽니다."
"왜요? 목사들은 스스로 영혼을 치유한다고 하잖아요? 일반 의사들도 병을 고치다 실수하면 벌을 받는데, 영혼을 잘못 치유한 경우에는 어떤 죗값을 받아야 할까요? 그것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의도적으로요."
"제가 말로는 미란 씨를 당할 수 없지요."
유달이 더는 논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다.
철퍼덕.
"으앙~"
그들 앞을 휑하니 뛰어가던 아이가 넘어져 울었다.
유달은 재빨리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야, 살살 좀 뛰어?"
"이잉~"
넘어졌던 아이는 훌쩍거리며 엄마한테 걸어갔다.
유달은 계산대에 다시 등을 기대며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이러다 카페에서 분유를 팔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푸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굿 카페를 가득 메운 손님 대부분이 초등학교 입한 전의 어린애나 젖먹이 아기였다.
이는 위기 때 더욱 빛나는 한국인들의 시민 의식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굿 카페의 수용 인원은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젊거나 나이 든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아기 엄마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것이었다.
아기들에게 커피나 떡케이크를 팔 수 없으니, 손님 수에 비해 매상은 현저히 떨어졌다.
장미란은 진심으로 유달을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굿 카페의 명성은 높아졌잖아요.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에서 압도적인 1위예요."
"제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매우 만족한 결과입니다. 역시나 욕심으로 버리고 착한 일을 하니, 복을 받나 봅니다. 우하하하하!"
유달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릴 때다.
와장창~!
신당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신당 옆자리에 있던 30대의 여인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미, 민수야!"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없는 걸 깨닫고 신당 안으로 급히 뛰어들어 갔다.
장미란과 유달도 빠른 걸음을 신당으로 향했다.
유달이 신당의 검은 커튼을 열어젖히기 직전.
몹시 민망한 표정의 여인이 남자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으며 나왔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장식장을 넘어트렸는데,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유달은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애들이 놀다가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아이는 어디 다친 데 없습니까?"
"네, 제가 살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유달은 아이 엄마가 염치가 없어 거짓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릎을 굽혀서 기가 팍 죽어 있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아저씨는 네가 사고 쳤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어디 다친 데 있으면 사실대로 말해 줄래?"
"아니요. 없어요……."
"이상하네? 장식장이 넘어졌는데, 어떻게 하나도 안 다칠 수가 있지?"
이에 남자아이는 매우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장식장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가는데요. 저는 공중에서 멈췄다가 천천히 내려왔고요. 장식장은 옆으로 넘어져서 하나도 안 다쳤어요."
아이 엄마는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얘가 놀라서 헛소리를 하나 봐요……."
"하하, 너무 놀라면 그럴 수도 있지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계시면 됩니다."
유달은 어떤 장식장이 넘어졌는지 확인하러 장미란과 함께 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제일 비싼 명품들이 떨어져서 흠집이 생긴 광경을 마주한 순간,
"꾸어억!"
유달의 입에선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이것들이 얼마짜린데…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발끈하는 그를 장미란이 만류했다.
"왜, 왜요 아까 그 아이를 쫓아내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매정한 놈 아닙니다. 이미 괜찮다고 했는데 뭘 다시 따집니까?"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아름이한테 전화해서 부탁해봐야지요. 초등학생 미만 아이들의 안전은 보장해 달라고 말입니다."
"가능할까요?"
"뭐… 불가능할 것도 없지요. 제가 아부를 좀 떨어 주면 들어줄 겁니다."
"그러면요, 최대한 범위를 늘려 보세요. 초등학생까지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요."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조용히 통화할 테니, 미란 씨는 가게 좀 잘 봐 주십시오."
"알겠어요."
* * *
장미란이 커튼을 걷고 신당에서 나왔다.
신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보름이 재빨리 따라붙으며 물었다.
"사장님은 화 많이 났어요?"
"아니……."
"그럼 울어요?"
"아니야, 정말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장미란은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그때.
쩌어엉!
지진이라도 난 듯한 엄청난 울림이다.
카페 안의 손님들은 놀라서 웅성거렸고, 장미란과 송보름도 무슨 일인가 했는데, 딸랑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60대 초반?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나이대였고, 굿 카페가 처음인지 굉장히 낯설어하는 모습이다.
눈썰미가 탁월한 장미란은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혹시… 오현아 씨의 어머님 아니신지요?"
예전 오현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족사진을 본 적이 있었고, 지진과도 같은 울림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예, 그런데 여기가 달이가 있는 사주 카페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