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77화 (177/183)

177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

유달은 극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통화를 이어 갔다.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조만간 인류 전체가 멸망하는 거야? 아니, 인류 멸망은 좀 가능성이 있고… 어쨌든, 기습적으로 사과를 날리는 이유가 뭐냐?"

-참으로 까다로운 놈이네. 언제는 사과 안 한다고 지랄이더니, 막상 사과한다고 하니까 난리를 치냐? 그러니까 너한테 친구가 없는 거다.

당연히 유달은 발끈했다.

"무슨 소리! 친구가 없는 게 아니고, 내가 친구 따위를 안 키우는 거다. 누구 때문에 완전히 질려서 말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극악의 인간관계를 자랑하잖아? 혼자만 잘났다고 나대니까, 동료들에게 토사쿠팡 당한 거지."

-토사쿠팡… 드디어 네가 나를 웃겨 죽이려 작정했구나. 로켓배송 안 나온 게 다행이네. 무식함은 그만 뽐내고, 내 사과나 받아라.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싫어, 하지 마!"

틱.

유달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것이 찝찝하게시리……."

몹시 꺼림칙한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장미란이 물었다.

"왜요? 박만복의 전화 같은데."

"아니, 이놈이 갑자기 사과하겠다고 해서 제가 얼마나 기겁한 줄 아십니까? 만복의 자존심은 만리장성이라 누구한테 고개 숙이는 성격이 아닙니다. 특히나 저한테는 말이죠. 이놈이 불치병에라도 걸린 건가? 왜 안 하던 짓을 해서 사람 놀라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미란은 뭔가를 직감한 반응이다.

"혹시 대마신과 끝장을 보려는 게 아닐까요?"

"무슨 끝장이요?"

"유달 씨는 박만복의 제안을 거절했죠?"

"당연하지요. 이미 한번 배신했던 놈을 어떻게 믿고 손을 잡습니까?"

"그러니까요. 박만복은 백시연의 복수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그 방법은 유달 씨와 손을 잡는 것뿐인데, 유달 씨는 단호히 거절했고요. 다른 방도가 없는 박만복은 혼자서 대마신과 싸우려고 결정한 것 같아요. 살아남기 희박한 상황이라 마지막으로 유달 씨에게……."

"풉!"

참지 못하고 터지는 웃음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죄송합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면전에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네요. 그러니까 미란 씨는, 만복이 놈이 복수를 위해 대마신과 싸우다 죽기로 마음먹었단 건가요?"

"그리 추측하는 게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요?"

"완벽하게 잘못 짚었습니다! 만복이는 무서울 정도로 독하고 계산적인 인간입니다. 그토록 대마신을 죽이고 싶다면 말이지요,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확실히 이길 방법을 찾으며 때를 기다립니다. 자기 목숨을 포기하며 무작정 싸울 놈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유달 씨에게 사과하려 했던 걸까요."

"제가 식겁했던 게 바로 그겁니다. 만복이가 뜬금없이 사과하겠다고 했는데요, 그 사과가 과연 예전 잘못에 대한 진솔한 반성일까요? 아니면, 앞으로 미안한 짓을 하게 될 것이란 선전 포고일까요?"

장미란은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설마요… 그래도 한때는 친구였는데, 사과를 후자의 의미로 쓰겠어요?"

"아니요,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놈이 처음 배신할 때 말입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별것 아닌 일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었지요. 저는 지옥으로 쳐들어가니, 긴장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지, 지옥으로 쳐들어가요?"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요. 뭔가 의심스럽던 만복이는 결국 배신을 때렸고요. 저는 영혼이 소멸할 뻔한 최악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잘못은 지가 해 놓고 오히려 저를 원망합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커녕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었단 말이지요?"

유달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장미란에게 물었다.

"대체 그놈이 왜 그러는 거지요? 심리학 전공하셨으니, 저보다는 잘 알 것 아닙니까?"

장미란이 바로 반문했다.

"정말 모르나요?"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지요? 알면서 물어보면 제가 이상한 놈이지요."

"좋아요. 제 추측을 말씀드리자면, 유달 씨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박만복의 행동은 열등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열등감이요?"

이어 그는 한쪽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만복이 놈이 왜 저한테 열등감을 느낍니까? 오히려 반대지요. 그놈은 초등학교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어요. 모든 과목에서 저를 압살해 버렸습니다. 어떨 때는 저의 3과목을 합쳐도, 그놈의 한 과목 점수를 못 이겼지요."

"영적인 능력은 유달 씨가 훨씬 뛰어나지 않았나요?"

"그런 거 뛰어나서 어디다 씁니까? 악귀의 종류를 써라, 학교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사회 나와서도 영양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내림 받아 점집 차리거나, 저처럼 사주 카페 사장으로 끝나는 겁니다. 만약 만복이가 제대로 공부했으면 의사나 판검사도 문제없었습니다. 열등감은 아닙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다."

"뭔가 짐작이 가는 표정인데요?"

유달은 게슴츠레한 눈을 하며 말했다.

"23년 전…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치킨집에서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지옥 침공 전, 저는 도와주겠다는 만복이가 고마워서 한턱 쏘기로 했습니다. 제 용돈을 탈탈 털어서 치킨집으로 들어갔지요."

장미란은 유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마침내 우리가 주문한 양념 통닭이 나왔는데… 닭 다리가 3개였던 겁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저기… 여러 마리의 닭을 튀기다가 섞였을 수도 있고, 주인아저씨가 서비스로 주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져 버리고 말았지요. 이 닭은 왜 다리가 3개인 걸까? 만복이 하나 주고, 나 하나 먹고. 그래도 한 개가 남게 되지요. 게다가 만복이는 손 씻으러 가서 자리에 없는 상황. 저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 닭 다리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

"번개처럼 닭 다리를 먹고, 뼈를 감췄습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만복이는 아무 눈치도 못 챈 것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포크를 집은 만복가 웃는 얼굴로 저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뭐라고요?"

"맛있겠다……."

장미란은 급격히 낮아진 음성으로 물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뭐가 이상했을까요……."

"세상에 맛없는 치킨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다가 양념인데요. 그놈은 왜 당연한 말을 했겠느냔 말입니다? 맛있겠다… 너는 벌써 닭 다리 하나를 다 먹어서 맛을 알고 있을 거란 빈정거림이었던 겁니다. 23년 동안 계속 찝찝했는데, 드디어 모든 미스터리가 풀렸습니다."

장미란은 유달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카페를 살릴 방법이나 찾죠. 이러다 정말 공과금도 못 내겠네요."

꼼수로 모았던 기자들은 계속 자리를 뜨고, 새로 들어오는 손님은 없었다.

장미란과 유달 모두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때다.

그나마 남아있는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굿 카페의 초대형 TV.

뉴스 채널의 여자 아나운서가 신성기사단의 부단장 토비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대마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대마신이 힘이 통하지 않는 장소가 딱 한 군데, 바로 대한민국에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딘가요?

여자 아나운서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카페 안에 있는 기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서울 명동에 있는 굿 카페라는 곳입니다. 대마신의 영향력을 벗어난 장소가 있다는 것에 저도 매우 놀랐습니다.

곧이어 TV를 보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 애들 데리고 빨리 와!"

"부모님하고 장인·장모님 다 모셔 와. 지금 방송 나왔던 굿 카페 말이야."

엄청난 홍보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딸랑딸랑.

굳게 닫혀 있었던 출입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긴가민가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들은 굿 카페가 처음인 손님들이다.

"여기가… 그 굿 카페가 맞나요?"

유달이 번쩍 양손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굿 카페입니다. 저희 카페를 찾아 주신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보름아, 뭐 하냐? 어서 손님 받아라!"

신이 나서 외치는 유달에게 장미란이 물었다.

"정말 이곳은 대마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나요?"

"당연하지요? 저의 신당이 있는 곳인데, 어떻게 대마신의 기운이 침범하겠습니까?"

장미란은 허무한 눈빛으로 유달을 바라보았다.

왜 진즉 말하지 않았느냐는 어이없어하는 반응인데, 외려 유달은 장미란의 무지함을 탓했다.

"저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매우 실망인데요……."

* * *

남산 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박 카페 2층.

야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박만복에게 남자 직원이 다가왔다.

"사장님을 찾는 손님이 오셨습니다."

박만복이 일어서자 남자 직원은 서둘러 물러갔다.

곧이어 박만복이 그를 찾아온 손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제임스입니다."

"이동욱 검사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봤던 것 같군요. 그때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는데, 회복이 빠르시군요."

백시연의 장례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동욱과 교제하는 여인은 백시연의 친척이었다.

박만복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제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으시지요."

이동욱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국가에 큰 이득이 되는 정보를 가지고 계시다고요."

"성격이 급하시군요. 하시는 일이 바쁘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대마신 때문에 모두가 몸 사리는 분위기 아닙니까? 사형수들이 몰살당했기 때문인지 범죄자들이 특히나 몸을 사리더군요."

"대마신 때문에 좋아진 것도 있군요. 정부나 정치권에서 대마신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있습니까?"

"그것도 전혀 없습니다. 정치권에선 오히려 대마신을 보호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단합한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질문에 답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마신을 없앨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이동욱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것 같군요."

"저의 처지를 이해해 주십시오. 그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전화가 수십 통씩 걸려 오고 있습니다. 100% 모두 황당한 내용이고요."

"그렇다면 장미란 씨에게 전화하여 확인해 보십시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겁니다. 저는 못 믿어도 그녀에 대한 신뢰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이동욱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변했다.

"좋습니다. 대마신을 제거할 방법을 말씀해 보십시오.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이 검사님은 굿 카페의 유달 사장과도 친분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장 팀장님과 유달 씨에게 제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달이와 저는 예전에 친구였습니다. 그놈과 제가 손을 잡으면 대마신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대마신을 처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간단하군요. 유달 씨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지 않나요?"

박만복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달이는 그 어떤 사람이 부탁해도 대마신과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가 싼 똥이 아니니까요."

"표현이 재미있군요. 그런데 유달 씨에겐 친자식처럼 키워 준 이모님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설득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모님께서 부탁한다면 당연히 들어주겠죠. 심하게 투덜거리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모님은 달이를 설득하지 않을 겁니다. 달이의 부모님은 대마신과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모님은 달이가 똑같은 불행을 당하는 걸 원치 않으실 겁니다"

이동욱이 한숨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겁니까?"

"아니요. 방법이 없으면 제가 이 검사님을 만나자고 했겠습니까? 달이가 절대 부탁을 거절 못 할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이 검사님이 저와 뜻을 함께하기로 결심이 섰을 때 알려 드리겠습니다. 검사님이 섣부르게 움직이다가 일이 완전히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동욱은 재차 확인하여 물었다.

"정말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부탁하면, 유달 씨가 거절 못 하고 받아들이는 겁니까?"

"제가 좀 전에 말씀드렸지요? 달이가 대마신과 싸우지 않으려는 건 자기가 싼 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자기가 싼 똥을 치우기 위해선 어떤 짓이든 합니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알아 두십시오."

"알겠습니다. 제가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고 연락 드리지요."

"빠른 결심 바랍니다. 이번 대마신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더욱 혼란에 빠질 겁니다."

* * *

서울 시내에 있는 대형 교회.

주일을 맞이하여 오후 예배가 한창이다.

한아름이 타고 있는 최고급 승용차가 교회 앞 도로에 멈춰 섰다.

덜컹.

한아름이 차 문을 열고 내려서며 켄달에게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켈달은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마신님이 직접 교회를 찾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을 바꾸심이 어떠십니까?"

"무슨 소리야? 나는 분명 열혈 신도 여자에게 말했어. 나를 사탄이라고 부른 목사를 꼭 찾아가겠다고 말이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지. 안 그래?"

한아름은 켄달의 충고를 무시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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