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76화 (176/183)

176화. 자영업자 정신

한아름이 켄달에게 명령했다.

"생방송 준비해. 세상이 아직 나는 띄엄띄엄 보네? 두 번이나 경고했는데, 약했나 봐."

"방송국과 협의하여 생방송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인터넷 방송이면 충분해. 메이크업 끝내고 여기서 찍을 거니까, 서둘러 준비해."

"알겠습니다. 대마신님."

이어 한아름이 깜박했다는 듯 말했다.

"사장님은 어쩌실 건가요?"

"뭐?"

"제가 방송 찍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요?"

"시킨 건 먹고 가야지?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편안하게 찍어. 아까도 말했지만, 난 아름이가 무슨 짓거리를 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사장님은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대마신으로 각성해도 변치 않게 대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기도 하고요."

유달은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뭐… 다르게 대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렇죠? 이래서 내가 사장님을 좋아하나 봐요. 저는 메이크업 좀 하고 올게요. 전 세계 사람들이 볼 거니까, 예쁘게 꾸며야지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녀에게 유달이 말했다.

"내가 두 가지 정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어?"

"물론이지요. 열 가지라도 괜찮아요."

유달은 바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각성은 언제 한 거야? 제대로 뒤통수치는 솜씨가 생방송 도중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기획사 사무실에서 계약 위반이라고 위협받을 때요. 3억을 내놓든가, 노예 계약에 사인하라고 협박하잖아요. 엄청난 두려움과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뒤섞이다가, 내가 누군지 깨닫게 되었지요."

"그러면… 왜 나를 부른 거야? 아름이 혼자서 그놈들을 작살 낼 수 있었잖아?"

"저도 처음엔 그러고 싶었는데, 갑자기 사장님의 쿠폰이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이 상황에 사장님을 부르면 오실까,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불러 봤죠."

유달은 쿨하게 받아들였다.

"응, 그랬구나. 잘했어. 내가 쿠폰 주면서 기간을 정해 놓지 않았으니까. 공짜 쿠폰은 무조건 써야지. 그런데… 연쇄살인범 이상태는 일부러 포함시킨 거야?"

한이름이 생방송에서 급사시켰던 죄수 중에 유일하게 언급했던 이름이었다.

"맞아요. 사장님은 미치도록 그놈을 저주하잖아요. 하지만 사장님은 영적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의 목숨은 건드리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 죽여 줬어요."

유달은 씁쓸한 웃음 지으며 타일렀다.

"나는 그놈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삶을 선사하고 있었어. 죽여 달라고 사정하는 그놈을 볼 때마다 얼마나 큰 희열을 느꼈는데. 다음에는 내 밥그릇에 절대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어. 만복이도 포함해서 말이다. 알았지?"

"네, 다음에는 꼭 주의할게요."

"그래, 나는 궁금한 거 풀렸으니까, 예쁘게 화장하고 방송해."

"알았어요. 사장님."

한아름은 몸치장을 위해 드레스룸으로 들어갔고, 유달은 계속 소파에 앉아 룸서비스를 기다리는 때다.

"이거 마시게나."

켄달이 직접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들고 왔다.

이에 유달은 예의상 재빨리 그가 들고 오는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뭘 이런 걸 회장님이 직접 가져옵니까? 룸서비스 호텔 직원도 있는데요?"

"자네는 대마신님의 귀한 손님 아닌가? 특별히 신경 쓰라는 분부가 있었네."

"어쨌든, 잘 마시겠습니다."

유달은 소파 깊숙이 등을 기대며 커피를 즐겼다.

커피 맛은 괜찮은데 거북한 눈총이 느껴졌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켄달이 계속 쳐다봤기 때문이다.

유달은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습니까?"

켄달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자네는 이번 대마신을 어떻게 생각하나?"

"왜 저한테 그걸 묻는 겁니까? 이번이고 저번이고, 저는 대마신 자체가 처음입니다."

켄달은 한아름이 들어가 있는 드레스룸 쪽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이번이 네 번째 영접이네. 남들이 뭐라고 비난하든, 나는 인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네. 그런데 이번처럼 난감한 경우는……."

유달은 그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요. 켄달 옹께서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감당이 안 되는 역대급 대마신이 출현한 거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

"미리 못 박아 두겠는데, 저는 남들이 싸질러 놓은 똥은 절대 치우지 않습니다. 자기 똥은 자기가 치워야 똥 냄새 없는 상큼한 세상이 되겠지요."

"이보게,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켄달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한아름이 화장을 끝내고 드레스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실시간 방송은 이미 준비된 상태.

한이름이 테이블 위에 설치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앉으면서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이해력이 달리는 인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습니다. 만약 나에게 공권력이 투입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말씀드리지요. 제일 먼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장관들이 불행한 일을 당할 겁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또한, 그 책임은 국민에게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 나라의 국민 모두 몰살하는 건 나도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도 함께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될 겁니다."

한아름의 경고 범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나라가 어찌 되든, 주변 국가에서는 나를 제거하려 몰상식한 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요? 저의 경고는 대한국민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그리고 일본도 포함입니다. 제가 언급한 모든 나라의 지도자와 장관급 서열, 국회의원이나 공산당의 간부들은 모두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곧이어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직도 내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맛보기 경고를 하겠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쓰러지기는 하겠지만, 죽지는 않을 겁니다. 몸이 쇠약해서 죽는 건 어쩔 수 없고요. 내가 앞서 언급했던 단단히 대비하세요. 바로 맛보기 경고 들어갑니다. 하나, 둘… 셋!"

딱!

한아름이 카메라는 노려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 * *

다음 날 아침, 굿 카페.

유달은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까지 끝마쳤다.

딸랑딸랑.

늦게 출근한 장미란이 물었다.

"오늘 가게 영업을 한다고요?"

"물론이지요. 직원이 몇 명인데 쉽니까? 악착같이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요."

"저런 난리가 났는데도요?"

장미란은 유달 곁에 나란히 서며 TV 뉴스를 보았다.

-미국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쓰려졌다는 소식이 있었고요. 일본 총리는 심야 회식 중 심정지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상황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다른 국가의 정상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노령의 정치인 십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며, 세상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유달이 TV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저는 내일 인류가 멸망해도 한 잔의 커피를 팔겠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영업자 정신 아니겠습니까."

"저야 뭐, 사장님의 결정을 따라야지요."

"그런데 어제 만복이 왔다 갔습니까? 가게 곳곳에 그놈의 냄새가 진동합니다."

장미란은 사실대로 말했다.

"네, 왔었어요. 유달 씨와 힘을 합쳐서 대마신을 물리치고 싶다고 하네요."

"태세 전환이 엄청 빠르네요. 대마신 편에 섰던 놈이 갑자기 마음을 바꿨군요?"

"백시연 씨의 복수 때문인 것 같아요. 진심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유달 씨 생각은 어때요?"

"저는 당연히 관심 없습니다. 한번 배신했던 놈을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는 가게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유달은 절대로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장미란은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저는 이삼 일 정도 쉬는 게 낫다고 봐요. 아름이가 여기서 일했다고 자기 입으로 대놓고 홍보했는데, 손님이 들어오려고 할까요?"

"무슨 소립니까? 아침부터 문밖이 계속 북적이던데요. 대마신이 어디서 일했는지, 호기심에 몰려든 거지요."

"아니요. 제가 방금 들어왔잖아요. 밖에 손님은 없고 모두 기자들이에요. 대마신에 대한 공포는 호기심 수준을 넘어섰어요."

"헐……."

유달이 난감한 반응을 보일 때다.

딸랑딸랑.

출입문이 열리고, 송보름과 강성호가 함께 들어왔다.

송보름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무슨 기자들이 저리도 많아?"

이어 그녀는 유달을 바라보며 따지듯 물었다.

"오늘 진짜 영업할 거예요? 저렇게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어떤 손님이 들어와요? 아니, 들어올 손님이나 있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가게는 망했다고요."

유달이 목청 높여 반박했다.

"무슨 소리! 코로나 때도 버텼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것 같아? 나한테 맡기고, 손님 받을 준비나 해."

이어 그는 카페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며,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대마신을 알바로 고용한 이유가 뭡니까?"

"혹시 대마신인 걸 알면서도 채용하신 겁니까?"

"스톱!"

유달은 기자들을 조용히 시키고 말을 이었다.

"저는 여러분들의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가 아닌 카페 안에서, 메뉴 하나당 한 가지 질문만 받겠습니다. 참고로 선착순입니다."

순간, 기자들끼리 서로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우르르.

기자들을 몸싸움까지 벌이여 카페 안으로 들어와 경쟁적으로 주문을 했다.

* * *

굿 카페가 북적인 것은 잠시였다.

밀물처럼 들어왔던 기자들은 필요한 대답을 듣고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몇몇 기자들만 뜨문뜨문 자리에 남아서 어디로 취재를 갈 것인지 논의하고 있었다.

일반 손님은 전혀 없기에 사주·관상 볼 일도 없고, 유달은 장미란과 함께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유달 씨도 신성 기사단에 대해 들어봤어요?"

"들어는 봤지요. 대마신 잡는 걸 사명으로 여기는 비밀 결사 집단입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지금 하는 말은 대부분 사실입니다."

TV에서는 신성기사단의 부단장 ‘토비 위즐리’가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며, 연예인에 버금가는 잘생긴 외모였다.

-예전 대마신들은 보통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지 못하게 행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며, 결코 좋은 일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우리 신성 기사단도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뉴스 채널의 여자 아나운서가 물었다.

-대마신은 정말로 전지전능한 존재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듯 애매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유달은 바로 흥미를 잃고 TV에서 멀어졌다.

"지금 우리 코가 석 자지요. 정말로 일반 손님이 한 명도 안 들어올 줄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최고의 사주 카페 이벤트에서 떨어지는 것은 물론, 경영 악화가 지속되어 폐업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안 되게 노력해야겠지만, 특별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네요. 사람들 사이에서 대마신에 대한 공포감은 점점 더 커질 테니 말이에요."

"전기세, 수도세 아까우니, 그냥 한 달간 푹 쉬어 버릴까요?"

유달이 장기적인 휴업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때다.

딩딩딩딩딩딩.

유달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던 유달의 인상이 구겨졌다.

-어제 내가 했던 제안은 들었지? 받아들일 생각 있나?

"만복이, 너… 내가 거절할 거 뻔히 알면서, 왜 전화질이야."

-그걸 줄 알았어. 아니, 그럴 만도 하지.

"헛소리 그만해. 끊는다."

-잠시만, 끊지 마라.

"왜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나… 너한테 사과하려 전화했다.

"너 미쳤니? 갑자기 사과는 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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