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75화 (175/183)

175화. 계산 끝

서울 도심 번화가 동방 호텔 인근

또르르.

유달은 빨간 카트를 끌고 밤거리를 걸었다.

가볍고 접이식이라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시장바구니 용도로 쓰는 카트였다.

일찍 문 닫은 상가, 인적은 급격히 뜸해졌고, 길목을 지키는 경찰들의 모습은 세기말적 분위기가 흡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대마신의 등장은 외계인의 출현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유달은 동방 호텔 앞에 도착했다.

사탄아 물러가라며, 집단이나 개인이든 소리치며 항의하는 소란은 없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TV를 통해 생중계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호텔 출입문은 켄달의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유달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키가 큰 경호원이 바로 제지하며 용무를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유달은 카트를 멈추며 대답했다.

"아름이… 아니, 대마신을 만나러 왔는데요."

순간, 키가 큰 경호원의 안색이 바뀌며 주변의 동료들도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카트 안에 무엇이 들었습니까?"

"그건 그쪽에서 상관할 바 아니고요. 켄달 옹이나 대마신에게 굿 카페의 유달이 찾아왔다고 전해 주면 서로가 편해질 겁니다."

장신의 경호원은 동료들에게 잘 감시하라 눈짓하며 뒤로 빠졌다.

그러고는 무전기 이어폰을 눌러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호텔 정문 알파 포인트, 유달이라는 방문자가 경호 대상을 만나기를 원함. 방문자는 켄달 회장님과 친분이 있는 듯한 말을 했음."

-알았다. 확인하고 연락할 테니, 대기하기 바람.

유달의 말썽부리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잠시 후에 다가오는 장신의 경호원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변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땡큐."

또르르.

유달은 카트를 끌며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 * *

암울한 분위기의 굿 카페.

송보름은 아직도 콜라를 술처럼 마시고 있었고, 장미란은 사무실에서 통화 중이다.

"대마신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상이 가능합니다."

장미란이 통화하는 사람은 FBI의 고위 간부였다.

-나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어. 말이나 의지로 목숨을 빼앗는 능력이라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라고 추정하지? 한국에 있는 그녀가 미국 본토의 국민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장미란은 송보름 상태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그녀가 처음 능력을 발휘했을 때, 방송국이 있는 서울과 경북의 교도소까지는 300㎞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종교 집단과 얽힌 두 번째의 경우에는, 그 희생자가 부산과 제주도에도 발생했습니다. 최소한 대한민국 전역이 포함되는 범위이고, 그 이상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송보름이 또 하나의 콜라 캔을 땄다.

장미란은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여 유달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었다.

유달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스스로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다만, 그녀가 한아름을 만나러 갈 수도 있기에, 카페 밖으로 나가는 것만 막아 달라 부탁했었다.

장미란은 송보름의 행동을 주시하며 통화를 이어 갔다.

"다른 질문은 없으십니까?"

-켄달과 대마신은 어떤 관계지? 그가 복종하듯 고개 숙이는 모습에 미국 정치계가 발칵 뒤집힌 상태야.

"켄달 회장은 대법마신이라 들었습니다"

-대법마신? 그건 또 뭐지?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정보 제공자에 의하면, 대마신을 영접하고 보필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태야. 세계 모든 정보국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목하고 있어. 자신의 국가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지.

장미란이 진지한 음성으로 물었다.

"미국은 어떤가요? 대마신의 존재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이미 판단을 내렸나요?"

-우리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동안 미국이 자신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신속히 위험원을 제거해야겠지요. 하지만 이번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길 바랍니다. 대마신은 그동안의 방법이 통할 상대가 아닙니다."

장미란이 차분한 음성으로 충고하는 때다.

딸랑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절룩이는 걸음걸이였다.

테이블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송보름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귀찮은 듯 말했다.

"오늘 영업 끝났어요. 출입문에 푯말 붙었잖아요."

"봤어… 나를 출입금지시킨 푯말도."

"!"

송보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로 온 거예요?"

박만복은 신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옛 친구에게 인사 먼저 하고……."

그는 신당 앞에 멈춰 서서 혼잣말하듯 말했다.

"괜찮아… 죽을 정도는 아니야. 벌 받는다고 생각하며 별로 분한 마음도 없고. 너한테 진 빚은 지옥에서 가서라도 꼭 갚을 거야."

장미란은 사무실에서 나오며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나중에 다시 전화 주세요."

그녀는 신당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마치고 막 뒤돌아서는 박만복에게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죠?"

"당신과 저기 콜라 중독 아르바이트생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일단은 앉아야겠군요. 보시다시피 내 몸 상태가 이 모양이라서……."

박만복은 송보름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장미란이 송보름 곁에 나란히 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장미란이 호기심을 느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대체 뭘까요? 당사자인 저나 보름이도 금방 떠오르는 게 없는데……."

"대마신을 완벽히 소멸할 방법."

"!"

"세상은 아직 대마신의 진정한 무서움을 모릅니다. 당연히 무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겠지요. 총이 안 되면 대포, 대포가 안 되면 미사일, 미사일도 안 되면 핵 공격까지 시도할지 모릅니다.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하나 희생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

"하지만 그 어떤 무력적인 방법도 대마신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고, 죄 없는 희생자의 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장 팀장은 그런 불상사를 원하지 않겠지요?"

장미란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고심하는 상황인데, 송보름이 발끈하며 나섰다.

"괜한 수고를 하셨군요, 박만복 씨. 우리 사장님이 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대마신을 소멸시킬 방법이요? 아주 간단해요. 우리 사장님이 나서면 바로 해결된다고요."

"달이가? 대마신이 선을 넘으면 끝장을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대마신은 능력치가 달라. 무속계의 모든 영험함을 타고난 달이도 어찌할 수 없는 상대야. 그녀를 불러낸 켄달 회장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을걸."

장미란이 물었다.

"그런 존재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거죠?"

"달이와 내가 손을 잡으면 됩니다. 예전에도 우리는 절대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일은 해낸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네요. 유달 씨의 뒤끝은 무한대나 다름없으니까요."

박만복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는 용건을 말했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달이를 설득할지 말지는 두 분의 결정에 달린 겁니다."

"최대한 설득해 보기는 하겠지만 장담은 못 하겠네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그리고… 백시연 씨의 일은 매우 유감이에요."

박만복은 아무 대꾸 없이 뒤돌아 카페를 나섰다.

* * *

경계가 삼엄한 동방 호텔의 스위트룸.

띠리릭.

장신의 경호원이 보안키를 대자 문이 열렸다.

"들어가시지요."

그는 공손히 인사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또르르.

유달이 카트를 끌고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섰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한아름이 벌떡 일어나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그녀는 말과 행동은 굿 카페에서 알바로 일했을 때와 거의 비슷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조금은 당당해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유달 역시도 편하게 그녀를 대했다.

"오우~ 성공했어. 여기는 동방 호텔에서 가장 럭셔리한 방이잖아."

"이쪽으로 앉으세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유달은 그녀가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내가 공짜라면 환장하는 거 잘 알잖아?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부탁해."

"그럴 줄 알고, 제가 미리 시켜 놨어요. 스폐셜로요."

"우오~ 땡큐."

유달은 주먹 인사 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수줍게 살짝 건드리는 시늉만 했을 것인데,

"유어 웰컴이요!"

툭.

대마신으로 각성한 한아름은 당당하게 주먹을 부딪치며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유달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그녀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름이는 내가 무슨 일로 왔을 것 같아?"

순간,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아름은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와 싸우러 온 건 아니겠지요?"

"당연히 그건 아니지. 우리 싸우지 말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 기억나?"

"기억하고 말고요! 도장 찍고 복사까지 했잖아요. 그러면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유달은 스위트룸 안까지 손수 끌고 온 카트를 그녀에게 밀었다.

"받아, 계산은 정확히 끝내야지."

"이게 뭔데요?"

"알바비. 이제 더는 굿 카페에서 일할 거 아니잖아? 어제까지 일한 걸로 치고, 넉넉히 넣었어."

한아름은 피식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뭘 끌고 들어오시나 했어요. 그냥 통장으로 부쳐 주셔도 됐는데……."

"굿 카페의 전통이야. 알바 마지막 날에는 내가 직접 돈을 주며, 돈 많이 벌고 성공하라는 덕담을 했지. 대마신에겐 어떤 덕담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금액이 맞는지부터 확인해 봐."

"알았어요. 사장님의 성의를 봐서 고맙게 받을게요."

한아름은 카트 입구를 열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냈는데, 신문지로 싸여 상당히 두툼했다.

"돈을 너무 많이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괜한 기대하지 마. 내가 돈을 못 만지잖아. 징그러움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신문지로 쌌어."

정말 그랬다.

신문지는 양파처럼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었다.

한아름은 마침내 드러난 만 원짜리 뭉치를 꼼꼼히 다 세고 말했다.

"네, 맞아요. 3만 원 더 넣으셨네요? 감사해요."

그녀가 진심으로 고마움을 눈웃음으로 표현하는 때다.

띠리릭.

출입문이 열리고, 켄달이 들어왔다.

스페셜 룸서비스인 줄 알았던 유달은 실망하는 기색이고, 한아름 역시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이지? 내가 사장님과 만나는 시간은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켄달은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경찰이 출동했다고 합니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대마신님을 연행하려는 모양입니다.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대규모 인원이라는 정보입니다."

"몇 명이 쳐들어오든 무슨 상관이지? 모두 죽여 버리면 그만인데?"

"경찰을 전멸시키면, 군대가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군대도 다 없애면 되는 거고. 뭐가 문제지?"

켄달은 답답한 심정을 감추며 차분히 설명했다.

"대마신께서 힘을 드러낼수록 한반도 주변 강국과 미국의 표적이 되고 맙니다. 그들은 대마신님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전 대마신들 행보처럼 보통의 인간들에겐 존재를 감추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순간, 한아름의 인상이 구겨졌다.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하지? 대법마신은 이곳이 전쟁터가 되어 목숨이 위태로워질까 걱정하는 것 같은데?"

켄달은 송구스럽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에 한아름은 유달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장님은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세요?"

"아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정말이요?"

"우린 계산 끝났잖아. 나는 아름이가 인류를 멸망시키든, 세계와 맞짱 뜨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에만 집중하려고."

"알았어요. 그럼 제 마음대로 할게요."

한아름의 얼굴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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