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72화 (172/183)

172화. 동만 흥신소

경기도의 낡은 상가 건물.

유달과 장미란은 계단으로 4층까지 올랐다.

그들은 일직선으로 뻗은 복도를 따라 걸으며 양편으로 있는 사무실 간판을 살폈다.

왼편을 살피는 유달이 물었다.

"흥신소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오른편 사무실을 살피며 걷는 장미란이 대답했다.

"동만 흥신소요. 제가 5분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병만인지 동만인지 갑자기 혼란이 와서요. 그런데 이리 으슥한 곳에 사무실이 있다면 준법적인 일만 하는 흥신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관할 형사에게 들었는데, 동만 흥신소 직원 전체가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래요."

"우리가 찾는 배창수도 그중 한 명이고요. 순순히 죄를 털어놓을까요?"

"글쎄요. 공소 시효가 지났다고 해도 쉽사리 말하지는 않겠지요. 밝혀 봤자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요."

"그놈이 얼마나 빨리 입을 여느냐에 따라, 우리의 귀가 시간이 결정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죠. 찾았어요. 여기네요."

뺑소니범이 있는 동만 흥신소는 복도 맨 끝에 있었다.

눈에 확 띄는 간판도 없고, ‘동만’이란 글씨를 검은 매직으로 문에 써 놓았을 뿐이다.

유달이 껄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낡은 상가 건물의 제일 구석진 자리라… 복도를 살피고 오는데 절반 가까이가 빈 사무실이더군요.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우리는 조폭들의 근거지로 쳐들어가고, 광신도 집단에 잡히기도 했어요. 그보다 더한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기는 하죠."

똑똑.

유달이 흥신소의 문을 두드렸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대답이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유달이 조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님입니다. 의뢰할 게 있어서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이어 무언가 급히 치우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수상하다 여기는 유달의 의심은 더욱 커졌다.

"안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생각엔 매우 뻔합니다."

"어떻게 뻔할까요?"

"저들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해결사입니다. 아마도 누군가를 잡아서 고문하다가 서둘러 감추는 중이겠지요. 촌스러운 상호명에서도 느껴지듯, 병만은 흥신소 사장 이름일 것이고, 그는 과거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조폭 조직인 병만파의 두목일 겁니다. 세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아직도 개과천선 못한 거죠."

"매우 그럴듯한 추리에요. 하지만 치명적인 오점이 존재하는데, 여기 흥신소 이름은 ‘병만’이 아니라 ‘동만’이에요."

"죄송합니다. 저는 한번 헛갈리면 계속 헛갈리게 되는 올곧음이 있어서요."

끼익.

중년 남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오십시오."

50대 후반처럼 보이는데, 당당한 체구에 험하게 살았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인상이다.

유달과 장미란이 그를 따라 흥신소 안으로 들어갔다.

변두리 인력 사무소 느낌의 사무실이었다.

유달의 추리처럼 불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던 건 아니었다.

장미란이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식사 중이셨던 모양이네요?"

"저희 흥신소는 예약 손님이 대부분이라 바로 찾아오시는 분은 드물지요. 환기 좀 시킬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직원들은 출입문 쪽의 넓은 소파 자리에서 식사하다가, 다른 곳으로 급히 옮기느라 부산을 떨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하얀 커튼이 쳐진 작은 테이블에서 계속 밥을 먹고 있었다.

중년 남자가 소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앉으시지요."

장미란은 그가 권하는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동만 흥신소 대표 서동만입니다. 어떤 일을 도와드릴까요?"

장미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사람 찾는 건 저희가 전문이지요. 그런데 어떤 일로 찾으려고 하시는지……."

"이유까지 말해야 하나요?"

"어느 분의 소개로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불법인 것과 관계된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로 찾는지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거짓말을 하시다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서동만의 태도는 완고했다.

이에 장미란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선에서 대답했다.

"우리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를 찾아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싶은 거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어떤 놈을 찾고 계십니까? 돈과 권력 뒤에 숨은 놈들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저희가 찾는 사람의 이름은 배창수예요."

"배창수요? 재미있군요. 저희 직원 중에 그런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전과 7범에 사람이 목숨까지 빼앗았어요."

"!"

호의적으로 변했던 서동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경찰이십니까?"

"지금은 아니에요. 사장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20년 전에 한강파와 대립했던 전국구 조직이 있었지요. 경기 지역을 통합했던 동만파. 배신자의 밀고 때문에 두목이 교도소에 수감되었지요. 출소 후에는 폭력 세계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흥신소 사장은 예상보다 거물이었다.

"맞습니다. 저는 한때 동만파의 두목이었지요. 흥신소를 하는 것은, 취업이 어려운 전과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함이고요."

"저는 사장님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저희 부탁을 들어주시겠지요."

서동만은 고심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창수, 그놈은 제가 아끼는 후배를 통해 만났습니다. 얍삽하고 미덥지 못한 면도 있지만, 사람을 죽일 만한 독한 놈은 아닙니다."

"뺑소니 사고였어요. 바로 조치했다면 살릴 수 있었고요. 여덟 살 어린아이가 희생당했어요."

꿈틀.

"아무래도 제가 직접 확인해 보는 게 낫겠군요. 그놈은 저한테 절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창수야!"

"네, 형님."

식사하던 직원 중 한 명이 뛰어왔다.

40대 중후반의 배창수는 묘한 분위기를 직감한 듯 서동만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매우 심각한 의뢰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서동만은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말이다… 뺑소니로 사람 죽인 적 있냐?"

"에이~ 형님, 무슨 말도 안 되는……!"

파다다닥!

배창수는 번개처럼 잽싸게 도망쳤다.

"……."

서동만은 무안함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고, 장미란이 바로 배창수를 뒤쫓았다.

유달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는 저놈을 붙잡아서 죄를 추궁할 예정인데, 혹시 방해하실 생각이신지?"

서동만은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에 유달은 휴대폰을 꺼내 장미란과 통화했다.

"잡으셨나요?"

-아직이요. 놈이 옥상으로 도망쳤어요.

"옥상이요? 대부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도망치지 않나요? 상당히 특이한 놈이네요."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올라와서 어쩔 수 없이 위쪽으로 도망친 거예요. 지금 옥상 문 앞에서 온갖 걸 다 집어 던지고 난리도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저도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유달은 서동만에게 절대 방해하지 말라, 눈으로 경고 주고 흥신소 사무실을 나섰다.

* * *

덜컹.

유달은 옥상과 통하는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쳤다.

후아아앙~.

"어우, 여기는 왜 이리 추워!"

유달은 잔뜩 웅크린 자세로 총총거리며 걸었다.

장미란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유달은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이게 웬 흥미진진한 상황?"

궁지에 몰린 배창수는 칼을 쥔 상태에서 옥상 난간에 몸을 걸치고 있었고, 장미란은 그런 그를 향해 가스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중이다.

유달이 나타나자 배창수는 더욱 흥분했다.

그는 장미란에게 향했던 칼끝을 자기 목에 겨누고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

"뭐라고?"

유달은 귀를 내밀며 가까이 다가갔다.

"씨발~ 오지 말라고!"

"씨발, 그다음이 안 들려!"

"멈추라고, 이 새끼야!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 같아 보여? 진짜 뛰어내린다!"

유달도 장난이 아니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장미란의 곁에 서며 물었다.

"대체 뭐라는 겁니까?"

"가까이 오면 뛰어내리겠대요."

"헐, 그럼 깔끔하게 뛰어내리면 되지요. 저 칼은 왜 들고 설치는 건데요. 뛰어내려 죽겠다는 겁니까, 자기 칼로 찔러서 죽겠다는 겁니까?"

"살고 싶다는 발악이겠죠."

"그러니까요, 저놈이 왜 저리 오버하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공소 시효가 지난 사건이라 처벌도 안 받는데,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요?"

"실은 저도 그게 궁금해요. 전과 7범이 공소 시효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저리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지……."

순간, 유달이 번뜩 뭔가 생각난 반응이다.

"미란 씨, 혹시 저와 똑같은 생각이신지요?"

"아마도요. 배창수는 최수진 PD 동생 말고도 또 다른 뺑소니를 저질렀어요. 그건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을 거고요."

"어쨌거나, 감방에 보낼 수 있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배창수를 반드시 산 채로 체포해야 해요. 정말로 뛰어내릴 수도 있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결하지요."

유달은 배창수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어이~ 뛰어내릴 거냐, 말 거냐? 우리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 아니거든. 7시까지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고. 빨리 특단의 결단을 내렸으면 싶다."

불안해서 따라온 장미란이 조용히 만류했다.

"유달 씨, 괜한 도발은 말지요?"

"괜찮으니,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유달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다가갔다.

"그냥 이실직고하고 벌 받아. 여기서 떨어진다고 네놈의 죄를 사함받을 것 같아? 천만의 말씀! 자신의 목숨을 버린 죄까지 더 얹어서 지옥행이야."

배창수가 짜증 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끄러워! 나 진짜 죽어 버린다!"

"그럼, 그렇게 하든가?"

"뭐?"

"지금 고개를 돌리면 네놈이 뛰어내리고 3초 뒤의 모습을 보게 될 거야. 추락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한지 똑똑히 보라고."

"미친 새끼……!"

욕하며 고개 돌렸던 배창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옥상 난간 밖에서 끔찍하게 추락사한 영혼들이 그들 노려봤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악~!"

엄청난 비명이 뒤늦게 터졌다.

휘청.

배창수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으며 반쯤 몸을 걸치고 있고 난간에서 떨어졌다.

"안 돼~!"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는데,

쿵.

다행히 난간 밖이 아닌 안쪽이었다.

"사, 사, 살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를 유달이 멱살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

"경찰서 가서 모두 불어."

배창수는 격하게 반항했다.

"놔, 이 새끼들아! 증거 있어?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이제부터 묵비권이야!"

"헐……."

유달은 골치 아프게 생겼다면 고개 젓는 그때.

덜컹.

옥상 철문을 열고, 서동만과 그의 직원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배창수를 끌고 가는 유달을 정면으로 막아섰다.

유달이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후웅.

서동만은 아무 말 없이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휘둘렀다.

짜악~!

엄청난 따귀 소리와 함께 배창수가 나가떨어졌다.

"혀, 혀, 형님……."

서동만은 저승사자 같은 기세로 다가갔다.

"이 개자식아, 뺑소니 사고로 사람을 죽게 만들어!"

쩌억~.

또다시 날아간 배창수는 벌떡 일어나 싹싹 빌며 애원했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형님.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 할머니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할머니? 네놈이 사고를 낸 건 어린아이였잖아?"

"어, 어린아이요? 아, 그건 20년 전 일입니다. 벌써 공소 시효도 지났습니다."

"뭐라… 공소 시효? 사람을 죽여 놓고 공소 시효를 운운하고 있어?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도대체 몇 사람이나 죽인 거야!"

쩍! 쩍! 쩍! 쩍~!

서동만은 유달이 만류하고 싶을 정도로 참혹하게 배창수를 팼다.

흥신소 직원이 다가와 유달과 장미란에게 말했다.

"날씨가 춥습니다. 사무실에서 따뜻한 커피나 하면서 기다리십시오. 큰형님께서 자술서를 받아오실 겁니다."

그들은 순순히 직원을 따라 옥상에서 내려갔다.

* * *

굿 카페가 있는 3층 복도.

띵동.

승강기에서 나온 유달과 장미란은 경주하듯 뛰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안 늦었지!"

동시에 외치는 그들에게 송보름이 말했다.

"간신히 세이프예요. 조금 있으면 아름이 차례니까요. 열심히 응원하세요."

카페는 대형 TV가 잘 보이도록 자리가 배치되었다.

예선 통과를 바라는 현수막도 달고, 한아름을 아는 사람은 모두 부른 듯했으며, 점 보는 것도 임시 휴업이다.

최수진도 방송팀을 데려와서 열정적인 응원의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장미란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시 저랑 이야기 좀 해요."

그녀는 최수진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동생의 뺑소니범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잠시 후.

유달이 사무실을 곁눈질했는데, 감격에 겨워 눈물 흘리는 최수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로써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

"나이스."

유달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때다.

"우와아아~!"

굿 카페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과 함께 마침내 한아름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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