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뭔가 대단한 일
유달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영험함을 증명하는 테스트를 통과한 겁니까?"
"그건 아니지요."
"왜요? 정답을 맞히지 않았습니까?"
최수진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그냥 운이 좋았을 수도 있잖아요. 5분의 1의 확률이었어요. 시청자분들이 찍어서 맞혔다고 생각하지 앓을까요?"
"운도 실력이라는 명언이 있지 않습니까? 과정이야 어찌 됐건 답만 맞추면 되는 거지요."
"요즘은 그런 트렌드 아니에요. 결과와 과정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유달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굳이 그래야 하겠습니까? 저는 남의 아픔을 들쑤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상관없으니 말해 보세요. 제가 당한 억울한 일을 무엇일까요?"
유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진중한 표정이 되어서 최수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군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같은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최수진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유달은 잠시 멈췄던 말을 이었다.
"가까운 사람을 잃었군요?"
"……."
최수진은 아무 대꾸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가족 중에 한 사람 같은데, 동생분일 듯싶습니다. 병은 아니고 갑작스러운 사고였군요. 눈 오는 밤의 교통사고. 어린 동생분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고, 최 PD님은 아직도 큰 죄책감을 느끼고 계십니다. 그 사고 일어날 때 같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쯤이면 되지 않았나요?"
"아니요. 계속하세요. 저는 괜찮아요."
"일단 최 PD님 상태가 안 괜찮고요. 제가 여기서 완벽한 정답을 말해 버리면, 다른 사주 카페에서 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만 손해지요."
"지금 하는 말이 정답이라고 어떻게 자신하지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지도 모르잖아요?"
아니다. 방송국 스텝들도 모두 사실이라 여기는 상황이다.
최수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실상을 그러지 못했다.
유달이 말이 거듭될수록 그녀의 두 눈이 점점 더 붉게 충혈되었다.
"최 PD님의 의지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곧이어 유달이 작정한 듯 말을 이었다.
"뺑소니 사고였습니다. 최 PD님은 귀찮다는 남동생을 억지로 끌고 나갔지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은 위험하니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
"하얀 눈이 너무 아름답게 내렸지요. 귀찮다던 동생분도 신나게 눈싸움하며 좋아했고요. 그러다 순간적으로 아득해지는 기억. 뺑소니 차량은 최 PD님부터 덮쳤습니다. ‘누나~!’ 소리 지르며 달려오던 동생분은 같은 뺑소니 차에 치이며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살아생전의 마지막 기억이지요. 아직도 뺑소니범은 잡히지 않았고요."
주르르륵.
최수진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아내자, 장미란이 나서 중단시켰다.
"여기서 그만하지요. 유달 씨, 일어나요."
장미란은 유달의 소매를 잡아끌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유달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제가 또 사고 친 건가요?"
"글쎄요, 아직은 판단을 내리기 어렵네요."
유달은 최수진이 어떤가 돌아보다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 독한 방송국 놈들 보십시오? 저걸 또 계속 찍고 있습니다."
카메라맨은 촬영을 중단하지 않고, 눈물범벅인 최수진의 모습을 계속 카메라에 담았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최수진이 다가왔다.
"죄송해요, 제가 프로답지 못했네요."
유달은 카메라가 없기에 편하게 대꾸했다.
"제 실력 아시면서 왜 그리 무모한 짓을 하셨습니까?"
"실력을 잘 아니까요."
"그런 또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그 뺑소니범을 반드시 잡고 싶어요. 제가 왜 미스터리에 관련한 일에 집착하는지 대충은 짐작했을 거예요. 경찰에서는 잡을 수 있는 확률이 제로라고 하더군요."
유달은 위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주 카페 사장에 불과할 뿐이라서요."
"정말 그럴까요? 저는 유달 사장님에 관해 계속 조사를 했어요. 옆에 계신 장미란 매니저님과 함께 미궁에 빠졌던 여러 형사 사건을 해결하셨더군요?"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이번에도 운이 좋으셨으면 하네요.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에는 우리 방송국도 서브 협찬사로 참여하고 있어요. 방송을 책임지는 저는요, 뺑소니 사건 해결을 해결해 주는 사주 카페를 적극적으로 밀어줄 생각이에요."
유달은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가장 공정해야 할 방송을 그런 사적인 용도로 쓰면 안 되지요. 최 PD님은 프로 아닙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그 뺑소니범을 잡는 일에 인생을 걸었어요. 저의 배경을 이용해서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어요."
"정신 차리세요, 최 PD님? 이건 최고의 사립 탐정을 찾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고요?"
유달이 목청 높여 따졌지만, 그녀는 요지부동.
이에 장미란이 한 발짝 나서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 뺑소니범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 찾아볼게요. 대신 약속한 것은 꼭 지키셔야 해요."
"물론이지요. FBI 출신인 장 팀장님이 의욕을 보이시니, 더욱 기대되네요."
"저에 관해서도 이미 조사한 모양이네요?"
"제 인생을 걸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장미란과 최수진이 기 싸움하듯 서로를 바라보는 때다.
"잠시만요."
유달은 장미란의 손을 잡고 멀찌감치 끌고 가서 말했다.
"그런 제안을 왜 받아들인 겁니까?"
"우리가 거부한다고 최 PD가 포기할까요? 다른 카페에서 성과를 보이면 우리만 손해라고요."
"하~ 미치겠네."
"이상하네요? 우리한테 유리한 조건인데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는 수많은 미제 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있어요. 쌍수를 들고 좋아할지 알았는데, 왜 그리 부정적인 반응인지 제가 오히려 당황스럽네요?"
"그건 만복이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요."
장미란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여기서 박만복이 왜 또 등장할까요?"
"우적우적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놈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요. 이번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그놈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지요?"
"만복이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잘 알고 있으며, 범죄에도 능통한 놈입니다."
"그래서요?"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요. 만복이는 범죄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놈입니다. 왜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아주 뛰어난 범죄자가 형량 거래해서 범죄 현장에 투입하는데, 베테랑 형사들보다 훨씬 더 잘 잡지 않습니까? 그놈을 칭찬하는 건 정말 싫은데 말이지요, 만약 만복이가 경찰이 되었다면, 범죄자의 씨가 말랐을 겁니다."
장미란은 상당히 기분이 상한 기색이다.
"섭섭하네요, 유달 씨. 방금 말한 건 정말 영화에서나 나오는 발상이에요. 범죄자를 가장 잘 잡는 건 수사관들이에요. 우리가 박만복보다 먼저 뺑소니범을 잡을 수 있어요."
"정말요?"
"저는 뛰어난 수사관이었고, 유달 씨는 모든 영험함을 타고난 무당이에요. 둘이 힘을 합치는데 박만복 하나를 못 당하겠어요?"
"그럴 리 없지요. 제가 잠시 약해졌나 봅니다. 뺑소니범도 잡고, 최고의 사주 카페라는 타이틀도 쟁취하는 겁니다."
둘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최수진이 다가왔다.
"설마… 결정을 번복하는 건가요?"
유달이 재빨리 대답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굿 카페는 낙장불입을 철칙으로 여깁니다. 그 못된 뺑소니범을 신명을 다해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지요. 백 퍼센트 잡을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합니다."
"고마워요. 저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유달 사장님이었어요.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사장님께 개인적인 선물을 드릴게요."
"선물이요!"
유달은 눈이 번쩍 뜨이는 반응을 보였다.
"하하하하, 제가 불로소득을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보름이는 사약도 공짜라면 덥석 받을 거라고 놀리더군요. 하지만 현금은 사양입니다. 안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현금이시면 밖에 나가서 먹을 것으로 사 오심이 어떠신지요? 코너 돌면 바로 편의점이 있습니다."
"다행히 현금은 아니고요……."
최수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디 조용한 곳 없나요?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사장님께만 보여드리고 싶네요."
유달이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무슨 선물이기에 그리 은밀히 보여 준다는 건지 궁금하군요."
* * *
동방 호텔 인근 버스 정류장.
백시연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박만복에게 말했다.
"완전 청개구리네? 주교님이 반드시 하라고 했던 일은 이런저런 이유 만들어 빠지더니,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한 일은 눈에 불을 켜고 하고 있으니 말이야."
박만복은 동방 호텔 스위트룸에 침입했던 이를 찾는 조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남잖아.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는 차질없이 진행 중이고, 대마신의 현신을 찾는 일도 당분간 중단했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회장님까지 기억을 잃게 만든 영적인 능력자가 누군지 궁금해 미치겠어."
"나도 그렇기는 한데, 그놈이 여기서 버스를 탄 건 확실한 거야? 자동차를 타고 호텔을 빠져나갔을 수도 있잖아?"
박만복은 줄지어 정차하는 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놈의 행동은 겉보기에는 매우 치밀하고 교활한 것처럼 보여.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고,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았어."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고 확실히 그래. 그놈의 동선을 따라 CCTV가 모두 고장 났다고. 그것도 그놈이 움직인 시간대만 교묘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놈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싶었던 것이 분명해. 하지만 극히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이렇게 이상이 생긴 CCTV를 따라가면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잖아. 저 앞에부터는 CCTV가 멀쩡하니 분명 여기서 버스를 탔을 거야."
"제임스의 예상이 맞을지는 조만간 밝혀지겠지."
그들은 조직원들을 버스 회사로 보낸 상태다.
범인이 몇 번 버스를 탔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정류장에 멈추는 모든 버스 회사에 사람을 보내야 했다.
박만복이 확인하듯 말했다.
"놈이 버스를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은 확실히 알려 줬지? 그 시간대에 배차된 버스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아마도 그놈이 탑승하고 있었을 때만 버스 내의 CCTV가 이상이 생겼을 거야."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확실히 일러 뒀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박만복과 백시연은 버스 회사에 보낸 조직원들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띠리링, 띠리링…….
백시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됐어?"
박만복은 조용히 그녀가 통화하는 걸 지켜보았다.
"몇 번? 105번 버스? 확실한 거지?"
때마침 105번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박만복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움직였다.
"일단은 타자고."
"알았어."
백시연은 통화를 끊고 박만복을 따랐다.
그들에게 버스는 굉장히 낯선 교통수단이다.
언제나 자가용과 택시만 이용했기 때문이다.
박만복은 편의점에서 산 교통카들 꺼내며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2명입니다."
"잠시만요… 네, 찍으세요."
그는 편의점 점원에서 설명 들은 대로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댔다.
-승차입니다.
단말기에서 나는 소리를 확인하고 그들은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뒤쪽에 빈자리가 있어서 그들은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백시연이 말했다.
"뭔가 뿌듯한 기분이야… 고등학교 이후로 버스는 처음 타거든."
"솔직히 나도 그래. 실수해서 눈총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무사히 잘 넘긴 것 같아."
그들은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반응이다.
곧이어 백시연은 버스를 타기 위해 급히 통화를 끝냈던 조직원에게 전화했다.
"나야. 버스 안에 있는 CCTV 조사했어? 맞아. 동방 호텔 앞 정류장에서 CCTV에 이상이 생겼을 거야. 어느 정류장에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지? 명동역 지나고 나서 바로? 알았어. 혹시 모르니까, 입단속 확실히 시키고 철수해."
그녀는 통화를 마치고 박만복에게 말했다.
"우리가 찾는 놈이 명동역에서 내린 것 같아."
"명동역이라… 몇 정거장 남았지?"
박만복은 버스에 붙어 있는 노선도를 살폈다.
* * *
-하차입니다.
백시연과 박만복이 105번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은 인도 중앙으로 이동하여 주위를 한번 살폈다.
백시연이 불안감은 느끼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아니겠지?"
명동에는 굿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박만복이 발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럴 리 없잖아. 달이에게 순간이동 능력이 생겼으면 모를까. 일단은 이쪽이 맞지?"
켄달의 조직원은 대한민국 주요 기관에 침투해 있었다.
박만복과 백시영은 버스 안에서 국가에서 관리하는 CCTV의 정보를 빼내 대략적인 방향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개인 소유 건물의 CCTV까지 차근차근 조사하여 조직의 핵심 전력을 묵사발로 만든 이의 최종 목적지를 찾았다.
"제임스… 유달 사장이 정말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
백시연과 박만복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건 굿 카페가 있는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