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66화 (166/183)

166화. 잠시의 즐거움

백시연은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녀에게 켄달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불멸의 존재나 다름없는 그가 다쳐서 쓰러진 모습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백시연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주교님,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켄달은 힘들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데 링거 바늘이 꽂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이다.

"주교님."

백시연이 황급히 부축하려 했지만, 켄달은 거부하는 표정을 지으며 혼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태를 살피던 간호사를 눈짓으로 물리며 입을 열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놈은… 기억나지 않는다."

순간, 백시연과 박만복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속된 말로 본진이 탈탈 털린 것도 황당한데, 누구에게 당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하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백시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주교님, 죄송하지만 머리를 다치신 겁니까?"

"안 다친 곳이 없지. 하지만 가벼운 뇌진탕 증세일 뿐, 기억력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 했다."

박만복이 침상 위의 켄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직접 조사해 보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수행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사고가 있었던 시간대의 호텔 CCTV도 모두 확인하겠습니다."

켄달이 천천히 고개 저으며 대꾸했다.

"이미 조사했다. 나와 함께 당한 놈들도 똑같이 기억을 못 했다. 호텔 보안부서의 CCTV도 그 시간대만 교묘하게 지워졌고.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하지만 귀신의 짓은 아닌 게 확실하지.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영적인 능력자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

"혹시… 굿 카페의 사장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도, 이 같은 일을 저지를 존재는 그놈밖에 없다."

박만복은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놈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우선은 시간대가 맞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때, 그놈은 다른 호텔 행사장에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확실한 건가?"

백시연이 그의 말을 뒷받침해 주었다.

"저도 그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곳과 그 호텔의 거리를 생각하면, 사주 카페 사장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 처리 방식이 사주 카페 사장과는 전혀 다릅니다."

박만복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놈은 일을 저지르고 숨기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놈이 이런 짓을 했다면, 흔적을 숨기거나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시는 덤비지 말라며, 회장님의 멱살을 잡고 위협했겠지요."

켄달도 일리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유달에 관해 많은 조사를 했다. 영적인 능력 측면에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교묘한 일 처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켄달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어떤 세력의 짓이지……."

백시연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그러고는 박만복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 켄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신성기사단이 급습한 건 아닐까요?"

백시연이 언급한 신성기사단은 대마신의 소멸을 사명으로 여기는 집단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마신을 보호해야 하는 그들에겐 숙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만복의 반박이 바로 이어졌다.

"그놈들은 대마신이 각성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아."

"작전을 바꿨을 수도 있잖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여기고 급습을 감행한 거지. 신성기사단의 주요 멤버들은 이미 한국에 입국한 상태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말을 입에 담으라고. 그따위 놈들한테 회장님을 포함한 핵심 전력이 기억도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신성기사단은 우리 예상보다 위험한 세력일지 몰라. 특히나 새롭게 부단장에 오른 ‘토비 위즐리’라는 인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해. 그놈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최단기간 부단장의 위치에 올랐다고."

"알려진 바가 없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겠지. 이번 일에 관해서는 제외해도 무방해."

논쟁을 벌이는 그들을 켄달이 만류했다.

"그만… 지금은 모두가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우리끼리 분란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다."

박만복은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말했다.

"회장님, 이번 일의 조사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누구의 짓인지 밝혀내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하겠습니다."

"아니,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번 일을 서둘러 처리하라고 저를 호출하신 게 아닌지요?"

"나도 배후를 밝혀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제임스, 너를 부른 건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력이 온전해질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마라."

"회장님이 명령이라면 따라야겠지요."

"돌아가라. 내 말을 반드시 명심하고, 대마신의 현신을 찾는 일도 당분간 중단하는 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편히 쉬십시오."

박만복과 백시연은 곧바로 스위트룸에서 나왔다.

경계가 삼엄해진 복도를 걸으며 박만복이 중얼거렸다.

"한결 홀가분해졌군."

"조직이 최대의 위기에 빠졌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아무 방해 없이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에 집중할 수 있잖아. 안 그래?"

"……."

"그렇게 잡아 죽을 듯 노려보지 말라고. 나는 회장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뿐이니까."

* * *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가 시작되고 삼 일째 날이다.

유달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크크크크, 대박이야, 대박!"

피크 타임도 아닌데 손님들이 꽉 찼다.

특히나 이벤트 시작에 맞춰서 내놓은 떡케이크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만족스러워하는 손님들의 모습은 이벤트를 취재하는 종편 방송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

유달은 이 모든 공을 장미란에게 돌렸다.

"역시 미란 씨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이벤트 시작과 동시에 떡케이크를 내놓길 잘한 것 같습니다.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몰려들고, 게다가 아주 적절하게 방송국에서 촬영도 왔고요."

"운이 좋아서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았을까요? 카메라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이런 상황을 연출했을까요?"

유달은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미란 씨는 무섭도록 같은 편인 게 다행인 사람입니다. 저에게도 다음 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란 씨와 다시 한번 영혼의 파트너십을 맺고 싶습니다."

"……."

"싫으신 모양이군요."

장미란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 생에는 조용히 살고 싶네요. 범죄와 얽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에요."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도 이번 생은 저하고 끝까지 가실 거죠?"

"유달 씨 하는 거 봐서요."

"헐, 불안하게 왜 이러십니까? 다른 건 몰라도 만복이의 박 카페는 이겨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이에요. 저도 유달 씨만큼이나 지는 걸 싫어해요.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지요. 무슨 수를 써서든지 박 카페를 물리치고, 최고의 사주 카페 타이틀을 쟁취해야지요."

"아주 훌륭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리고 큰 성공에는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웬수 같은 하늘이 우리 편 같습니다."

유달은 방송국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벤트를 담당한 종편 방송의 PD가 아는 사람이다.

예전 정세리 사건 때 흉가에서 만났던 미스터리 끝판왕의 최수진 PD였다.

그녀는 함께 온 스텝들과 함께 굿 카페에서 제공한 떡케이크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장미란이 유달을 돌아보며 말했다.

"인터뷰 잘해야 해요.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요. 아무리 안면이 있는 사이라도 무조건 편집해 주지 않아요. 저들은 인정보다 시청률이 먼저예요."

"방송국 놈들의 습성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신 바싹 차리고 인터뷰에 임하겠습니다."

"저는 최 PD하고 이야기하면서 호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볼게요. 그래야 인터뷰할 때 유달 씨가 조금은 편해질 거예요."

"방송국 놈들… 아니, 분들에는 떡케이크가 무한 제공이라고 꼭 알려 주십시오."

"당연히 그럴 생각이에요."

장미란은 최수진 PD가 앉아 있는 자리로 향했고, 한아름이 유달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유달에게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 받으세요."

"뭔데?"

"즉석복권이요. 제가 어젯밤에 꿈을 너무너무 잘 꿨어요. 이번에는 분명 당첨될 것 같아요."

"정말!?"

유달은 반색하며 그녀가 내미는 즉석복권을 받았다.

"사장님은 하늘에 지은 죄가 너무 커서 로또는 물 건너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 꿈이 너무너무 좋아서 즉석복권 정도는 맞을 것 같아요."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우리 저쪽 가서 긁어 볼까?"

"그래요, 사장님."

유달과 한아름은 행여 부정 탈라,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구석으로 향했다.

유달은 평소 지니고 다니는 플라스틱 동전을 꺼냈다.

그는 복권 마니아였다. 진짜 동전이 가장 잘 긁히지만, 잔돈 떨어지는 소리조차 참지 못하는 그는 어쩔 수 없이 장난감 동전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야!"

"저도 그래요. 사장님……."

한아름의 들뜬 표정은 유달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만약 당첨되더라도 절대 큰소리 내지 마.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얼마만 달라고 하면 곤란하니까. 알았지?"

"네, 사장님."

스윽, 스윽, 스윽…….

유달이 조심스럽게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한아름은 엄청난 금액에 당첨될 것이라 속으로 확신했다. 그녀의 능력을 써서 여러 군데의 복권방을 다니며 고른 복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당첨금이 보이는 순간,

한아름은 소리 나지 않게 손뼉 치며, 속삭임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 사장님! 1억이에요. 1억!’

그런데 유달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름이, 즉석복권을 처음이지?"

"네, 그런데요."

"즉석복권은 여러 종류가 있어. 이 복권은 말이야, 여기 적힌 당첨금을 무조건 주는 게 아니야. 이 위쪽을 또 긁어서 같은 모양 3개가 연달아 나와야 한다고."

"그, 그래요……?"

한아름은 정말 몰랐다.

"이제부터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야. 집 모양 3개가 연달아 나와야 해. 다른 모양이 나오면 꽝이라고."

새가슴인 유달은 눈을 감고 끝부분을 긁고는, 이내 손가락으로 가렸다.

곧이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떼면서 결과를 확인했다.

"오~ 집!"

유달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두 번만 더 집 모양이 나오면 1억을 받을 수 있다.

사사사삭.

"우와아~ 집!"

유달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정말 당첨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사사사삭.

유달은 재빨리 복권을 긁고, 마음을 추슬렀다.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영원히 떠난 줄 알았던 행운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며 번쩍 눈을 떴는데,

"에이~ 새……."

마지막은 날아다니는 새 모양이다.

역시나 꽝.

유달과 한아름 모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때다.

방송국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장미란이 소리쳐 유달을 불렀다.

"사장님, 인터뷰 시간이에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지요!"

유달이 꽝이 된 즉석복권을 돌려주었다.

"잠시나마 즐거웠다. 이건 네가 버려 줘."

미소 띤 얼굴로 말하던 유달이 돌아서는 순간, 한아름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꽝이야! 사장님은 대체 어떤 죄를 저지른 거냐고!’

대마신의 능력으로도 안 될 정도다.

한아름은 어이가 없어 분노까지 치밀었다.

유달은 반가운 표정으로 최수진 PD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희 카페의 떡케이크 맛은 어떠신지요?"

"최고예요! 대체 어떤 비법으로 만든 건가요?"

유달은 빈자리에 앉으면 대답했다.

"비법을 말씀드리면 비법이 아니게 되는 거죠. 이것은 굿 카페에서만 먹을 수 있는 최강의 떡케이크입니다. 대체 얼마나 맛있어서 저러나 하시는 분들은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그런데… 지금 찍고 있는 건가요?"

열기가 느껴지는 조명이 작렬하고, 방송국 카메라가 그의 바로 옆에 붙었다.

최수진은 눈웃음지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얘기하시면 돼요. 다음 질문드릴게요."

"네, 그러시죠."

"굿 카페의 사장님은 영험함이 남다르다고 하더군요. 이건 그냥 소문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경험한 겁니다."

"그때 흉가에서 있던 일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정세리 어머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낸 것도 사장님이셨지요?"

"아이, 뭘~ 쑥스럽게……."

"그래서 사장님 영험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 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가, 갑자기요?"

유달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장미란도 몰랐던 사안인 모양이다.

그녀는 최수진에게 정중히 요청했다.

"잠시 카메라를 꺼 주시겠어요. 이건 사전에 협의한 내용이 아닌데요, 최 PD님?"

방송 카메라는 촬영을 끊지 않았고, 최수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미리 말씀드리면 속임수가 있다고 시청자분들이 생각하지 않을까요?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다른 카페에서도 이렇게 진행했어요. 거부하셔도 상관은 없고요."

"그렇게 되면, 지금 상황이 방송에 나가겠지요?"

최수진이 웃는 모습은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이에 유달은 호기롭게 말했다.

"합시다! 그 테스트. 어떻게 하면 됩니까?"

"승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이 자리엔 방송국 스텝이 아닌, 억울한 사연을 가진 지원자가 계십니다."

방송국 사람들이 앉은 자리는 단체석이다.

유달과 장미란을 빼고도 5명이 더 앉아 있었다.

최수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달이 말했다.

"누군지 알 것 같군요."

"정말이요?"

"저는 헛소리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그럼, 누가 사연의 주인공인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참고로 저희가 누군지 말하기 전에 맞췄던 사주 카페는 없었어요."

"사람이 살면서 억울한 일 당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들도 모두 그러한데…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최 PD님 아닙니까?"

"!"

유달이 정답을 맞힌 듯 최수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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