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64화 (164/183)

164화. 험난한 행사

행사 장소는 2층에 있는 에메랄드 룸.

100명 정도를 받으면 무난한 중소 규모의 연회장이다.

장미란과 유달은 오전 11시,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에 거의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식전의 친목을 다지는 티타임이나 식후의 식사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박만복과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보자는 의도였다.

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오르는데, 유달은 여전히 불만인 기색이다.

"사주 카페 사장들이 몇 명이나 참가한다고 100명 규모의 행사장을 빌립니까? 이게 다 낭비입니다. 낭비."

하지만 그의 생각은 2층에 도착하자마자 바뀌었다.

"무슨 사주 카페 사장들이 이리 많지요!"

에메랄드룸 앞에는 시장터처럼 수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외형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유달과 장미란처럼 일반적인 정장을 입은 쪽과 청홍의 장군복이나 중세 시대 마법사 같은 로브 등등, 무속에 관계된 의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사주 카페 대표들은 삼삼오오 나뉘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달은 신경 쓰지 않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때다.

호들갑스러운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우리 적손님도 오셨네?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호호호호."

유달은 어쩔 수 없이 뒤돌아보았다.

"호, 혹시… 해영이 누나?"

유달은 긴가민가하는 반응인데, 그녀의 목에 걸린 인식표를 보니 확실했다.

-부산 큐피드 카페 / 양해영 대표.

유달은 인식표를 보았음에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 해영이 누나 맞아?"

"벌써 내 얼굴 까먹은 거니? 나 좋다고 만날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왜 이렇게 변했냐고? 안 좋은 쪽으로!"

"얘도 참… 직설적인 건 여전하네. 내 나이가 있잖아? 아이 둘 낳고, 마흔 넘어서 이 정도면 선방한 거지."

"조금만 더 선방을 하지~"

이어 둘은 진심으로 반가움이 느껴지는 포옹을 했다.

유달의 고향은 무당촌이라 불렸던 강원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쌍꺼풀 진 커다란 눈에 유난히 하얀 피부.

단정하고 맵시 나는 여고생 교복을 입고 다녔던 양해영은 남자아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누나는 강원도의 겨울이 춥다고, 따듯한 부산으로 시집갔잖아. 아주머니가 누나는 절대 무당 안 시킨다고 엄청나게 치성 들였는데… 결국엔 무속인의 일원이 됐네."

"첫째 낳고 나서 무병이 심해졌어. 나 아픈 건 참을 수 있겠는데, 아기가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서 어찌할 방도가 없었지. 지금은 괜찮아. 남편도 이해해 주고, 애들도 잘 크고 있어."

유달이 우울해지는 분위기를 떨치듯 말했다.

"해영이 누나, 애가 둘이나 있는 유부녀가 옷차림이 그게 뭐야? 하나도 안 귀여워."

양해영은 할로윈 데이에 어린애들이나 입을 법한 마녀 복장 한 모습이다.

"내 카페는 타로가 전문이야. 대학가 근처라 젊은 손님들이 많아. 애 둘 키우려면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그거랑 옷차림이 무슨 상관인데?"

"너 몰라?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이벤트에는 종편 방송도 붙었어. 이 정도는 입어 줘야지 카메라 받고, 카페 홍보도 할 수 있단 말이지."

"이게 뭐라고 종편까지 붙었는지 모르겠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이번 이벤트 성공하면 사주 카페 매출 올라가고, 무속에 대한 안 좋은 인상도 바뀔 수 있어. 그러니까! 달이, 너 제발 사고 치지 마."

유달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내가 무슨 사고를 친다고 미리부터 경고야?"

"어디서 오리발일까? 내가 일일이 읊어 줘? 무당촌의 사건·사고 99%는 너하고 만복이 짓이었잖아. 제발 대무당 적손의 체통을 지켜 달라고."

"……."

곧이어 양해영이 장미란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옆에는 누구?"

사귀는 여자가 아니냐는 눈빛이다.

"우리 가게 매니저야. 미란 씨, 인사하세요. 여기 계신 누님은 제가 한때 흠모했던 여신이었는데, 지금은 동심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미란입니다."

"반가워요. 대책 없는 사장 만나서 고생이 많지요?"

"팔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장 속 편한 생각이지요. 달이가 얼마나 무모하고 대책이 없었냐면……."

양해영이 옛날이야기를 꺼내려는 때다.

-행사가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참석자분들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밖에 있던 참석자들이 연회실 안으로 들어갔다.

양해영이 자신의 인식표를 보여 주며 말했다.

"달이, 아직 접수 안 했구나?"

"그런 걸 꼭 해야 합니까? 모양 빠지게 시리……."

"하라면 해!"

양해영은 유달을 접수대 쪽으로 등 떠밀었다.

여자 도우미가 다소곳이 인사하며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지역하고 카페명을 말씀해 주세요."

유달이 귀찮아하기에 장미란이 대답했다.

"서울에 있는 굿 카페요. 2명 참석 통보했어요."

"유달 대표님하고, 장미란 매니저님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도우미가 목에 거는 명찰을 찾아 내밀며 말했다.

"두 분은 1번 테이블에 앉으시면 됩니다."

양해영이 손뼉 치며 좋아했다.

"잘됐다! 나도 1번 테이블이거든."

그녀는 유달과 장미란을 양쪽으로 팔짱 끼고는, 기분 좋게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100석 규모의 에메랄드 룸.

행사를 주관하는 잡지사가 신경 써서 준비한 티가 났다.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앞쪽에는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8명 정도라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쭉 깔려 있었다.

1번 테이블은 무대와 가까운 앞쪽이다.

유달은 오해영에게 끌려가면 내부를 살펴봤는데, 박만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본행사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참석자분들은 서둘러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유달과 장미란, 양해영도 1번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고는 미리 와서 앉아 있던 3명의 사주 카페 대표들과 간단히 눈인사했다.

양해영이 유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딱딱한 얼굴이야?"

"제가요?"

"그래? 입 꽉 다물고, 눈에 바싹 힘주는 있는 모습이 화가 난 표정 같기도 하고 말이야. 너는 이런 행사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상태입니다. 장사가 워낙 잘돼서 약간 피곤한 것뿐이지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혹시 저기 만복이 아니야?"

"!"

유달이 재빨리 출입문 쪽으로 고개 돌렸다.

최고급 정장을 입은 박만복이 백시연과 함께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지정된 자리를 찾아서 걸어오는데, 공교롭게도 유달과 같은 테이블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박만복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빈자리에 앉았다.

하필이면 남은 자리가 유달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는 위치다. 그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일부러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는데, 양해영이 박만복에서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혹시 만복이 아니니?"

박만복은 흠칫하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누구신지요?"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고개를 젓는 박만복은 정말 모르겠다는 기색이다.

이에 양해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목에 건 인식표를 잘 보이게 들어 보였다.

"이러면 알겠니?"

"무당촌의 해영이 누나?"

"맞아… 그런데 섭섭하다? 너는 누구와 달리 똑똑한 놈이었는데, 어떻게 짐작도 못 하는 반응이니?"

"누나, 똑똑한 것도 한계가 있어. 부산으로 시집가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만해라. 나는 지금의 삶에 너무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너희들은 왜 서로 모르는 척하는 거야? 만날 둘이 붙어 다니며 놀았잖아?"

양해영은 유달과 박만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가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유달이 귀찮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누나도 올곧은 내 성격 잘 알잖아? 나는 인간 같지도 않은 것하고는 상종을 안 해."

박만복도 똑같이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누나, 나 이제 저놈하고 친구 아니야."

"너희들 또 싸운 거니?"

양해영은 그들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무당촌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제발 철 좀 들어라, 이것들아. 어떻게 예전이랑 변한 게 하나도 없니? 어서 악수하고 화해해."

유달은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아이고, 내가 그때처럼 어린아이도 아니고……."

빡.

양해영은 가차 없이 유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누나? 아퍼~"

"또 맞아 볼래?"

양해영은 위협하듯 손을 또 치켜들었다.

순간, 유달은 옛날 일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조용한 누나였지만, 친구들끼리 싸우는 것 등으로 혼낼 때는 되게 무서웠었다.

스윽.

유달이 승복의 뜻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매우 불만인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왜 나만 때리는 거야?"

"걱정하지 마. 만복이도 때려 줄 거니까."

벌떡.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박만복이 거부의 뜻을 밝혔다.

"누나, 이러지 마. 나는 누나가 함부로 손찌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

쩍!

기술명 등짝 스매싱.

아이 둘을 키운 엄마의 손길이라 찰진 소리가 났다.

이에 장미란과 백시연은 놀랍고도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유달과 박만복을 폭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양해영이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악수하고 화해해."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둘은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양해영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며, 유달과 박만복이 억지로 악수하는 순간이다.

-화아아앙~!

둘의 신기가 충돌하면서 거센 회오리가 일었다.

이는 바로 실체화되어 보통 사람도 느낄 수 있는 강한 바람으로 돌변했다.

화아앙~.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행사장에 있던 무당들은 놀라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실내에서 회오리를 동반하는 바람이 생길 수는 없다.

유달과 박만복이 악수하며 서 있는 1번 테이블에서 시작된 돌개바람은, 그 위력이 더욱더 강해지며 범위도 넓어졌다.

챙그랑.

테이블 위의 유리잔과 접시가 줄줄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제대로 눈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사태를 만든 둘은 전혀 양보의 기색이 없다.

"만복아, 어서 손을 놔야지? 이러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날아가고 개판 되겠어."

"무슨 소리야? 너부터 손을 놔야지. 먼저 신기를 발산한 건 너잖아."

"이것들아, 그만하라고!"

짝! 짝!

양해영이 등짝 스매싱을 펼쳐도 소용없다.

둘의 양보 없는 기 싸움은 계속되었고, 테이블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거세졌다. 최고의 사주 카페를 뽑는 행사는 시작도 못 하고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 *

서울 중심부에 있는 동방 호텔.

켄달은 제시카 무리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제임스는 왜 안 온 거지?"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켄달의 인상이 구겨졌다.

"무슨 약속?"

"사주 카페 사장들이 모이는 이벤트 행사라고 합니다. 빠질 수 없는 자리라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켄달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때다.

"주교님!"

제시카가 다급히 켄달의 앞을 가로막았다.

스위트룸을 지켜야 하는 경호원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아니다. 어떤 불청객이 침입했는지 나도 보고 싶군."

제시카 무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

켄달의 경호원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보통 경호원이 아니다. 용병 집단 블랙에서도 특별히 선발된 인원이었다.

끼익, 끼익…….

미세한 마찰음이 서재 쪽에서 들려왔다.

서재 문은 열려 있고, 누군가 안에 있다.

회전의자를 등지고 앉아 있는데, 검은색 머리 윗부분이 보였다.

켄달이 서재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스윽.

곧이어 회전의자가 돌아가고, 불청객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모두가 의아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막강한 실력을 지닌 경호원들을 모두 제압하고, 여유롭게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이는 여고생 정도의 나이 때문이다.

켄달은 그녀를 어디서 봤는지 금방 기억해 냈다.

"너는 굿 카페서 일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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