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부적의 힘
윤소담은 재빨리 시선을 회피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였다.
한아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려움과 후회, 깊은 절망 등등 온갖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며, 이는 곧 몸의 반응으로 나타났다.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데,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고, 손이 너무 떨려서 수도꼭지를 잠글 수도 없었다.
곧이어 한아름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수돗물 아껴. 사장님은 공과금 많이 나오는 거 싫어해."
"아, 아, 알았어……."
윤소담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세면대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녀는 한아름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한아름은 그녀의 귓가에 바싹 입을 대고 속삭이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사장님이 뭘 잘못했지?"
"자, 자, 잘못 없어……."
"그런데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내 즐거움을 방해하는 거지. 이상하잖아? 사장님은 잘못이 없는데, 너는 왜 여기서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거냐고. 말해 봐?"
윤소담의 목소리는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내, 내,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다, 당장 이 카페에서 나갈게."
"그건 당연한 거고. 나는 지금 다른 걸 묻고 있잖아? 너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어. 그런데 너는 반성도 하지 않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사장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대체 왜 그런 거냐고?"
그녀는 꾸며 낸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세상의 규범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나만 행복하면 되는 것이고, 그걸 방해하는 게 나쁜 놈이지. 나만 그러는 게 아니야? 누구나 그런 마음일 거라고. 단지 마음이 나약하여 못 하는 걸, 나는 실행에 옮긴 것뿐이라고."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세상의 규범 따위는 상관없이 자신만 잘 살면 되는 거구나. 그것을 막는 자가 나쁜 놈이고… 고개 들어."
윤소담은 한아름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세면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한아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소름 끼치도록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는 마치 쓰러진 먹잇감을 앞발로 짓누르며 군침 흘리는 포식자의 모습과 흡사했다.
윤소담은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아름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계속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금 밖에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 사장님께 잘못했다고 사과해야지."
"머리가 좋네? 그러니까 한국대에 들어갔겠지… 그리고 또?"
윤소담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만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지, 열심히 머리 굴리며 대답했다.
"여기 사장님 말대로, 내 잘못을 밝혀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생님의 원한을 풀어 드릴 거야."
"그렇지. 진작에 그랬으며 내가 나설 일도 없었잖아. 인간은 막장까지 몰려야 말을 듣는 동물이구나."
한아름은 애완견을 다루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게 아니지? 우리 사장님이 진심이란 말을 좋아하더라고. 부모님이 잘나서 법적인 처벌은 면할 것이고,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에서 몇 년 있다가 돌아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 것 아니야?"
"!"
윤소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고스란히 들킨 것이다.
꽉.
갑자기 한아름이 윤소담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며 뒤로 잡아당겼다.
휘청.
윤소담의 목이 뒤로 크게 꺾였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통째로 뽑힐 듯 고통스러웠지만,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고통과 두려움을 동시에 참는 표정으로, 제발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한아름이 명령하듯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목숨은 목숨만으로 갚아야 하는 거야. 진실을 밝히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
‘바로 자살하면 사장님이 매우 찝찝해하실 거야. 외국으로 가서 2년 뒤로 할까? 세상이 너에 대해 잊을 때쯤 생을 마감하는 게 좋겠네. 곱게 죽을 수 있는 약은 안 돼. 최대한 잔인하게 몸이 망가지는 방법을 선택해.’
"제, 제발……."
윤소담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처벌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목숨을 취한 값에는 이자가 붙게 돼. 너를 이렇게 키운 부모도 벌을 받아야겠지? 죽기 전에 부모를 원망하는 유서를 집으로 보내. 평생을 후회하며 피폐한 삶을 살 수 있게 말이야.’
윤소담은 거부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느끼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스윽.
한아름이 움켜쥔 머리카락을 놓아주며 말했다.
"다시 씻어야겠네? 그런 상태로 나갈 수는 없잖아."
거울이 비친 윤소담은 눈물범벅인 얼굴이었다.
촤르르.
그녀는 다시 물을 틀고 세수를 했다.
정신이 바짝 들면서, 방금 있었던 일이 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으며, 귀신들의 목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환청과 환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윤소담은 조심스럽게 한아름을 돌아봤는데,
"소, 손님… 괜찮으세요?"
그녀는 화장실에서 처음 봤던, 청순하고 나약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윤소담이 용기 내어 말을 붙였다.
"혹시 좀 전에 저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말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변해서……."
한아름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아, 아니요? 저는 화장실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갑자기 들어와서 막 우시는 거예요. 저는 무슨 일인가 하고 지켜봤던 것이고요."
"정말이요?"
"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운 내요."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다.
윤소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어서 나가 보세요. 사장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 같으니까."
한아름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순간, 윤소담은 꿈이나 환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 * *
굿 카페의 계산대 앞.
유달과 장미란이 대책 회의를 했다.
독을 품고 찾아온 윤소담이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란 씨, 영업 방해로 신고할까요?"
"일만 크게 만들 것 같은데요. 경찰이 출동해서 난리를 치는 게 윤소담의 노림수일 수도 있어요."
"세상에 저런 독종이 있었다니… 사내새끼면 쥐어패서라도 버릇을 고쳐 놓았을 것인데."
"윤소담은 자신의 처지를 십분 활용해서 상대를 괴롭혀요. 자신의 어떤 점이 유리하고, 상대의 어떤 점일 불리할지 계산해서 행동하지요. 섣불리 대응하지 말고, 지금은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에요."
"어우, 어쩌다가 저런 게 나한테 걸렸을까."
유달이 난감함을 금치 못하는 때다.
또각또각.
화장실에서 나온 윤소담이 계산대 쪽으로 다가왔다.
유달과 장미란은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는데, 풀썩.
갑자기 윤소담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성폭행은 없었다고 경찰에 자수하고, 다시는 여기에 찾아오지 않겠습니다."
유달은 덜컥 의심부터 앞섰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누군가 카메라로 찍고 있고, 내가 괴롭히는 것처럼 꾸미는 거 아니야?"
그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른 손님은 없었다.
"정말 제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요. 정 못 믿겠으면, 여기로 경찰을 불러 주세요. 제가 모든 걸 밝힐게요."
"아하, 이런 식으로 경찰을 불렀다가, 갑자기 내가 괴롭혀서 무릎을 꿇었다고 태세 전환하려는 거지? 나도 한국대 출신이야.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상황을 지켜보던 장미란이 물었다.
"정말로 반성하고 있나요?"
윤소담은 무릎 꿇은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원준 선생님의 성추행은 없었다고 밝히고, 무고에 대한 죗값도 치를 건가요?"
"네, 반드시 그럴게요. 믿어 주세요."
"그렇다면, 목격자였던 송채영 양이 왜 진술을 거부했는지 말해 줘요."
"……."
윤소담이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장미란은 실망했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우리보고 믿어 달라는 거예요? 정말 임원준 선생님의 무고를 밝힐 마음이 있기는 해요? 유달 씨의 의심처럼 또 무슨 수작을 꾸미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말할게요. 그 사건이 있기 전에 채영이의 아버지가 우리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유달이 확신을 하며 끼어들었다.
"아주 뻔한 스토리였구만! 아버지의 병원비를 미끼로 목격자를 협박했던 거네요."
장미란이 부정적으로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채영 양의 아버지가 입원했던 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이었어요.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가셨고요."
"예?"
"아무래도 반대의 상황 같네요. 제가 채영 양을 조사했는데, 그녀는 심한 가정폭력의 희생자였어요."
"헐, 이런 반전은 싫은데… 그렇다면 윤소담이 채영 양이 아버지를 죽일 수 있게 도와준 건가요. 그걸 미끼로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도록 협박한 것이고요."
"글쎄요. 채영 양 아버지의 죽음이 갑작스럽기는 했어요. 하지만 채영 양은 존속 살인을 저지를 극단적인 성격이 아니에요. 그리고 윤소담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그런 짓을 도울 리 없고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들어 볼까요?"
장미란의 눈총을 받은 윤소담이 입을 열었다.
"우, 우연이었어요. 나는 채영이를 놀리려고 아버지를 죽여 줄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며칠 뒤에 진짜 채영이 아버지가 죽었어요.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병원에서는 의료 과실은 아닌지 내부 조사까지 했고요."
"채영 양은 당신이 그런 줄 알았겠네요?"
"네, 저는 사실대로 말하려 했는데, 저를 두려워하는 채영이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 네가 싫다고 하지 않아서 죽였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를 발설하면 너하고 다른 가족도 죽이겠다고 했고요."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채영 씨를 당신 마음대로 부렸겠네요?"
"……."
"어쨌거나 사실대로 말해 줘서 고마워요. 지금 바로 경찰서로 가서 성추행의 무고함을 밝혀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윤소담은 조용히 일어나서 카페를 나섰다.
딸랑딸랑.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달은 의아함을 떨치지 못했다.
"갑자기 일이 잘 풀려 후련하면서도 찝찝하네요. 정말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는 걸까요?"
"정말로 반성하는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모습은 확실해요."
"희한하네요? 엄청나게 독을 품고 와서 걱정했는데,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개과천선하다니요?"
때마침 한아름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름아, 잠시 이리 와 봐."
유달이 그녀를 불러 물었다.
"화장실에서 무슨 일 있었니? 독기 품고 나를 찾아왔던 여자 말이야."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그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대답하는 때다.
딩딩딩딩딩딩.
띠리링, 띠리링.
한아름과 유달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됐으니까, 전화 받아."
유달은 한아름을 보내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가 마뜩잖게 여기는 백시연의 전화였다.
"왜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그쪽은 영업 안 해?"
-확인받을 게 있어서요.
"무슨 확인?"
-잡지사에서 연락 왔지요? 사주 카페 대표들을 모인 자리에서 이벤트 세부 사항을 알려 주는 거 말이에요.
"미란 씨에게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왜?"
-그때 제임스도 박 카페 대표로 참석할 거예요.
유달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만복이 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웰컴! 마음 단단히 먹고 오라고 해. 무당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목을 쳐 줄 테니까."
-나는 그 불행한 사태를 막고 싶은 거예요. 얼마 전에 제임스가 이모님을 도와준 적 있죠?
"그런데……."
-제임스는 그 일에 대한 보답으로, 사주 카페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하길 원해요. 물론 유달 사장님은 제임스를 건드릴 수 없고요.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아?"
-제임스가 아니었다면 이모님이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에 대한 보답으로는 소박한 것 같은데요? 그냥 제임스를 못 본 척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요. 그 정도 고마움은 표시할 줄 알았는데.
"알았어. 이번 한 번뿐이야……."
유달은 부글부글 끓는 심정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까악~!"
"축하해, 아름아! 정말 축하해!"
창가 자리에서 전화를 받던 한아름과 송보름은 펄쩍펄쩍 뛰며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데, 그리 좋아서 방방 뛰는 거야?"
유달의 물음에 송보름이 대답했다.
"아름이가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 예선 통과했어요. 공중파에서 하는 결선에 나간다고요!"
"그래?"
유달은 기쁜 마음이 드는 한편, 불안감도 밀려왔다.
그녀가 공중파 방송을 타게 되면 박만복에게 정체를 들키기 때문이다.
유달은 기쁘고 대견한 마음만 표현했다.
"축하해, 아름아. 열심히 노력하더니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한아름이 잽싸게 뛰어와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건 모두 사장님 덕분이에요. 제가 성공하면 꼭 은혜 갚을게요."
"은혜는 무슨… 방송은 언제 나오는 거야?"
"2주 뒤에 생방송으로 진행한대요."
"생방송… 그래, 다른 건 없고, 방송에 나갈 때까지 내가 준 부적은 반드시 가지고 다녀. 알았지."
"네, 그럴게요. 사장님이 주신 부적의 힘은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
유달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준 부적은 행운과는 관계없다.
대마신의 기운을 감추는 데 특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 * *
삼성역 근처의 특급 호텔.
로비 출입문 도착한 유달은 짜증스러운 반응이다.
"돈지랄 제대로 하네요. 사주 카페 이벤트 설명하는데, 특급 호텔이 웬 말입니까?"
함께 온 장미란이 대답했다.
"후원이 빵빵하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별로 나쁘지 않은데요?"
유달은 그 후원을 박만복이 하여 불만이었다.
"제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확실하게 말려 주십시오."
"걱정 마요. 저번에 썼던 마취총도 가져왔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들어가실까요?"
"그래요. 마음을 차분히 하고 따라오세요."
"알겠습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반드시 참아야 한다! 꼭 참아야 한다……."
유달은 주문을 외우듯 참자는 말을 연발하며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