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최악의 독종
토요일 오전, 굿 카페.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귀차니즘의 대명사인 유달이 웬일로 카페 청소를 다 하고 있었다.
하도 눈치가 보여서 건성으로 한번 청소하는 척하는 게 아니다. 창문과 바닥, 테이블까지, 미친 듯이 쓸고 닦으며 광이 날 정도로 문질러 댔다.
그런 유달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굿 카페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아직 영업시간 전이라 손님은 없다.
강세훈이 주방 정리를 끝내고 나오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사장님이 청소하는 모습을 처음 봅니다. 그것도 저리 열심히요."
장미란이 맞장구쳤다.
"나도 처음이야. 혹시나 해서 사장실을 살펴봤는데, 거기도 놀랄 정도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어. 유달 씨가 갑자기 청소에 관심을 가질 리 없고,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송보름에게 향했다.
오늘은 주말이라 학원이 쉬는 날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유달과 함께 지냈으니, 뭔가 알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에 송보름이 짐작이 간다는 듯 심각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아마도 대형 사고를 친 것 같아요. 예전에도 저런 적이 있었어요. 사장님 몸이 엉망에다가 피범벅이었는데요. 검을 나한테 주면서 치우라고 했어요. 다시는 검을 잡지 않겠다고요. 그때도 열심히 청소하더니, 사장실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어요."
한아름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이틀 전에 기획사에서 조폭들과 심하게……."
장미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니야, 아름아. 그때 일은 신경 쓰지 마. 그런 놈들은 더한 짓을 당해도 싸."
이어 그녀는 유달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송보름에게 물었다.
"얼마나 오래갈 것 같아?"
"사고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요. 저런 기세로 청소한다면, 한 달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데요."
"흠……."
장미란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자신만이 방식으로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기는 한데,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장미란은 창가 자리를 청소하는 유달에게 다가갔다.
사사사사사삭.
그는 입을 꽉 다물고 열심히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장미란은 지나가다 본 것처럼 물었다.
"테이블 뚫리겠네요? 무슨 일 있어요?"
유달이 테이블을 닦는 손길을 멈췄다.
그러고는 손에 쥔 행주를 내던지듯 테이블에 내려놓고 소파에 풀썩 앉았다.
"저는 지옥에 갈 겁니다."
"……."
유달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장미란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대꾸했다.
"예전부터 천국과는 먼 삶이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혹시 나상만의 조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건가요?"
순간, 유달의 눈빛이 달라졌다.
"제가 왜 그 새끼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야 합니까? 나는 나상만, 그놈을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입니다. 미안한 마음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분노의 청소질을 하고 있나요? 보름이가 그러는데, 그런 행동은 사고를 친 후에 보이는 후회 같은 것이라고 하던데요."
"짜증이 폭발해서 그렇습니다."
"왜요?"
유달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세상에 지옥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도 아주아주 약간의 기대 같은 게 있었지요. 그래서 정의로운 일에도 관심을 가졌고요. 하지만 이번 일로 완전히 도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엔 만복이와 동급이 되었네요."
"여기서도 박만복이 나오네요?"
"그놈의 지옥행은 기정사실입니다. 내가 천국에 올라가면서 지옥에 있는 그놈을 신나게 놀려 주려고 했는데… 다정히 손잡고 지옥 생활하게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짜증 나는 건 말이지요. 내가 그놈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겁니다! 씹어먹어도 분이 안 풀리는 놈인데 말이지요."
"이모님이 납치당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잖아요?"
기획사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정확한 내용과 결과는 굿 카페에서 장미란만 알고 있었다.
"제 일생일대의 치욕입니다. 그놈은 분명 이를 미끼로 뭔가를 요구할 겁니다. 나는 은원 관계가 확실한 무당이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하고요. 그놈 덕분에 이모가 살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 말입니다."
"좋게 생각해요. 어떤 희생을 치르든 이모님이 무사해서 다행 아닌가요?"
"그렇지는 하지요. 그래서 그나마 제가 청소하면서 멘탈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 천국 가는 거 포기하지 말고요. 나쁜 일보다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면 되지 않나요?"
유달이 고심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게 확실한 공식 같은 게 없습니다. 어떤 놈은 지옥이 확실한 것 같은데, 승천하고요. 또 어떤 이는 천당행이 분명하다 싶은데, 지옥으로 떨어지고요. 죗값과 선행을 플러스마이너스로 따져서 커트라인 치는 것인지, 큰 죄를 지으면 무조건 지옥행인 것인지, 제가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가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를 믿으세요. 사람이 죽으면 평생 지은 죄와 선행의 무게를 달아요. 죗값이 더 무거우면 지옥. 선행을 더 많이 했으면 승천하는 거지요."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도 지옥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다는 건가요?"
"그럼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요. 그런데 무조건 죗값만 따져서 지옥으로 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가 그렇게 매정할 리 있겠어요?"
"지금 이 상황은, 공자 앞에서 문자쓰고, 군대 면제가 특공대 나온 사람한테 총기 사용법 가르쳐 주는 것인데, 미치도록 믿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미란이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손해 볼 것 없으니까, 믿어 봐요."
"그럴까요? 마침 청소하는 것도 진력난 참이라서요. 미란 씨를 믿고 평소의 저로 돌아오겠습니다."
유달이 기운을 차리며 몸을 일으키는 때다.
딸랑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활기참을 되찾은 유달의 인상이 바로 일그러졌다.
첫 손님으로 들어온 이가 그의 후배이자, 타고난 거짓말쟁이인 윤소담이기 때문이다.
* * *
토요일 오전, 박 카페.
천천히 홀을 걷는 백시연의 마음이 심란했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헤어지고 박만복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전화해도 받지 않고, 이틀 동안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찰랑찰랑.
박 카페에도 문이 열릴 때 소리가 나는 물건을 달았다.
굿 카페처럼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할 법한 작은 종이 아니라, 무당들이 많이 쓰는 방울 뭉치였다.
순간, 백시연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박만복이 평소처럼 최고급 정장 차림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백시연은 바로 화를 내는 표정으로 변했다.
"대체 이틀 동안 뭐 하다 이제야 나온 거야? 핸드폰도 꺼져 있고 말이야. 카페 관리하고, 조직 일도 혼자 하느라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알아?"
"미안. 확실히 일을 처리하느라고… 이모님은?"
"네가 부탁한 대로 호텔까지 잘 모셔다드렸지. 그놈들이 약품을 너무 과하게 썼던 모양이야. 새벽에 가까워서 깨어났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더라고."
박만복이 가까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설명했어?"
"호텔에서 납치 시도가 있었고, 때마침 내가 지나다가 구해 드렸다고 했지. 너하고 유달 사장이 폭력 조직 하나를 지구상에서 말살해 버린 건 말하지 않았어."
"잘했어. 이래서 내가 너하고 일하는 걸 좋아한다니까. 다른 놈들의 일 처리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괜한 칭찬은 그만하고. 내가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얼마든지."
백시연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유달 사장 말이야. 내가 알아봤더니, 나상만을 죽이지 않았던데? 만약 그놈이 내 가족을 건드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놈을 끝장냈을 거야. 유달 사장 성격에 그런 놈을 살려 주다니 상당히 의외였어. 살인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정의로운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달이도 당연히 죽이고 싶었겠지.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그놈은 그럴 수 없는 몸이거든."
백시연은 호기심이 동한 표정이다.
"왜?"
"예전에 사고를 쳤던 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놈한테 살생이 허락된 사람은 나밖에 없어. 다른 사람은 죽이고 싶어도 못 죽여. 물리적으로 불가하다는 의미는 아니야. 죽일 수는 있지만,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계속 나를 궁금해지게 만드네. 만약 제임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데?"
"그때는 달이가 저승사자를 만나게 되지."
"죽는다는 뜻이야?"
"그렇다고 봐야겠지? 인간의 몸으로 저승사자의 부름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
백시연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유달 사장도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네. 대마신과 맞서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고, 사람을 죽이면 자신도 죽게 되니 말이야. 이걸 잘 이용하면 유달 사장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도 있겠는데……."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놈을 자극할 생각은 하지 마. 그놈이 같이 죽자고 덤벼들면, 우리 조직이나 대마신도 무사하지 못할 거니까."
이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특별한 건은 없었어? 조직 일은 빼고."
"아주 중요한 게 있었지."
"뭔데?"
백시연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어. 최고의 사주 카페를 선정하는 이벤트 말이야. 일정하고 세부 사항이 정해졌는데, 유명 사주 카페의 대표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고 싶다고 하네?"
"그렇게 하라고 해. 뭔가 문젠데?"
"정말 몰라서 물어? 너하고 유달 사장이 만나면 칼부림 나잖아? 내가 대신 대표로 나간다고 할까?"
"아니, 내가 나간다고 해. 이번 이모님 일로 달이는 나한테 빚을 졌다고 생각할 거야. 무엇을 부탁할까 고민했는데 잘됐네. 사주 카페 사장들 모임에서 나를 헤치지 않는 걸 조건으로 걸어야겠어."
백시연은 손해 보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좀 더 큰 걸 요구해야지? 방금 말한 건 너무 간단하잖아."
"이모님은 나한테도 중요한 사람이야. 달이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나섰을 거야. 그까짓 일로 생색내고 싶지 않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혹시 모르니까 전화로 확인해. 그놈은 자기가 입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니까."
* * *
굿 카페의 창가 자리.
윤소담은 용서를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녀는 영혼의 목소리가 들려 잠도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였지만 진실을 밝힐 마음이 조금도 없다.
이전보다 더한 독기를 품고 찾아왔다.
"나는 절대 당신한테 안 져. 귀신의 목소리보다 더한 것이 들려도 사실을 말하지 않을 거야."
유달이 짜증을 참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러다 너 죽는다."
"맞아. 나 여기서 죽으려고 왔어. 손님이 죽은 카페라고 소문나면 참 재미있겠네?"
"헐……."
유달은 정말로 질렸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많은 독종을 상대했지만 윤소담이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이내 그는 타이르듯 말했다.
"까불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 응?"
"싫어. 귀신 소리를 멈춰 주든가. 내가 여기서 죽든가. 둘 중에 하나야."
그런 협박이 유달에게 통할 리 없다.
"뭐 그럼, 뒈지시든가? 죽겠다는 걸 누가 말려."
유달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계산대로 돌아와 벌컥벌컥 냉수부터 마셨다.
장미란도 역시 질렸다는 반응이다.
"우리의 예상이 제대로 빗나갔네요. 정말 여기서 죽을 것 같은 각오인데요?"
"죽건 말건 무슨 상관입니까?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가 지는 겁니다. 하는 짓이 꼭 아침 드라마의 악역 여자 같지 않습니까?"
유달이 찬물을 한 잔 더 마시려는 때다.
스윽.
윤소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미란과 유달은 포기하고 돌아가나 기대했는데, 아니다.
그녀는 출입문이 아닌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덜컹.
윤소담은 곧장 세면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아득해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했다.
물기가 흥건한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독기가 가득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 보자. 내가 죽으면 이 카페도 망하는 거야. 사주 카페 사장 너… 완전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먼저 들어와 있던 한아름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저기요……."
윤소담은 말없이 한아름을 쏘아봤다.
그녀의 살벌한 눈빛에 순간적으로 흠칫했던 한아름이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저희 사장님은 매우 좋은 분이세요. 힘들게 하지 마시고 돌아가시는 게 어떤가 해서요."
"미친년……."
윤소담이 차갑게 무시하며 다시 세수하려는 때다.
"이년, 하는 짓이 귀엽네?"
"뭐? 손님한테 이년!"
사납게 인상 구기며 고개 돌린 윤소담은 사색이 될 정도로 놀랐다.
"!"
한아름의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