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61화 (161/183)

161화. 하루살이파 최후의 날

박만복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백시연에게 말했다.

"내리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

백시연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나만 쏙 빼는 거지?"

"다른 뜻은 없어. 이모님을 구해 오면 바로 여기서 떠나. 저런 놈들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

통제 불가능으로 낙인찍힌 인원은 모두 6명.

그들 모두 제시카처럼 용병 부대 블랙 출신이다.

철창에 갇혀 있던 맹수들이 야생으로 나온 듯 생기가 넘치는 반응이다.

"여기서는 맘대로 날뛰어도 된다는 거지?"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겠어. 제임스가 허락했으니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야지."

"나하고 똑같은 생각이네?"

단단히 벼르는 그들에게 제시카가 주의 주었다.

"총기는 되도록 사용하지 마. 안에 있는 놈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좋은데, 우리의 흔적을 남기면 안 돼."

"제시카, 안에 있는 놈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잔인한 갱이라고 들었는데, 우리가 너무 불리한 거 아니야?"

"걱정할 필요 없어. 이곳의 갱들은 총기류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정말이야?"

"총을 쓴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잖아?"

"그렇지는 하지."

"오늘은 최대한 제임스의 말을 따라 주자고. 그래야 또 이런 선심을 베풀 것 아니겠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그들이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이자 제시카는 호의적인 음성으로 박만복을 불렀다.

"제임스, 우리는 준비 끝나거든?"

"알았어."

박만복은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며 백시연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이모님을 데려올 거야. 호텔 방에 모셔 드리고, 달이가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줘. 알았지?"

통통.

박만복은 자동차 지붕을 가볍게 치고, 통제 불가능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아파트 상가 건물은 뼈대만 올라갔다.

1층은 철제 가림막으로 사방을 둘러서 안을 볼 수 없게 차단했는데, 이곳이 바로 속칭 하루살이파의 비밀 아지트였다.

어떤 큰 소리가 나도 의심을 받지 않아, 불법적인 일을 은밀히 처리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공사용 작업등이 군데군데 설치된 내부.

쌀쌀해지는 날씨 때문인지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모닥불도 지펴놓았다.

납치당한 조금순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30명이 넘는 조폭들이 그녀의 주변에 있는데,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나상만의 최측근 수하이자 부두목인 김성범은 난감하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행동대장이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혀, 형님, 이번 일은 뭔가 이상합니다. 이쯤에서 관두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미쳤어? 주인님의 명령을 어기자고?"

"우리가 납치한 저 할머니가 무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혼과 소통하는 무당이 악귀를 부리는 게 분명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악귀를 이깁니까?"

부두목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시끄러워! 세상에 영혼이고 악귀 같은 게 어디 있어? 그딴 건 다 속임수라고."

"저, 저도 방금까지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행동대장이 손가락질하는 곳에 그들의 조직원 한 명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조직원은 120㎏이 넘는 거구다.

그런 그가 멱살 잡혀 끌려가듯 허공으로 떠올라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혼자 저절로 떠올랐다.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조직원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순의 주위를 포위한 상황이라 마술 같은 속임수는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컥, 커억… 켁!"

심하게 발버둥 치던 거구의 조폭이 의식을 잃는 순간, 풀썩~!

그의 몸뚱이는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형님, 또 당했습니다!"

괴이한 일을 당하며 쓰러진 이는 거구의 조폭만이 아니었다. 조금순이 의식을 잃고 묶여 있는 의자 주변에는 아홉 명의 조직원들이 둥그렇게 쓰러져 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와 세 걸음 정도 가까이 접근하면 똑같은 꼴을 당하고 말했다.

"형님, 이건 분명 악령들이 저 무당을 보호하는 겁니다. 우리의 희생만 커질 뿐이라고요."

부두목이 인상을 구기며 대꾸했다.

"야, 이 새끼야… 너는 악귀나 악령 따위가 무서우냐? 나는 주인님이 성질내는 게 더 무서워. 저 노인네 처리 못 하면 우리도 죽은 목숨이야. 다음!"

부두목이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다.

아무것도 뵈는 게 없다고 소문난 그들이지만, 진짜로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상대와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뭘 겁먹고 그래, 이 새끼들아? 악령이나 악귀라면 십자가나 성경책 들이대면 될 것 아니야? 여기 교회 다니는 새끼들 없어?"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다.

이에 부두목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 들어가."

행동대장이 식겁하며 반문했다.

"저, 저요?"

"내 손에 죽기 싫으면 어서 들어가라고."

"아, 알겠습니다."

행동대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사박사박…….

자신의 발소리에는 흔들리는 눈동자와 줄기 되어 흐르는 식은땀은 단단히 겁먹은 모습이다.

마침내 부하들이 쓰러져 있는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이야야야~!"

행동대장은 괴성을 지름과 동시에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돌진했는데,

-텁.

그가 휘두른 쇠파이프는 허공에서 막히고, 그의 몸뚱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조직원들과 똑같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엑! 크에엑~!"

행동대장은 쇠파이프를 떨어트리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얼마나 괴로운 상황인지는 괴로움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혀, 형님… 제발 살려……."

그는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부두목은 잔뜩 겁을 먹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풀썩~.

축 처진 행동대장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때다.

촤르르르.

입구 쪽에서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두목은 짜증이 폭발하여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아무도 들어오지 말랬잖아! 밖이나 잘 지키고 있으라고!"

"밖에서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

박만복의 대꾸 소리에 부두목이 흠칫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오는 무리는 그의 수하들이 아니었다.

"너희들 누구야?"

박만복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별로 알려 주고 싶지 않은데? 정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물어보라고."

"미친 새끼들, 우리가 누군지 알고 덤비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곧 죽을 놈들이잖아? 너희 두목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거든."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네… 담가 버려!"

"알겠습니다!"

부두목은 박만복 무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머릿수는 고작 7명이며, 여자도 섞여 있었고, 손에 든 무기도 없었다.

그런데 기운차게 대답했던 그의 부하들은 아무도 덤벼들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어서 담가 버리라고!"

이에 그의 부하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답했다.

"모,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누군가 제 발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지금 네놈들 장난 받아 줄 때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조폭들은 장난이 아니었다.

부두목 역시도 발을 떼어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발을 잡고 꼼작 못하게 하는 기분이었다.

제시카가 웃는 얼굴로 박만복에게 말했다.

"제임스, 너하고 같은 편이면 아주 편하고 든든해. 이제 우리가 나서서 저놈들을 처리하면 될까?"

"잠시 기다려. 내가 이모님을 데리고 나가면 그때 파티를 즐기라고. 어떤 짓을 해도 나는 상관치 않을 거야."

"알았어. 오늘은 제임스 말을 무조건 잘 따르기로 했어. 그러니까 어서 이모님이란 사람을 데리고 나가라고."

박만복은 조금순을 향해 다가가다가 부두목 옆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의 두목에게 전화 좀 해."

"……."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네놈의 두목에게 지금 당장 전화하라고."

박만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두목의 목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두, 우두둑…….

박만복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부두목의 목이 저절로 돌아갔다.

"크, 크악~ 그, 그만… 전화할게. 전화한다고!"

"나한테 부탁해 봐야 소용없고, 목 부러지기 전에 빨리 전화하라고."

부두목은 다급했다.

목이 점점 돌아가는 상태로 휴대폰을 꺼내어 나상만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통화는 금방 이루어졌다.

-무슨 일이야…….

나상만의 목소리도 과히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두목은 목이 꺾여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다.

그는 휴대폰을 흔들어 대며 애타게 부탁했다.

"여, 여기 연결했어… 이제 멈추라고!"

박만복이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부두목의 목이 돌아가는 걸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박만복은 부두목의 간절한 외침을 나상만이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우둑, 우둑, 우두둑.

"제발 살려 줘… 제발!"

-성범아! 대체 무슨 소리야?

"주, 주인님 이놈들 대체 뭡니까? 제, 제 제발 그만… 으아아악~ 안 돼~!"

우두둑!

풀썩~

박만복은 목이 꺾여 쓰러진 부두목을 내려다보며 휴대폰을 입가로 가져갔다.

"들었어?"

-너 누구야?

"왜 다들 내 정체가 궁금한 거지? 중요한 건, 네놈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거야. 이젠 후회해도 늦었고, 너도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야. 달이가 다시 돌아올 동안 네놈의 조직원들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듣고 있어."

박만복은 통화를 끊지 않고 부두목이 앉았던 의자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곧이어 박만복은 조금순을 묶은 밧줄을 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도와줄게. 제임스."

제시카가 웃는 얼굴에 철문을 열어 주었다.

촤르르르.

"고마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더 고맙지."

제시카가 싱긋 윙크하며 대답했다.

조금순을 안아 든 박만복이 건물 밖으로 나가고,

퉁.

철문이 다시 닫히는 순간.

"크아아악~!"

아파트 공사 현장의 상가 건물 안에선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김&장 엔터테인먼트 건물 밖.

모자를 눌러쓴 연습생들이 출입문을 살폈다.

그들은 유달이 한아름을 데리고 무사히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야구 모자를 쓴 여자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 되겠네… 우리가 들어가 보자."

후드 모자 남자는 기겁했다.

"미쳤어! 저 안에 있는 놈들은 보통 조폭이 아니라고? 좀 전에 삼촌한테 전화해 봤는데, 절대 찍힐 짓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고."

"너희 삼촌이 누군데?"

"한강파 조직원이야. 그런 삼촌도 악질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놈들이라고."

"그러니까 더 들어가 봐야지? 아름이한테 무슨 일 생겼으면 어떻게 해?"

"방법이 없다니까?"

"무슨 남자애들이 이리 용기가 없어? 아름이가 무사한지 물어나 보자고?"

"안 돼~!"

연습생들이 달려들어 야구 모자 여자의 옷을 붙잡고 늘어질 때다.

"나온다!"

"정말?"

그녀를 말리기 위해 둘러댄 말이 아니다.

유달이 검은 양복을 뒤집어씌운 한아름과 함께 김&장 엔터테인먼트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연습생들이 손짓하여 그들을 불렀다.

"변호사 아저씨, 여기요!"

유달은 연습생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한아름을 덮었던 양복을 걷어 냈다.

"아름아, 무사했구나!"

"너희들도 괜찮은 거지?"

후드 모자 남자가 긴박한 음성으로 말했다.

"서둘러 여기서 도망쳐야 해? 안에 있는 놈들이 쫓아올지도 모른다고!"

유달이 동조하며 한아름에게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희들 모두 카페에 가서 미란 씨 곁에 꼭 붙어 있어."

한아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장님은요?"

"나는 다시 안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왜요?"

"핸드폰을 깜박하고 안 가지고 왔네? 느긋하게 찾아서 갈 거니까, 어서 카페로 가."

"사장님……."

한아름은 걱정이 되는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곧이어 유달이 출입문 안으로 다시 들어서는 순간이다.

팟!

갑자기 전정이 된 듯 건물 전체에 불이 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나상만의 조직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