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59화 (159/183)

159화. 공포의 손길

나상만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유달처럼 웃긴 모양에 새까만 선글라스가 아닌, 평범한 모양에 엷은 갈색이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양복 차림이었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덥수룩한 반곱슬머리였다.

나상만은 법무팀장 있던 자리에 편안히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상만이라 합니다."

그는 호탕하게 손을 내밀었다.

과도하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지만, 깔보거나 무시하는 기색은 없었다.

유달은 삐딱하게 굴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

"사주 카페 사장 유달입니다. 지금은 옆에 있는 아름이의 법률 대리인 자격으로 앉아 있지요."

"우리 법무팀장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한국대의 전설이라 하더군요. 그놈이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리 빤히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괜한 트집이 아니다.

유달이 옆에 있는 한아름이 무안할 정도로 나상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직업병이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세상에 이런 관상이 존재할 줄이야… 태어난 사주가 어떨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군요."

"제 사주·관상 때문이군요. 당신이 사주 카페 사장이라니 이해합니다. 용한 무당들이 그러더군요. 백 년에 한 번 태어나기 힘들고, 1억 명 중에서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하는, 최고의 천운을 타고난 팔자로 하더군요."

"과연 그 무당들의 점괘가 사실일까요? 진짜배기 무당에게 확인 한번 받아 보심이 어떠십니까?"

스윽.

유달은 늘 가지고 다니는 메모지를 내밀었다.

그도 여기서 사주·관상을 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상만을 얼굴을 보는 순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하늘이 보호하는 관상이었다. 그 때문에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여겼던 것이었다.

나상만은 흔쾌히 메모지를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뭐, 그럽시다. 진짜배기 무당이라니, 제 사주가 정말 하늘의 축복을 몰아서 받은 것인지 궁금하군요."

그는 차분히 사주를 적에서 유달에게 건네주었다.

이를 받아보는 유달의 인상은 더욱 구겨졌다.

‘완전 몰빵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상만은 넘치는 자신감을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어떤가요? 사람들이 하도 좋다고 그러니까 저도 그런 줄 알지. 얼마큼이나 좋은지는 점쟁이마다 다르더군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으면 안 되는데. 최고는 아니더라도 상위 1% 안에는 들겠지요?"

곧바로 유달의 사주 풀이가 시작되었다.

"이건 하늘이 제대로 삑사리를 냈군요. 천성이 개판 중의 개판인데, 모든 복을 다 타고났습니다. 이는 도척의 사주와 비슷하군요. 중국 춘추 시대에 살았던 악인인데, 사람의 생간을 회 처먹으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는데도, 천수를 누리고 대대손손 잘 살았지요."

"매우 기분 좋은 사주이군요. 어쨌거나 점을 봤으니 복채를 드리는 예의겠지요."

지갑을 뒤적이는 그에게 유달이 말했다.

"노노노노, 현금은 사양입니다. 꺼내지 마십시오."

"그냥 약간의 성의 표시인데요?"

"제가 돈 알레르기 같은 게 있습니다. 징그럽고 소름 돋아서 정말 싫어합니다. 만약 저를 벌주고 싶다면, 돈다발을 던지면 됩니다."

"하하하하, 법무팀장 말대로 유별나시군요. 이제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지요. 위약금도 내지 않고, 새로운 계약서에도 사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유달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또한, 한아름 양은 그쪽과의 관계를 모두 청산하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겁니다."

"그리되면 우리의 피해가 너무 큰데요?"

"약간의 피해가 있더라도 조직이 붕괴하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그동안 온갖 못된 짓을 거듭하여 이만큼이나 키웠는데 말입니다."

나상만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협박하는 실력이 수준급이군요. 외려 제가 배워야 할 정도인데요?"

"그쪽한테 기회를 주는 겁니다. 내가 워낙 마음이 넓은 무당이라서요. 나와 싸워서 이득 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기지도 못할 것이고요."

"법무팀장도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그냥 요구 사항 들어주고 보내 주는 게 조직을 위한 일이라고요."

"아주 현명한 부하를 두셨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조용하게 학교들 다녔던 놈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랄한 조직의 변호사가 될지는 몰랐지만 말입니다. 그럼 우린 해결된 것으로 알고,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름아, 가자~"

"네, 사장님."

유달과 한아름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때다.

"잠깐……."

분위기가 바뀐 나상만이 그들을 부르며 말했다.

"정말 순순히 보내 줄 줄 알았나? 내가 그리 호락호락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없었어."

유달은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직을 포기하겠다는 건가? 나와 맞서는 순간, 그쪽의 천운도 끝장이라고."

"범생이들 놀음에 장단 좀 맞춰졌더니 기고만장이네? 공부밖에 모르는 한국대에서 싸움 좀 하니, 전설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었겠지."

"저기… 나는 범생이 아니었거든?"

나상만은 유달의 말을 믿지 않았다.

"대학 생활과 현실 사회가 얼마나 다른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니, 쯧쯧쯧… 아니, 한국대 놈들은 더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회의실 상석, 출입문에서 가장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사주 카페 사장, 너는 너무 건방졌어? 평생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신세로 만들어 주지."

나상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회의실 안에 있던 조폭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한아름과 유달을 구석으로 몰아 포위했다.

이에 유달은 나상만이 있는 쪽을 향해 소리쳤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나하고 싸우게 되면 그쪽의 천운도 끝장이라고?"

"저놈의 주둥이부터 뭉개 버려."

나상만의 마음은 확고했다.

이에 유달은 회의실 천정을 올려보며 투덜거렸다.

"젠장, 삑시리는 하늘이 내고, 나한테 해결을 떠넘기는 건가……."

곧바로 조폭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퍽!

유달은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을 강력한 돌려차기로 날려 버렸다.

그러고는 양복 웃옷을 벗어서 한아름에게 던졌다.

"영험함이 배인 옷이니까 뒤집어쓰고 있어. 싸움 끝날 때까지 절대 벗지 마."

이는 한아름의 각성을 막고자 하는 임시방편이다.

회의실에서 악령의 기운이 날뛰게 되면 그녀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한아름은 유달이 던진 양복 웃옷을 바로 뒤집어쓰며 쪼그려 앉았다.

유달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조폭들에게 달려들었다.

"너희들 다 뒈졌어!"

그는 기세 좋게 덤벼들었지만, 확연한 머릿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주먹과 발길질에 이내 몰매 맞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죽여도 상관없으니까, 계속 밟아!"

퍽퍽퍽퍽퍽퍽퍽…….

회의실에선 일방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나상만은 회전의자에 반쯤 누어서 회의실 탁자에 양발을 올린 편안한 자세다. 그는 깍지 낀 손으로 뒤통수를 받치며 구타하는 소리를 음악처럼 즐겼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지. 송장 치르기 딱 좋은 날 같지 않아?"

나상만의 의중을 파악한 조폭들은 더욱 강하게 발길질을 거듭했다.

퍽! 퍽! 퍽! 퍽!

그렇게 기괴하며 무자비한 폭력의 소리가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 * *

스윽.

회의실 탁자에서 발을 내린 나상만이 싫증을 느낀 표정으로 말했다.

"죽었으면 그냥 갖다 버려. 독한 놈이긴 했네? 숨이 끓어질 때까지 신음도 내지 않다니."

행동대장이 재빨리 발길질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는 쉬지 않고 유달의 몸을 밟아 대느라 숨이 매우 벅찬 기색이었다.

"헉, 헉… 아, 아직 움직이고 있습니다."

"뭐라고?"

"죄송합니다. 금방 처리겠습니다."

행동대장은 뒤에 있던 수하에게 손을 뻗었다.

"사시미 가져와."

"여깄습니다."

행동대장은 회칼을 쥐고서 바닥에 누워 있는 유달을 내려다보았다.

유달은 무릎을 끌어당겨 잔뜩 움츠린 상태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분명 인정사정없이 밟아 댔는데, 그의 몸에는 구두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왜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거야? 결국엔 내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드네… 그럼 나야 땡큐지!"

행동대장이 유달의 목을 찌르려는 때다.

"거기까지!"

유달이 얼굴을 막은 손을 거둬들였다.

너무도 멀쩡한 모습에 행동대장이 흠칫하며 물러났다.

유달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냐? 너희한테 맞은 애들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고 난린데 말이야?"

"머리는 정상이 아니구나? 하긴, 그렇게 맞고 정상이면 이상한 거지!"

화악.

행동대장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유달은 가볍게 칼을 피해 내며 놈의 얼굴을 쳤다.

툭.

손등으로 그냥 얼굴 부분 살짝 치는 정도였는데,

"으아아악~!"

행동대장은 얼굴을 부여잡고 괴성을 질렀다.

흡사 보이지 않은 무언가에게 얼굴을 물린 듯 바닥을 굴러다니며 난리를 쳤다.

"뭐, 뭐야? 우선은 저 새끼부터 처치해!"

당혹한 모습을 보이던 조폭들이 유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행동대장과 똑같이 쓰러졌다.

툭, 툭, 툭.

유달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팔이면 팔, 다리면 다리, 어깨면 어깨.

여지없이 유달이 손으로 건드린 부분을 부여잡고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은 무언가에게 계속 물어뜯기는 듯 바닥을 굴러다니며 괴로워했다.

유달은 괴이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서 와? 내가 쓰다듬어 준다니까!"

"으아악!"

"크아악~!"

유달의 손길 닿을 때마다 조폭은 예외 없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회의실에 있는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손길이었다.

"이제 몇 놈 남지 않았네? 어떤 놈부터 처리해 줄까?"

"……."

얼마 남지 않은 회의실의 조폭들은 완전히 기가 꺾였다.

이내 그들은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해! 어서 안으로 들어와!"

밖에서 다급히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 문이 안 열립니다!"

"뭐, 뭐라고!"

거짓말이 아니다.

회의실 안에 있던 한 놈이 힘껏 문을 당겨 보았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짜증스럽게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문을 부숴 버리라고, 이 새끼들아!"

"지금 망치와 소화기로 내려치고 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

순간, 안에 있던 조폭들은 귀신에 홀린 반응이다.

밖에서 문을 내려치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달이 공포의 손길을 흔들며 다가왔다.

"이제야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은 모양이네? 그런데 어쩌지? 너무 늦었어!"

"크아아악~!"

유달은 출입문 근처에 있던 조폭들을 모두 쓰러트렸다.

그리고는 바로 공포의 손길을 나상만을 향해 돌렸다.

"내가 경고했잖아? 나랑 맞서는 순간, 네놈의 천운도 끝장이라고. 하여튼 더럽게도 말을 안 들어."

나상만은 자신의 부하가 두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거기 멈추는 게 좋을 거야. 사주 카페 사장."

"내가 왜?"

"사람들은 나보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데 아니야. 나는 철두철미하게 일 처리를 하지. 만의 하나의 실패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아. 네놈이 끔찍이 위하는 사람이 동방 호텔에 있을 텐데?"

유달이 흠칫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너… 우리 이모에게 손댔다가는 진짜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는 다급히 휴대폰부터 꺼내 들었다.

이에 나상만은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벌써 그 노인네를 끌고 갔거든? 네놈은 한 가지만 결정하면 돼. 너와 그 노인네의 목숨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지?"

유달은 개의치 않고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백시연이다.

-무슨 일이죠? 유달 사장님.

"만복이 바꿔. 지금 옆에 있는 거 다 알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잠시 후, 박만복의 음성이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졌군.

"이모가 위험해."

-알았어. 끊어.

그들의 통화는 매우 짧게 끝났다.

곧이어 유달이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눈빛으로 나상만을 노려봤다.

"오늘 네놈의 조직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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