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53화 (153/183)

153화. 대법마신

피식.

박만복은 실소를 터트렸다.

"제시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하고 사주 카페 사장의 기운이 똑같다고?"

"맞아, 내가 똑똑히 봤어. 그놈은 너와 똑같아… 이 세상엔 존재할 수 없는 지옥의 기운이 느껴졌다고. 진짜 지옥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그런 모양이지……."

박만복이 제시카를 향해 다가갔다.

순간, 제시카는 움츠러드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두려움과 분노, 혹시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등의 복잡한 심경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둘의 거리는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박만복은 제시카가 앉아 있는 회전의자의 등받이를 한 손으로 잡았다.

이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박만복은 이마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 거지?"

박만복은 대수롭지 않은 듯한 목소리와 표정이다.

하지만 제시카에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위협이자 경고처럼 느껴졌다.

꿀꺽…….

제시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꼬리 내리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제임스, 너 말이야… 사주 카페 사장과 친구라는 소문이 있던데."

"친구? 보자마자 칼부터 뽑아 대는 사이를 친구라고 할 수 있나?"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게 아는 사이였다는 증거가 되지. 둘이 예전에 뭘 했던 거지?"

박만복은 아무 감흥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뭘 하긴… 그냥 지옥에 있는 악마를 불러내서 몇 가지 물어봤을 뿐이야. 궁금한 게 있었거든."

제시카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영적인 세상에 균열이 발생한 경우라면 모를까, 지옥에 있는 악마를 불러낼 수는 있는 마신의 능력자는 없어. 주교님도 불가능하다고."

"그럼 그렇게 믿든가… 왜 남의 영업장에 찾아와서 신경 건드리는 소리를 하는 거지?"

"제임스, 너의 정체가 대체 뭐야? 지옥의 힘을 가진 자가 왜 주교님 밑에 있는 거야?"

박만복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제시카~ 넌 아직도 내가 회장님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제시카의 눈이 경악하여 커지는 때다.

"둘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백시연이 사장실 입구에 서서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거의 맞붙은 그들의 자세는 오해를 살 만했다.

하지만 앙숙이나 다름없는 그 둘이 이상한 짓을 할 리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내 박만복이 상체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제시카가 생각 없이 돌아다니기에 주의를 좀 줬어. 아직 경찰 조사가 끝난 게 아니잖아. 그렇지?"

제시카가 회전의자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호텔에 갇혀 있는 게 너무 갑갑해서… 사장실이 어떤지 들러 봤다가 괜히 잔소리만 들었네."

그녀의 대답은 박만복의 말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시연의 눈초리가 변했다.

"뭐야? 너 얼굴이 왜 그리 빨개? 둘이 정말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순간, 제시카는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어머나, 들켜 버렸네… 거봐, 제임스. 시연이의 감은 못 속인다고 했잖아. 이왕 이리됐으니, 당당히 우리 사이를 밝히는 건 어때?"

제시카는 백시연이 호텔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정히 박만복의 팔짱을 꼈다.

이에 박만복이 그녀에게 눈길 주며 말했다.

"죽을래……?"

그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너 사람 차별하니? 시연이가 그럴 때는 가만있더니, 내가 똑같이 하니까, 진짜 죽일 듯이 노려봐? 아니꼽고 치사하네, 정말……."

제시카는 짜증스럽게 팔짱을 풀며 사장실을 나섰다.

"카페 구경 좀 하고 호텔로 돌아갈 거야. 쥬드 베르의 작품인데 그냥 가면 섭섭하잖아."

백시연은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제시카가 널 찾아온 진짜 목적이 뭐야?"

박만복은 그녀에게 빼앗겼던 자신의 회전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응… 달이에 관해서 묻더라고."

"유달 사장?"

"뜨거운 맛을 보고는 정신 번쩍 든 모양이야. 그 콧대 높은 자존심도 버리고, 어떻게 하면 달이를 이길 수 있는지 묻더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후후후, 그런 방법이 있으면, 내가 달이를 피해 숨어다니겠어? 이번 생은 불가능하니 다음 생을 노리라고 했지."

"그래서 제시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거구나. 어쨌거나 조심해. 제시카는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났어. 언젠가 너에게 당한 일을 복수하려 할 거야."

"그것도 이번 생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 제시카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나를 이길 수는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박만복이 책상을 정리하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정 셰프가 정말 관둔다고 해?"

"아니, 다시 노력해 보기는 하겠대. 하지만 굿 카페의 떡케이크를 뛰어넘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우리 정 셰프가 겸손을 배웠어."

"어쩔 수 없지. 더 이상의 최선은 없으니까. 우리에게 불리해진 건 없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거야. 굿 카페 역시 마찬가지고."

백시연이 박만복의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카페 일엔 그만 신경 쓰고… 주교님도 오셨으니, 대마신의 현신을 빨리 찾아야 하지 않겠어?"

"찾고 있어……."

"열심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진척도 전혀 없잖아? 오늘도 주교님이 나한테 물었다고. 그때 의식을 행하는 중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말이야."

"너에게 물었다는 건 회장님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거야. 의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의식 도중에 잘못된 것이 있었는지. 괜히 말해 봤자 우리의 신뢰만 깎여."

백시연이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대마신의 강림이 정말 이루어지긴 한 거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게… 유달 사장이 거짓말했을 수도 있잖아."

"아니, 강림이 이루어진 건 확실해. 대마신의 현신이 서울에 있는 게 느껴져. 회장님도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서울에 온 것이고."

백시연은 적극적인 눈빛으로 물었다.

"서울 어디쯤?"

"그건 모르지. 대마신의 기운은 가까울수록 강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니야. 존재의 유무만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지. 대마신의 현신이 누군지는 직접 봐야만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서울 곳곳을 뒤지면 더 빨리 찾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조금만 더 열심히 찾아보자고."

"뭐 하러? 하늘은 나한테 항상 심술을 부리지. 내가 간절히 원할수록 더욱 꼭꼭 숨겨 둔다고. 억지로 찾는 것보다 우연히 마주치는 게 빠를 거야. 그보다 어서 잡지사에 전화해 봐. 최고의 사주 카페를 선정하는 기획을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지 말이야."

"……."

* * *

굿 카페 인근 한식당.

유달과 조금순은 늦은 저녁을 함께했다.

식사는 이미 끝냈고, 차분하게 믹스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니까, 이모. 대마신의 현신이 각성을 안 한 사례가 없단 말이지?"

"대마신의 피해를 가장 줄일 방법 아니겠니. 시도는 많이 했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결국엔 본성을 드러내고 큰 재앙을 일으켰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거구나……."

조금순이 커피를 다 마시고 물었다.

"왜 갑자기 그게 궁금한 거냐? 너는 대마신이 무슨 짓을 하든 관심 없다며?"

"그냥 심심해서 물어봤어. 다 마셨으면 일어나자고요."

"잠시만 기다려 봐라."

조금순은 일어나지 말라 손짓하며 말했다.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

"뭔데? 편하게 물어."

"켄달이라는 사람이 너를 찾아왔었지?"

"아~ 켄탈 옹. 두 번인가, 우리 카페에 왔었지. 왜?"

"그자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니?"

유달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 대법마신(大法魔神)이라 부르나? 마신들이 우두머리이며, 대마신을 영접해야 하는 존재잖아. 어떤 경우에도 믿지 말라고 이모가 말했잖아."

"잘 기억하고 있구나. 걱정 안 해도 되지?"

"물론이지. 걱정 붙들어 매시고, 일어납시다."

유달과 조금순이 식당에서 나왔다.

"나는 지하철 타고 갈 거니까, 어서 가게 들어가."

"에이~ 택시 타라니까?"

"이 시간엔 지하철이 빠르더라."

"알았어. 내가 운전면허 따면, 제일 먼저 이모 드라이브시켜 줄게. 어디 가고 싶다고 말만 하면, 내가 쌩~ 몰아서 도착하는 거지."

조금순은 환하게 웃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유달은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뒤돌아 카페 건물로 향했다.

"오우, 이젠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네."

그는 뛰듯이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잠시만요~"

문이 닫히려는 승강기를 잡아타고 3층에서 내렸다.

딸랑딸랑.

유달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어깨로 카페 문을 열었다.

창가 자리에 예약석 푯말을 올려놓는 장미란이 보였다.

"뭡니까?"

"저번에 말했잖아요. 목격자가 진술을 거부해서 문제가 생긴 미제 사건이요."

유달은 퍼뜩 기억을 떠올렸다.

"제 몸신의 팩트 폭격이 필요하다던 그 사건이요? 오늘 목격자가 오기로 했습니까?"

"네, 간신히 약속은 잡았는데… 목격자가 올지 안 올지를 모르겠네요."

"대체 어떤 사건입니까?"

"성추행 관련한 사건이에요."

"헐~ 그런 새끼들은 거세를 해서 태평양 한가운데 상어 밥으로 던져 줘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추잡한 생각을 못 하지요."

"저는 피의자가 억울한 무고를 당했다고 생각해요. 성추행의 확실한 증거가 없고, 진술이 일관되고. 무엇보다 자신의 범죄를 강력하게 부인했어요."

"하이고~ 발정 난 사내새끼들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저지르고 난 뒤에 아차 싶은 거죠. 성범죄자 낙인찍히면 완전 매장 아닙니까? 성추행한 장면을 직접 보여 줘도 아니라고 발뺌했을 겁니다."

유달이 목청 높여 장담하는 때다.

-아니요! 저는 정말 그런 짓 하지 않았습니다!

한 맺힌 영혼의 절규가 카페 안에 울려 퍼졌다.

"뭐, 뭐야?"

유달은 식겁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40대 중반의 남자 영혼이 유달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유심히 바라보는 유달을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저는 정말 그런 몹쓸 짓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억울합니다.

유달이 고개 돌려 장미란에게 물었다.

"혹시 성추행 피의자가 40대 중반에 키 작고, 머리숱도 부실하고, 배가 불룩 나온 분인가요?"

"네, 맞아요. 이름은 임준원. 한빛 예술고등학교 음악과 선생님이었어요."

"하면, 이게 어떻게 된 거지요? 성추행 피의자가 왜 원귀가 되어 제 앞에 나타난 겁니까?"

장미란은 참작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임준원 선생님은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며 자살했어요."

"오 마이 갓……."

유달은 단순한 성추행 사건의 범위를 넘었음을 깨달은 반응이다.

* * *

도리도리.

유달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바싹 차렸다.

"미란 씨가 왜 이 사건에 집착하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중히 처신하겠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단은 성추행의 진실 여부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저도 원하는 바에요."

"피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분의 이름이 뭡니까?"

"그때 고3이었던 여학생은 윤소담, 임준원 선생님이 가르치던 제자였어요."

"여학교에서 벌어진 교사의 성추행이라… 어떤 사달이 났을지 머릿속에 그려지는군요."

이어 유달은 두 눈 크게 뜨고 임준원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제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십시오. 거짓을 말하려고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당신은 제자였던 윤소담 양을 성추행했습니까?"

임준원은 지체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요, 저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모든 게 명백해졌다.

임준원은 성추행 무고를 당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유달은 안타까운 마음에 역정 내듯 말했다.

"하이고, 선생님!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그렇지요. 왜 이리 어리석은 선택을 하셨습니까? 어떡하든 살아서 누명을 벗었어야죠."

-정말 집요하게 저를 망가트렸습니다. 윤소담,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예요, 악마… 몇 년이나 제가 가르쳤던 제자인데, 오죽하면 그런 표현을 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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