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52화 (152/183)

152화. 장군멍군

송보름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름이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할 거예요."

"서, 서바이벌? 그게 뭐지?"

"사장님 기준으론 TV에서 하는 노래자랑 같은 거요. 심사위원하고 일반인의 ARS 점수를 합산해서 통과와 탈락자를 가리는 거예요."

"뭔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아름이가 왜 갑자기 그런 데를 나가는 거지? 기획사 연습생으로 걸그룹 데뷔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기획사가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요.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고요. 노래하고 춤 연습도 각자 알아서 하고 있어요. 아름이가 이번 서바이벌 오디션 나가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맘대로 하라고 했대요."

"그래?"

유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기에 참가하면 모두 TV에 나오는 거야?"

"아니죠~ 경쟁률이 정말로 엄청나요. 5차 예선까지 통과해야 방송에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송보름이 유달의 눈치를 살피며 뒷말을 이었다.

"아름이는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도 못 받았거든요. 그 기획사가 거의 자급자족 수준이라…… 그래서 사장님에게 부탁드리는 건데요. 아름이에게 백시연 작곡가를 소개해 주는 건 어때요?"

"안 돼!"

유달은 버럭 성내듯 소리쳤다.

그녀는 박만복과 항시 붙어 다니는 사이다.

한아름을 백시연에게 소개해 주면, 둘의 왕래가 잦아질 것이고, 그러다 우연히 박만복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들키게 된다.

유달이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했기에 송보름도 매우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다.

곧바로 유달은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름아, 그녀는 우리의 적이야. 박 카페의 총괄 매니저라고. 전쟁을 벌이는 상대에게 내가 저자세로 부탁할 수는 없어……."

송보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섭섭한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이에 유달이 반전을 예고하듯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내가 다른 방법으로 아름이를 도울 순 있지."

"어떻게요?"

"나한테도 연예계의 인맥이 있잖아. 어엿한 기획사의 대표님이고, 아름이를 맡겨도 될 만큼 믿을 만하며, 내 부탁이면 무조건 들어주는 분이지."

"누구…… 호박 사장님이요?"

"그렇지!"

호박 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상진을 말하는 것이다.

유달이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물었다.

"지금 바로 전화할까?"

"좋아요, 사장님!"

송보름은 손뼉까지 치며 독촉했다.

유달은 거만하게 자세를 잡으며 단축 번호를 눌렀다.

뚜우…….

통화연결음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박상진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선생님!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듣는 이가 기분 좋아지는 활기찬 목소리다.

"안녕하셨습니까, 박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중요한 회의 중이지만, 괜찮습니다.

"……."

곧이어 박상진이 직원들에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10분 쉬었다가 계속하자고.

곧이어 그는 목소리를 바꿔 전화를 받았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회의가 길어져서 마침 쉬려는 참이었습니다. 편안하게 말씀하십시오.

유달은 정말 편안하게 말을 꺼냈다.

"제 직원 중에 연예인 지망생이 있거든요. 걸그룹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누구…… 보름이요?

박상진은 굿 카페 식구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걸그룹이 목표라고 했기에, 당연히 송보름을 떠올린 것이다.

유달은 스피커 폰으로 통화하고 있었다.

송보름이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에 바싹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호박 사장님. 제가 아니고 제 친구요. 잘 부탁드릴게요."

―아, 보름이 친구. 당연히 내가 힘이 되어 줘야지.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 우리는 걸그룹 연습생을 키우지 않거든.

유달이 대답했다.

"한아름이라는 아인데요. 나이는 보름이보다 한 살 많아요. 기획사 소속의 연습생이긴 한데, 아직 제대로 된 보컬이나 댄스 트레이닝도 못 받았다고 합니다."

―기획사가 어딘데요?

유달도 몰라 송보름을 바라보았다.

"김&장 엔터테인먼트에요."

"유명한 법무법인이랑 똑같네."

유달이 휴대폰으로 고개 돌리며 말했다.

"김장…… 아니, 김&장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네요."

―아, 거기요…….

박상진의 목소리는 부정적인 느낌이 다분했다.

"왜요? 이상한 곳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때는 잘 나갔던 기획사인데, 요즘 내부 문제로 시끄러운 곳이지요. 그 때문에 연습생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중파에서 하는 서바이벌 오디션에 나간다고 준비 중이거든요."

―오호, 이런 우연이? 우리도 지금 그 준비를 위한 회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서바이벌 오디션은 노래와 춤뿐 아니라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개인기 등등, 다양한 준비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요? 겸사겸사 잘됐군요."

―우리 일정이 정해지면 전화 드리지요. 직원분의 시간을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하이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제가 누굽니까? 한번 입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 박상진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지요. 회의를 속행해야겠군요. 이만 끊겠습니다, 선생님.

"네, 들어가세요."

유달은 휴대폰을 챙기며 중얼거렸다.

"역시 부담스러워……."

과분할 정도로 잘해 준다는 긍정적인 의미였다.

이어 그는 송보름과 한아름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젠 됐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녀들은 한목소리로 인사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신나게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했다.

하지만 유달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때다.

덜컹.

사무실에 있던 장미란이 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손에 뭔가를 쥐고서 유달에게 다가오는데, 매우 심각한 표정이다.

"이것 좀 보세요."

"뭐지요?"

유달은 그녀가 건네는 A4용지를 받았다.

어떤 장소를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솔직한 소감을 말했다.

"어떤 유럽 왕실의 사진입니까?"

"유럽 왕실이 아니에요. 박 카페가 새롭게 리모델링한 모습이라고요."

"헐! 박 카페가 이렇게 바뀌었다고요?"

"쥬드 베르는 자신의 SNS에 박 카페의 인테리어를 혼신을 담은 역작이라고 표현했어요.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 매체의 인터뷰 문의가 쇄도하고 있대요."

"더는 굿 카페의 인테리어가 장점이 아니게 되었군요."

"우리도 박 카페의 장점을 따라잡아야지요. 야곱 빵집의 떡케이크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이모가 나섰는데도 쉽게 해결되지 않네요. 박 카페 셰프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조금순이 서울에 머무르는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박 카페의 케이크를 뛰어넘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달 씨, 우리는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에요. 어느 정도 진척을 이뤘는지 빵집으로 가서 확인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 * *

공덕 시장 인근 야곱 빵집.

드르륵.

유달과 장미란은 소리가 요란한 빵집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미란이 카페를 떠나기 전에 미리 전화하여, 야곱 빵집은 중간 점검을 위한 준비가 완료된 상태다.

하얀 주방장 옷을 입은 양국현이 깍듯이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유달 사장님 그리고 매니저님."

"아, 네……."

인사를 받은 유달은 속으로 놀랐다.

‘눈빛이 달라졌어!’

거구의 덩치임에도 장난스럽던 모습이 아니다.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는지 살도 빠지고, 진중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로 변했다.

양국현 앞에는 두 개의 커다란 쟁반에 담긴 케이크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왼편의 쟁반부터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쪽은 박 카페에서 만든 케이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가 만든 떡케이크입니다. 드셔 보시고, 허심탄회하게 평가해 주십시오."

유달이 장미란의 등을 떠밀었다.

"저보다는 마란 씨가 이쪽 방면의 전문가 아닙니까. 냉정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장미란은 쟁반 위에 담긴 케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무작정 시식부터 하지 않고, 양쪽의 케이크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외형적인 부분에서는 일단 합격이네요. 박 카페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멋이 느껴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장미란이 조심스럽게 수저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박 카페의 치즈케이크를 한술 떠서 입 안으로 넣었다.

"음!"

그녀의 반응이 수상하다 싶더니.

"저번에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어요!"

"뭐, 뭐라고요?"

유달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이내 그는 치즈케이크를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장미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거 반칙 아니야? 왜 이리 맛있는데?"

유달과 장미란은 서둘러 다른 케이크도 떠먹었는데, 더욱 진일보한 환상적인 맛에 좌절감을 느꼈다.

이제 야곱 빵집의 떡케이크 차례다.

장미란은 수저를 바꿨다.

그녀는 어떤 것부터 먹을지 잠시 고민했다.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그녀는 떡 자체가 낯설었다.

치즈케이크와 비슷한 느낌의 떡케이크를 조심스럽게 떠서 입 안으로 넣는 순간.

"으음~!"

장미란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요? 맛이 어떤데요?"

"이건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맛이에요. 유달 씨도 먹어 보면 알 거예요."

"그럴까요……."

유달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표정이다.

장미란이 먹던 떡케이크를 크게 떠서 입 안으로 넣었다.

그는 장미란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았다.

"으음~ 떡이 녹아!"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양국현과 조금순은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달이 흥분하여 조금순에게 말했다.

"이모, 당장 이거 가게에 내놓자. 틀림없는 대박이야!"

"달아, 아직 아니다."

"이모, 욕심을 버려. 얼마나 더 맛있게 만들려고?"

"박 카페의 주방장은 보통이 아니더구나. 내가 조금 앞서는 맛을 만들면 그는 바로 뒤쫓아왔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결판을 지어야지.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알았어. 나는 이모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이어 그는 장미란에게 한숨 돌린 듯 말했다.

"이제 장군멍군인 상황이군요. 박 카페의 케이크도 더는 장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모님의 능력이 정말 놀랍네요. 혹시 유달 씨도 이모님을 닮아서 음식 만드는 데 소질이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전혀요! 저는 잘 먹기만 합니다."

장미란이 피식, 웃음 지을 때다.

조금순이 야곱 빵집의 알바생을 불렀다.

"혜수야."

"네, 큰이모님."

고등학생인 줄 알았던 그녀는 재수생으로 양국현의 처제였다.

"이건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감사합니다, 큰이모님."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층으로 쌓을 수 있는 음식 그릇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정성스럽게 떡케이크들을 모두 담아서 황급히 빵집에서 나갔다.

유달이 양국현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어디를 저리 신나게 가는 겁니까?"

"떡케이크 팔러 갑니다. 큰이모님 덕분에 처제 학원비하고 대학 등록금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유달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누가 그리 비싼 값에 살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 * *

현대적 주방 시설을 갖춘 박 카페의 주방.

커다란 조리대 위에는 양국현의 처제가 팔고 간 야곱 빵집의 떡케이크가 놓여 있다.

그녀는 조금순의 묵인하에 이중첩자 노릇을 했던 것이었다.

덜컹.

주방 출입문이 열리고, 박만복과 백시연이 들어왔다.

백시연은 조리대에 있는 떡케이크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와~ 오늘은 또 어떤 맛일지 기대되네."

이어 그녀는 디저트 스푼으로 떡케이크를 떠먹었다.

"음~ 으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아."

툭.

박만복이 그녀의 어깨를 치며 주의를 주었다.

"분위기 파악 좀 하지? 그렇게 요란 떨며 먹을 필요는 없잖아."

백시연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리액션 하라고 말한 건 너잖아? 우리 셰프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자극이 필요하다며?"

"이제 그 단계는 지난 것 같아. 우리 셰프에게는 자극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박 카페의 주방 책임자는 국제적인 푸드 페스티벌을 석권했던 최고의 파티셰다.

그는 조금순이 만든 떡케이크를 맛보더니, 깊은 좌절에 빠진 반응이다.

"저러다 관둘지도 모르니까, 잘 다독거려서 계속 다니게 하라고. 알았지?"

박만복은 귀찮은 일을 백시연에게 떠넘기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는 곧장 2층에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끼익.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 박만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들어올 것이라 불을 켜 두고 나갔기 때문이다.

딸깍.

그가 불을 켜는 순간.

"제임스……."

제시카가 그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박만복은 그녀를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상태인가?"

초췌한 얼굴의 그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뭐가 그리 궁금하기에 그런 몸으로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나도 궁금해지네."

"카페 사장 그놈…… 왜 너하고 똑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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