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50화 (150/183)

150화. 믿는 구석

딸깍딸깍.

장미란은 차량 속도를 늦추며 우측 방향 지시등을 켰다.

그러고는 뒤에서 따라오는 차도 속도가 늦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비포장길로 차를 몰았다.

덜컹덜컹…….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폭에 노면 상태도 좋지 않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인데, 뒤의 차량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왔다.

작은 야산의 초입에 다다르자 빈 공터가 나오고 길은 완전히 끊겼다.

촤르르르.

장미란은 반원을 그리며 차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풀면서 유달에게 물었다.

"괜찮겠어요? 상대는 두 명이고, 마신의 능력자이자 특급으로 분류되는 용병이에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공인된 살인자들이지요."

유달은 전혀 문제없다는 목소리다.

"불리하면 제가 여기로 유인했겠습니까? 미란 씨가 무슨 말을 하든 벌써 도망쳤지요. 이길 만하니까 싸움을 거는 겁니다."

"제가 걱정되는 말이 있어서요."

"어떤 말이요? 예전 동료에게 블랙이라는 용병 집단의 어마무시한 무용담이라도 들으셨나요?"

"듣기는 했지요. 하지만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저는 유달 씨의 능력을 직접 확인했어요."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유달은 슬쩍 창밖을 살피며 물었다.

뒤따라오던 차량은 유일한 통행로를 가로막으며 차를 세웠다.

장미란은 뒷자리로 몸을 돌려 유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번에 저한테 말했잖아요. 이제 더는 몸신이 함께 하지 못한다고요. 위기의 순간에는 몸신이 직접 나선다는 말도 들었었고요. 저는 유달 씨가 온전한 힘으로 싸우지 못하게 되어 걱정하는 거예요."

"아~"

유달은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는 탄성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미란 씨가 오해할 만한 발언을 제가 했었군요. 시간이 없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외려, 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정말 믿어도 되겠죠?"

장미란은 차량 문손잡이에 손을 걸치며 물었다.

이에 유달도 차에서 내릴 준비를 끝마치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은 하지 않는 게 저의 철칙입니다."

덜컹! 덜컹!

그들은 동시에 차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상대방 차량은 시동과 모든 불을 끈 상태다.

유달과 장미란은 먼저 움직이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렸다.

딸깍.

뒷자리 문이 열리며 제시카 혼자 내려섰다.

상현에 가까운 달이 뜬 밤이다.

그녀는 천천히 차를 돌아 보닛 위에 걸터앉았다.

유달이 먼저 말을 붙였다.

"너희들 스토커야? 왜 우리를 따라왔을까?"

제시카는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며 대답했다.

"도둑맞은 물건을 찾고, 겁도 없이 훔쳐 간 놈들 버릇도 좀 고쳐 주려고."

"포부가 엄청나네? 하늘도 포기한 내 버릇을 고치겠단 말이지?"

이번 통역은 장미란이 맡았다.

그녀는 빠르고 정확하게 양쪽 말을 직역하여 전달했다.

제시카는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척.

그녀는 칼날을 꺼내며 미소 띤 얼굴로 유달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실력이기에 주교님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일까? 지금 느껴지는 신기는 보통 무당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말이야?"

"그래서 넌 나한테 안 되는 거야. 상대가 어느 경지인지도 모르고 덤비고 있잖아? 나는 너희들의 얄팍한 실력이 훤히 보이거든."

"주둥아리 놀리는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혓바닥을 잘라 내면 그런 헛소리 못 하겠지?"

"그쪽 헛소리도 만만치 않고만… 그런데 또 한 놈은 어디 있지?"

순간, 장미란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유달을 쳐다봤다.

또 한 놈이란, 분명 테일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열심히 기어 오고 있다.

스윽, 스윽…….

제시카가 오른쪽 차 문을 내릴 때, 그는 차량 뒤에 숨어 있다가 왼편으로 돌아서 접근했다.

유달도 분명 그가 기어 오는 모습을 봤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반응을 보였기에 그녀도 아무 말 안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에 유달이 살짝 고개를 내리고 복화술처럼 말했다.

‘저처럼 모르는 척하세요. 저놈은 지금 우리가 안 보이는 줄 알고 신나게 기어 오는 겁니다.’

‘달빛이 이리 밝은데 어떻게 안 보일 수 있죠?’

‘아마도 저놈이 가진 마신의 능력일 겁니다. 저하고 미란 씨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죠.’

‘유달 씨라면 몰라도 왜 저한데도 통하지 않는 것이죠? 저번에 저는 자칼에게 꼼짝없이 당했는데요.’

그들은 제시카의 눈치를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예방 주사 맞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얘기 안 했나요? 미란 씨는 영기에 둔감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마기에 적응이 가능한 체질이기도 합니다.’

‘뒷말은 못 들은 거 같은데요…….’

‘지금 급히 말씀드리자면, 미란 씨의 몸은 자칼 정도의 마기에는 적응하여 통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는 내심 유달 씨에게 짐만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하지만 너무 안심하진 마십시오. 자칼보다 월등히 강한 놈에겐 또 당하게 되고요, 적응이 안 되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만복이나 켄달 옹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알았어요. 자만하지 않고 주의하지요.’

그들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제시카가 목청 높였다.

"뭘 그리 숙덕거릴까? 테일러가 안 보이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야."

"오~ 대단한 자부심인데?"

제시카는 잭나이프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휘휙, 휘휘휙.

"너는 절대 나를 이기지 못해. 왠지 알아? 너와 나는 사는 세상이 틀리거든. 너는 편안하게 점이나 보며 돈을 벌었고, 나는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야 했지. 어떤 환경에서 자란 존재가 더 강할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네? 전쟁터라… 그래 봤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자신보다 몇 배나 크고 악착같이 덤비는 존재들과 피 터지게 싸워 본 적 있어? 그놈들을 물리치면 또 다른 놈들이 나타나고, 끝나지도 않는 전쟁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강할까?"

"네놈이 그런 존재라는 건가?"

휘휙, 휙휙, 휘휘휘휘휙.

그녀의 손놀림은 더욱 현란하게 변했다.

테일러가 몰래 접근하는 동안 시선을 빼앗는 속임수임을 유달은 알고 있었다.

"여기가 서커스야? 잔재주는 그만 부리고, 어서 특급 용병의 실력을 보여 달라고? 나는 기다리는 게 고문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너 아직도 모르는구나?"

척.

제시카는 잭나이프의 움직임을 멈추며 말했다.

이에 유달은 과장스럽게 대꾸했다.

"뭘~?"

제시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너희 둘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화악.

그녀는 민첩한 동작으로 잭나이프를 던졌고, 유달은 재빨리 검을 빼서 막았다.

-챙.

그런데 소리가 이상하다.

물리적인 충돌 소리가 아닌, 영적인 기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제시카의 손에는 잭나이프가 그대로 쥐여 있었다.

유달은 진심으로 그녀를 칭찬하는 모습이다.

"대단한데? 잭나이프에 깃든 살(煞)만 날린 거야? 이러면 칼을 총처럼 쓸 수 있는 거잖아."

"아주 잘 알고 있네!"

확, 확, 확, 확!

제시카는 연이어 잭나이프에 깃든 살을 날렸다.

그 속도는 진짜 칼을 던지는 속도와 비슷하여 유달은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챙, 챙, 챙, 챙.

"설마, 무한으로 던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무한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마기가 고갈될 때까지 버텨 낸 놈이 없었거든."

"미란 씨, 내 뒤로 오십시오."

유달은 장미란을 보호하면서 제시카가 난사하는 살에만 집중했다.

이는 제시카와 테일러의 노림수다.

제시카가 상대의 발을 묶고 시선을 빼앗은 사이, 테일러가 몰래 접근하여 끝장을 내는 것이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한 번도 실패가 없었던 작전인데, 오늘을 시작부터 들키고 말았다.

장미란은 유달 뒤에 몸을 숨기기 있으면서 테일러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했다.

그는 장미란의 뒤까지 열심히 포복으로 기어 왔다.

스윽.

드디어 몸을 일으킨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장미란의 귓가에 속삭이는 때다.

"서프라이……."

퍽!

순간, 장미란은 미친 속도로 반응했다.

몸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남자의 가장 중요한 급소를 거침없이 가격한 것이다.

"꺼억……."

말도 못 할 극심한 고통에 테일러는 영혼이 나간 듯했다.

그는 양다리를 오므리고 얼어붙은 상태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게임 끝이나 다름없는 상황.

장미란은 확실하게 마무리를 단계를 밟았다.

테일러의 오른팔을 잡고 그대로 업어치기.

철퍼덕!

엉덩이부터 땅에 떨어지는 충격에 중요한 급소의 고통은 배가 되었다.

마침내 터지는 처절한 비명.

"끄아아악~!"

어떤 고통일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유달은 반사적으로 진저리를 쳤다.

장미란은 양발로 테일러의 쓰러진 상체를 제압하며, 오른팔로 단단히 그의 목을 감싸고 조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이내 새빨갛게 변한 테일러가 애처로운 손짓으로 장미란의 팔목을 쳤다.

항복의 뜻이 분명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목을 조르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외려 더욱 강하게 힘을 실어 압박했다.

툭…….

연신 탭을 치던 손이 축 늘어지면서 그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말았다.

"테일러!"

제시카가 소리치며 달려가려다 멈칫했다.

유달이 날카로운 검 끝을 그녀를 향해 겨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 * *

달무리 지는 밤.

최강의 용병 부대인 블랙, 그곳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에이스로 통하는 제시카와 테일러.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는 장미란의 존재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장미란이 FBI 출신이라는 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영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과 여자의 몸이라는 사실만을 고려했다.

당연히 유달보다는 손쉬운 상대였다.

그녀를 민폐 캐릭터로 여겼던 것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제시카가 유달에게 말했다.

"어서 테일러를 풀어 줘."

"뭐 그리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그래야 하나 착각했잖아. 우리를 쫓아온 것도 너희들이고, 몰래 기습하려다 저 지경 된 것도 너희들의 선택이었어. 이제 불리해지니까 풀어 달라고? 뻔뻔함과 몰염치의 극치 아니야?"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러는 게 좋을걸. 블랙은 보통 용병 집단이 아니야. 나 같은 능력자가 즐비한 곳이야. 그리고 멤버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지."

"음~ 나는 그런 협박 엄청 좋아해. 믿고 까부는 윗선을 박살 내는 재미도 솔솔 하거든. 마신의 능력자들이 모인 곳이라면 더욱더 그렇지."

이어 그는 장미란을 돌아보며 부탁했다.

"내일 당장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어 주십시오. 블랙인지 뭔지 단체로 요절을 내고 오겠습니다."

"유달 씨는 여권도 없잖아요?"

"내일 당장 신청하겠습니다."

"미국은 비자도 있어야 하는데, 유달 씨가 통과할지 모르겠네요."

"헐… 비자가 내 발목을 잡는구나."

유달은 다시 제시카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나는 이놈을 풀어 줄 마음이 없어. 그쪽의 선택은 두 가지뿐이야. 첫째는 경찰관을 상해 입힌 죄를 인정하고 떳떳하게 벌을 받는 거지. 미국이 아니라 여기 한국에서 말이야."

제시카에게는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두 번째는 뭐지?"

"이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는 건데, 나와 일대일로 붙어서 이기면 저놈을 데려가도 돼… 아니, 내가 좀 더 아량을 베풀어 주지. 30분만 항복 선언하지 않고 버텨도 이긴 것으로 해 줄게."

제시카가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정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네놈을 이기거나 30분만 버티면 된단 말이지."

"나는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치졸한 무당이 아니야.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어때? 콜?"

"테일러를 데려가야 하니, 어쩔 수 없지… 누가 이길지 제대로 한번 붙어 볼까?"

"오케이!"

유달은 자신의 의도가 먹혔다는 듯 장미란에게 말했다.

"다행히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두 놈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찬스를 얻었습니다."

"조심하세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유달 씨와의 일대일 대결을 받아들인 게 아닐까요?"

"역시 미란 씨는 날카롭군요. 저도 그 믿는 구석이 뭔지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이 검집은 잘 맡아 주십시오."

유달이 제시카를 향해 다가갔다.

"무르기 없는 거 알지?"

제시카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그런데 연약한 여자를 상대하면서 검이 너무 무식한 거 아닌가? 나는 이렇게 작은 잭나이프뿐인데. 차라리 무기 버리고 맨손으로 붙는 건 어때?"

"노, 노, 노, 노… 내가 뭐 하러? 피에 굶주린 마신의 기운이 살벌하게 느껴지는데 말이야. 잔소리 말고, 덤벼!"

착.

유달은 진지한 표정으로 제시카에게 검을 겨눴다. 여자라고 봐주겠다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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