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37화 (137/183)

137화. 동쪽의 귀인

벌떡!

유달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처음 뵙겠습니다."

장미란의 어머니가 군대 장성인 걸 떠올린 것이다.

"내 신분은 신경 쓰지 말고, 앉아요."

"알~겠습니다!"

기백 넘치게 대답하는 유달은 군대 면제다.

천은경은 이등병처럼 주먹 쥔 손을 허벅지에 붙이고, 팔을 쭉 편 상태로, 전방 15도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유달에게 말했다.

"그러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나요? 아까처럼 편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는데."

유달이 스르륵,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천은경이 고개를 끄떡이자, 유달은 바로 풀어졌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군대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아서요. 음료는 뭐 시키셨습니까? 제가 스페셜로 업그레이드하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런데 미란이는 어디 갔나요?"

유달은 사실대로 말했다.

"지금 VIP 룸에서 숙면 중입니다. 어젯밤에 일이 있어서 수면을 거의 취하지 못했습니다. 깨울까요?"

"그냥 두세요. 미란이가 없는 게 사장님과 대화하기 더 편할 것 같네요."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답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란 씨의 도움을 엄청나게 받고 있습니다."

"부담 갖지 말아요. 그냥 시간이 되어 들러 본 거예요."

"하하하… 전방에 사단장이 떴는데 어떻게 부담 갖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장병들에게 부담 갖지 말라고 한들, 곧이곧대로 편안하게 행동할 얼빠진 군인은 없죠."

천은경이 유달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사장님은 미란이가 말했던 것과 정말 똑같네요."

"미란 씨가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증이 밀려오는데요?"

"진짜배기 무당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어린아이처럼 순순한 면도 있고요."

유달은 약간의 의심을 느끼고 물었다.

"철이 없다는 욕으로 말한 것은 아니겠죠?"

"글쎄요… 그 아이의 속은 엄마인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미란이는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일을 못 해요.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이나 능력을 지녔든 상관없이요. 사장님과 궁합이 잘 맞으니까 아직도 함께 일하는 것이겠죠."

"그렇습니까?"

"좀 전에 사주를 보면서 느낌이 오더군요. 미란이의 말이 정확했구나 하고요."

"좋게 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사모님. 아니, 장군님이라고 호칭해 드려야 하나요?"

천은경은 가볍게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니요, 장군님보다는 사모님이 낫겠네요. 그리고 내 옷차림은 사장님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군복을 입고 오기도 그렇고, 마땅히 갈아입을 옷이 없었어요. 부관에게 편하게 입을 옷을 구해 오라 했더니, 이걸 사 왔네요. 내가 취미로 하는 텃밭 가꾸기의 작업복이라 생각한 모양이에요."

"저의 오해였으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런데 왜 계속 내 옷차림에 신경 쓰는 거죠?"

유달이 상체를 기울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총을 지니고 계신가 해서요. 헐렁한 몸빼 스타일 바지로 총의 불룩함을 가린 줄 알았습니다. 사모님은 국가에서 보호하는 분 아닙니까."

천은경은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총을 좋아하긴 하죠.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총기에 미친 건 아니지요. 당연히 지금은 비무장 상태고요."

"아, 그러시군요. 미란 씨도 총을 매우 좋아하는데, 사모님을 닮았나 봅니다."

이어 유달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말했다.

"저한테 궁금한 게 있으시면 마음껏 물어보십시오. 스페셜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두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열 가지라도 괜찮습니다."

"내 신분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네요. 군대는 어디 나왔어요?"

"그게……."

주춤한 반응을 보였던 유달은 이내 호기롭게 대답했다.

"면제입니다. 국방부에서 저를 거부했습니다."

"왜요?"

"대학 졸업하고 몸 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졌기 때문이죠. 병원에 꽤 오래 입원해 있었습니다."

천은경은 유달의 앉은 모습을 살피며 물었다.

"지금은 멀쩡해 보이는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팠던 건데요?"

"전체적으로 좋지 않았지요. 코마 상태였습니다. 흔히들 식물인간이라고 하지요."

"코, 코마요?"

천은경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네, 1년 가까이 특별 병동에 있었습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죠.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하여, 현대 과학이 아니었다면 요단강을 건넜을 겁니다."

"무슨 일 때문에… 사고였나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습니다. 무속계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벌이기도 했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후유증이기도 했으며, 신기를 남발한 대가이기도 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복잡해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괜찮고요?"

유달은 불끈 두 주먹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털끝만 한 몸의 후유증도 남지 않고, 깨끗이 완치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저는 군대에 자원입대하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군대 면제면, 뭐 그렇지 않습니까?"

결과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코마 상태였던 저의 의료 기록을 들먹이며 번번이 퇴짜를 놓았습니다. 하도 찾아가니까, 제발 오지 말라고 사정하더라고요."

너무도 당연했다.

만약 코마 상태였던 이를 입대시켰다면, 전 국민이 국방부를 비난했을 것이다.

천은경은 웃는 얼굴로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다니 다행이네요. 다음 질문을 해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우리 미란이를 어떻게 생각해요?"

유달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즉각 대답했다.

"미란 씨는 제 영혼의 파트너입니다. 함께 있으면 든든함이 느껴집니다. 밥도 매우 잘 사 주죠. 이런 말씀 드리면 섭섭하실지, 좋아하실지 모르겠는데……."

유달은 뒷말을 길게 끌다가 말을 이었다.

"저와 미란 씨는 궁합이 아주 잘 맞는 동료입니다. 둘 다 이성적인 감정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사모님이 원하시면, 미란 씨의 선 보기 작전에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천은경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어떤 의미인지 아리송하게 느껴질 때다.

"어머니?"

언제 잠에서 깼는지 장미란이 다가왔다.

"저한테 말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다."

"옷차림은 또 뭐고요? 텃밭 가꾸다가 오셨어요?"

유달이 장미란에게 핀잔주듯 말했다.

"어허, 아직 시집도 안 간 딸이 어머니가 뭡니까? 다정하게 엄마, 해 보세요."

"유달 씨……."

장미란의 따가운 시선에 유달은 조용히 입 다물었다.

"어머니, 제 사무실로 들어가요."

"커피 시켰는데……."

"사무실로 가져오라고 할게요. 부탁해요, 유달 씨."

"네, 제가 책임지고 가져다드리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 퇴근하셔도 됩니다. 어머님과 다정히 저녁 식사라도 하시지요."

천은경이 유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고마워요. 사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혹시 동쪽에서 오셨습니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집은 강남이지만, 동부 전선에서 근무하니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 그러시군요. 즐거운 시간 되시고, 나중에 또 들러 주십시오. 충성!"

천은경은 장미란을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달은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 켜듯 쭉 피면서 휴식을 좀 취하려고 했는데, 창가 자리에서 일어선 세 명이 줄줄이 다가왔다.

보험사 직원 미스터 추가 제일 먼저 인사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둘은 절도 있는 악수로 작별 인사를 했다.

곧이어 팔짱을 낀 이다연이 다가왔다.

"컬렉션 구경 잘 했어요. 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할게요. 서로의 자극이 될 수 있는, 멋진 선의의 경쟁을 펼쳐 봐요."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유달은 그녀가 내미는 손을 가볍게 잡아 악수했다.

그다음은 백시연 차례인데… 그녀는 잽싸게 등을 돌려 도망치듯 출입문으로 향했다.

"뭔가 수작을 꾸미는 게 느껴지는데……."

유달이 이다연과 백시연의 뒷모습을 수상쩍게 바라보고 있을 때다.

딩딩딩딩, 딩딩딩딩.

"깜짝이야!"

유달은 자신의 벨 소리에 경기를 일으켰다.

번호를 확인하니, 송보름의 전화다.

통화 버튼을 누른 유달이 착 깔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안 들어오고 전화질이지?"

-이모님이 늦게 들어오라고 했어요.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으면 안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하셨다고요.

"그래서 오늘 제끼겠다고?"

-아니요. 저녁 먹고 들어갈게요.

"그럴 거면 뭐 하러 와? 그냥 퇴근해!"

-내 친구 알바 좀 부탁드리려고요. 요즘 우리 가게 일손이 만날 부족하잖아요. 오늘 데려가서 인사시킬 거니까, 내일부터 일하게 해 주면 안 돼요?

"굿 카페의 철칙 알잖아. 누구의 소개든 면접을 통과해야 일할 수 있어."

-이번 한 번만 예외로 해 줘요. 사장님의 특별 권한으로 가능하잖아요?

"안 돼. 한번 예외를 두면 철칙이 무너지는 거지. 혹시 남자야?"

-아니요, 여자예요.

"누구든 데려오는 건 상관없는데, 면접은 꼭 볼 거야."

-알았어요. 저녁 먹고 같이 갈게요.

유달이 전화를 끊자마자 강세훈이 다가왔다.

"사장님, 28번 테이블에 점 보는 손님이요."

"오케이~."

유달은 기운 내어 점 보기를 요청한 테이블로 향했다.

* * *

어둠이 내린 저녁 시간.

해방촌 박 카페 2층에 있는 사장실.

굿 카페의 고시원 같은 사장실과 달리, 중세 시대 귀족의 개인 서재가 떠오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박만복과 백시연은 손님 접대용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굿 카페에 갔다 온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예상대로 이다연은 큰 충격을 받고 박만복과 손을 잡기로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도 생겼다.

국제적인 범죄자를 모조리 잡아서 조져 버리겠다는 유달의 선포 때문에, 백시연은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의 핵심 전력인데 어떡하지? 유달 사장은 한다면 하는 성격이잖아. 자신이 귀찮을 때만 빼고."

한참이나 고심하던 기색을 보이던 박만복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핵심 전력 없이 싸울 순 없잖아. 일단은 입국시키고, 재주껏 달이를 피해 다니라고 해."

"너무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

"다른 방법 있어? 그냥 두면 될 녀석을 건드린 게 문제야. 조직 전체에 대해 선전 포고하지 않을 걸 다행으로 생각해. 그보다 달이의 이모가 굿 카페에 있었다는 거지?"

"응, 내가 분명히 봤어."

"뭐 하고 계셨지? 혹시 주방에 있었나?"

"아니, 홀에서 그냥 점만 보는 것 같던데?"

"달이와 내가 전면전을 치르는 마당에 점만 보러 오셨을 리 없어. 내 생각엔 아무래도 케이크가 위험해. 지금 주방에 전화해서 새로운 메뉴 개발 서두르……."

갑자기 박만복이 말을 중단했다.

백시연이 한심한 듯 쳐다봤기 때문이다.

"뭐가 또 불만이야?"

"제임스는 이 상황에도 카페 일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아무리 좋게 봐도, 너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어떡하든 기를 쓰고 유달 사장을 이겨 보려는 거잖아. 혹시 그거 때문이야?"

"그거라니?"

"동방 호텔 스위트룸에서 말한 거 있잖아. 유달 사장 때문에 대무당의 자리를 빼앗겨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박만복은 소탈하게 웃음 짓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자리는 당연히 그놈 거였어.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났거든. 그런데 말이야……."

순간, 박만복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달이가 나를 찾아와 대무당의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하더라고. 나는 죽으라 노력해도 못 얻은 것을, 그놈은 놀다가 싫증 난 장난감을 주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양보한다고 했다고. 그때 내 심정이 어땠을 것 같아?"

박만복의 눈빛은 불처럼 활활 타올랐고, 백시연은 잔뜩 움츠러드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유, 유달 사장이 잘못했네……."

* * *

손님이 뜸해지는 시간대의 굿 카페.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밤이 되었다.

유달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투덜거렸다.

"보름이, 이것은 저녁을 몇 시간 동안 먹는 거야?"

저녁 시간을 훨씬 넘겨 9시가 다 되어 갔다.

송보름 혼자라면 오든 말든 상관없는데, 면접 볼 친구를 데려온다고 했기에 괜히 신경 쓰였던 것이다.

딸랑딸랑.

때마침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 돌리니, 송보름이 살며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 지금이 몇 시야?"

"죄송해요. 노래방에서 놀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알바 하고 싶다는 친구는?"

송보름은 문이 닫히지 않게 몸으로 막고 손짓했다.

"아름아, 어서 들어와."

"안녕하세요… 보름이 친구 한아름입니다."

송보름의 친구는 문밖에서부터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정수리만 보였다 곧이어 그녀가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유달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랐다.

‘대, 대, 대, 대마신!’

모든 영험함을 타고난 유달은 그녀가 대마신이 현신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아름이, 네가 너무 예뻐서 사장님이 놀랐나 보다."

유달이 속도 모르고, 송보름은 대마신과 어깨동무 걸치며 말을 이었다.

"나랑 같은 학원 다녀요. 엄청 착하고요.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그냥 친구 먹기로 했어요. 일하던 편의점이 문 닫아서 새로운 알바 자리가 필요하데요. 집도 그닥 멀지 않아요. 지금 동대문에 살아요."

‘동쪽의 귀인…….’ 유달은 이처럼 놀랍고, 황당하고, 어이없기는 처음이다.

졸지에 대마신을 굿 카페의 알바로 면접 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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