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손님들 (1)
굿 카페의 사장실이자 유달의 침실.
모든 창과 입구를 커튼으로 가려 밤처럼 어두웠다.
"어우……."
침대에서 자던 유달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지금 몇 신데… 아직 안 깨우는 거지……."
그는 머리 위를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영화 촬영 때문에 아침이 밝아서야 카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장미란은 옷을 갈아입는다고 집으로 갔고, 유달은 일찍 출근한 강성호에게 점심 전에 깨워달라고 하고 잠들었던 것이다.
휴대폰 시간을 확인한 유달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벌써 3시가 넘었잖아!"
유달은 황급히 일어나 불을 켜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의 근무복이나 다름없는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 양복을 입고, 어두운 계열의 넥타이를 서둘러 맸다.
"헐, 머리가……."
까치가 자기 집인 줄 알고 둥지를 틀 것 같다.
머리 감을 시간은 없고… 유달은 무스를 잔뜩 발라 빗질을 시작했다.
카페를 찾아온 손님들은 깔끔한 복장으로 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마지막 점검을 했다.
"훌륭한 외모야. 흠잡을 데가 없어."
촤아악.
유달은 입구 커튼 힘차게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홀은 많은 손님이 북적거렸다.
그는 주방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강성호에게 다가갔다.
"3시가 넘었는데, 왜 안 깨운 거야? 오늘은 독박 무당이 근무고, 보름이도 학원 때문에 늦는다고 했잖아?"
강성호 대신 대답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달아, 내가 깨우지 말라고 했다. 어젯밤에 일이 있어서 오늘 아침에서야 들어왔다며?"
"이모?"
때마침 점 보기를 끝낸 조금순이 손님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유달은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 의아하여 물었다.
"내일 오기로 한 거 아니었어?"
"달이 보고 싶어서 하루 먼저 왔는데, 왜 싫은 거냐?"
"무슨 소리! 이모가 와 주면, 나야 땡큐지. 예전엔 파리 날리는 꼴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오지 말라고 했던 거고. 지금은 너무~ 바빠서 대마신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정도란 말이지."
"나도 가게가 날로 번창하니 흐뭇하기 그지없단다. 이게 다 매니저 잘 둔 덕분이다. 행여나 섭섭하지 않게 있을 때 잘해 줘."
"물론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다 생각난 듯 유달이 강성호에게 물었다.
"오늘 미란 씨 몇 시에 왔어?"
"매니저님은 평소와 똑같이 출근하셨는데요?"
"헐……."
그렇다면 집에 들렀다가, 정말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온 것이다.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보냈으니, 피곤함을 참고 손님을 응대하는 게 분명했다.
유달은 장미란에게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물었다.
"이모, 케이크도 만들 줄 알지?"
조금순은 넌지시 자신감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세상에 내가 못 만드는 음식도 있니?"
유달은 조금순에게 ‘엄지 척’을 보여 주고, 장미란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굿 카페에 불편한 점은 있는지, 테이블마다 찾아다니며 묻고 있었다.
유달은 노인네처럼 뒷짐 지고 다가가 말을 붙였다.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장미란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제 저와 같이 날밤 꼬박 새우지 않았습니까? 심신이 괜찮은지 물어보는 겁니다."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야 모니터만 지켜보고 있었고, 범인 잡으려고 수사할 때는 며칠 밤새우고도 멀쩡했어요."
"한 살이라도 젊어서는 뭔들 못합니까? 돌도 씹어 먹는다고 하는데요. 이제 미란 씨도 스스로 몸을 돌볼 나이가 됐습니다. 이제 얼굴빛이 예전 같지 않고, 피부도 탄력을 잃고, 눈도 침침하지 않습니까?"
"아닌데요……."
유달 착 내리깔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에이~ 아니긴요? 지금 미란 씨의 눈이 엄청 빨갛습니다.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죠. 사장으로서 직원을 걱정하여 말씀드리는데, 조금 쉬시는 것이……."
"저는 괜찮다고 했죠! 아직 얼굴빛도 괜찮고, 피부도 탄력 있거든요."
장미란은 더욱 빨개진 눈으로 노려보았다.
유달이 나름 배려해 준다는 행동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이럴 때는 발 빠른 태세 전환이 정답이다.
"미란 씨가 불로불사의 체질인 걸 제가 잠시 깜박했습니다. 유일하게 피곤을 정복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미란 씨지요. 하지만 언제라도 몸이 무겁다고 느껴지시면 마음껏 쉬십시오. 뭐, 그렇다는 겁니다."
유달은 횡설수설하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계산대 옆에 있는 정수기에서 시원하게 물 한 잔 뽑아 먹는 때다.
딸랑딸랑.
찌이잉~.
문 열리는 소리와 신당의 울림이 동시에 들렸다.
바로 고개 돌리는 유달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백시연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너, 잘 만났……."
대놓고 쏘아붙이려던 유달이 멈칫했다.
그녀를 뒤따라 들어오는 일행이 있었다.
"여기가 어제 말했던 굿 카페인가요?"
패션이 범상치 않은 젊은 여자다.
그녀는 굿 카페의 신당에도 있는 명품을 걸치고 있는데, 영적인 능력이 느껴지지 않은 보통 사람이다.
유달이 살기를 거두며 백시연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카페에 무슨 일로 왔겠어요? 아는 지인과 커피 마시며 수다 떨러 왔지요."
"그쪽 카페 놔두고 굳이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싫어요? 그렇다면 다른 카페로 갈 수밖에요."
"그럴 리 있나요? 우리 카페는 오겠다는 손님은 절대 막지 않지 않습니다. 동료분도 오셨으니, 제가 직접 주문을 받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유달은 대승적인 마음으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 * *
명동 도심의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
백시연과 이다연이 나란히 앉았다.
그녀들은 다른 손님들의 이목을 끌 만큼 우월한 외모다.
"다연 씨, 여기 분위기 괜찮죠?"
"그러네요."
형식적인 물음에 형식적인 대답이다.
백시연은 웃는 얼굴이지만 속을 알 수 없고, 이다연은 뭔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유달은 이다연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우리 카페는 처음이시죠? 찬찬히 살피시고 메뉴를 골라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케이크 같은 간식거리는 없지만, 조만간 놀라운 맛을 가진 아이템이 등장할 겁니다."
이다연은 유달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녀는 메뉴판을 펴지도 않고, 카페 내부의 인테리어를 살피며 물었다.
"여기가 세계적인 인테리어 예술가 정세리가 디자인한 곳인가요?"
"그렇습니다! 정세리 디자이너에 대해선 TV에 많이 나왔지요? 그분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는 데 제가 큰 도움을 줬지요. 그에 대한 보답 차원으로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좋아요… 아니, 정말 훌륭해요. 정세리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주문은 뭘로?"
이다연이 드디어 메뉴판을 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살피더니 백시연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떤 게 좋아요?"
"여기 커피 괜찮아요."
"그럼 저는 커피 마실게요."
"여기 사장님은 점 보는 실력도 대단해요. 오신 김에 사주 관상도 보세요."
"네, 그러죠."
백시연이 유달에게 메뉴판을 돌려주며 주문했다.
"커피 두 잔 그리고 점도 볼게요."
"알겠습니다."
유달은 강성호에게 수신호로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 그는 평소와 똑같이 사주를 적는 메모지를 이다연에게 내밀었다.
"여기에다 한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주십시오. 태어난 시까지 알면 더욱 좋고요."
이다연은 받은 메모지에 사주를 적었다.
그러나 유달에게 바로 건네주지 않고 물었다.
"사장님은 점 보는 값이 매우 저렴하네요. 복채라고 해야 하나요? 제가 복채를 아주 넉넉히 더 드리면, 좀 더 잘 봐 주실 수 있나요?"
유달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어디서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한 대가를 주고 대우를 받겠다는 것이니까요."
그는 한층 힘을 실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복채가 저렴한 것은 빈부의 격차에 구애되지 않게 누구나 점을 보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제 점괘는 값을 매기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죠. 억만금을 주고 보는 점과 다르지 않습니다."
"좋아요, 사장님을 믿어 보죠."
이다연은 사주를 적은 메모지를 돌려주었다.
유달은 곧바로 사주 풀이를 시작했다.
"이다연 씨? 오호~ 상당히 동안이시네요? 보기에는 20대 초반 같은데, 30대시네요?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백시연이 흠칫하여 그녀를 돌아봤다.
한참 어린 동생으로 봤는데, 백시연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유달의 본격적인 사주풀이가 이어졌다.
"남들은 부자 부모님을 두면 팔자 폈다고 하는데, 이다연 씨는 외려 피해를 보고 있군요? 자신이 노력해서 성취해도 부모님 덕분이라고 오해받고 있어요."
"!"
"그리고 아주 재주 좋은 눈을 가지셨군요. 감식안(鑑識眼)이 남들보다 출중합니다. 물건과 사람의 미래 가치를 볼 줄 아는 선견지명의 눈이죠……."
유달의 사주 풀이가 한창일 때다.
지이잉~ 지이잉~
백시연이 핸드폰 진동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유달이 들을 수 없는 거리에서 통화했다.
"어떻게 됐어?"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목숨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에만 한 달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윗선에 보고할까요?
백시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보고해. 있었던 일 그대로, 하나도 빼지 말고."
-제임스에게 불이익을 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핵심전력을 폐인으로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제임스의 행동이 옳았다고 봐. 조금 있으면 미치광이 괴물 같은 놈들이 줄줄이 입국할 거란 말이야. 이게 그놈들에게 좋은 본보기 될 거야. 조직의 허락 없이 사고 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줘야지. 자칼도 당했으니 알아서들 처신하겠지."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수고해."
통화를 마친 백시연이 창가 자리로 돌아왔다.
유달의 사주 풀이는 이미 끝났다.
점괘가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둘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이다연은 입을 모으고 연신 손뼉을 쳤고, 유들을 으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두 분이 편안히 대화 나누시지요."
이다연이 급히 유달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부탁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돈 들어가는 일 아니면 전부 들어드리죠."
"이곳에 명품관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구경할 수 있을까요?"
유달이 곤란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아, 그건 쿠폰이 있어야 하는데요……."
가수 오영희 때처럼 죽어서만 사용할 수 쿠폰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장미란은 신당의 명품관을 볼 수 있는 쿠폰을 따로 만들었다.
"특별히 선별한 단골들에게만 빈 쿠폰을 드리는데, 음료와 커피는 하나, 점 보는 건 두 개. 총 30개의 매니저 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음료수 30개를 한꺼번에 시키면 안 될까요?"
"그건 규정에 어긋나는데……."
이다연이 몹시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유달이 선심 쓰듯 말했다.
"하지만! 이다연 씨는 감식안이 뛰어난 눈을 가졌으니, 특별히 허락해 드리지요. 저기 검은 커튼 앞에 있는 장미란 매니저에게 가시면 됩니다. 사장님의 특별 권한으로 승낙했다고 말하면 친절히 안내해 줄 겁니다."
"고마워요, 사장님!"
이다연은 벌떡 몸을 일으켜 장미란이 서 있는 신당 쪽으로 뛰어갔다.
유달은 자리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다연은 장미란에게 창가 자리를 손짓하며 사정을 얘기했다. 곧이어 장미란이 확인을 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유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이 신당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유달은 싸늘한 표정이 되어 백시연을 노려보았다.
"우리 진솔하게 할 얘기가 있지?"
"오해예요."
"또 시작이네……."
"자칼이 우리 조직과 연관 있지만, 그의 행동은 조직의 뜻이 아니란 말이지요."
"나는 어떤 변명도 듣지 않고, 그쪽과 약속한 조건을 바꿀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마신의 일에 중립을 지키겠다는 건 유효해. 하지만 대마신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국제적인 범죄자들을 데려오면, 내 모두 잡아서 조져 버릴 거라고. 그게 싫으면 당연히 전쟁이지."
"아……."
백시연이 얼굴을 매만지며 난감한 반응을 보일 때다.
"꺄아악~"
신당 안에서 이다연의 비명이 들렸다.
"헐! 이게 무슨 소리야?"
유달은 큰일이 난 줄 알고 신당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