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34화 (134/183)

134화. 당연한 결과

서울 외곽에 있는 유흥가.

백시연은 이른 시간에 자칼의 아지트를 찾아냈다.

그녀의 인맥과 조직의 연락책을 총동원한 덕분이다.

박만복과 백시연은 네온 불빛이 화려한 길을 걸었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단란주점과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술에 취한 취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백시연이 휴대폰으로 길 찾기 앱을 살피며 말했다.

"자칼은 제임스가 찾아오는 걸 원치 않은 것 같아. 너는 이런 곳을 병적으로 싫어하잖아? 일부러 이런 유흥가 근처에 아지트를 둔 것 같단 말이지. 아주 우연이라도 너와 마주칠 일이 절대 없을 테니까."

눈살을 찌푸린 박만복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 빨리 그놈의 아지트나 찾아."

"아마도 이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백시연은 여관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골목을 지나면 오래된 순댓국집이 나오고, 그 옆에 있는 오피스텔에 자칼이 있는데… 저기네!"

여관 골목을 빠져나온 백시연이 낡고 허름한 6층짜리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환하게 불 켜진 순댓국집이 옆에 있으니 확실했다.

박만복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저게 오피스텔이라고……."

-VIP 오피스텔.

간판은 그렇다고 달려 있지만, 누가 봐도 변두리 여인숙보다 못한 수준이다.

박만복은 오피스텔 입구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백시연이 짜증스럽게 독촉했다.

"빨리 찾으라고 버럭 소리칠 때는 언제고 이러고 있어. 정말 안 들어갈 거야?"

"조그만 기다려.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언제부터 그리 고급스럽게 살았다고? 서민 생활 모르는 재벌은 그만 흉내 내고, 어서 따라와."

화악.

백시연은 박만복의 손을 잡아끌고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제로 끌려들어 간 박만복이 당혹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그, 그러네……."

백시연이 그의 손을 놓아주며 대답했다. 그녀 역시도 당황함이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자칼의 아지트가 몇 층이지?"

"6층……."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둘은 입을 꾹 다물고 계단을 올랐다.

6층 꼭대기 층에는 호실이 하나밖에 없다.

전단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낡은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최신식 번호 키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백시연은 난감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비밀번호를 모르는데……."

띠, 띠, 띠, 띠.

박만복은 이미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띠리링.

단 한 번에 굳게 닫힌 철문이 열렸다.

철컹.

박만복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는데, 백시연은 수상한 눈초리로 그를 계속 쳐다보았다.

"내가 자칼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게 이상해?"

"아니, 오랫동안 함께 일했으니 서로에 대해 많을 걸 알고 있겠지… 그런데 자칼의 비밀번호가 왜 제임스의 생일인 건데?"

"섣부른 오해는 하지 말지. 그놈이 나를 일방적으로 추종해서 그런 거니까."

끼익.

문을 여는 순간, 코가 썩는 냄새가 밀려왔다.

이 세상 모든 불쾌한 냄새를 합쳐 놓은 듯, 절로 오만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였다.

그들은 동시에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가렸다.

방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백시연은 조심조심 박만복을 따르며 물었다.

"혹시 시체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아지트 안에 개나 고양이 포함, 어떤 종류의 사체라도 있으면 목을 꺾어 버린다고 경고했으니까."

"그럼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딸깍.

박만복이 불을 켰다.

곧이어 불결함과 비위생의 극치를 보여 주는 방 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배달시켜 먹다 남은 음식과 포장 용기가 쌓여 있고, 빨지 않고 벗어 놓은 옷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건 방이 아니라 쓰레기장이었다.

백시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이게 뭐야? 짐승의 소굴도 아니고… 얼씨구, 쓰레기통은 또 깨끗하네?"

박만복은 방 안의 상태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인 모양이다.

박만복은 곧장 검은 커튼이 쳐 있는 벽으로 걸어갔다.

촤악.

커튼을 걷자, 뭔가를 잔뜩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가 드러났다.

영어로 쓴 문서와 설계 도면도 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진들이다.

모두 백시연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건 배우 오현아, 이건 악역 전문 배우 정찬일… 그리고 이건 유달 사장이잖아? 매니저 장미란도 있고, 송보름하고 극악의 사주를 가진 바리스타까지, 굿 카페 식구들이 모두 다 있네? 대체 이 사진들은 왜 붙여 놓은 거야?"

"자칼이 제거할 타깃을 붙여 놓은 거지."

백시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인다고?"

"아니, 진짜 타깃에는 그놈만의 표식이 있어."

박만복은 천천히 손을 뻗으며 유달과 정찬일의 사진을 떼어 냈다.

다른 사진과 달리 가운데 부분이 길게 베여 있었다.

"이건 어떻게 죽이겠다는 표시이기도 해. 길게 벤 것을 보니, 장검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군. 미친놈… 하필이면 검이야. 자칼은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거야. 목숨을 건져 오면 다행이지."

백시연이 복잡한 심경으로 물었다.

"그놈이 왜 유달 사장을 타깃으로 삼은 거야? 미국에 있다고 생각해서 경계 대상에 대해 알려 주지도 못했다고. 그리고 자칼의 명성이 있지?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런 일은 없어. 달이는 무당검법의 전수자라고, 내가 말했잖아."

"자칼도 검술의 고수야.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어. 중국 검술에도 통달했다고 들었는데?"

"달이는 중국 무당파(武當派)의 검술이 아니라, 특별한 신기가 있는 무당만 할 수 있는 검술을 구사한다고. 예지력이 있는 것처럼 상대가 어떻게 공격할지 미리 다 알고 있어. 그런 달이를 자칼이 어떻게 이길 수 있는데?"

백시연은 골치가 아픈지 한숨 섞인 목소리가 되었다.

"아, 미치겠네… 우리가 약속 깼다고 유달 사장이 오해하는 거 아니야? 씩씩거리며 나타나서 전쟁 선포하면 어떡하지?"

"그건 자칼의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에 달렸겠지. 일단은 청소 업체나 불러."

"이 시간에?"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해. 나 지금 토할 것 같은 거 참고 있어. 이 상태로 자칼이 오기를 기다릴 순 없잖아. 청소 깨끗이 하고… 바닥에 비닐 깔라고 해."

* * *

자칼은 최강의 포식자다.

진짜 자칼은 썩은 고기나 먹는 들개 취급받지만, 킬러 자칼은 한 번도 실패가 없는 완벽함과 잔인하게 살해하는 무자비함으로 악명 높았다.

그는 항시 생살여탈권을 쥔 절대자의 위치에서 사냥감을 내려다보았다.

사냥감들은 예외 없이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울고불고 사정하며, 얼마를 주면 되겠냐며 그에게 회유하기도 했다.

자칼은 그들의 절실함을 즐겼다.

사냥감들은 사정도 회유도 통하지 않으면, 고통 없이 죽여 달라 부탁했다.

자칼은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최대한 아량을 베풀어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했는데, 세상은 잔인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랬던 포식자 자칼이 정반대의 상황에 놓였다.

서걱, 서걱!

팔뚝과 가슴을 연이어 베였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신음이 튀어나왔다.

"크윽……."

유달은 곧바로 달려들어 끝장내지 않았다.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지, 검을 어깨에 걸치고 여유를 부렸다.

"만복이와는 어떤 관계야?"

"……."

"만복이 몰라? 만복이. 영어 이름으로 제임스 박~ 말이야. 이거 혹시 만복이가 시킨 건 아니지?"

자칼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유달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오면 정말 재미없어.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파팟.

유달이 또다시 뛰어들었다.

자칼은 정신 바싹 차리고 방어를 단단히 했다.

챙챙챙챙!

칼질의 속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힘도 유달이 앞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칼을 미치게 하는 건, 그가 노리는 수를 유달이 귀신처럼 알고 대처한다는 것이다.

사악.

자칼의 검은 빗나가고, 유달의 검은 그의 허벅지를 길게 베고 지나갔다.

서걱~!

"크악!"

자칼은 온몸 구석구석을 난도질당하는 상황이다.

유달의 검날이 날카롭지 못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제대로 날이 선 진검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유달이 공세를 잠시 멈추고 물었다.

"만복이 알지? 이번에도 대답 안 하면, 혓바닥을 잘라 버릴 거야. 말도 안 할 혀는 필요 없잖아?"

마침내 자칼이 대답했다.

"모, 모른다……."

일단은 유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는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외려 유달은 버럭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챙챙!

서걱, 서걱, 서걱.

검으로 막는 것보다 베이는 횟수가 더 많았다.

온몸이 피로 물들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자칼은 이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도망쳐야 했다.

"이야야~!"

후웅~

자칼은 괴성을 지르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유달이 이를 피하려고 뒤로 물러나자, 자칼은 냅다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유달이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야! 죽는 장면은 찍고, 도망쳐야지!"

자칼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중요한 배역이 도망쳤으니, 영화 촬영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그와 더불어 정찬일이 죽을 뻔한 위기도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유달은 자칼을 곱게 보내줄 마음이 없다.

"거기 서! 내 목에 상처를 냈으니, 팔다리 하나는 놓고 가야지!"

그는 이내 자칼을 뒤쫓기 시작했다.

자칼은 유달이 쫓아오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그동안 국제적인 수사 기관의 포위망을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타고난 민첩성 덕분이다.

"그런데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자칼은 갑자기 뒷덜미가 싸늘하여 뒤돌아보는 순간,

그의 눈은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파파파파파팟!

"저기 서라고 했지!"

유달이 잡아 죽일 듯한 표정을 짓고 달려오는데, 그 속도는 자칼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지 않으면 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서울 외곽 유흥가 뒤편에 있는 오피스텔.

자칼은 피범벅이 되어 계단을 올랐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어… 어떻게 내가 실패할 수 있지? 제임스가 괜히 조심하라고 했던 게 아니야. 어쩌면 제임스보다 더 뛰어난 능력자일지도 몰라."

힘들게 6층까지 올라온 그는 서둘러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띠띠띠.

띠리링.

자칼은 예상치 못한 고생을 했기에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제, 제임스!"

자칼은 화들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을뻔했다.

침대 끝단에 걸터앉아 앉아 있는 박만복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디 갔다 오는 중이지?"

박만복은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 그냥 밖에서 좀 놀다가……."

"그렇게 피범벅이 되면서 누구랑 놀았을까?"

"그, 그게 말이지. 나는 제임스, 너를 위해……."

벌떡!

박만복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자칼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가며 화를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놈… 살아왔네? 그냥 달이한테 죽는 게 더 편안했을 텐데 말이야."

"!"

자칼은 뒷걸음치다가 기겁하며 놀랐다.

자신의 오피스텔 바닥 전체에 비닐이 깔린 것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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