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박 대 굿
분위가 남다른 박 카페.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현대적인 건물이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는데, 은은하면서도 신비로운 불빛이 호화로움을 더했다.
굿 카페 식구들은 도전적으로 오픈 현수막을 노려봤다.
-대한민국 최고의 사주 카페
장미란도 순수한 초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해방촌의 수많은 카페 중에 왜 하필 여기일까요. 그리고 저 현수막 문구를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데요."
송보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감히 대한민국 최고를 논하다니요. 이건 우리 굿 카페 식구 전부를 향한 도전이에요"
장미란이 유달의 의향을 물었다.
"그냥 돌아갈까요?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는 건 저들의 의도대로 되는 것인데."
"아니요, 도전은 받아들이라고 있는 겁니다. 우리 굿 카페는 어떠한 도전도 사양치 않습니다."
유달이 앞장서서 걸었다.
송보름은 유달 곁에 바싹 붙으며 말했다.
"절대 기죽지 마요. 대한민국 최고의 사주 카페는 우리 굿 카페예요. 챔피언의 위치란 말이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만복이 놈한테는 절대 안 져."
"그런데 여기는 손님들도 고급스러워 보여요. 우리는 직장인 복장인데, 여기 손님들 파티 복장이에요."
"쫄지 마! 최고의 카페는 손님을 가리지 않아. 그런데 왜 여기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는 거야?"
"테이블 숫자가 얼마 안 되는 거 아닐까요? 광고 효과를 위해 일부러 손님들을 줄 세우게 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겠지? 우리는 250평이 넘잖아."
카페 입구에 있는 남자 직원이 유달에게 물었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백시연이란 여자가 여기서 보자고 했거든요."
"아, 총괄 지배인님의 손님들이시군."
유달은 짜증을 참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총괄 지배인이요?"
"그렇습니다. 유명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굿 카페의 유달 사장님과 직원분들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저는 박 카페의 홀 매니저 김무현입니다. 최고의 VIP분들이니 각별하게 신경 쓰라는 총괄 지배인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지요."
굿 카페 식구들은 연예인처럼 훤칠하게 생긴 홀 매니저를 따랐다.
유달이 그에게 물었다.
"여기 사장 이름이 박만복인가요?"
"아니요, 박 카페의 대표님 성함은 제임스 박입니다."
"아~ 제임스 박!"
김무현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카페 내부는 중세 시대를 구현한 듯 몽환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송보름이 유달에게 귓속말했다.
‘여기 인테리어는 우리한테 안 돼요.’
‘그렇지! 우리는 세계적인 전문가 정세리의 작품이잖아. 우리 카페 취재했던 잡지사 기자도 뻑이 갔지.’
홀 매니저 김무현이 잠시 멈추며 설명했다.
"조만간 인테리어 공사가 들어갑니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거지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정세리 씨를 뛰어넘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유달을 복화술처럼 중얼거렸다.
‘이놈의 새끼가… 돈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그래도 홀은 우리가 훨씬 넓어요. 아무리 넓게 봐도 우리의 절반 수준밖에 안 돼요.’
‘아니야, 보름아. 여기는 2층까지 있다고!’
김무현이 잠시 멈췄던 걸음을 이어 갔다.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유달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2층에도 넓은 홀이 있었다. 1층과 2층의 좌석 수를 합치면 굿 카페는 뛰어넘었다.
"총괄 지배인님이 준비하신 자리는 바깥에 있습니다."
김무현은 굿 카페 식구들을 확 트인 전망의 야외석으로 안내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남산 타워 전경이 제대로 보였다.
김무현이 깍듯이 고개 숙이며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면, 박 카페의 스페셜 코스가 나옵니다. 그 외에도 맛보고 싶은 메뉴가 있으시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김무현이 뒤돌아 떠나는 순간,
굿 카페 식구들이 동시에 머리를 모았다.
장미란의 뛰어난 관찰력이 발휘되었다.
"매장 크기는 비슷한데 테이블 수는 우리보다 많아요. 커플 중심의 마케팅을 펼치는 것 같고요. 직원의 수는 우리의 배가 넘어요. 인건비가 만만치 않아 타산이 맞을지 모르겠네요?"
강성호가 메뉴판을 보며 대답했다.
"메뉴 구성은 우리와 비슷하고요.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이 아닙니다. 이러면 정말 손해일 텐데요?"
유달이 양손을 깍지 끼듯 모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놈의 목적은 돈이 아닙니다. 굿 카페보다 낫다는 명성을 얻어 저를 이겨 보려는 수작이죠."
송보름은 점을 보러 다니는 이들을 살폈다.
"방송에 나온 유명 무속인이 총출동했어요. 점괘가 잘 맞는지에 상관없이 손님들이 미리 만족하고 있다고요."
신소미는 주변 테이블 바쁘게 눈짓하며 말했다.
"연예인 손님들도 엄청 많아요. 저쪽은 걸그룹 멤버고요, 저기는 요즘 뜨는 배우 이다영이고요. 해외에서 뛰다 잠시 귀국한 스포츠 스타도 있어요!"
송보름이 큰소리치며 유달에게 말했다.
"우리도 한류스타 오현아 불러요! 만날 싸우기만 하는 팬클럽 회원들만 데려오지 말고요."
"안 돼! 현아님을 누추한 카페로 부를 순 없어. 요즘 결혼식 준비로 얼마나 바쁘고 골치 아픈데……."
곧바로 유달이 번뜩 생각난 듯 말했다.
"호박엔터테인먼트에 도움을 청할까? 박 대표님은 내 부탁이라면 무조건 들어주지.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들을 왕창 보내 줄 거야."
"연예인의 급이 다른데 경쟁이 될까요. 외려 여기와 비교만 될 수 있다고요."
"그런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장미란이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외적인 면에서는 우리와 동등하거나 앞선다고 봐야겠어요. 무엇보다 이곳의 전망이 좋네요. 남산의 야경이 막힘없이 한눈에 다 보여요."
"저는 남산 타워를 폭파해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굿 카페 식구들이 박 카페가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임을 인식하는 때였다.
홀 매니저 김무현이 음식이 담긴 카트를 밀고 오는 여직원과 함께 왔다.
"총괄 지배인님이 조금 늦으신다고 합니다. 먼저 드시면서 기다리시라고 하시네요."
이어 그가 여직원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들이니까, 실수하지 말고 세팅해."
"알겠습니다. 매니저님."
김무현은 물러가고, 굿 카페 식구들의 시선은 여직원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음식에 쏠렸다.
눈을 현혹하고, 군침이 절로 도는 온갖 종류의 케이크 잔치가 벌어졌다.
송보름이 참지 못하고 한 수저 떠먹었다.
"!"
그녀는 놀라는 표정만 지을 뿐, 말이 없다.
신소미와 장미란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는데,
"!"
"!"
그녀들 역시도 놀란 표정만 지을 뿐이다.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굿 카페에서 품평회를 열었던 야곱 빵집은 맛과 모양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다.
바리스타 강성호는 은은한 향기가 일품인 커피를 먼저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야, 왜 벌써 패배를 인정하고 그래!"
유달이 성급함을 나무라며 소리치는 그때.
챙그랑.
세팅하던 여직원이 접시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황한 그녀는 연신 사죄의 말을 연발했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여직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유달은 몹시 놀라서 눈이 배나 커졌다.
송보름과 신소미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유달의 입에선 경탄의 말이 튀어나왔다.
"세상에 이런 관상이 또 존재할 줄이야……."
강성호에 버금갈 정도로 박복한 관상이었던 것이다.
곧이어 유달의 목소리가 이를 가는 듯 변했다.
"만복이, 이놈의 자식… 정말 하나도 안 지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 * *
박 카페의 총괄 지배인 사무실.
백시연은 회전의자에 앉아 보안 모니터를 살폈다.
2층 보안 카메라에 잡힌 굿 카페 식구들의 자리가 확대되어 보였다.
그들은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음성은 들리지 않아도 심각한 분위기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시연은 별로 기분 좋은 모습이 아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운지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며 실소를 터트렸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유치한 싸움에 왜 나까지 끌어들이고 난리냐고."
박만복은 조직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는 애물단지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조직에 붙잡아 두는 것이 그녀의 역할.
백시연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 카페의 총괄 지배인이 되어야 했다.
지이잉~ 지이잉~.
책상 위에 놓인 백시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발신 번호를 확인하니 박만복의 전화다.
"지금 일하는 중 아닌가? 이렇게 전화해도 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맡은 일은 절대 실수 안 해. 달이 놈은 왔어?
"응, 왔어. 굿 카페 사람들과 시식 중이야."
-그놈 표정 가관 아니지? 모든 면에서 경쟁이 안 되니 미쳐 버리려고 할 거야.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와서 확인하든가. 네 실력이면 금방 처리하고 올 수 있잖아."
-아무리 궁금해도 참아야지. 달이 놈이 나를 보는 순간, 칼부림 날 게 뻔하거든. 그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빠짐없이 말해 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
백시연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음성으로 물었다.
"대체 둘이 어떤 사이야?"
박만복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사이지. 나는 그놈 칼에 목이 날아가도 할 말 없어.
"그런데 왜 유달 사장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한가?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둘이 얼마나 유치하게 놀지는 모르겠는데, 조직의 목표에 방해가 될 만한 짓은 하지 마."
박만복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조직의 일에 방해될 게 뭐가 있지? 이것은 그놈과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싸움인데.
"이렇게 이유 없이 괴롭히면, 유달 사장이 우리 조직까지 적으로 돌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그럴 리는 없어. 달이 놈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잖아. 그놈은 나와 달리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는 스타일이야. 물론 상대가 그 약속을 깨는 순간,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거지.
백시연이 사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인데, 이 유치한 싸움에서 나 좀 빼줄 수 없어? 나는 지금 할 일이 산더미라고. 제임스가 갑자기 사들인 사주 카페의 총괄 지배인까지 할 여력이 되지 않아."
-네가 그리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정말?"
-내가 조직을 탈퇴하고 카페 일에 전념하는 수밖에. 정말 그래도 되겠어?
"……."
백시연은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 욕했다.
곧이어 박만복이 독촉하여 말했다.
-아직 사무실인 것 같은데, 어서 밖으로 나가야지. 내가 부른 기자가 도착할 때가 됐어.
백시연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내가 나쁜 편에 서서 선량한 사람들을 일부러 괴롭히는 기분이라고."
-내 듣기로, 너의 학창 시절은 그리 정의롭지 않았던데? 영적인 능력으로 여러 얘들 학교 관두게 하지 않았나.
"나는 선량한 애들을 괴롭히던 나쁜 년들을 똑같이 괴롭혔던 것뿐이야. 제임스가 생각하는 그러 아니라고."
-싫으면 언제라도 말해. 나도 항시 조직에서 탈퇴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알았어! 내가 졌어. 군말 않고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너도 조직에서 맡긴 일 실수 없이 잘 처리해. 끊어!"
백시연은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야외석에 앉아 있는 굿 카페 식구들은 백시연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박 카페의 메뉴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유달은 새로운 케이크 맛을 볼 때마다 욕이 튀어나왔다.
"젠장! 왜 이렇게 다 맛있고, 가격까지 저렴한 거야?"
장미란은 치즈 케이크에 푹 빠졌다. 여럿이 맛을 봐야 하는 케이크를 독식했다.
"유달 씨, 이 케이크에선 진짜 뉴욕 맛이 나요."
"뉴욕은 무슨 맛인데요?"
"제가 즐겨 찾던 뉴욕의 베이커리 맛과 똑같다고요."
"저는 그 뉴욕의 베이커리도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백시연은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질 않으니, 직접 기척을 내야 했다.
그녀는 활력 넘치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죠."
순간, 굿 카페 식구들은 일시에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굳어진 표정으로 아주 천천히 고개 돌려 그녀를 보았다.
백시연은 난감함을 넘어 식겁하고 말았다.
이는 살기가 느껴지는 야생의 시선, 흡사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