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21화 (121/183)

121화. 변하는 건 없다

달무리 진 밤하늘.

해방촌 인근의 고급스러운 카페 건물 2층.

백시연과 박만복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야외석에 앉아 있다. 남산 타워의 야경이 막힘없이 보이는 최고의 명당자리다.

전망이 좋아서 수많은 야간 데이트족이 목표가 될 만도 하건만, 2층에는 오직 그들뿐이다.

백시연이 의아하여 물었다.

"왜 우리밖에 없어?"

팔짱을 끼고 있는 박만복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2층에 다른 손님들은 받지 말라고 했어. 내가 번잡한 걸 싫어하잖아."

이어 그는 뒤쪽에 있는 남자 직원에서 손짓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는지 그는 깍듯이 고개 숙였다.

곧이어 남자 직원은 따뜻한 커피와 여러 종류의 케이크가 실린 카트를 밀고 왔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테이블 위에 세팅하고 물러갔다.

박만복이 팔짱을 풀며 권했다.

"어서 먹어 봐."

케이크용 포크를 든 백시연이 탄성을 터트렸다.

"와~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네."

테이블 위에는 여러 종류의 수제 케이크가 고급스러운 접시에 담겨 있었다.

척 봐도 고급스럽고 화려한 장식은 포크로 잘라 먹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잠시 망설였던 그녀는 제일 앞에 놓인 생크림 치즈 케이크부터 살짝 떠먹었다.

오물오물 씹는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박만복이 물었다.

"어때?"

"대박! 너무 맛있어."

"그래! 그러면 다른 것도 먹어 봐."

이미 그녀의 포크는 다른 케이크를 절단 내고 있었다.

"음~ 이 초코케이크는 진짜 별미다."

"뉴욕에서 일했던 유명 파티셰가 만든 거야. 커피도 한번 마셔 봐. 여기 바리스타의 실력도 괜찮으니까."

마침 그녀는 목이 마른 참이다.

백시연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들어 향부터 음미했다.

"와……."

그녀는 오늘 감탄사의 연발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백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이네?"

이어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왜 갑자기 이런 선심을 베푸는 거지? 너무 과분한 대접이라 부담스럽기도 하고……."

"우리가 같이 일한 세월이 얼만데. 내가 가장 신뢰하는 동료니까, 이 정도는 대접은 해 줘야지."

"어쨌든 고마워. 오랜만에 입이 호강했어. 분위기도 너무 좋고…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가 꼭 데이트하는 거 같지 않아?"

빠직.

박만복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백시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방금 그 반응은? 내가 정말 박만복 씨에게 관심이 있는 거 같아? 어림없는 소리. 나는 우리 조직의 인간들에겐 절대 관심 없어.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잖아."

그녀는 다시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박만복은 말없이 지켜보았고, 포만감을 느낀 그녀가 포크를 내려놓자 입을 열었다.

"거의 다 먹었으니, 이 카페의 총평을 듣고 싶은데?"

"아주 좋아. 최고."

백시연은 엄지 척까지 했는데, 박만복은 뭔가 부족하다는 기색이다.

"나는 구체적인 대답을 원해."

"어떻게? 이 커피는 어떻고, 저 케이크는 어떻고, 온갖 미사여구를 들먹이며 표현하라는 거야."

"그건 아니고… 달이 놈의 굿 카페와 비교해서 어떠냐는 거지. 예전에는 파리만 날렸는데, 지금은 새롭게 단장해서 꽤 성업 중이더라고."

"……."

"그놈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여기처럼 남산 타워가 보이는 전망이나, 격이 다른 커피에, 그놈의 가게에는 없는 케이크까지. 이 카페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게 왜 중요한데?"

"내가 이 카페를 샀거든."

"뭐라고?"

백시연이 진정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일 때다.

후두득, 후두드득…….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둘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실내로 들어왔다.

백시연은 젖은 머리를 신경 쓰지 않고 물었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이 카페를 샀다고?"

"맞아. 이 카페의 사장이 바로 나야."

"언제 샀어?"

"한 열흘쯤 되었나."

대충 계산하니, 박만복이 굿 카페에 들른 다음 날이다.

백시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샀는데? 제임스는 가게나 사업 같은 건 관심 밖이었잖아? 골치 아프게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 많다고."

"일단은 이 정도 카페를 살 수 있는 여력이 되고, 사람 만나는 일이 잦아지니까, 마땅한 직함이 있어야겠더라고. 프리랜서라고 하니, 백수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카페 사장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서 결정했지."

백시연은 그의 말이 진실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데? 혹시 유달 사장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야? 굿 카페가 파리 날릴 때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잘되니까 질투심이 생겼다거나… 설마 그 정도로 철딱서니 없는 건 아니지?"

"……."

박만복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을 때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진동으로 놓은 백시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뭐야? 유달 사장이잖아……."

백시연은 박만복의 눈치를 살피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밤이 되면 쌩쌩해지는 모양이네?

"남의 사생활은 관심 끊고, 용건만 말씀하시죠."

-약속 지키려고 전화했어. 대마신이 재림하면 제일 먼저 알려 달라고 했지.

"!"

-방금 그놈이 깨어나는 낌새가 느껴졌어.

"저, 정말이에요!"

-못 믿을 거면 왜 나한테 부탁했어?

백시연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들었기에 대마신이 재림을 알 수 있는 거죠? 꺼림칙한 기분 같은 게 드나요. 아니면, 강렬한 통증이 느껴지나요?"

유달은 귀찮은 기색이 다분한 음성이다.

-내가 그런 것까지 알려 줘야 하나? 삼사일 뒤면 만복이 놈도 알게 될 거니까, 자세한 건 그놈한테 물어봐. 지금도 같이 있지 않나?

"어떻게 알았어요?"

-뭐야! 정말 그놈하고 같이 있어? 너 지금 어디야! 내가 당장 달려 갈…….

띡.

백시연은 재빨리 통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박만복에게 말했다.

"들었지? 드디어 대마신의 재림이 이루어졌어."

"큰 의미 있나? 올 것이 온 것뿐이고,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했으니, 계획대로 진행하면 돼."

"유달 사장은 어쩔 거야?"

"그놈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놔둬."

"그러다 유달 사장이 대마신을 제거하자는 무당들 편에 서면? 그의 영적인 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알잖아.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가 될 거야."

박만복은 확신하여 말했다.

"아니, 그놈은 절대 대마신하고 싸우지 않아. 우리가 그놈을 자극하지만 않으면 문제 될 게 없어."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박만복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누구보다 그놈을 잘 아니까. 만약 그놈이 대마신고 싸우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걸 잃게 되거든."

* * *

비 내리는 밤.

밝은 홀 조명이 꺼진 굿 카페.

통로 쪽의 상시 조명등만 몇 개 켜져 있을 뿐이다.

유달은 여전히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서 있었다.

희미한 창밖의 불빛에 드러나는 그의 얼굴은 생각이 무척이나 많아 보이는 표정이다.

장미란이 퇴근 준비를 마치고 다가와 물었다.

"마침내 그 대마신이 깨어난 건가요?"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몸으로 현신한 것이라 할 수 있죠."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인류의 위협이 될 만큼 매우 위험한 존재 같은데요?"

유달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놈은 호환, 마마, 핵폭탄,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지요."

"이건 유달 씨의 말을 못 믿어서가 아닌데요. 그리 위험한 존재를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이 왜 모르고 있는 거죠? 제가 FBI를 통해 알아봤는데, 대마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더라고요."

"그건 강대국이 그렇게 믿기를, 대마신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마신이 그만큼 엄청난 놈이라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도 볼 수 있지요."

"정말 궁금한 게 산더미 같은데, 유달 씨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싶은 거죠?"

그제야 유달이 고개를 돌렸다.

"제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머리가 복잡해서 만사가 다 귀찮습니다."

"그럼, 딱 한 가지만 물을게요."

"좋습니다. 마지막 질문받겠습니다."

장미란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일부터 굿 카페는 무엇이 달라지나요?"

대답이 복잡할 수도 있고, 단순한 수도 있는 함축적인 질문이다.

이에 유달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가게 문 열고, 영업하여 돈 벌고, 그 돈 가지고 맛있는 거 마음껏 사 먹고, 미란 씨의 미제 사건도 계속 도울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내일 봐요."

장미란은 활기차게 인사하고 출입문으로 향해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달 씨도요. 참, 내일은 신 순경이 온다니까, 오후에 볼일 있으면 봐요."

"볼일 생기면 말씀드리지요."

딸랑딸랑.

장미란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유달은 한숨을 한번 내뱉고 신당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신당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누군가와 이야기하듯 혼잣말했다.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네."

이어 그는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여 듣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그러다 이내 손사래 치며 언성을 높였다.

"에이~ 안 싸워. 정말이야? 나 성질 많이 죽었어. 아까 미란 씨에게도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한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허락이 떨어진 듯 유달은 바로 질문을 했다.

"저번에 내가 술 먹고 버킷리스트 소원 빌 때 말이야. 마지막 소원이 대체 뭐였지? 설마 대통령 만나게 해 달라고 빈 건 아니지? 그렇다면 벌써 이루어졌다고!"

유달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듯 과장되게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니까? 지금의 나라면 남북통일이나 세계 평화를 빌었을 거라고, 그러면 절대 이루어질 리 없잖아. 아니, 남북통일은 좀 위험한가? 북쪽에서 미친 척하고 통일하자고 할 수도 있잖아?"

곧바로 유달은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현아 결혼식 준비는 잘 되는지 체크해 보라고. 알았어! 당연히 그래야지. 마침 내일 시간 되니,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볼게."

이어지는 유달의 목소리는 매우 침울하게 들였다.

"당연히 찬일이 쪽이지… 난 아직 너희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다."

* * *

압구정동 호박엔터테인먼트 사무실.

기획사 대표 박상진은 유달을 볼 때마다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아침부터 까치가 요란하게 울어 대던데, 선생님을 만날 좋은 징조였나 봅니다. 무슨 일로 사무실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유달은 박상진이 손짓으로 권하는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찬일이 결혼 준비는 잘 진행되나 해서요."

"그런 건 전화로 물어보시지요. 왜 힘들게 직접 찾아오셨습니까?"

"뭐… 오랜만에 대표님도 뵙고 싶고, 겸사겸사 오게 되었습니다. 아무 지장 없는 거죠?"

"하하하……."

박상진의 웃음소리에 유달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어색함이 묻어나는 웃음은 그가 곤란할 때 보이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혹시 문제가 있는 겁니까?"

"있기는 한데,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대체 그 사소한 것이 뭔데요?"

유달의 거듭되는 독촉에 박상진의 얼굴엔 어색한 웃음마저 사라졌다.

그는 바로 표정이 굳어지며 이실직고했다.

"사실은 엄청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예정대로 결혼식을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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