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20화 (120/183)

120화. 약속은 지킨다

청와대의 연풍문 검색대.

유달은 신분 확인 과정을 거쳐 출입증을 받았다.

그에 대한 보안 검색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청와대 관저에서 대통령 부부와 최소한의 경호 상태로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유달에게는 담당 직원이 한 명 붙었다.

말수가 적은 인상에 날렵한 체구의 사내인데, 그는 유달이 지닌 모든 소지품을 꼼꼼하게 검사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상적인 것이라도 그냥 소홀히 지나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보시다시피 보통 메모지입니다. 사주를 적을 때 쓰는 것이죠. 무당인 저에겐 필수템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군요."

담당 직원은 포스트잇 메모지 사이사이까지 살폈다.

유달은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말했다.

"오늘은 필요 없으니, 여기에 두고 가도 됩니다."

담당 직원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여기 볼펜하고 핸드폰도 필요 없고요. 그냥 몸만 들어가겠습니다."

유달은 자청하여 모든 소지품을 맡겼다.

곧이어 그는 담당 직원과 함께 청와대 경내로 들어섰다.

유달은 청와대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숭숭한 꿈자리 때문이다.

어떡하든 잘 넘겨 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관저 인근에 이르자, 담당 직원이 처음으로 말을 붙였다.

"운동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네, 조금……."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담당 직원은 민간인 신분인 유달이 상당한 무술 고수임을 직감했다.

"대통령께서는 지인과의 사적인 만남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하셨습니다. 관저 식당 안에서는 눈에 뜨이지 않는 경호를 하게 됩니다. 부탁드리는데, 우리 판단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행동은 삼가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지요. 경호하시는 분들이 놀라지 않게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유달은 담당 직원의 주의를 들으며 관저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대통령이 사는 곳이구나 하는 감상은 없다.

정신 바싹 차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담당 직원의 뒤만 졸졸 따랐다.

담당 직원은 관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깍듯이 인사하며 들어가라 손짓했다.

"감사합니다."

유달은 짧게 답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전통 문양 느낌의 가림막을 친 공간 안에, 한식 위주의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대통령이 반갑게 유달을 맞이해 주었다.

"내 초대에 응해 주어 고맙습니다."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유달은 최대한 공손하게 악수했다.

영부인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서 와요. 우리 그이가 무척 보고 싶어 했답니다.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다고 해서 강렬한 인상인가 싶었는데, 매우 부드러운 모습이네요. 요즘 말로 꽃미남이라 하나요?"

"감사합니다. 혹자들은 나사가 풀렸다느니, 맹하고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고 하던데, 영부인님의 식견은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부인님도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우십니다. 세계의 영부인들 중에서 단연 탑입니다."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네요."

그들은 화기애애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대통령의 치하가 시작되었다.

"내가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유달 씨의 투철한 시민 의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데, 검찰과 경찰을 통해 들은 유달 씨의 활약상은 실로 믿기지 않는 것이었어요. 더욱이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고……."

유달은 대통령의 칭찬이 제대로 들리 않았다.

어느 지체 앞이든, 상대의 말이 길어지면 집중력의 저하가 바로 일어났다.

이는 피곤한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의 끝나지 않는 훈화인 듯, 꿈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정체 모를 이야기를 나누는 듯, 머릿속에서 웅얼거리며 메아리쳤다.

영부인이 구세주다.

"차려 놓은 음식이 다 식겠어요. 이제 그만하고 식사하죠?"

"내 말이 또 길어졌군요. 듣기 좋은 말도 계속하면 잔소리가 된다던데. 내 못된 버릇이 또 나왔나 봅니다. 입맛에 맞을 모르겠지만, 어서 들어요."

"감사합니다!"

유달은 전투적으로 밥을 먹었다.

그는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어도, 배는 든든히 채우자는 주의였다.

대통령 부부는 그런 유달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달은 맛있게 먹는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이 매우 심란했다.

‘생전 처음으로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야!’

예지몽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도 대통령 부부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았지만, 나중에는 크게 노하여 사약까지 내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었다.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데도, 밥은 계속 들어가!’

꿈속에서처럼 청와대의 밥맛은 단연 최고였다.

점점 꿈과 비슷해지는 상황에 유달의 불안한 마음은 더욱더 커졌다.

* * *

식사가 끝나자 전통 다과가 나왔다.

대통령 부부와의 본격적인 대화의 시간이다.

유달은 최대한 아부성 말만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때.

영부인이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이름이 외자인가요?"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먼저 이름을 지어 놓았습니다. 아들이면 해, 딸이면 달이라고 이름 붙이자고 약속하셨죠."

"그런데 왜 이름이 해가 아닌 달이 되었나요?"

"어감이 안 좋았기 때문이죠. ‘유해’라고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습니까? 무덤에서 나온 뼈도 유해고, 해로움이 있다는 뜻으로 쓰이고요. 부모님은 다시 상의하여 딸이면 붙이려 했던 달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셨습니다. 저는 매우 고마우신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말을 참 재미있게 하시네요. 사주 카페 사장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명동에서 장사하는데, 잡지에 실릴 정도로 성업 중입니다."

"점도 직접 보나요?"

"물론입니다. 저희 가게가 성업 중인 가장 큰 이유가 저의 점 실력 덕분이지요."

"그럼, 제 남편 점을 좀 봐 주실 수 있어요?"

"!"

유달은 흠칫하며 놀랐다.

꿈속에서 사약을 받게 되는 발단이 점괘 때문이었다.

점을 보지 않으면 꿈속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부인의 부탁을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

유달은 애석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고 싶습니다만… 대통령님께서는 대형 교회의 장로이신데, 무당을 불러다 점을 봤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여러모로 곤란하실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중상모략을 받을 수도 있고요."

대통령이 단호히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나는 교회의 장로이기 전에 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재임 기간에는 특정 종교에 편향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과도한 굿판을 벌하면 모를까, 보통 사람들이 재미로 보는 수준을 문제 삼는 것은, 내가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훌륭하신… 생각이십니다."

유달이 싫다고 하면, 분위기가 삭막해질 게 뻔했다.

"그렇다면 정말~ 재미 삼아서 사주 관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이름과 사주를……."

유달은 습관적으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사주 종이를 검색대에 놓고 왔음을 깨달았다.

"하하하, 사주 적을 메모지가 없군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통령은 가까이 있던 보좌진에게 눈짓했다.

곧이어 한 직원이 메모지를 가져와 유달에게 주었다.

"우와~ 종이 질감이 특별난 것 같습니다."

"청와대 비품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요. 돌아갈 때 많이 챙겨드리고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는 감사하지요. 여기다가 한자 이름과 사주를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은 즉시 이름과 사주를 적었다.

그러고는 유달에게 다시 되돌려주며 농담처럼 말했다.

"잘 좀 봐 주십시오. 특히나 퇴임하고 나서의 삶이 궁금하군요. 많은 전임 대통령이 좋지 않은 전철을 밟아서요."

"알겠습니다. 퇴임 이후의 노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달의 사주 풀이가 시작되었다.

"먼저, 저는 저번 선거 때, 대통령님을 찍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대통령님께서는 사람 욕심이 많으시군요. 아마도 그것이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의 노년은……."

유달은 바로 말하지 않고 뒷말을 길게 끌었다.

이에 대통령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많이 안 좋은 겁니까?"

유달은 순간 고민했다.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고 싶은 유혹이 잠시 있었지만, 대무당의 적손이라는 자부심을 저버릴 순 없었다.

"평화롭고 순탄한 노년은 아닙니다. 끊임없는 구설과 송사에 시달리며, 법정을 수시로 드나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아끼셨던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대통령님을 등지고 배신할 겁니다. 원하던 점괘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유달은 순교자의 심정으로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렸는데,

"하하하하! 그렇군요. 하하하……."

대통령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유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웃음의 뜻이 무엇인지요? 혹시 너무 어이가 없으셔서 화가 나신 건……."

"아니요. 내 예상보다는 좋아서 즐겁게 웃는 겁니다."

"정말이요?"

"역대 대통령 중에서 구설과 송사에 시달리지 않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법정에 수시로 드나들겠지만, 옥살이는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리고 열에 아홉은 배신하지만, 한 명의 진실된 사람을 얻을 수 있으니 기쁜 일이지요."

"엄청나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군요. 이것 역시 대통령님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

"정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리 집사람도 봐 주십시오."

"저는 벌써 적어 놨어요."

영부인은 자신의 사주를 쓴 종이를 내밀었다.

이에 유달은 의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부인님? 죄송하지만 태어난 시(時)가 이게 맞나요? 제 생각엔 자시(子時)가 아니라 오시(午時)일 것 같습니다."

"정말 용하네요? 호호호호."

유달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점을 보았다.

뒤숭숭했던 그의 꿈이 개꿈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 * *

폐점 시간이 가까워진 굿 카페.

가게의 손님은 몇 테이블 남지 않았다.

송보름은 먼저 퇴근했고, 주방에 있는 강성호도 정리를 거의 끝낸 상태였다.

유달이 커다란 액자를 들고 와 장미란에게 물었다.

"이 사진은 어디다 걸어 놓을까요? 아무리 봐도 잘 나왔습니다. 가게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요."

유달이 대통령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미란이 으쓱하는 유달을 보며 대답했다.

"가게 내부보다는 사장실이 적당한 것 같은데요. 그것이 국가 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미란 씨 사무실에 걸어 두십시오."

유달은 사진 액자를 장미란에게 내밀었다.

"왜 저한테 주는 건데요?"

"사장실에는 이미 걸어 놨습니다. 그러니 미란 씨가 귀중히 써 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어요. 제 사무실에 걸어 둘게요."

장미란은 흔쾌히 사진 액자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이 몇 시더라……."

유달은 휴대폰이 아닌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10시 10분 전이군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시계입니다."

유달이 팔목을 흔들며 보여 주는 건 대통령에게 선물 받은 시계다.

그의 자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유달은 테이블 밑에 숨겨 놨던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

장미란은 그의 자랑질에 맞장구쳐 주기로 했다.

"글쎄요, 뭘까요? 아주 묵직해 보이네요."

"이것은 청와대에서 쓰는 메모장이고요. 이것은 볼펜… 카페에서 사주 적을 때 쓰면 격이 올라가겠지요? 그밖에도 다이어리, 종이컵 등등, 제가 소소한 걸 좋아한다고 하니, 이만큼이나 챙겨 주셨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나가는 돈 아닌가요?"

유달은 강하게 부정할 때 하는 행동인, 손가락과 고개를 동시에 흔들었다.

"노, 노, 노, 노, 노!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저에게 준 비품 비용을 자신의 급여에서 제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보다 긍정적이며 꼼꼼하신 분이더라고요. 아, 그리고 또!"

유달은 안주머니에 봉투 하나를 꺼냈다.

"제가 대통령 부부의 사주 관상을 봐 드렸는데, 복채로 금일봉도 받았습니다."

"유달 씨는 돈 받는 거 싫어하잖아요?"

"나라님이 주시는 건 다르죠. 한 나라의 왕은 하늘이 내는 것인데, 그런 왕이 저에게 하사하셨다는 건, 하늘이 나에게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그런 논리가 적용될 줄은 몰랐네요."

"오랜만에 봉투까지 받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들뜬 마음에 얼마가 들었나 확인했는데… 칫."

유달은 기대 이하의 금액이라는 반응이었다.

이에 장미란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부터 금일봉에는 큰돈이 들어있지 않아요. 어쨌든 오찬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네요. 그렇게 걱정하더니, 사약 받지 않은 게 어디에요?"

장미란이 유달의 꿈에 빗대어 농담하는 때다.

강성호가 퇴근 준비를 끝내고 다가왔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남아 있던 손님들이 계산을 끝내고 모두 나간 것이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매니저님은 우산 챙기십시오. 밖에 비가 옵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차에 우산 있으니까, 조심해서 들어가."

강성호가 퇴근하자 유달이 창가로 다가갔다.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니, 비 오는 분위기도 달라졌네요. 예전에는 우중충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낭만적인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장미란도 유달 옆에서 서서 비 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척 반가운 비네요. 가뭄 때문에 농사짓는 분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하던데."

"그러게요. 비는 반가운데… 전혀 반갑지 않은 것도 함께 왔네요."

"뭐가요?"

장미란이 고개를 돌리니, 유달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

그는 장미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통화는 바로 이루어졌다.

"밤이 되면 쌩쌩해지는 모양이네? 약속 지키려고 전화했어. 대마신이 재림하면 제일 먼저 알려 달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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