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악마의 재능
청와대가 특별한 건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며, 행정권의 수반이자, 대한민국 서열 넘버 원!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자를 유달이 만나게 되었다.
날짜는 다음 주 수요일.
유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그를 대통령이 초청하는 형식이다.
처음 유달은 보이스 피싱이 아닌지 의심했다.
때마침 장미란이 옆에서 있어서 바꿔 주었는데, 그녀는 진짜 청와대의 전화임을 확인해 주었다.
이는 가문이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유달은 며칠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모든 이야기에 대통령이 꼭 들어갔다.
장미란은 귀에 딱지가 생길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들어 주었다.
"솔직히 어떤 연예인의 단골이니, 무슨 방송에서 촬영 나왔느니, 그건 다 필요 없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사주 카페. 이러면 게임 끝 아닙니까?"
"……."
"물론 대통령께서 점을 보자고 저를 초청해 주신 건 아니지만 말이지요. 홍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뻥은 인정되는 게 관례입니다."
장미란은 아무 대꾸 없이 걸었다.
맞장구를 쳤다가는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덕 시장 주변을 헤매듯 돌아다녔다.
유달이 찾아 달라고 부탁했던 빵집의 주소가 시장 근처였던 것이다.
소문난 가게는 아닌 게 확실했다.
주변 상인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배달 서비스 업체의 예상처럼 이미 폐업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미란 씨?"
"왜요? 분명히 이 근처가 확실한데……."
장미란은 영혼 없이 대꾸하며 골목길의 간판을 살폈다.
"우리가 찾는 가게 이름이 뭐라고 했죠?"
"야곱 빵집이요."
"아마도 저기가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유달은 비좁은 골목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입구에 점집이 있고, 청결함과도 거리가 멀어 으스스함까지 느꼈다.
장미란이 부정적으로 말했다.
"이런 곳에 빵집이 있을까요? 손님을 끄려면 골목 어귀에 입간판이라도 내놔야지요."
"제가 그 빵을 먹고 느낀 게 융통성이 없다는 겁니다. 정성은 많이 들어갔는데, 맛이 좀 없죠. 성호가 그러는데, 몸에는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입지 같은 거 상관없이 좋은 빵으로 승부하겠다는 장인의 고집이 느껴집니다."
장미란은 속는 셈 치고 유달을 따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달의 예상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굽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유달이 기쁨의 외침과 함께 멈춰 섰다.
"찾았습니다!"
그는 으쓱하며 낡은 가게 위에 달린 간판을 손짓했다.
-야곱 빵집.
주인장이 직접 쓴 것 같은 페인트 글씨다.
유리창 문에는 하얀색 시트지가 붙어 있어 가게 안이 보이지 않았다.
장미란이 가게 외부를 살피며 말했다.
"폐업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입지도 안 좋고, 가게 상태도 엉망이네요."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집은 많아도, 귀신들이 환장하는 빵집은 진짜 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빵만 사러 온 게 아니다.
"지금 우리 카페의 매출이면, 유명 업체의 케이크와 빵을 좋은 가격으로 납품받을 수 있어요. 굳이 모험할 필요가 있을까요?"
"굿 카페는 이윤의 극대화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귀신들도 좋아하는 빵과 케이크를 팔자는 거죠.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니겠습니까?"
장미란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가게 사정이 너무 열악한 것 같네요. 우리와 계약하고 바로 문 닫으면 어떡하죠."
"저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은 사장님은 어떤 분인지 만나 보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결정하죠."
"그게 좋겠네요."
드르륵.
유달과 장미란이 빵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그들은 익숙한 데자뷔 현상을 경험했다.
빵집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그렇기에 손님 없는 자리가 더욱 썰렁하게 느껴졌다.
계산대에는 고등학생 정도의 여자가 앉아 있는데, 스마트폰에 빠져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유달과 장미란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빵집에 빵을 사러 왔다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유달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 사장님 좀 뵈러 왔는데?"
"저기요."
그녀는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을 손짓했다.
장미란과 유달은 바로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손님이 없을 때 쉬는 공간인 모양이다.
유달이 커튼을 젖히며 사장을 부르려는 했는데,
"아~ 진짜 어떻게 하나도 안 맞을 수 있냐?"
젊은 남자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곧이어 구겨진 종이가 커튼 밑으로 굴러왔다.
장미란이 주워서 펴보니, 로또였다.
"유달 씨와 처음 만날 때가 생각나네요."
"그러게요."
유달이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때다.
촤악.
30대 후반의 남자가 커튼을 열며 나왔다.
그는 유달과 장미란을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손님들! 여기는 제가 쉬는 공간이고요. 빵은 저쪽에 있습니다."
이어 그는 유달과 장미란을 여러 종류의 빵이 전시된 매대로 안내했다.
"가격은 동일하게 천 원이고요. 많이 사시면 특별 할인 들어갑니다."
야곱 빵집 사장은 190에 가까운 키에 사내다운 인상이다.
하지만 왠지 경박한 분위기가 유달하고 흡사했다.
장미란은 빵을 고르는 척하며 물었다.
"여기 있는 빵은 사장님이 만드시나요?"
"그렇습니다. 저의 모든 정성 쏟아부어 만들고 있습니다,"
"케이크는 안 만드시나요? 전시된 게 하나도 없네요."
"안타깝게도 사 가는 사람 없어서 미리 만들어 놓지 않습니다. 주문하시면 바로 만들어 드리지요."
"배달도 가능한가요?"
빵집 사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건… 손님께서 얼마나 많이 사느냐에 달렸겠죠?"
장미란은 바로 주문을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빵은 종류별로 10개씩. 그리고 케이크는 사장님이 자신 있는 것으로 5종류를 추려 주세요. 이 정도면 배달 가능하겠죠."
"물론입니다! 어디로, 언제까지 배달해 드릴까요?"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여유롭게 케이크 다 만들면 보내 주세요. 배달은 여기로 해 주시고요."
장미란은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굿 카페라… 명동에 있군요. 혹시 사주 카페입니까? 굿이 영어로 굿이 아니라 굿한다는 때 굿이고요."
유달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부분은 카페 안에 들어와서, 그런 굿이 아니라 이런 굿이네 하면서, 무릎을 탁 치지요."
실상, 그리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달 역시 어그로가 부족하다며 몇 번이나 카페 이름을 바꿀지 고민했었다.
빵집 사장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은 저도 무속계와 연관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 와이프가 무당이지요. 골목 입구에 있는 점집이 와이프의 일터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굿 카페의 사장 유달입니다."
"저는 야곱 빵집을 운영 중인 양국현입니다."
갑자기 동질감을 느낀 둘이 인사를 나눠다.
"그런데 양 사장님, 여기는 빵집이 있기엔 부적절한 위치 같습니다. 좀 더 쾌적한 환경에 유동 인구도 많은 곳에 빵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양국현은 한숨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도 한때는 강남 번화가에서 삐까뻔쩍 화려한 베이커리를 운영했지요. 아주 그냥 시~원하게 들어먹었습니다. 인테리어와 간판, 집기 모두 새것이었는데 말이지요."
"제가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게 했군요."
"저보다는 와이프가 고생 많았지요. 빵이라면 이가 갈릴 텐데, 이렇게라도 빵 만드는 걸 용인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파이팅입니다, 양 사장님."
"예, 감사합니다. 주문하신 것은 정성껏 만들어서 배달 보내겠습니다."
장미란과 유달이 야곱 빵집에서 나왔다.
양국현은 믿을 만한 사람인 듯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맛이다. 주문한 빵과 케이크로 품평회를 열 예정이다.
장미란이 골목을 빠져나오며 물었다.
"점심 먹고 들어갈까요? 마포 강변 쪽에 유명한 퓨전 레스토랑이 새로 생겼다고 하네요."
"저는 늘 얻어먹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유달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 * *
드넓은 야외 주차장.
유달은 차에서 내리면 탄성을 질렀다.
"우와~ 언제 이런 곳이 생겼데요? 저 건물 전체가 식당인 겁니까?"
유달은 두리번거리며 장미란을 따랐다.
"한강 조망권은 확실하겠네요. 주차장도 엄청 넓고요. 청와대 주차장도 이 정도 됩니까?"
장미란은 그 소리가 왜 안 나오나 했다.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새롭게 문을 연 퓨전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유달과 장미란은 잠시 대기했다가, 여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광활한 홀이 2층까지 있었다.
유달과 장미란은 1층 중앙에 자리했다.
장미란은 메뉴판을 살피더니 바로 주문했다.
"스페셜 2인분이요."
유달은 어떤 음식인지로 모르고 만족했다.
"스페셜 좋지요.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이고, 비싸기도 하겠지요. 아무튼, 잘 먹겠습니다."
장미란이 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유달 씨는 야곱 빵집 사장님과 계약하고 싶으시죠?"
"그렇습니다. 일단은 귀신이 좋아하는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사장님의 성격도 마음에 들고, 불쌍하기도 하고요."
"뭐가 불쌍하다는 거네요?"
유달은 무슨 큰 비밀인 양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아는 무당 중에 남편이 잘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되는 일이 없어서 대부분 한량처럼 지내지요."
"미신 아닌가요? 예전에 미용사 남편은 회사에서 잘 잘린다는 말도 있었잖아요."
"글쎄요. 제가 미용업계는 잘 모르고요. 무속계는 어느 정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그나마 먹고 노는 남편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요. 우리 이모처럼 기구한 팔자가 많지요."
장미란이 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그래도 사업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지요. 저는 불쌍하다고 계약할 마음은 없어요."
"좀 더 멀리 보는 안목으로 접근하는 건 어떨까요?"
"저는 차근차근 굿 카페를 키워 나가고 있거든요. 어디까지 멀리 보라는 거예요?"
"프랜차이즈 말입니다, 프랜차이즈. 미란 씨의 최종 목표는 굿 카페를 브랜드화하는 거 아닙니까? 빵집 사장님의 와이프가 무당이라니, 2호점으로 딱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네요. 한번 고려는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에요."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유달이 갑자기 짜증을 터트렸다.
"아이~ 씨, 정말… 저럴 거면 모텔 가지, 레스토랑에는 왜 오는 거야?"
그의 정면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 때문이다.
장미란은 예전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물었다.
"왜요? 저기도 프러포즈시키려고요?"
"아니요, 저 연놈은 그냥 꼴 보기 싫어서 노려보는 중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저게 무슨 지랄입니까."
젊은 커플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한 스킨십을 했다.
눈살 찌푸리며 곁눈질하는 주변의 반응을 외려 즐기는 듯했다.
장미란이 상관하지 말라는 눈총을 주며 말했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게 짜증 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서로 좋아서 저러면 그러려니 하지요. 저 남자 놈은 천하의 바람둥입니다. 여자를 등쳐먹으려는 수작이지요. 저놈의 진상을 확 불어 버릴까요?"
"그냥 두세요. 아무 경계심 없이 저런 남자를 만나는 여자한테도 잘못이 있지요."
유달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같은 여자로서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이 정도 말하면, 미란 씨가 먼저 일어나서 저 여자에게 조심하라고 충고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뭐 하러요? 눈에 콩깍지 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려요. 저 여자에게 사실을 말해도 욕만 먹을걸요."
"제가 특히 짜증 나는 건 말이죠. 저 바람둥이 놈이 굉장한 행운을 타고 났다는 겁니다."
"어떤 행운이요?"
"아무리 바람피워도 안 걸리는 행운이요. 문어발처럼 사방팔방 여자를 만들고 다녀도, 절묘하게 싹싹 마주칠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러니까 저리 대놓고 꼴불견 짓을 벌이는 겁니다."
"부러워서 시기하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풍기문란에 대한 눈총을 주니까, 나한테 바로 썩소 날렸습니다. 그렇게 못 하는 게 병신이라는 비웃음이 깔려 있었지요."
아무래도 그것이 화가 난 가장 큰 이유 같다.
장미란이 타이르듯 말했다.
"괜한 분란 일으킬 필요 있나요. 그리 꼴 보기 싫으면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할게요."
유달의 목청이 높아졌다.
"아니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자리를 옮깁니까? 저놈을 쫓아내야지요."
"어떻게요?"
"제가 악마의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행을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악의적으로 쓰는 행운은 깰 수 있지요."
유달은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사주 적을 때 쓰는 종이다.
스윽, 스윽, 스윽.
유달은 세 장의 메모지에 1, 2, 3의 숫자를 크게 썼다.
그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조만간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출될 겁니다."
말린다고 들을 상황이 아니다.
장미란은 유달이 어찌하나 조용히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