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천당에서 지옥으로
유달이 김봉기에게 부탁했다.
"저 좀 일으켜 주시겠습니까? 계속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해 죽겠습니다."
김봉기는 유달과 다르게 손발이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였다.
"예, 그러지요."
그는 누워 있는 유달의 상체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헐… 이게 더 불편한 것 같은데요."
발이 묶인 상태라 똑바로 앉기 힘들었다.
밧줄이 아닌 쇠사슬에 묶여 열쇠가 채워져 있었다.
"다시 눕힐까요?"
"아니요, 벽에 등을 대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유달은 묶인 상태로 깡충깡충 움직여 벽에 기댄 편한 자세를 잡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유달이 천장을 올려보며 물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징벌방이라는 곳입니다."
"그런 건 교도소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요."
"교도소의 징벌방보다 이곳이 더 무시무시하지요. 기도원의 규율을 어긴 신도들이 회계하는 곳인데, 살아서 못 나간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유달의 눈에는 징벌방에 있는 원혼들이 보였다.
그들은 벽과 천장에 달라붙어 징벌방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유달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목사님은 왜 교주의 말을 안 따른 겁니까?"
이에 김봉기는 탄식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 정말 답답해 죽겠습니다. 이건 명령 불복종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에 관한 거지요. 솔직히 제 신앙심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김봉기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유달은 이동욱 검사에게 들었던 말을 했다.
"전과가 있으시더군요. 사기와 협박으로 2년 실형 사셨지요? 천흥수 교주에게 감화를 받아 목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실은 돈을 버는 게 목적 아니었습니까? 전과자 낙인이 찍혀 취직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목사가 되면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된 마당에 무얼 숨기겠습니까. 저에게 종교는 생계 수단이자 비즈니스였습니다. 천 교주에게 잘 보이니, 목사 되는 거 금방이더군요."
"천흥수 교주가 당신을 적극적으로 밀어준 것은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지요? 목사님은 하늘교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로 알려졌더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천 교주를 위해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만드는 겁니다."
답답함에 미칠 것 같은 김봉기의 푸념은 계속되었다.
"그냥 한 신도의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끝났을 일이지요. 물론, 사이비 종교라는 비난은 감수해야겠지요. 그것이 싫어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르다니요? 최근 들어 느끼는 거지만, 미친놈들하고 일하기 정말 힘들군요."
유달이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납치당한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기도원 본관 건물 왼편이 신도들의 숙소인데, 그곳 지하실에 숨겨 놨을 겁니다."
순간, 유달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께 물은 게 아닙니다."
"하면, 누구에게 물은 겁니까?"
"……."
유달은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그는 이곳에 끌려와 잠들기 전, 박사에게 납치된 아이가 어디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순순히 잡히지 않고 체력이 다할 때까지, 기도원 전체를 뛰어다녔던 이유였다.
그때는 김봉기와 함께 갇히게 될 거라 예상을 할 수 없었다.
유달은 박사의 반응부터 살폈다.
그는 천천히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네.
아마도 김봉기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신도들의 숙소 건물 지하는 그가 들어가지 못한 곳이다.
곧이어 유달은 이상하게 쳐다보는 김봉기에게 말했다.
"저에겐 남다른 재주가 있습니다."
"무슨 재주입니까?"
"저는 영혼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비가 아닌 진짜배기 무당이지요."
"……."
유달은 김봉기의 반응과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제가 미리 밝혀 두는 건, 우리가 한배를 탄 처지이기 때문이지요. 목사님과 제가 힘을 합쳐야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유괴된 아이도 구할 수 있고요."
"당신이 진짜배기 무당이건, 정신이 살짝 이상한 사람이건… 힘을 합하자는 것에는 동감합니다. 무엇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은 놈들의 계획을 알아야겠지요. 유괴된 아이를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어제 있었던 회의에서 권 집사가 강력히 주장했지요. 이유진 자매와 아이를 배편을 이용해 몰래 육지로 내보내자고요. 그런 다음에 모든 기록을 삭제하고. 신도들의 입막음을 단단히 하면, 교단에는 아무 피해도 없을 거라고 말이지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군요."
"그래서 제가 따끔하게 호통쳤지요. 그런 짓을 벌이면 죄가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아니냐, 경찰 수사가 임박한 상황에 그런 꼼수가 통하겠냐며, 대놓고 면박 주었지요, 그때 권 집사는 찍소리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김봉기는 하루 만에 뒤바뀐 처지가 한스러운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디로 빼돌릴까나…….’
유달이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다.
그의 앞에 우둑하니 서 있는 박사가 말했다.
-중국으로 보낸다고 들었네.
"중국이요?"
-권 집사라는 여자가 분명 그렇지 말했지. 밤 12시경에 밀항 조직의 배가 도착한다고 하더군.
박사의 정보는 의심할 필요 없이 정확했다.
유달이 김봉기에게 서둘러 말했다.
"천흥수 교주는 이유진과 아이를 중국으로 밀항시키려는 모양입니다."
"그래요?"
김봉기는 의문스럽게 대답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유달도 마찬가지였다.
"밀항은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아마도 그 못된 년과 유괴한 아이를 중국에서 살게 할 모양인데, 왜 이리 지극정성이죠? 천흥수 교주가 그리도 신도를 아끼는 사람입니까?"
"저도 내내 걸리는 게 있습니다. 어젯밤 최종 보고를 드릴 때까지, 저에게 모든 걸 일임한다던 교주님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을까요……."
유달이 혹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 집히는 게 있는 눈치인데요?"
"이유진 자매님이 교주님을 협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협박이라니요? 범죄는 그년이 저질렀는데, 뭘로 교주를 협박합니까?"
"그년은… 아니, 아니, 그녀는 우리 교단의 비리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모든 걸 밝히면, 하늘교의 존립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년은 교주의 말을 하늘처럼 받드는 열렬한 광신도 아닙니까?"
김봉기는 확신에 무게를 두며 대답했다.
"그게 말이지요, 어제 납치 일을 캐물으며 느꼈는데, 아이에 대한 모정이 특별하더군요. 강제로 떼어 놓으면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들었습니다."
유달은 기가 찬다는 반응이다.
"정말 어이가 없군요. 남의 생때같은 자식 유괴해서 뭐 하는 짓이랍니까. 그런 년한테는 모정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완전 미친년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뭐가 또 있어요?"
"천 교주님에게 협박은 통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신도들이 그런 짓을 하면 용할 수 없는 신성 모독이 됩니다. 천 교주님이 순순히 들어주려고 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지요……."
유달은 김봉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뭔가 또 집히는 표정인데요? 목사님."
"교주님은 그녀의 협박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확실한 입막음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에서 말이지요."
유달은 막장 스토리의 끝판왕을 봤다는 표정이다.
"헐~ 세상에 이리도 더럽고, 역겨운 경우는 처음입니다. 모정과 신앙심은 고결함의 상징인데, 그것으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 하다니요. 둘 다 완전히 미친놈들 아닙니까?"
"그 둘이야 어찌 되는 상관없지만, 죄 없는 아이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이비 목사라도 일말의 양심은 있습니다."
"저와 똑같은 생각이시군요. 사이비 목사와 진짜배기 무당이 힘을 합쳐서, 완전히 미친놈들을 물리쳐 보지요."
유달의 자신감에 김봉기도 힘을 얻었다.
"좋은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일단은… 자는 겁니다. 목사님도요."
"예?"
"저의 체력이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밀항하는 배가 들어오는 자정 무렵에 일어나,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거지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 있는데요?"
"뭡니까?"
"두 미친놈이 싸우면요. 덜 미친 미친놈이 이길 것 같습니까, 더 미친 미친놈이 이길 것 같습니까?"
"너무 난해한 질문이군요……."
"예… 신경 쓰지 마시고 주무십시오."
유달은 졸음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이어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12시 전에 깨워 주십시오……."
"죄송한데, 여기는 시계가 없습니다."
"목사님께 부탁한 거 아닙니다……."
김봉기가 아닌 박사에게 말한 것이다.
곧이어 김봉기도 바닥에 누웠는데, 누구와 달리 편히 잠들 수 없었다.
"저기… 탈출하신 여자분은 괜찮겠습니까? 기도원의 남자 신도들이 잡으러 나갔는데요."
유달은 잠에 빠져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웬만한 특수 부대가 아니면 미란 씨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목사님도 편안하게……."
유달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세상 편한 표정으로 완전히 잠이 들었다.
* * *
어둠에 휩싸인 귀도.
장미란은 선착장 인근에 숨어 있다.
기도원에서 추적자들을 보냈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FBI에서 특수 훈련을 받은 그녀는 어렵지 않게 그들을 제압하고 따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은 여전히 최악.
외딴섬에 고립되어 바깥으로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장미란은 섬으로 다가오는 불빛을 주시했다.
배가 한 척 접근하는데,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어서 몰래 지켜보았다.
잠시 후.
작은 어선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장미란은 짙은 어둠을 이용하여 최대한 선착장 가까이 다가갔다.
곧이어 작은 어선에서 플래시를 든 몇 명의 선원들이 내렸다.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사내들이다.
척척척척척.
선착장 쪽에서는 기도원 신도들이 다가왔고, 두 무리는 선착장 중에서 만나게 되었다.
기도원 신도가 말했다.
"공 선장님, 준비는 차질 없이 되었습니까?"
덥수룩한 수염의 선장이 대답했다.
"그쪽 역시 준비되었나? 우리는 항상 선금받고 일하는 거 알지."
"돈은 그쪽이 운반할 여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공 선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 여자는 어디 있는데?"
"지금 기도원에 있습니다."
수염이 거친 공 선장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약속한 시간이 정확히 자정 아니었나?"
"그렇기는 한데… 일이 좀 생겨서요."
"무슨 일? 행여 일이 꼬여서 경찰이 나서는 건 아니지? 아무리 단골이라도 나를 속이는 행동은 절대 용서 못 해,"
"그런 거 아닙니다. 기도회를 하는 중이니까 기다리십시오."
"기도회?"
이는 이유진이 원했기 때문이다.
기도원의 예배당에선 그녀의 무사함 비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래 못 기다려. 예정이 틀어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
"그렇다면 저희와 함께 가지요. 권 집사님께서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
"선장님이 받을 수 있는 돈이 더 늘어나는 겁니다."
"!"
공 선장은 뭔가를 직감한 반응이다.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이 있나. 단골의 부탁이니 들어줘야지… 배에는 두 놈만 남고 모두 따라와."
이어 그는 선원들을 거느리고 기도원 신도를 따랐다.
장미란은 우려의 시선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도원에는 아직 유달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그녀의 기색은 잠시.
이내 그녀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사사사삭.
장미란은 은밀하고도 빠르게 밀항하는 배를 향해 다가갔다.
두 명뿐이라면, 그녀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숫자였다.
* * *
늦은 밤.
찬송가 소리가 울리는 기도원.
대부분의 이곳 신도가 이유진의 축원 기도를 위해 예배당에 모여 있었다.
예배당 지하에 있는 징벌방.
유달과 김봉기는 움직일 준비를 끝냈다.
탈출 작전은 유달이 짰고, 김봉기는 무작정 그의 지시만 따르면 되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김봉기가 물었다.
"정말 이렇게 해서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진짜배기 무당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작전명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제 말만 따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김기봉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나직한 음성으로 징벌방을 감시하는 신도를 불렀다.
"강태민 신도님 계십니까?"
"……."
아무 대꾸가 없자 그는 목청을 더욱 키웠다.
"강태민 신도님 계십니까!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요. 아주 잠시면 됩니다."
징벌방 밖에서 대꾸하는 음성이 들렸다.
"권 집사님이 아무 대화도 하지 말라 엄명하셨습니다."
"제발 부탁이네. 잠시 문을 열고, 나 좀 볼 수 있겠나? 내 몸이 이상한 거 같아서……."
철컹.
문이 열렸지만, 작은 쪽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징벌방을 감시하는 신도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김봉기의 뒤에서 찬란한 후광이 비쳤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징벌방 안에는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천사들도 날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