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11화 (111/183)

111화. 구세주

유달과 장미란이 몸을 일으켰다.

선한 인상의 목사는 사과의 말부터 전했다.

"손님분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매년 이맘때가 제일 바쁘답니다. 기도원의 주임 목사 김봉기입니다."

"유달입니다."

"장미란이에요."

그들은 간단히 인사하고 자리했다.

곧이어 김봉기가 깍지 끼듯 손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이유진 자매님을 찾아오셨다고요?"

장미란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직접 만나서 확인할 게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일입니다."

"이유진 자매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가족이나 친척 되십니까?"

"아니요. 친족 관계는 아닙니다."

김봉기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이거 참 곤란하군요. 친인척 관계가 아니면 면회가 불가능합니다. 이는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이유진 자매님의 뜻이 그렇습니다.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요."

"저는 여기 오기 전에 이유진 씨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오빠 두 분이 계시더군요. 여동생은 10년 전 종교에 빠져 가출을 했고, 지금은 남이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남편과는 3년 전에 사별했으니, 그 누구도 이유진 씨를 만날 수 없다는 말씀인데요?"

"우리는 신도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지켜 주는 게 교회의 일이지요. 정말 먼 길을 찾아오셨는데, 죄송합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저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어서요."

김봉기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장미란이 아니다.

"이유진 씨는 어린아이를 유괴했다는 협의를 받고 있습니다."

"!"

반쯤 몸을 일으켰던 김봉기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어 그는 터무니없다는 표정으로 장미란을 바라봤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 이유진 자매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자매님이 입에 담기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니요? 제가 반평생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허무맹랑한 소리군요."

"협의를 벗을 방법은 간단합니다. 저희를 이유진 씨와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두 분을 어떻게 믿지요? 혹시 경찰이십니까?"

"저희는 유괴당한 아이의 부모님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경찰이나 언론이 개입되는 것은 목사님도 원치 않으실 겁니다."

김봉기는 치가 떨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교단은 편향된 언론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사이비 종교라고 몰아붙여 막대한 피해를 봤습니다."

"저희는 이번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습니다. 이유진 씨를 만나게 해 주면 하늘교의 피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곤란하군요. 저는 지금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김봉기는 머리가 복잡한 듯 인상까지 썼다.

"이유진 자매님은 남편 빛 때문에 쫓기는 신세라고 했습니다. 사채업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하여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말을 아직도 믿으십니까?"

"유괴범이란 말보다는 믿음이 가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진 자매님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진 씨는 광적이라 할 만큼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고 하던데요?"

"신앙심이 투철하신 분이기는 하죠."

"하늘교에는 자신의 자식을 교회에 바치는 의식 같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도로서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 여긴다고 하던데요."

김봉기는 진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일부 언론 때문에 잘못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냥 평범한 유아 세례 같은 것인데, 자식의 친권을 포기하느니, 아이의 미래를 전적으로 교회가 결정한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표현했죠."

"이곳에 이유진 씨는 혼자 있나요, 아니면 어떤 아이와 함께 있습니까? 아마도 5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

"아까도 그런 표정으로 지으셨습니다. 제가 유괴라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말이죠."

김봉기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이유진 자매님은 남편이 죽기 전에 입양한 아이라고 했습니다."

"경찰이 조사했는데, 이유진 씨는 아이를 입양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행정적인 착오가 있을지도 모르죠……."

"목사님."

장미란은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이번 일이 교회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릇된 믿음을 가진 신도 때문에 벌어진 불행한 사건이지요. 또한, 도움을 청하는 신도를 교회가 보호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납치 용의자임을 알고도 숨겨 주는 것은 범죄에 해당합니다."

"……"

"이제 이유진 씨를 불러 주세요. 하늘교에는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벌떡.

김봉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장미란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만 돌아가 주시고, 내일 다시 와 주십시오."

"목사님? 유괴당한 아이를 하루속히 부모님이 품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유괴당한 아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어떤 일이건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겠지요. 저는 아직 두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아 내는 사채업자일지 모를 일 아닙니까?"

"서울 중앙 지검에 전화하여 이동욱 검사를 바꿔 달라고 하십시오. 저희의 신원을 확인해 줄 겁니다."

김봉기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요, 제가 이유진 자매님과 먼저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두 분이 여기 계시면 불안하여 사실을 감출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장미란은 어찌할지 고심하는 모습이다.

이에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앉아 있던 유달이 장미란의 귓가에 속삭였다.

‘뭘 더 기다립니까? 여기에 아이가 있으면 게임 끝 아닙니까? 강하게 나가자고요.’

하지만 장미란은 유달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목사님. 내일 다시 찾아오지요."

"예? 여기서 하루를 더 보낸다고요? 미란 씨와 단둘이 있는 건 정말 재미없다고요."

유달이 불평했지만 소용없다.

"저는 이번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요."

장미란은 유달의 팔을 끌며 목회실에서 나왔다.

* * *

화아앙~.

귀도의 바닷바람이 거세다.

유달과 장미란은 기도원에서 나와 민박집으로 향했다.

그들의 민박집은 선착장 인근.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의 거리다.

유달은 아직도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왜 순순히 물러난 겁니까? 유괴범의 머리끄덩이 잡고 서울로 압송해야지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저는 이번 일을 원만히 수습하고 싶어요. 목사님의 반응은 이유진이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몰랐던 게 분명해요. 그녀를 설득해서 자수하게 만드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에요."

"과연 그렇게 될까요? 가재는 게 편이고, 사이비 종교 단체는 더욱 심하지요. 유괴범을 순순히 자수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기도원의 목사님은 그럴 분 같지 않던데요?"

"그럴 줄 알고 제가 도청 장치를 심어 놨습니다. 우리가 나가고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장미란이 발길을 멈추며 물었다.

"도청 장치요?"

"진짜 도청장치는 아니고요. 그와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절대 걸리지도 않습니다."

"혹시 박사님을 놔두고 온 거예요?"

"그렇지요. 우리가 나가고, 목사님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잠시만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때마침 저기 오시는군요."

유달은 기도원 쪽을 바라보며 멈춰섰다.

이어 그는 박사가 지척까지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우리가 나가고, 목사님이 누군가를 불렀습니까?"

-아무도 부르지 않았네. 누군가와 전화도 하지 않았고. 그냥 혼자서 소리치며 물건만 부셨지. 화가 아주 많이 난 모양이야.

"뭐라고 소리치던가요? 들은 그대로 말씀해 주시오."

박사는 목사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이런 시팔! 별 개 같은 년이 사고를 치고 난리야! 그러지 않아도 교주 새끼 성추행 사건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교단에 전화해 봤자 잘 무마해 보라고 할 게 뻔한데, 이게 무마가 될 사건이냐고!

장미란은 무안함에 할 말을 잃었다.

유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관상이 목사 같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가 섬이라는 거지요. 유괴한 아이를 어떻게 빼돌리지는 못할 것이니, 우리 걱정이나 하지요?"

"무슨 걱정이요?"

"서울 상경이 하루 또 연장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빨라도 모레 저녁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할 텐데, 그때까지 보름이 혼자 버티기 힘들지요. 독학 무당도 근무 때문에 불러내기 힘들고……."

유달이 뒷머리를 긁으며 고심할 때다.

딩딩딩딩딩.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모가 웬일이지?"

유달은 즉각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이모. 무슨 일로 전화했어?"

-나 지금 서울이다.

"서울? 왜 갑자기 내려온 거야?"

-달이, 네가 오라고 했잖아?

유달은 그제야 생각난 듯, 휴대폰을 손으로 막고 장미란에게 말했다.

"세계 일주 여행권을 드리려고 오시라고 했는데, 그걸 또 제가 까먹었습니다."

유달은 다시 휴대폰으로 통화했다.

"미리 연락해야지. 나 지금 지방인데? 모레는 되어야 서울로 간다고."

-무슨 상관이냐? 내가 바쁘게 직장 생활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내가 미안하니까 그렇지. 참, 내가 갈 때까지 카페에서 점 좀 봐 줄 수 있어? 요즘 가게가 엄청 잘돼서 보름이 혼자 힘들 것 같아."

-당연히 내가 봐 줘야지. 우리 달이 가겐데.

"고마워요, 이모. 내가 서울 올라가서 아주 큰 선물 줄게. 너무 좋아서 깜짝 놀라면 안 돼."

-말이나 못 하면…….

"이번에는 진짜야! 그리고 지금 점심을 드세요. 우리는 점심시간이 바빠서 따로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그렇지 않아도 여기 식당이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하는 일 잘 마무리하고 올라와.

"고마워요, 이모. 알러뷰~."

통화를 마친 유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와~ 위기의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네요. 요즘 제 운이 팍팍 트이고 있습니다."

"이모님의 연세도 있으신데, 잘하실 수 있을까요? 게다가 우리 카페는 젊은 손님이 대부분이잖아요."

이에 유달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굿 카페 역사상 최고 매출이 오늘 기록할 겁니다."

* * *

서울 명동 인근 한식당.

식사를 마친 조금순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예스럽게 족진 머리에 단아한 한복 차림이다.

희끗희끗 머리, 인자한 눈빛, 흐트러짐 없는 행동은 대가댁 마나님의 기품이 느껴졌다.

계산대의 주인 남자는 평소보다 더욱 공손히 인사했다.

"맛있게 드셨습니까?"

"네, 잘 먹었어요. 장위동에 있는 유명 설렁탕집과 비슷한 맛이네요."

"아… 맞습니다. 거기 맛을 목표로 하고 하는데, 솔직히 지금은 흉내밖에 못 내는 맛이지요."

"똑같이 맛을 내려면 재료 값을 감당하기 힘들 거에요. 그보다는 이곳만의 특색 있는 맛을 살리는 게 좋겠네요. 잠시 귀 좀……."

조금순은 어떤 식으로 설렁탕을 만들지 설명했다.

이를 듣는 주인 남자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았다는 반응이다.

"…이러면 더 괜찮은 맛이 날 거예요."

"어우, 감사합니다."

"부모님 모시고, 아들 셋까지 키우기 힘들죠. 장사 포기하지 말고 기운 내요."

주인 남자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조금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손님이 자신의 가족이 몇 명인지, 아들이 셋인 것까지 정확히 맞춘 것이다.

사박사박.

조금순은 사람들이 붐비는 명동 번화가를 걸었다.

예스럽고 단아한 차림의 그녀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나 외국인들이 반드시 한 번씩은 뒤돌아봤다.

딸랑딸랑.

조금순이 굿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주방에서 일하던 강성호가 황급히 뛰어나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강원도 펜션에서 뵀었지요. 바리스타 강성호입니다."

"고생이 많아요."

"사장님께 전화 받았습니다. 보름이가 학원에서 늦는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주 관상 보실 손님이 계신지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조금순은 특유의 인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점 보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주방만 신경 쓰면 돼요."

"알겠습니다, 이모님."

강성호가 주방으로 돌아갔다.

조금순은 이른 시간에도 손님이 많은 홀 내부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산보하듯 천천히 걷던 그녀는 30대 초반의 여자 셋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멈췄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사이인 듯했다.

조금순은 안경 쓴 여자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결혼 축하해요."

"예?"

안경 쓴 여자는 놀란 얼굴로 조금순을 바라봤다.

그녀의 친구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반응.

조금순이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결혼 날짜 잡힌 거 아닌가요?"

"마, 맞아요."

예비 신부의 친구들은 더 놀랐다.

"정말? 너 진짜 결혼해?"

"응, 오늘 너희들에게 청첩장 주려고 불렀거든……."

이어 그녀의 시선이 조금순에게 향했다.

"제가 결혼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말도 꺼내기 전이었는데."

"이 정도는 맞춰야 복채 받고 점을 보지요?"

예비 신부는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점 봐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이요."

조금순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몇 분이 보실 건데요?"

"세 명 다요. 청첩장 주는 대신 점 값은 내가 낼게."

주방에서 이를 지켜보던 강성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걱정을 했다.

조금순이 유달을 능가하는 고수임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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