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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상당히 넓은 공간이다.
조명은 어둡고,
방 안에 가구는 침대 하나뿐이었다.
악령이 깃들면 행동이 과격해진다.
난동을 부리다가 다칠 수도 있기에 방 안의 집기를 모두 치웠을 것이다.
입구 쪽에 앉아 있던 여인이 몸을 일으켜 인사했다.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집사님.”
아무런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인 강 집사가 그녀를 소개했다.
“가영 아가씨를 돌봐 주시는 서 간호사입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특별한 부탁을 받고, 애써 주시고 계시지요.”
유달이 위로하듯 말했다.
“힘드시겠습니다. 아마도 이런 경우가 처음일 텐데요?”
20대 후반의 간호사는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왠지 모르게 차가워 보이는 그녀는 사무적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충분한 보수를 받고 있으니까요.”
“참으로 대범하십니다. 진짜로 악령 들린 모습을 보면, 정신과 병동 의사나 간호사분들도 패닉 상태에 빠지곤 하거든요.”
“제가 무서움을 잘 느끼지 못해요. 입도 무겁고요. 그래서 이곳 주치의 선생님이 추천하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잘됐군요. 제가 묻는 말에 객관적으로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다. 충격 먹은 사람들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기 십상이라서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대답할 테니 물어보세요.”
유달은 차분하게 질문을 시작했다.
“진정제를 쓰지 않으면 가영 양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의 말을 퍼붓고 매우 난폭해져요. 회장님과 사모님에게도 예외 없지요.”
“목은 얼마큼 돌아갑니까?”
이는 유달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부분이다.
“영화처럼 완전히 돌아가지는 않는데, 기이하게 온몸의 관절이 뒤틀리고…….”
간호사가 머뭇거리자 유달이 독촉했다.
“그리고요?”
“몸이 허공에 붕 뜨기도 해요. 그때는 저도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흠… 십자가나 성수에 반응하나요?”
“예, 십자가를 두려워하고, 성수를 뿌리면 괴로움의 비명을 질러요.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간담이 서늘해지는 소리예요.”
“그렇다면 가톨릭 신부들이 구마 의식을 했을 텐데요?”
“신부님들이 악령을 쫓는 의식을 하긴 했는데, 소용없었어요.”
“무당을 부르기도 했습니까?”
“네, 무당들이 굿도 하고, 스님과 목사님도 오셨고, 이상한 차림의 도사도 왔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유달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어떻게 실패했는지 자세히 알려 주시겠습니까? 제 질문이 난해할 수도 있으니 주관식으로 드리지요. 1번, 퇴마 의식은 아무 소용 없었고, 오히려 퇴마사들의 목이 돌아가서나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아니요.”
“그렇다면 2번, 퇴마 의식이 효과는 있었지만, 상대가 너무 강해서 퇴마사들은 결국 목이 돌아가거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간호사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요 퇴마 의식이 효과가 있는 건 같았어요. 퇴마사분들이 소리칠 때마다 괴로워하더라고요. 하지만 퇴마사분들의 목이 돌아가거나 피를 토하며 쓰러지진 않았어요. 그냥 지쳐서 쓰러져 포기했을 뿐이죠.”
“정말 퇴마사들이 다치지 않았습니까?”
“네, 가영 아가씨가 강하게 반항하며 할퀸 상처밖에 없었어요.”
유달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극단적인 방어형인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장미란이 물었다.
“안 좋은 경우인가요?”
“아니요, 저에게는 훨씬 쉬운 상대입니다. 보름이와 비교하면 거저먹는 거지요. 정보 수집 끝났으니, 바로 악령을 떼어 내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저도요?”
“넵! 작전은 간단합니다. 가영 양에게 붙은 악령은 찰거머리 같은 놈입니다. 가영 양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에만 집중하지요. 하지만 찰거머리 악령도 제 신기를 느끼면 바로 포기할 겁니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도망치는 게 최선이지요.”
“가영 양에게서 떨어져 다른 사람의 몸을 찾을 거란 말인가요?”
“그렇지요. 악령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노리게 되어 있습니다.”
장미란은 어떤 작전일지 감이 왔다.
“가장 가까이 있을 사람이 저니까, 당연히 저의 몸을 차지하려 하겠네요. 하지만 저는 마신도 뚫기 힘든 체질이라 악착같은 악령이 허우적거리며 난감해하겠네요.”
“맞습니다. 그때 제가 그놈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면 상황 종료입니다. 찝찝함을 감수할 용의가 있으신지요?”
“어린 소녀를 위한 일이니 어쩌겠어요. 내키지 않아도 협조해야지요.”
“훌륭하신 마음가짐입니다. 최대한 빨리 끝낼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작전 회의를 마친 그들이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간호사가 경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조심하세요. 몸은 침대에 묶여 있지만, 손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입니다.”
유달은 침대에 누워 있는 정가영을 내려보았다.
그녀는 진정제 기운 탓인지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다.
유달과 시선이 마주치자 애처롭게 입을 열었다.
“도와주세요… 저는 악령 들리지 않았어요. 제발 이상한 의식 같은 거 하지 말아 주세요. 너무 아파요…….”
“그래, 이 아저씨가 안 아프게 도와줄게. 우리 꼬마 아가씨는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야.”
“저는 악령 들리지 않았다고요…….”
“알아, 알아. 금방 끝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우선은 내 손을 잡고.”
“네…….”
정가영은 침대에 누운 상태로 유달이 내미는 양손으로 꼭 잡았다.
“옳지 착하네. 내 신력이 뛰어나도 전혀 안 아프게 할 수는 없어. 순간의 고통만 참아 내면, 악령의 지배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어. 이 아저씨 심장이 약하니까 비명 좀 살살 질러 줘.”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라고 말할 줄 알았나?”
“!”
정가영의 목소리가 변했다.
쇳소리가 섞인 음성에,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유달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픈 걸 참으라고? 네놈이 한번 참아 봐라!”
와락.
정가영은 두 손으로 꼭 잡은 유달의 손을 자신의 얼굴을 향해 잡아당겼다.
유달은 황급히 팔을 빼내려 했지만, 늦었다.
꽈악.
사납게 돌변한 정가영이 유달의 손목을 물어버렸다.
“으아아악~!”
유달은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결단코 엄살이 아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유달의 손목에서 피가 흐를 정도였다.
“제발 이 미친년 좀 떼어 줘요~!”
유달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아무리 아파도 어린 소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
장미란과 간호사, 강 집사까지 합세하여 강제로 정가영의 입을 벌려 떼어 놓았다.
유달은 피가 나는 팔을 간호사에게 내밀었다.
“우와~ 겁나 아파! 소독, 소독, 소독!”
“그러니까 제가 조심하라고 했지요.”
간호사는 서둘러 응급 처치를 했다.
“앗 따가…….”
소독약 때문에 절로 인상이 구겨지는 유달은 정가영을 가만두지 않을 기세다.
“감히 나를 피 나도록 물어? 찰거머리 악령, 너 치료 끝나고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소멸시켜 주마.”
입가에 피가 흥건한 정가영은 위축된 모습이 아니다.
스으윽.
그녀는 혀를 내밀어 입 주위의 피를 핥았다.
그러고는 비릿한 웃음과 동시에 꿀꺽 삼키고 말했다.
“맛있네?”
유달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작전상 후퇴입니다.”
장미란은 그를 따라 뒷걸음치며 물었다.
“보통 놈이 아닌 모양이네요? 유달 씨는 악령이나 마신과 싸우면서 한 번도 물러나지 않았잖아요.”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확인할 게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아야 저도 돕겠죠?”
유달은 간호사와 강 집사가 들을 수 없게 구석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저는 삼장법사가 아닙니다. 악령이나 마신이 저를 잡아먹는다고 엄청난 힘을 얻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외려 저의 신기 때문에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소멸합니다.”
“가영 양은 유달 씨의 피를 먹고도 멀쩡한데요?”
그들의 시선이 침대 쪽으로 향했다.
정가영은 유달을 도발하듯 계속 입맛을 다셨다.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유달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저 아이가 악령 들린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를 물고 저렇게 멀쩡할 수 없지요.”
“그런데 왜 악령 씌운 것 같은 행동을 할까요?”
“지금부터 알아봐야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밥부터 먹는 겁니다. 대차게 물렸더니 허기가 밀려오네요.”
* * *
동방 그룹 정 회장 저택의 식탁.
유달과 장미란은 식사를 마치고 정명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친 팔은 어떻습니까?”
아마도 강 집사가 보고한 모양이다.
유달은 붕대 감은 팔을 보여 주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입니다.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솔직히 무당도 극한직업의 하나이지요. 이렇게 다쳐도 어디다 하소연 못 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니까요.”
“제 딸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군요. 제가 도움 될 게 있으며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정보 수집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개인적인 질문도 괜찮으십니까?”
정명철은 흔쾌히 대답했다.
“딸을 위한 일이라면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혹시 회장님 집안이 크게 원한을 산 일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 저주를 퍼부으며 죽은 사람이 있다거나…….”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만큼 재산 모으면서 어떻게 원한을 한 번도 안 살 수 있겠습니까? 빼앗는 쪽에서는 정당하다 할 수 있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경우 말입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정명철의 음성이 차갑게 변했기에 유달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저택에 있는 모든 방을 저에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회장님과 사모님의 방도 포함해서요.”
“그게 딸 아이의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송 사장님을 신뢰하는 만큼 저를 믿어 주십시오. 따님분의 병을 제가 반드시 낫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어 그는 강 집사를 불렀다.
그러고는 유달과 장미란에게 저택의 모든 곳을 보여 주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강 집사를 따라다니며 차근차근 방을 조사했다.
1층에는 경호원과 간호사, 별장지기 등,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가 있었다.
방 안을 수사하듯 샅샅이 뒤지는 건 아니었다.
양해를 구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정도였다.
그들은 1층의 모든 방을 확인하고 2층 계단을 올랐다.
장미란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유달에게 물었다.
“누군가 저주를 걸었다는 생각하는 건가요?”
“지금은 그게 가장 타당한 추론입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서요.”
“저주를 건 사람이 이 저택에 있는 건 확실하고요?”
“그래야 저주의 강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저주의 기운이 담긴 물건을 대상자 가까이 놓기도 하지요. 사극 같은 거 보면, 지푸라기 인형 땅에 묻었다고 사약 받고 죽는 장면 있지 않습니까?”
“네, 본 것 같기도 하네요.”
“가영 양의 방에서는 저주의 기운이 담긴 물건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상자 가까이서 저주 의식을 한다고 보는 게 확실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할 거니까요.”
장미란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이곳의 사모님을 의심하는 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일단 2층에는 정명철 회장님과 홍성희 사모님의 방밖에 없어요. 1층에서 의심스러운 것을 못 찾았기에 2층으로 올라는 것이고, 홍성희 사모님은 가영 양의 생모가 아니니까요. 만약 가영 양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재산이 누구에게 갈까요?”
유달은 빈정거리는 어투로 대꾸했다.
“미란 씨도 전형적인 수사관의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군요.”
“그게 뭔데요?”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범인이고, 자식이 죽으면 계모나 계부를 의심하니 말입니다.”
“부정하진 못하겠네요.”
“저도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부모님이 아닌 이모의 손에 컸습니다. 저와는 인척 관계도 아니고, 어머니와 의자매처럼 지내셨던 분이죠. 하지만 얼마나 저를 아끼시는데요.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값진 겁니다.”
“저도 역시 그랬으면 좋겠네요.”
유달과 장미란이 2층에 올랐다.
먼저 올라온 강 집사는 기다리라는 손짓하며 홍성희가 기거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의 방에서 나온 강 집사가 말했다.
“사모님께는 제가 무슨 이윤지 설명드렸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시니 짧게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요.”
곧바로 유달과 장미란은 강 집사가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