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02화 (102/183)

102.

동방호텔

“어머나.”

장미란은 깜짝 놀라서 문부터 닫았다.

쿵.

방음 시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마자 고막을 강타하는 괴성이 울렸고,

고급스럽게 꾸민 VIP 룸은 그야말로 난장판에, 민망한 장면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장미란은 혹시 누가 들어올까, 출입문을 등지고 물었다.

“유달 씨, 대체 뭐 하는 거예요?”

“보면 모르십니까?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무리를 참교육시키는 중이지요. 제가 정말 열 받았을 때 쓰는 판소리 명창 공격입니다.”

유달은 탁자 위에 올라서 진짜 판소리를 했다.

“그때, 심봉사가 번쩍 눈을 뜨는데, 훠이이이~.”

길게 이어지는 추임새 같은 소리에 코야마 가의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 댔다.

“크아악!”

“으악! 야메떼~.”

그 모습은 흡사 처절한 고통의 표현을 경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유달의 판소리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만 해요! 이러다 진짜 무슨 일 나겠어요.”

“무슨 어림 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저쪽 대빵이 아직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항복할 상황이 아니잖아요!”

아키토 가주는 탁자에 엎어져 거의 실신 상태다.

그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고, 입에서 터지는 소리는 비명이 아닌 신음이었다.

유달의 판소리가 춘향가로 바뀌었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얼쑤!”

아키토의 수행원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들 역시 신기가 있는 몸이라 유달의 영적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통역사는 한쪽 구석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비명이 터질 때마다 귀를 틀어막으며, 공포와 두려움에 물든 표정으로 식겁하는 반응을 보였다.

장미란이 보기에, 이는 일방적인 괴롭힘이었다.

“유달 씨, 이제 그만해요. 제발요.”

“그렇게는 못 하지요. 제 판소리 메들리는 4시간짜리입니다. 이제 겨우 절반 지났습니다.”

“제가 이런 꼴 보려고 VIP 룸을 만든 줄 아세요.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바로 폐쇄할 거예요.”

장미란은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몰래 쉴 수 있는 피난의 장소가 없어지는 것이며, 송보름의 잔소리까지 감수해야 했다.

“치사하시군요. 하이라이트만 깔끔히 마무리하고 끝내겠습니다.”

이어 그는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양손을 쫙 펼치며 소리쳤다.

“암행어사 출두여~!”

그의 긴 외침이 끝나는 순간,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통역사를 제외한 모든 코야마가의 인원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장미란은 재빨리 스피커폰으로 말했다.

“여기 빨리 차가운 물 가져와! 최대한 많이.”

“공연이 끝난 저는 이만 실례…….”

유달은 뒤처리를 장미란에게 떠넘기고 VIP 룸에서 빠져나왔다.

* * *

음악 소리를 크게 키운 굿 카페.

유달은 기운 없이 앉아 있는 송보름에게 다가갔다.

“왜 그리 풀이 죽었어? 중요한 약속이라고 갔던 일이 잘 안 된 거야?”

“그것도 그렇고… 저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해요.”

“뭐가?”

송보름은 매우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저 아무래도 사장님의 팔자를 닮아 가는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하게 일이 틀어지고, 이를 만회하려고 발버둥 치면 몇십 배로 일이 커져요. 그리고 엄청나게 고생하여 일을 해결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아무것도 없어요?”

“너는 고작 몇 번 당하고 이리 좌절한 모습이냐? 나한테는 기본이야. 안 그러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져.”

“그러고 어떻게 사셨어요?”

“멘탈 관리가 중요하지. 부러우면 지는 거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일이 꼬이는 걸 당연히 여겨야 하지. 행운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말고. 항시 최악을 대비하며, 나만 손해 보는 결과가 나올 때에도 소탈한 웃음으로 넘겨야 해.”

송보름은 사색이 되어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누구는 이렇게 살고 싶어 사는 줄 알아? 나도 한때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운을 타고났던 몸이야. 하지만 지나치게 펑펑 써 대니 천운도 감당 못 하고 꽉 막혀 버리더라고.”

“저는 사장님처럼 펑펑 써대지 않았다고요?”

“무슨 소리야? 너는 항상 넘치는 복을 누리고 살았어. 기억나? 운으로 하는 게임에서 너는 패배를 모르는 존재였어. 나한테는 가위바위보 한 번도 지지 않았잖아. 그러나 세상엔 마르지 않는 운은 없는 법. 너도 이제 나랑 같은 과가 된 거야. 축하한다. 박복한 팔자의 동지여.”

유달은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송보름은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아니요, 제 운이 여기서 끝날 리 없어요. 일시적인 현상이 분명하다고요.”

“아니, 아니, 아니! 한번 뒤틀린 팔자는 쉽게 회복되지 않아. 나를 보며 모르겠어? 당면한 현실을 부정할수록 너만 힘들어지는 거야. 어서 내 손을 잡으라고, 동지.”

“어쩌다가 내가…….”

송보름은 죽기보다 싫은 기색으로 손을 뻗는 때다.

디요디요디요, 디요디요디요.

그녀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인 듯, 송보름은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난 마포서 강력계 강세훈인데.

자신의 운이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불안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네, 강 형사님…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우리가 잡은 리조트 사기꾼 말이야.

“왜요? 혹시 제가 멱살 잡았다고 고소한대요?”

송보름은 항시 최악을 예상하며, 지레짐작으로 펄쩍 뛰며 놀라는 유달의 반응과 흡사했다.

-그게 아니라, 사기꾼놈이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대.

“형사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 변호사를 만나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어. 보름 양에게 사기 친 거 깊이 반성하고, 사기 친 돈은 삼 일 안에 반드시, 자기 장기를 팔아서라도 꼭 갚겠다고 하더라고.

“저, 정말이에요? 혹시 매니저 언니가 그렇게 말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거나…….”

강세훈은 말도 안 된다는 웃을 터트렸다.

-하하, 장 팀장님 성격에 그런 부탁을 하실 분은 아니지. 그놈이 여죄를 밝히는 조건으로 내게 부탁했어. 놈이 직접 전화해서 사과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피해자를 협박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대신 전해 주는 거야. 이제 기분이 좀 풀렸어?

“물론이지요, 형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할 게 뭐 있어? 보름 양의 운이 매우 좋다고 할 수 있지. 사기꾼이 자기 장기까지 팔아 가며 돈을 갚겠다고 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거든.

그녀에겐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카페 한번 놀러 오세요.”

-알았어. 끊을게.

송보름은 모든 근심·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진 표정이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유달은 그녀에게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뭐 해? 어서 잡아. 우리는 이제 진정한 동료가 되는 거야. 불행에 허우적거리는 서로를 보면서 위안 삼을 수 있다고.”

“흥! 저는 사장님과 똑같은 팔자 아니거든요.”

탁.

그녀는 매몰차게 유달의 손을 쳐 냈다.

“왜 갑자기 변한 거냐? 나 혼자 불행하긴 싫어. 제발 나의 동지가 되어 줘~.”

유달이 애원하듯 소리치는 때다.

덜컹.

VIP 룸에서 장미란이 나왔다.

유달이 장난을 멈추고, 넉살 좋게 물었다.

“어떻게, 잘 처리됐습니까? 생명엔 지장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마 제 가게에서 송장 치울 짓 하겠습니까? 의식은 돌아와도 당분간 움직이진 못할 테니, 누군가 데리러 와야 할 겁니다.”

“맞아요, 그래서 통역에게 물었더니, 대일본 사대신가 사람들이 동방호텔에 묵는다고 하더군요.”

“광화문에 있는 유명한 호텔이요?”

“네, 그런데 대일본 ‘사대신가’가 뭐예요?”

“나도 정말 모른다고요? 아마도 일본에서 제일 잘나가는 무당들 가문이겠지요.”

장미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통역은 그 사람들이 오면 이곳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엄포를 놓더군요.”

유달이 발끈하여 대답했다.

“그래서요? 겁먹고, 오지 말라고 한 겁니까!”

“아니요, 상관없으니, 빨리 와서 데려가라고 했죠.”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아무래도 사대신가의 사람들은 못 올 것 같네요.”

“왜죠?”

장미란은 유달의 반응을 살피며 대답했다.

“동방호텔에 있던 사대신가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어요. 저기 VIP 룸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크게 다쳐서 데리러 올 수 없는 상황이라네요.”

“!”

유달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통역이 전화했는데 누군가의 습격으로 모두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관할 경찰서에 전화해서 알아봤죠. 그런데 그쪽에서는 집단적 공황이나 발작이 아닐까 의심하더라고.”

“그 이유가 대체 뭘까요?”

“그들은 7층 전체를 빌려서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에 낯선 이의 방문이나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네요. 갑자기 비명 지르며 괴로워하고, 자기들끼리 싸웠던 흔적만 있었다고 했어요. VIP 룸에 있는 사람들이 당했던 것과 상당히 비슷하죠?”

“그러게요?”

장미란은 감추고 있던 궁금함을 물었다.

“범인이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 있어요?”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저를 빼고, 딱 한 명밖에 없습니다.”

“누군데요?”

유달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복이요.”

“아, 그 문제의 박만복이요…….”

유달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란 씨, 어서 갑시다.”

“어디를 가요?”

“동방호텔 말입니다. 그놈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 분명 호텔 안에 있었을 겁니다. 호텔 CCTV는 잘 작동되고 있었겠지요?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 * *

광화문 지하철역 인근 동방호텔.

장미란과 유달은 보안 관제실에서 CCTV 화면을 살피고 있었다.

수십 명의 외국인이 한꺼번에 병원으로 실려 간 사건은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이동욱 검사가 장미란의 요청을 즉각 수용하여 보안 관제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관제실에서 가장 큰 모니터 자리.

화면의 장소는 호텔 로비 정면 카메라.

관제실 요원은 유달의 요구대로 사건 발생 1시간 전, 영상을 재생했다.

장미란이 화면을 살피는 유달에게 물었다.

“박만복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대마신의 재림하고 연관이 있나요?”

“그것과는 별개의 사안일 겁니다. 그놈이 일본 무당 아니, 일본에 관한 건 모두 싫어합니다.”

“왜 그렇죠?”

유달은 CC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만복이도 유서 깊은 무당의 핏줄입니다. 그놈이 일본 얘기만 나오면 열혈 모드가 되는 건, 일제강점기 때 살았던 증조할아버지 때문이지요.”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본군에 돌아가셨나요?”

“아니요, 그 반대였죠. 그놈의 증조할아버지는 일제의 앞잡이였습니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는 것에 일조했습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자 쪽발이 무당이라고 지탄받았었죠.”

“어떤 사정인지 알 것 같네요.”

“만복이를 어렸을 때부터 그 놀림을 엄청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얘기만 나오면 길길이 날뛰고, 누구보다 열렬히 반일 운동에… 아, 찾았습니다. 스톱!”

관제실 요원이 화면을 멈췄다.

유달은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놈이 바로 만복입니다.”

“하도 말을 많이 들어서 낯설게 여겨지지 않네요.”

이어 장미란은 관제실 요원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목한 사람의 동선을 면밀하게 파악해 주세요. 몇 시 들어와서 누구를 만나고, 몇 시에 호텔을 나갔는지… 그리고 유달 씨는 저와 함께 로비로 올라가서 그가 접촉한 사람들을 탐문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벽에 걸린 사진이요, 치킨 파는 할아버지처럼 생긴 사람은 누굽니까? 로비에는 똑같은 흉상이 있던데요.”

장미란은 관제실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동방그룹의 창업주 정태영 회장이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행한 존경받는 경제인이었어요.”

그들은 계단을 통해 로비로 올라왔다.

호텔 프론트로 이어지는 복도를 걷던 유달이 갑자기 멈춰 서며 물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장미란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호텔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유달이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방 그룹의 창업주인 정태영 회장의 흉상만 있었다.

장미란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정태영 회장님이 유달 씨는 부르고 있나요?”

“네, 흉상의 모습과 완전 판박이네요. 그냥 모르는 척하고 지나칠까요?”

“아니요! 정태영 회장님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기업인이에요. 박만복은 이미 호텔을 빠져나가서 긴급한 상황은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어서 가 보세요.”

장미란은 외려 유달을 재촉하며 등 떠밀었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네만.

“죄송합니다. 회장님은 선령도 아니시고요, 제가 바쁘니 나중에 들어드리지요.”

-나는 지금껏 공짜로 사람 부린 적이 없다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자네가 만족할 만한 사례를 할 것이네만.

이에 유달은 바로 태도를 바꿨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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