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01화 (101/183)

101.

고급스럽지만 과하지 않은 장식.

은은함과 강렬함이 조화를 이루는 조명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VIP 룸.

직사각형 탁자 상석엔 유카타를 입은 노인이 앉아 있다.

그 옆에는 통역사가 고개를 조아리며 서 있고, 나머지 인원은 탁자 양편으로 나누어 자리했다.

유달은 입구와 가까운 탁자 끝에 앉았다.

짙은 남색 유카타를 입은 노인과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여긴 내 카펜데, 그쪽이 꼭 주인처럼 앉아 있네?”

바로 통역사의 호통이 터졌다.

“무엄하다! 여기 계신 분은 신풍 코야마가(家)의 주인이신 아키토 사마시다.”

“그래서?”

“조선의 무당이라면 당연히 일본을 대표하는 ‘사대신가(四大神家)’의 명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 글쎄… 못 들어봤다니까?”

통역사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놈은 예상보다 더 미개한 무당이구나? 영적인 기운을 가졌다는 자가 어떻게 대일본의 사대신가를 모른단 말이냐?”

“내가 왜 알아야 하지. 그러는 그쪽은? 내가 우리나라 무속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

“그따위 걸 아키토 사마께서 왜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조선의 무당 수준이야 보나 마나 뻔한 것을 말이다.”

“헐… 이봐 통역?”

유달은 진중하게 그를 바라보였다.

이에 통역사는 식겁한 기색을 참으며 대답했다.

“왜, 왜… 그렇게 부르는 것이냐?”

“이름이 뭐지?”

통역사는 더욱 당황했다.

낮에 있었던 유달과의 첫 번째 만남.

그가 히데유키의 이름을 물으면서 ‘훠이’라는 괴상한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 나는 개인적으로 네놈한테 원한이 없다. 이건 비즈니스다, 비즈니스. 엄청난 수고비를 약속받았기에 코야마가(家)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나도 그쪽한테 사적인 감정은 없어. 같은 한국 사람이 왜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드는지, 전혀 섭섭하지도 않아. 세상에는 별별 종류의 사람이 다 있으니까…….”

유달의 음성이 위협하듯 바뀌었다.

“그런데 말이야, 당신은 내가 누군지 관심 없을지 몰라도, 코야마 가의 가주는 다를 것 같은데? 신력 대결을 펼쳐서 차기 가주를 KO 시킨 존재가 누군지 궁금할 수도 있잖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물어봐 줄래?”

“아,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통역은 유카타를 입은 아키토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어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달을 노려보는 아키토의 말을 직역하여 전했다.

“나는 네놈이 어쩐 존재인지 관심 없다. 무슨 이유로 내 아들을 폐인으로 만들었느냐? 확실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유달은 기죽지 않고 반박했다.

“일본 유명 무가(巫家)의 대빵이시라고요? 이번 생에는 자식 농사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쪽 자제분이 이승을 떠도는 영혼들을 무차별적으로 소멸키셨습니다. 영과 소통하는 존재들에게 이게 가당키나 한 짓입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내 아들을 몸에 상처를 입히고, 신력을 쓰지 못하게 봉인한 것이냐?”

“헐, 고작이라니요? 그딴 짓을 저지르고도 대가 끊기지 않을 것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역시 조선 놈들은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군.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예의도 없고, 우리 선조께서 미개한 나라를 구원해 줬던 은혜까지 모르고 말이야.”

“예의는 그쪽이 없으신 거 같습니다. 방금 선 넘었습니다. 아주 무지막지하게요.”

“가소로운 것… 내 아들에게 무슨 속임수를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허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영적인 능력의 차이인지, 속임수인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시지요.”

유달이 본격적으로 실력 행사를 하려는 그때.

끼익.

VIP 룸이 문이 열리고, 신소미가 들어왔다.

유달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야!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손님들이 주문하신 녹차 가져 왔는데요. 위원님이 보통 손님하고 똑하기 대하라고…….”

그녀의 손에는 다도 세트가 들려 있었다.

이에 유달은 얼른 주고 나가고 눈짓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신소미가 나가자 다시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유달과 아키토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상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용히 녹차만 드시고 돌아가시면, 아무것도 없던 일로 해 드리지요.”

“나의 신기를 접하고 두려움에 빠진 모양이구나. 어리석은 놈아, 늦었다. 신풍 코야마가를 건드리고 무사할지 알았더냐? 네놈에게만큼은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이신데, 자비는 나한테 구하심이 어떠신지? 당신의 신기는 나한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그쪽에 데려온 똘마니들의 신기를 모두 합쳐도 마찬가지입니다.”

꼿꼿하게 허리 펴고 앉아 있는 아키토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허풍도 그 정도면 상을 줘야 할 것 같구나. 평생 똥오줌도 못 가리는 백치로 만들어 주마.”

“내 특기가 ‘반사’인데 어떡하지요? 나는 적어도 똥오줌을 가리게 해 주려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네놈은 백치로 사는 것도 과분하구나… 죽여 버리겠다!”

아키토의 눈이 번쩍 부릅떠졌다.

순간,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살(煞)이 유달을 덮쳤다.

아키토를 수행하는 이들은 놀랍고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스으윽.

유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훠이이이~!”

판소리 창을 하듯 손을 내저으며 길게 소리쳤다.

코야마가의 사람들은 뭔 짓인가 하는 반응.

하지만 곧이어 그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한꺼번에 터졌다.

* * *

마포경찰서 본관 주차장.

송보름은 장미란의 차 안에 앉아 있다.

그녀는 초조한 표정으로 장미란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불안하게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자신에게 사기 쳤던 범인을 잡은 것은 확실했다.

경찰의 빠른 조사로 그의 범행이 밝혀졌다.

조만간 사기꾼은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건 사기당한 돈을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장미란이 강력계가 있는 건물에서 나왔다.

송보름은 그녀가 주차장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철컥.

장미란이 차량 문을 열자마자 송보름이 물었다.

“어때요? 제 돈은 돌려받을 수 있어요?”

장미란은 운전석에 오르며 대답했다.

“아마도 힘들 것 같아. 벌써 돈을 다 썼다네.”

“거짓말이에요! 경찰이 찾지 못하게 빼돌린 거예요. 출소하면, 다시 그 돈 가지고 사기 칠 거라고요.”

“나도 알아. 그런데 방법이 없어. 그놈이 사기 친 돈이라는 걸 입증해야만, 압수할 수 있다고.”

“그것을 형사님들이 밝혀내야죠. 어서 들어가서 더 취조해 보세요. 언니는 FBI 출신이잖아요?”

장미란이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소용없어. 나는 이제 경찰도 아니고… 강 형사님이 조사하고 있는데, 그놈이 변호사를 불렀어.”

“예?”

“아주 유명한 로펌이라 강 형사님도 아주 골치 아픈 모양이야. 조사 중단하고 그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송보름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세상에? 사기 친 것 갚을 돈은 없고, 유명 로펌의 변호사 부를 돈은 있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체포된 용의자가 변호사 부르는 걸 어떻게 막아. 이제 포기해.”

부르릉.

장미란에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의 송보름은 짜증이 나서 미칠 지경이다.

“와~ 미치겠다! 어떻게 잡은 사기꾼인데! 내 돈이 왜 그놈이 변호사 비용으로 쓰이냐고요!”

장미란이 운전하는 차량은 마포경찰서를 벗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최고급 승용차 한 대가 경찰서 입구를 통과했다.

촤르르르.

검정 승용차는 강력계가 있는 건물에 잠시 멈췄고, 뒷좌석에서 단정한 슈트 차림의 변호사가 내렸다.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강세훈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법무 법인 오대양의 김승수 변호삽니다.”

강세훈은 못마땅하게 그의 명함을 받았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잡범의 변호까지 맡으십니까?”

“저는 로펌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사기 혐의로 체포된 저의 의뢰인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 면회실에 있으니 들어가 보십시오. 불법적인 취조 같은 건 전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끼이익.

김승수가 면회실 안으로 들어갔다.

송보름 때문에 잡힌 사기꾼의 이름은 임명박.

사기 전과가 화려한 인물이었다.

그는 김승수를 보자 반색하여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정말 오대양에서 오신 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대양의 김승수 변호사입니다.”

“이거 참, 로또 맞은 기분입니다. 아무 비용 없이, 저를 변호해 주시겠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착각이 심하군요?”

“예?”

김승수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임명박 앞에 앉았다.

“이제부터 제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제 의뢰인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분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의뢰인의 요구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사기 피해자 중에 송보름 양이 있습니다. 삼일 안에 반드시 돈을 갚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괴로운 일을 당할 겁니다.”

수상함을 느낀 임명박이 물었다.

“당신 누구야? 아니, 당신을 고용한 의뢰인이 누구냐고? 나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야. 법치국가에서 이렇게 협박해도 되는 거냐고?”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요. 산전수전 뒤에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까?”

“!”

“저를 고용하신 분은 당신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신 분입니다.”

임명박은 두려움을 꾹 참고 물었다.

“대체 누구시기에…….”

이에 김승수는 바싹 얼굴을 가까이하라 손짓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적으로 둔 사람은 명동의 송 사장님입니다. 제가 사실대로 말하는 건, 알아서 처신하라는 배려입니다.’

임명박은 억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 저는 그분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러게요. 왜 그분의 따님에게 사기를 쳤는지, 저도 당신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

“기한은 삼일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송보름 양에게 반드시 돈을 갚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래야지요.”

임명박은 순순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돈을 갚아야 하는 여자가 송 씨라면, 어떤 관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 * *

약간은 한가해진 굿 카페.

들어오는 손님보다 나가는 손님이 더 많았다.

강성호는 주방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카운터에 앉혔다.

주방보조로 고생했기에 편히 쉬라는 배려였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부르기 수월했다.

혼자서 홀을 봤던 신소미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녀는 유달과 코야마가의 사람들이 있는 VIP 룸 문에 귀를 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리지…….”

누군가 창을 하는 소리 같은데, 비명인 듯, 격렬한 환호인 듯, 헛갈리는 괴성이 뒤따라 울렸다.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인지, 판소리 한마당처럼 어울려 노는 것인지, 아무리 들어도 종잡을 수 없는 소리였다.

딸랑딸랑.

신소미는 반사적으로 출입을 향해 다가갔다.

“어서 오십…….”

카페 손님이 아니다.

외출했던 장미란과 송보름이 돌아왔다.

송보름은 절망감에 물든 표정으로 가까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장미란은 카운터로 걸어가며 신소미에게 물었다.

“왜 이리 음악 소리가 커?”

“그게 말이지요…….”

신소미는 낮과 저녁 무렵 때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상세히 말했다.

장미란이 어찌할까 고민하며 물었다.

“유달 씨가 VIP 룸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

“대략 2시간 정도요? 판소리 창을 하듯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는데…….”

VIP 룸으로 향하는 장미란을 송보름이 만류했다.

“그냥 두세요.”

“왜?”

“사장님이 창을 할 정도며 엄청 열받았다는 거예요. 지금의 저만큼 말이에요. 코야만지 뭔지가 그만한 짓을 했다는 것이고, 사장님을 말려도 소용없을 거예요.”

송보름의 말은 장미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만약 카페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영업 정지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미란은 황급히 뛰어 달려가서는,

화악.

무작정 VIP 룸의 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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