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굿 카페의 VIP 룸
주말을 맞이한 광진구의 쇼핑몰.
저녁때가 가까워지면서 지하층 푸드 코트엔 식사를 하려는 고객들로 북적였다.
음식 주문하는 데스크엔 긴 줄이 이어졌고, 광활했던 식탁 좌석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아 북적임 속에서도 화목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그때였다.
“으아아악!”
갑작스러운 비명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승강기와 이어지는 출구 쪽, 2인용 식탁 자리다.
벌떡 일어난 한 남자가 공포에 질려 휴대폰을 내던졌다.
동공에 지진 난 눈에, 숨까지 헐떡이고, 먹고 있던 음식은 모조리 엎어진 상태다.
이내 그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30대 초반의 사내는 엎어진 음식 그릇을 정리했다.
푸드 코트의 손님들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시 멈췄던 식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강세훈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그는 장미란과의 친분 때문에 자리를 뜨리 못한 것이다.
송보름의 말은 귓등으로 들었고, 사기꾼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정말로 송보름이 최후의 터치를 하자마자 괴성을 지르는 남자의 비명이 울린 것이다.
“장 팀장님, 이 학생 뭡니까?”
“보름이를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요? 굿 카페 직원이요.”
“혹시 어둠의 해커 그런 겁니까? 천재적인 실력을 지녔지만,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고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전혀요. 보름이는 컴퓨터에 꽝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사이버 수사대도 난감해하는 사건의 용의자를 이리 빨리 찾아낸 겁니까?”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보름이는 휴대폰으로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요. 아마도 그 능력을 활용한 것 같네요.”
“정말 탐나는 재주고, 대단하네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별로 기분 좋은 기색이 아니다.
“뭐야? 범인이 전혀 사기꾼처럼 안 생겼어요.”
장미란이 물었다.
“어떻게 생겨야 사기꾼 인상인데?”
“제가 상상하는 사기꾼은요, 눈썹은 빈약하며 뼈가 뚝 튀어나오고요, 뱀처럼 표독스러운 삼각형 눈 모양에, 흰자위가 과도하게 드러나는 삼백안(三白眼)이고요, 입술이 굴곡지며 윤기가 없고, 귀는 얇고 작으며,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쭉할 거예요.”
“피노키오가 갑자기 왜 나와?”
“거짓말에 능한 자는 이목구비 중 하나가 특출나게 생겼다고 해요. 그걸 알기 쉽게 표현한 거예요.”
장미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잡은 사기꾼 중에 그렇게 생긴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외려 평범한 외모에 인상이 무척 좋아. 보름이의 돈을 사기 친 바로 저놈처럼.”
인상 좋은 사기꾼은 자기가 던져 버린 핸드폰을 무서워서 집어 들지도 못했다.
행여 뭔가가 또 튀어나올까 염려하여,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몸을 사렸다.
송보름이 강세훈을 독촉했다.
“형사님, 빨리 잡아야지요? 저러다 도망치면 어떡해요?”
“여기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궁지에 몰린 범죄자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저놈이 사람들이 발길이 뜸한 곳으로 이동하면 체포할 거야.”
장미란도 똑같은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송보름과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며 사기꾼의 행동을 주시만 했다.
마침내 사기꾼은 자신이 집어던진 휴대폰을 챙치고, 식판을 반납하려 움직였다.
강세훈과 장미란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식기를 반납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기꾼을 몰래 뒤쫓았다.
쇼핑몰 지하층엔 아직도 사람이 많다.
사기꾼은 화장실이 있는 통로를 들어섰다.
음식 그릇이 엎어지면서 손과 옷에 튀었기 때문이다.
강세훈은 사기꾼을 따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장미란은 밖과 통하는 출입문에서 대기했다.
잠시 후.
사기꾼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바로 뒤따라 나온 강세훈이 그를 불렀다.
“저기요, 잠시만요.”
사기꾼이 뒤돌아서며 물었다.
“저요?”
“네, 잠시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누구신데요?”
강세훈이 신분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마포경찰서 강력계 강세훈 형사입니다.”
“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최근 벌어진 리조트 예약 사기 사건의 용의자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사기꾼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저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겁니까?”
“제보가 들어온 이상,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내가 신분증을 어디에 두었더라…….”
사기꾼은 순순히 응하는 듯 휴대폰 케이스를 뒤적이기 시작했는데,
“에이, 씨!”
화악.
그는 강세훈을 밀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 서!”
강세훈은 바로 뒤쫓았고, 사기꾼은 쇼핑몰을 벗어나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내달렸다.
그곳에는 장미란이 예상하고 지키고 있었다.
“비켜~!”
사기꾼은 여가자 가로막고 있기에 그냥 밀치고 지나치려 했다. 이것이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팟.
장미란은 달려드는 사기꾼이 팔을 잡고, 그대로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철퍼덕!
“크악! 허, 허리가~.”
사기꾼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철컥.
강세훈이 그에게 수갑 채우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게 왜 도망가냐고?”
이어 그는 장미란에게 형식적으로 물었다.
“괜찮으시죠?”
“저야 뭐…….”
장미란은 새삼스럽게 뭘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곧이어 송보름이 달려와 사기꾼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내 돈 내놔, 내 돈!”
“아이~ 씨, 뭐야 또 이 년은…….”
사기꾼은 짜증 나고 귀찮다는 반응했다.
하지만 그가 붙잡히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송보름의 돈을 사기 쳤기 때문이었다.
* * *
굿 카페의 주말 저녁.
오늘도 손님들이 많이 들어왔다.
직원 네 명이 온전히 있어도 부족한 판에, 두 명이 한꺼번에 빠져 버렸다.
유달에게 끌려온 신소미는 진짜 노예가 된 심정이다.
정말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딸랑딸랑.
남녀 커플 손님이 들어왔다.
열심히 탁자를 닦던 신소미가 재빨리 다가가 응대했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 손님이 대답했다.
“네, 두 명이에요. 우리 저기 앉아도 돼요?”
그녀는 방금 신소미가 치우던 자리를 손짓했다.
“그럼요, 한 번 더 닦아 드릴 테니까, 앉아 계세요.”
신소미는 물을 마시러 주방 쪽으로 갔는데, 외려 일거리만 맡았다.
강성호가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7번 테이블이요. 늦었으니까 서둘러요.”
“그, 그래요…….”
17번 테이블은 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신소미는 묵직한 쟁반을 들고 뒤뚱뒤뚱 걸었다.
“왜 하필 제일 먼 자린데…….”
굿 카페는 250평이 넘었다.
17번 테이블은 주방에서 가장 거리가 멀었다.
경찰이 되기 위해 체력 훈련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신소미는 중간에 쉬지 않고 17번 자리에 도착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그녀는 힘들다는 탄식이 나올 뻔한 것을 꾹 참았다.
유달의 경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님들 앞에서 절대 힘든 내색 하지 말 것!
“맛있게 드세요.”
신소미는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방금 남녀 커플이 앉은 5번 자리로 향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신소미는 마른행주로 탁자를 닦으며 물었다.
메뉴 선택도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 손님이 했다.
“콜드브루 아이스 하나랑 바닐라라떼 시원하게요.”
“사주 관상은 보실 건가요?”
이 역시 절대 빼놓지 말라는 유달의 경고가 있었다.
“글쎄요, 그건 생각해 보고요.”
“알겠습니다. 손님.”
신소미는 뛰어가듯이 주방으로 향했다.
“5번 테이블, 콜드브루 하나, 바닐라라떼 하나요.”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난 손님들이 계산을 위해 다가왔다.
신소미는 황급히 카운터로 달려갔다.
“맛있게 드셨어요? 아이스 커피 2잔에 사주 관상 보셨으니까, 18,000원입니다.”
“이렇게 괜찮은 카페가 있는지 몰랐네요. 자주 올게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계산을 마치고 이제 좀 물 좀 마셔 보려 했는데, 강성호가 불렀다.
“20번 테이블이요.”
“네~.”
장미란이 알바생을 한 명 불렀지만, 그녀는 주방 보조로 묶여 있었다.
유달 역시 홀로 사주·관상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신소미가 20번 테이블로 가다가 둘이 마주치게 되었다.
“잘하고 있지?”
신소미의 불만이 절로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손님이 많아졌어요? 예전에 이렇지 않았잖아요? 힘들어 죽겠다고요.”
“인테리어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
“저 내일 근무에요. 얼마나 더 여기에 있어야 하냐고요?”
“나도 지금 3명이나 밀렸다고.”
띵동.
호출 소리에 그들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신소미가 벽에 걸린 호출기 모니터를 살피니, 남녀 커플의 5번 테이블이다.
“네, 기다리세요.”
그녀는 20번 테이블에 음료를 전해 주고, 5번 테이블로 바로 향했다.
“부르셨어요?”
여자 손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도 점 한번 보려고요.”
“네…….”
신소미는 당황하는 기색이다.
사주·관상 보는 손님이 3명 이상 밀리면 그녀가 대신 봐야 했기 때문이다.
신소미는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한데요, 사장님이 매우 바쁘셔서 제가 대신 점을 봐 드려도 괜찮을까요?”
“잘 보실 수 있으세요?”
여자 손님은 신소미의 실력을 의심하는 눈치다.
만약 거절당하게 되면 유달에게 또 폭풍 잔소리를 들을 위기였다.
“그럼요. 저도 한때는 미녀 보살로 유명했어요. 매스컴에도 자주 나왔거든요.”
신소미는 자신이 나온 기사들을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 주었다.
“어머, 정말 유명하신 분이었네요? 어서 앉으세요.”
“그럴까요?”
오랜만에 자리에 앉으니 정말 살 것 같다.
너무 좋아서 탄성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두 분의 사주를 불러 주시겠어요?”
그녀는 최대한 천천히 점을 봤다.
띵동.
다른 손님들의 호출 소리도 신경 쓸 필요 없다.
굿 카페는 사주·관상 보는 게 1순위.
주방에 있던 알바생이 홀에 나와 그녀의 일을 대신했다.
* * *
굿 카페 5번 테이블.
신소미가 점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기운을 회복한 신소미가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그때.
챙~.
신당에서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신소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섯 명의 사내.
나이 든 노인 한 명은 일본 전통복장인 유카타 차림이다.
나머지 넷은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눈에 익었다.
히데유키 사마를 연발했던 통역사였다.
신소미는 급히 유달이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위원님, 어쩌지요? 코야마가(家)에서 복수하려고 왔나 봐요!”
유달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코야마든 코지마든, 나 지금 손님 사주 보는 거 안 보여? VIP 룸으로 데려가고, 일반 손님하고 똑같이 대해.”
“아, 알았어요.”
신소미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 이쪽으로 오십시오. VIP 룸으로 모시겠습니다.”
다행히 코야마가(家) 사람들은 신소미의 안내를 받으며 VIP 룸 안으로 들어갔다.
신소미는 유달의 말대로 보통 손님처럼 그들을 대했다.
“음료수는 어떤 것으로… 메뉴판은 여기 있고요.”
순간, 얼굴이 엉망인 통역사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러나 이내 유카타 입은 노인이 제지하며 뭐라 이야기하자,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녹차 다섯 잔.”
“사주 관상을 보셔야 사장이 앉으시는데요?”
“그럼 보는 걸로 하고, 코야마 집안의 가주님이 직접 오셨으니, 그놈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해라. 그렇지 않으며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네~ 녹차 다섯 잔, 사주 관상은 보는 걸로요.”
신소미가 서둘러 VIP 룸에서 나왔다.
“후~ 너무 긴장해서. 이상한 소리가 나와 버렸어.”
곧이어 유달이 사주 풀이를 마친 테이블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나머지 사주 관상 손님들은 네가 맡아.”
“네, 그렇게요.”
유달은 VIP 룸의 문을 열기 직전,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왜요? 사장님도 긴장한 거예요?”
“그럴 리가. 이 VIP 룸은 내가 우겨서 만든 거거든. 작은 굿도 해야 한다며 방음 처리도 완벽히 했어.”
이어 유달의 음성이 억울한 듯 높아졌다.
“하지만 실상은 나와 보름이가 조용히 짱박히려고 했던 공간이란 말이야. 그런데 어제는 귀신들한테 빼앗기고, 오늘은 진짜 푸닥거리 한판 진하게 하게 생겼다고!”
끼익.
유달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신소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VIP 룸의 문을 닫았다.
“방음 처리 되어 있어도 안심할 순 없지. 혹시 모르니까, 매장에 음악을 크게 틀어. 그리고 어떤 괴상망측한 소리가 나도 절대 들어오지 마.”
쿵~